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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앱솔|작성시간13.10.11|조회수35 목록 댓글 3

「창세기 1장」의 진실을 찾기 위한 해설 : 서문(序文)

 

 

오늘 날의 현대인류는 지금까지도 존재(存在)함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와 보다 진실에 가까운 합리성을 갖춘 존재관(存在觀)을 찾지 못함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와중에 그나마 접하게 되는 성경의 창세기(創世記)간단명료한 서술형식으로 보편적인 합리성을 갖춘 된 우주관(宇宙觀)과 존재관(存在觀)을 겸한 천년 전의 자연문명의 과거인류에 의한 사상(思想)에 의탁(依托)되어져 있는 처지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과학문명의 시대를 열어 가고 있는 현대인류에게 주어진 수 천년 전의 고대인류(古代人類)가 가졌던 존재관(存在觀)인 성경의 창세기에 대하여, 지금까지 의심조차 하여서는 안될 신성(神聖)한 의미를 부여하여 대습되어 오고 있는 이유로 검증하거나 여과할 기회조차 자신의 존재성을 의심하는 양심의 가책으로 선량함을 지키기 위하여 간과하여 온 현실이었음을 다시금 주지(周知)하고, 시대착오적인 문제성에 대하여 제기(提起)하여야 할 필요성에 공감하실 것입니다.

 

 

성경의 주요골자는 일방적으로 무소불위(無所不爲)한 유일신(唯一神)이라는 추상(抽象)의 존재(存在)를 상정(上程)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주장에 검증하거나 대항할 수 없는 비신자(非信者)들을 대상으로 공의(公義)와 사랑을 표명하며 그 신(神)에 대한 일방적인 믿음과 순종이라는 미명(美名)아래, 사뭇 강요 아닌 강요이다시피 한 전도(傳道)로 지금까지 확장유지를 하여 오고 있는 현실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울러, 유일신사상(唯一神思想)을 이끌어 오는 종교지도자들 마저도 처음에는 유일신 사상과 전혀 무관한 비신봉자(非信奉者)의 입장에서 출발되어, 성경에 기록된 창세관에 대하여 비교(比較)할 합리적인 대상과 검증(檢證)할 인식능력의 부재(不在) 속에서 의심할 여지조차 제어된 입장에서 시작하여,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타의(他意)를 끊고 성경내용에 몰입하여 얻게 된 축적된 지식을 통하여 종교지도자까지로 변모하여 지게 되는 것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상정(上程)된 전지전능한 창조자(創造者) 「여호와 하나님」은 우주의 모든 것을 창조하였으며 존재함에 따른 모든 의미마저도 귀속이 되는 주인이라는 개념의 정체성에 대하여 찾아 본다면, 과학문명의 성숙된 의식에 걸맞는 본질적인 의미에 부합하는 표현은 「무형의 근원자로서 변화를 일으켜 존재하게 하는 자연의 섭리체(攝理體) 또는 의인화(擬人化) 한 섭리자(攝理者)」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성경에 표현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오해가 되기 시작한 원인을 찾아 본다면, 불가피하게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지칭을 하게 됨으로 인하여 만물과 사람에게 공(共)히 내재된 변화를 일으키는 속성을 지칭하는 추상(抽象)의 1인칭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 내재된 속성에 대하여 전혀 인지하지 못하였던 불완전한 자신의 입장에서 그 지칭된 자체가 외부적인 타자(他者)의 개념으로서 3인칭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지면서부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근본적인 이해의 차이로 인해 오늘 날에 이르기까지 의도와 달리 문제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배경은 그 자신으로부터 드러나야 할 잠재된 영성(靈性)의 싹을 키우지 못한채, 자신과 같은 타인의 마음을 배제하고 자신을 위한 외부적인 그 이름만을 주창(主唱)하게 됨으로서 모든 사고(思考)와 현실(現實)이 일체화된 화합으로가 아닌 오히려 외부와 담을 쌓게 되어 분리의 역사가 팽배(澎湃)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출애굽기 3장

 

13절)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절)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절)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13절의 표현을 보시면, 모세에 의한 하나님이라는 지칭은 신(神)에 대한 모세의 일방적인 개념에서 지칭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사자인 그 하나님은 스스로를 이르기를 특정의 이름을 말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15절에서 그 하나님이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며, '스스로 있는 자'이며, '여호와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라는 지칭의 본질적 의미는 결국 '스스로 있는 자'로 귀속이 되며, 한자(韓字)로 표현을 하면 자재(自在) 또는 자존(自存)으로서 자연의 섭리와 사람에게 내재된 영성의 영역인 본성(本性)이 표출된 우주적 자아를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과 만물에 공히 내재된 본성을 발견한 인격으로 우주의 질서 속에서 존재하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미래적 삶을 대하는 처세에 관한 이해의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는 창조론이 아니라 진화론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며, 성경에 표현된 하나님(하느님)은 자연의 섭리를 의인화하고 인격을 부여한 상정된 추상의 지칭인 것입니다.

 

성경이 유래되어 오게 된 과정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이해를 갖고 계시듯이, 수 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원인자로부터 구전과 필사에 의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에서의 표현들은 저자의 표현과는 얼마간의 차이는 있을 수도 있겠지만, 현재에 접하고 있는 성경을 통하여 다시금 저자의 본질적인 이해를 구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기대하는 관점은 「성경(Bible)의 창세기는 창조론(創造論)이 아니라, 나열식으로 표현된 진화론(進化論)에 대한 설명이다.」라는 이해를 구하여 봅니다.

 

 

아래 내용의 구성은

1.「 원문 」

2. 「 원문 풀이 」

3.「 단어별 풀이글 」로 구성하여 보겠습니다.

 

 

( 다음 페이지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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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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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바램이 | 작성시간 13.10.30 하루가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천년이란 숫자는 옛날에 거진무한에 가까운수일수있지요
    그리하여 첫일주일을 그리보았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앱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10.31 바램이님,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정할 내용이 있어 제목에 점(.)을 찍어 놓았는데, 용케도(?) 클릭을 하셨네요. 홧팅!!^^
  • 작성자바램이 | 작성시간 13.10.31 나는 .을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아래아 예슈아 함앜시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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