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도방과 우도방 >
"주문"을 외운다고, "좌도방"이 아니요,
"단전호흡" 한다고, "우도방"도 아니다...
좌도방은, "몸"에서, "마음"으로 나아가고,
우도방은, "마음"에서, "몸"으로 나아간다...
옛적에, "신수"와 "혜능"의 게도송이, 좌도방과 우도방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지,
깨우침의 우열을 나눈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혜능의 "우도"를, 손들어 줌으로써, 우도의 선풍이, 정도로 인정받는 것일뿐,
신수의 깨우침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신수는, 점차 진행하는, 수련을 표현하고,
혜능은, 돈오를 표현하는데, 이것을, 깨달음의 우열을 정하는 것으로 알면 곤란하다.
지금까지 알고 있는, 이러한 사실이, 다른계통 전수자들에게, 한이 되었고,
현재의 이데올로기가, 상대방을 억압하는 것과 같은, 작용을 받아 온, 어두운 역사가 있었다.
"우도"는, "깨우침"으로, 직접들어가, "몸의 변화"를 유도한다.
그래서, 각성을 이룬자가, 소주천을 못하면, 이도 가짜이며,
"좌도"는, 점차적으로 진행하는 수련이니, "호흡"과 "기수련"으로, 소주천을 이룬자가,
깨달음이 없다면, 이것도 가짜이다.
이것이, 몸에서, 마음으로의 수련과,
마음에서, 몸으로의 수련을 나타낸다.
어느 한쪽을 택해서, 성과가 있다면, 그것을 기반으로,
다른 쪽도 이끌어, 온전한 결과를 얻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수련이고, 그 후의 수련으로 넘어간다.
이것이, 균형이 안맞으면, 엉뚱한 것이고, 정체된 상황이 오며,
많은 수도자의 더디고, 불분명한 수련의 이유가, 이것일 것이다.
수련 방법을 택할때, "체질", "자질" 등을 보고 정한다.
꾸준히, 오래참고 견디는 것을, 잘할 수 있는 체질이나,
신체적 효과와 능력을 원하는, "무공"이나, "기능력" 등을 하려는 사람과,
또, 자질의 문제로, 개념 형성, 추상적이며, 형이상학적 사고를 힘들어 하는 사람,
현실적이고, 실제적 효과를, 더 추구하는 사람들이, "좌도방"을 주로 한다.
"우도방"은, 당연히, 관념적 사고를 좋아하고,
"기"(氣)보다는, "이"(理)에 더 관심있으며,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사람,
화려하고, 눈에 띄는 효과보다, 깊고, 근원적 사물을, 보려는 사람이 한다.
부지런하고, 열심히 하는 것보다, 느긋하고, 하는듯 마는듯 하는것을, 좋아 한다.
하지만, 어떻게 시작하고, 결과를 얻든, 양쪽의 조화를 해야하며,
하나만 주장하고, 고집하기보다, 조화를 이루며, 수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문을 외우는 것이, 좌도방이 아니라,
그 주문이, "반야심경"이나 "원상문", "삼극주" 등 처럼, 각성을 위한것이라면, "우도방" 이고,
참선을, 부지런히 하고, 호흡을 하며, 점진적으로 하는,
즉, 몸을 이용해, 마음을 각성해 간다면, "좌도방" 이다.
지금은, 굳이, 좌다 우다 하며, 나눌 이유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해가며, 원하는 것과, 할 수 있는것을 하는 것이, 좋을듯 하다.
과거, 우도방이, 자기들의, 글읽고 사유하는 식의 공부가,
좌도방의, 술법이나, 차력, 무예 단련하는 것을, 터부시하고, 천하게 보는 경향이 있었고,
그 이면에는, 상대를 두려워하는, 비겁함도 있었다.
머리좋다는 자들이, 오히려, 두려움에 떨고, 옳다고 여기는 신념을 위해, 목숨을 버리길 꺼려한다.
지금의 똑똑한자들이나, 힘있고, 돈있는 자들이,
정의를 생각하고, 서민을 생각하며, 그런 생각을 위해, 자기의 것을, 버릴지는 믿기 어렵다.
공부방식만으로, 사람을 무시하는, 저열한 조상을 둔 우리가, 지금이라고, 훌륭한 문명을 만들리가 없다.
지금은, 자기 수련법이나, 단체만을 위하고, 조직의 안위만 위하는, 편가르기가,
아직 있는 것을 보면, 관법이 없고, 세상을 볼줄아는 자는, 없어 보인다.
그렇게, 우도방이, 머리굴리며, 우주의 이치를 안다고 떠벌리면서,
이룬 세상이, 겨우, 이런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