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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繫辭上傳>
[細註]程子 가로되 聖人의 마음을 쓰는 깊은 곳은 모두 <繫辭傳>에 있으니《詩經》《書經》은 이에 格言이다.
○<繫辭傳>은 본디《周易》을 밝히고자 한 것이나 만약 먼저 卦의 뜻을 구하지 않으면 곧 <繫辭傳>을 보아도 알 수 없다.
○繫辭의 글 같음은 後人들이 결단코 배워도 알 수 없으니 비유컨대 化工(조물주)이 물건을 낳음에 장차 마치 한 가지의 꽃을 生出함과 같으니, 혹은 자르고 재단하여 만드는 자가 있으며, 혹은 그려서 만드는 자가 있으니 보는 때에 비록 스스로 서로 비슷한 것 같으나 그러나 끝내는 化工이 낳은 바는 자연스런 生意가 있는 것만 같지 못하다.
987[本義]繫辭는 本謂文王周公所作之辭 繫于卦爻之下者니 卽今經文이오 此篇은 乃孔子所述繫辭之傳也라 以其通論一經之大體凡例 故로 无經可附而自分上下云이라.
[細註]朱子 가로되 64卦를 숙독한 즉 <繫辭傳>의 말이 매우 정밀함을 깨달을 것이니 이는《周易》의 포괄적인 예이다.
○<繫辭傳>은 혹은 造化를 말하여《周易》에 미치고, 혹은《周易》을 말하여 造化에 미치니 이러한 이치를 벗어나지 않는다.
○雙湖胡氏 가로되 <繫辭傳>가운데에 聖人이 ‘繫辭’라고 말한 것이 여섯 군데이니, 가로되 ‘聖人設卦觀象繫辭焉而明吉凶(995쪽 聖人이 괘를 베풀어 象을 관찰하고 말을 매달아 길흉을 밝혔다)’이라 하고, 가로되 ‘聖人有以見天下之動繫辭焉以斷其吉凶者(1026, 1068쪽. 聖人이 天下의 動을 보아 말을 매달아 그 吉凶을 결단한 것이 있다)라고 한 것이 무릇 두 번 나오고, 가로되 繫辭焉所以告也(1061쪽 말을 매달아 써 고한 바이다)라 하고, 가로되 繫辭焉以盡其言(1063쪽 말을 매달아 그 말을 다했다)라 하고, 가로되 繫辭焉而命之(1071 말을 매달아 그것을 명하였다)라 하니 모두 文王과 周公의 卦辭와 爻辭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마치 <繫辭傳> 上下傳과 같음은 곧 이는 孔子께서 一經의 卦爻의 大體와 凡例를 통괄하여 논한 것이니 예컨대 先聖의 作易의 이유를 논함은 곧 包羲(포희=伏羲)氏의 仰觀俯察(앙관부찰)과 및 易有太極 및 河圖洛書의 여러 章에 나타나고, 예컨대 用易의 法을 논함은 곧 大衍之數五十章과 대저 卦爻의 剛柔와 象數의 變化와 三極의 道와 幽明의 연고와 鬼神의 情狀에 나타나니 모두 찾아 뒤지기를 숨김없이 하였으니 만약 다만 上下의 經만 있고 <繫辭傳>가 없다면 곧 象數의 학문이 밝아지지 않고 義理의 은미함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니 易 또한 마침내 萬世에 씀을 이루고 仁義中正의 귀착에 마땅함이 없었을 것이다. 그 ‘大傳’이라고 칭한 것이 있음은 太史公이 ‘天下同歸而殊塗’하고 ‘一致而百慮’을 인용함을 인하여 易의 大傳이라 하였다. 대저 太史公이 易을 楊何에게 배우고 楊何의 무리는 스스로 易傳을 지어 세상에 행하였다. 그러므로 孔子를 칭한 자 가로되 大傳이라하여 구별하였을 뿐이다.
○雲峰胡氏 가로되 上下에 말을 매단 것이 각각 12章이니 처음에는 모두 易簡(이간)함을 말하였고, 끝에는 모두《周易》은 德行에 있고 言辭에 있지 않음을 말하였으니 사람들에게《周易》을 배우는 要諦(요체)를 보여주심이 매우 깊도다.
天尊地卑하니 乾坤이 定矣오 卑高以陳하니 貴賤이 位矣오 動靜有常하니 剛柔斷矣오 方以類聚코 物以羣分하니 吉凶이 生矣오 在天成象코 在地成形하니 變化見矣라.
