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혈쌍웅 - 이창호 VS 이세돌
천하를 주름잡는 고수들이 어찌 한둘이랴 마는 이 시대에 진정한 라이벌은 이창호와 이세돌로 압축된다. 전 편에 이세돌과 구리의 대결구도를 언급했으나 사실 이창호나 이세돌 두 사람 모두 구리보다는 국내의 라이벌을 더 두려워하지 않을까?
양이(兩李)를 놓고 누가 우위에 있는지 천칭으로 재기에는 아직 시기가 이른 감이 있다. 아직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역대전적은 대략 50합을 겨뤄 6:4의 비율로 이창호가 앞서있다.
올해 전적만으로도 4:1이니 아직 이세돌이 이창호를 넘어섰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세돌이 갓 입단했을 때 이창호가 절정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 승부는 5:5로 봐줄만 할 것이다.
이세돌 : 제 위에 이창호 사범님이 계십니다.
올해 이세돌의 입에서 튀어나온 발언이다. 솔직담백하고 겸사의 수식어를 싫어하는 이세돌이 어쩐 일로 그렇게 말했다. 그는 자존심과 기백으로 똘똘 뭉쳐진 사나이. 아직 프로 면장에 잉크도 마르기 전인 저단자 시절에 한국기원의 형식적인 승단대회를 거부했고, 랭킹 1위인 자신을 와일드카드로 기용하지 않았다고 농심신라면배에 불참했던 반골이다. 그런 그가 살짝 눈을 깔았다.
정상에 오르면 이치가 보인다는 이야긴가? 뭔가 변한 느낌이다.
변화는 이창호도 마찬가지다.
이창호 : 이번에는 이세돌을 무섭게 해주겠다.
이런 말이 과연 석불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인가? 타인의 신경을 거스르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 그가 잉창치 배 결전을 앞두고 잽을 날렸다. 임전소감을 밝히는 그의 멘트는 프로가 된 이후 천편일률 ‘최선을 다 하겠다’는 식이었다. 그런 그가 먼저 도발했다.
아마 매스미디어를 위해서 립 서비스를 한 것으로 여겨진다.
전적은 분명히 이창호 우위로 나오는데 정작 이창호는 자신이 최근 밀렸노라 고백한다.
이창호 : 요즘에는 객관적인 전적으로 제가 밀려있어요. 솔직히 이번에 졌으 면 1인자는 이세돌 9단이죠. 이번에 이겼으니 다시 연장전이 된거 예요. 극적이었지만. 제가 많이 이겨야 할 듯해요.
![]() ▲ 이창호(왼쪽)와 이세돌은 잉씨배 준결승전이 끝나고 2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
태국에서 열린 잉씨배 준결승전에서 두 판 내리 과감한 들배지기로 이세돌을 내리꽂고 이창호는 연장전을 선언했다.
이세돌은 태국에서 돌아와 비틀거리며 이리저리 뭇매를 맞았다. 국내 대국에서 쉽다고 보이는 기사에게도 패배해 5연속 패점을 기록했다. 극심한 내상(內傷)을 입은 거였다.
그러나 삼성화재 배 8강전에서 다시 만난 이창호를 상대로 깔끔하게 설욕을 해내고 여세를 몰아 결승에 선착해버렸다.
그 대목에서 역시 막상막하, 양웅의 체급이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런데 도대체 이세돌은 언제 이창호를 추월하고 국내 랭킹 1위에 올랐을까?
아무리 살펴봐도 둘의 본격대결이 이뤄진 적은 없는듯 싶은데 말이다.
2001년 LG배 결승전에서 혜성처럼 등장해 화끈한 행마로 이창호에게 선방을 날려 2연승을 올려놓고 장렬하게 3연패로 역전 KO를 당한 이세돌은 2년 후 2003년 다시 엘지 배 결승에서 3:1로 고스란히 빚을 갚으며 정상에 등극했다.
LG배에서 두 차례 치열한 접전을 펼친 것 말고는 세계대회에서 부딪힌 적이 별로 없다.
2002년 5월 9일 - TV아시아바둑선수권전 준결승(이창호 승)
2002년 7월 6일 - 후지쯔배 준결승전(이세돌 승)
2006년 6월 3일 - 후지쯔배 8강전(이세돌 승)
2006년 9월 1일 - 도요타덴소배 준결승전(이세돌 승)
2008년 9월25일 - 잉씨배 준결승전(이창호 2:0 승)
2008년11월19일 - 삼성화재배 8강전(이세돌 승)
- 이창호 전적이 궁금하신 분은 www.leechanghodb.com 참고하실 것-
이상하리만큼 절정의 두 고수가 세계대회 결승에서 조우한 적이 드물다.