[細註]‘天尊地卑’는 ‘天下之理得而成位乎其中矣(994쪽)’에 그친다.
○天尊地卑하여 尊卑의 자리가 정해짐에 乾坤의 뜻이 분명해졌고, 尊卑가 이미 판별됨에 貴賤의 자리가 분명해졌고, 陽動陰靜은 각각 그 떳떳함이 있으니 곧 剛柔가 판별되었다. 일에는 이치가 있으니 一이 萬事를 만드는 이치이고, 物은 형체가 있다. 일은 곧 종류가 있고, 형체는 곧 무리가 있어 善惡이 나뉘고 吉凶이 생기는 것이다. 象은 하늘에 나타나고, 形은 땅에서 이루어져 變化의 자취가 나타난다. 陰陽의 사귐이 서로 마찰하고 八方의 氣가 서로 밀고 뒤섞여 우레와 번개가 움직이고, 風雨가 적셔주어 日月이 운행하고 寒暑가 서로 교대하여 造化의 功을 이루니 乾을 얻은 자는 남자가 되고 坤을 얻은 자는 여자가 되니, 乾은 始物을 담당하고 坤은 成物을 담당하니 乾坤의 道는 易簡할 뿐이다. 乾의 始物의 道는 쉽고, 坤의 成物의 능력은 간단하여 平易한 故로 사람들이 알기 쉽고, 簡直하여 사람들이 따르기 쉽다. 알기 쉬우니 곧 가히 친하여 나아가 받들어 따를 수 있고, 따르기 쉬우니 곧 가히 취하여 법을 삼아 功을 이룰 수 있으며, 親合한 즉 가히 常久할 수 있고, 일을 이룬 즉 가히 廣大할 수 있으니 聖賢의 德業이 오래고 커서 易簡의 道를 얻었으니 天下의 이치는 易簡할 따름이다. 이치가 있는 이후에 象이 있으니 成位는 그 가운데 있다.
988[本義]天地者는 陰陽形氣之實體요 乾坤者는 易中純陰純陽之卦名也라 卑高者는 天地萬物上下之位요 貴賤者는 易中卦爻上下之位也라 動者는 陽之常이요 靜者는 陰之常이며 剛柔者는 易中卦爻陰陽之稱也라 方은 謂事情所向이니 言事物善惡이 各以類分이요 而吉凶者는 易中卦爻占決之辭也라 象者는 日月星辰之屬이요 形者는 山川動植之屬이며 變化者는 易中蓍策卦爻가 陰變爲陽하고 陽化爲陰者也라 此는 言聖人作易에 因陰陽之實體하여 爲卦爻之法象하니 莊周所謂易以道陰陽이 此之謂也라.
[細註]○張子 가로되 高卑라고 말하지 않고 卑高라고 말한 것은 또한 의미가 있으니 高는 아래로써 기초를 삼으니 또한 이는 사람들이 낮은 곳을 먼저 본 연후에 높은 곳을 보기 때문이다.
○鶴山魏氏 가로되 卦畫은 아래로부터 시작한다. 位는 六位이다. 貴賤은 屯卦(03.☵/☳)에서 말한 ‘以貴下賤’과 訟卦(06.☰/☵)에서 말한 ‘以下訟上’의 부류를 관찰함에 가히 알 수 있다. 하늘은 둥글어 動하고 땅은 네모나 靜한 故로 떳떳함이 있다. 剛爻는 一三五요, 柔爻는 二四六이다. 斷은 九六의 得位와 失位를 인하여 결단하는 것이다. 位의 正當함과 位의 不當함의 부류를 관찰함에 가히 알 수 있다.
○臨川吳氏 가로되 ‘動靜有常’은 天地의 用으로써 말한 것이니 하늘이 운전하여 그치지 않음은 陽의 떳떳한 움직임이요, 땅이 塡嶷(전억)하여 옮기지 못함은 陰의 떳떳한 고요함이다. 剛柔는 卦의 홀짝 二畫으로써 말한 것이니 剛은 奇畫을 이름이요, 柔는 偶畫을 이름이다. 斷은 判(판가름할 판)과 같다. 剛畫은 陽動의 實함과 같음에 一이요, 柔畫은 陰靜의 虛함과 같음에 二이다.
○誠齋楊氏 가로되 聚散이 향함이 다르고, 好惡는 서로 공격하니 이로 말미암아 吉凶이 생긴다.