그러므로 이들은 아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지 않은 준비된 라이벌이라는 게 옳으리라. 이창호의 표현대로 연장전이 벌어진 것이고 바로 그 승부가 21세기 서막의 패자를 가리는 무대가 될 것이다.
앞서 이창호, 이세돌, 구리, 창하오 4강의 이야기를 소개하겠노라 전제했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 4강의 면면을 가만 살펴보면 한국과 중국에 각각 2명이 포진하고 신·구 세대가 2명씩 존재하며, 대각으로 공격 형 기풍과 두터운 기풍으로 또 2명씩 나뉜다.
천하의 패권은 기풍에 따라 향방이 바뀐다. 일본도 그랬고 한국도 그러했다.
![]() ▲ 올해 LG배 32강이 끝나고 나란히 백담사로 향한 이세돌(왼쪽)과 이창호. |
조남철의 짜디 짠 실리바둑은 김인의 중후함에 밀려났고, 김인의 두터움은 조훈현의 쾌속행마에 무너지지 않았던가?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조훈현의 스피드는 이창호의 철벽 앞에 무력해지고 말았으며 철옹성 이창호의 방어막도 이세돌의 가공할 십자포화에 번번이 뚫렸음을 복기해보시라.
비슷한 기풍으로는 결코 일인자를 넘어설 수 없는 게 정설이다. 시대의 정상을 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인자와 다른 기풍으로 도전해야 하는 법이다.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다시 사실주의로 반동을 거듭하며 발전해 온 문예사조의 변천사(變遷史)처럼.
바둑계에서는 기풍의 변천을 몸집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깡마른 조남철 - 후덕한 김인 - 다시 마른 조훈현(요즘은 쪘다^^) - 우량아 출신 이창호(요즘은 수척해졌다 - -;;) - 다시 홀쭉한 이세돌.
(그렇다면 장차 이세돌을 극복할 고수는 통통한 스타일이 아닐까? 통계는 그렇게 희한한 예측을 낳게 한다. 누가 있을까? ^^설마 joonki?)
이창호가 절대패권을 쥐고 있던 시절 결코 주눅 들지 않고 호각의 승부를 펼쳤던 최철한의 선전도 알고 보면 끝까지 독하게 두는 그의 기풍이 먹혀들어갔다는 이야기다.
기풍의 극복을 위한 기풍의 반동은 바둑의 진화로 이어진다.
행마의 스피드만으로 손쉽게 상대를 제압했던 조훈현은 제자의 끈질긴 계산 앞에 당황하다가 계산을 허물기 위한 비책으로 화염방사기로 통하는 강공술을 찾아냈다. 웅장한 성곽만으로 중원을 거뜬히 지켜냈던 이창호는 이세돌, 최철한 등 야성적인 북방유목민의 도전에 시달리면서 덩달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화력을 아낌없이 쏟아 붓고 있다. 이창호의 기풍도 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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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박치문, 중국의 씨에루이, 일본의 오시마 등 삼국의 바둑관전기자들은 이창호가 예전 같지 않다고 분석한다.
일단 삼십 대의 나이를 주목한다. 골프 계의 추세가 그러하듯 마인드스포츠에서도 전성기는 이제 이십 대 초반이라고들 한다. 두뇌회전의 RPM 속도도 다르고, 잦은 대국을 감당하려면 체력도 받쳐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도 삼십 대의 나이는 집중력에 있어 핸디캡이 많을 것이다. 가정도 꾸려야 하고, 사회전반에 대한 참여의 폭도 넓어지기 때문이다.
그의 스승 조훈현이 그랬듯 이창호 역시 바둑으로 이룰 것은 거의 다 이룬 마이스터다. 최근에 이미 부진을 겪어봐서 초탈한 입장이겠지만 홀가분하게 나서면 절대지존 시절과 또 다른 성취를 맛볼 수 있으리라.
승부도 중요하지만 이창호는 지금 세계바둑계의 두목 아닌가? 한국대표 정도가 아니라 세계바둑계의 간판이므로 반상 밖까지도 내다보는 시야를 가졌으면 좋겠다.
잉씨배 준결승전이 끝나고 이창호, 이세돌은 무려 두 시간이 넘게 복기를 했다고 한다. 대국만으로도 피곤했을 법한데 도대체 두 사람의 가슴 속에 어떤 불길이 남아 그리 긴 시간 정염을 달랬던 것일까?
이창호 : 이세돌 9단을 만나면 아무래도 신경쓰이죠.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즐 거워요. 그와는 짜릿한 바둑을 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세돌도 이창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첩혈쌍웅, 이 두 사람은 우리 바둑계를 전진시키는 두 바퀴다.
![]() ▲ 우리 바둑계를 전진시키는 두 바퀴 이창호(위)와 이세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