○東坡蘇氏 가로되 方은 본디 다르나 類로써 모이니 이는 같음이 다름에서 나옴이요, 物이 무리지은 즉 그 형세가 얻어 나누어지지 않을 수 없으니 이는 다름이 같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天地는 一物이요, 陰陰은 一氣이니, 혹은 象이 되고 혹은 形이 됨은 所在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르되 在라는 것은 그 동일함을 밝힌 것이요, 象이라는 것은 형체의 精華(정화)가 위에 發하는 것이요, 形이라는 것은 象의 體質이 아래에 머무는 것이다.
○盤澗董氏 가로되 하늘에 있음에 象을 이루고 땅에 있음에 형체를 이루니 變化가 나타난다는 것은 變化는 形象을 인한 이후에 있는 것이 아니다. 變化流行은 形象이 아니니 곧 나타낼 수 없는 故로 形象을 인하여 變化의 자취를 가히 나타낼 수 있다. 日月星辰은 象이요 山川動植은 形이다. 象은 陽氣의 하는 바요, 形은 陰氣의 하는 바이나 그러나 陽中에 陰이 있으니 곧 日星은 陽이요 月辰은 陰이요, 陰中에 陽이 있으니 곧 山은 陰이요 川은 陽이다. 그러나 陰陽은 또 일찍이 서로 뒤섞여있지 않음이 없어서 각각 스스로 陰陽이 된다.
○涑水司馬氏 가로되 乾坤이 天地에서 정해지고, 貴賤이 尊卑에서 나열되고, 剛柔가 動靜에서 결단되고, 吉凶이 萬物에서 생기며 變化가 形象에 나타는 것은 모두 聖人이 하는 것이 아니다. 天地의 판단과 陰陽의 사귐은 본디 저절로 있는 것이요, 聖人이 그것을 따라서 가르침을 삼을 뿐이다.
○勉齋黃氏 가로되 이는 天地가 있으면 곧 乾坤 貴賤 剛柔 吉凶 變化의 이치를 소연히 가히 볼 수 있음을 말함이다. 그러나 반드시 乾坤이 있는 이후에 貴賤 剛柔 吉凶의 體가 비로소 갖추어지고, 貴賤 剛柔 吉凶이 있는 이후에 變化의 用이 비로소 행해지니 乾坤에서 시작하고 變化에서 마치니 이는 生生의 다하지 않는 바요, 天地는 常久하여 그치지 않는 바이다.
是故로 剛柔相摩하며 八卦相盪하여
990[本義]此는 言易卦之變化也라 六十四卦之初는 剛柔兩畫而已니 兩相摩而爲四하고 四相摩而爲八하고 八相盪而爲六十四라.
[細註]묻건대 剛柔相摩 八卦相盪은 가만히 생각건대 64卦의 처음은 剛柔 2획일 뿐이요, 2가 4가 되고, 4가 8이 되고, 8이 16이 되고, 16이 32이가 되고, 32가 64가 되니 모두 자연스럽게 生生하여 그치지 않음인데 그것을 일러 摩盪(마탕)이라고 함은 어째서입니까? 가로되 摩는 마치 一物이 一物의 上面에 있어 마찰하여 돈다는 뜻과 같으니, 또한 이는 서로 사귐의 뜻이다. 예컨대 今人의 磨子(맷돌)과 서로 비슷하니 下面의 一片은 이는 움직이지 않고, 上面의 一片은 다만 摩旋推盪(마선추탕)을 관장하여 일찍이 멈추지 않으니 兩儀로부터 四象을 낳은 즉 老陽과 老陰이 움직이지 않고, 少陰과 少陽이 곧 사귀어 四象으로부터 八卦를 낳은 즉 乾坤震巽이 움직이지 않음에 兌離坎艮이 곧 사귀어 八卦로부터 64卦를 낳으니 모두 이와 같이 위로 감을 좇아서 下體가 움직이지 않으니 매번 一卦가 八卦를 낳은 故로 그것을 일러 摩盪이라고 한 것이다. 또 가로되 摩는 이 두 개의 물건이 서로 摩戛(마알)함이요, 盪은 이 圓轉推盪(원전추탕)하여 나온 것이니 摩은 이 八卦 이전에 일이 있음이요, 盪은 저 八卦의 마침이요, 圓旋推盪(원선추탕)은 저 64卦가 나온 것이다.
○臨川吳氏 가로되 卦를 긋는 처음에는 一剛一柔와 제2획의 剛柔를 서로 문지름에 四象이 되고, 또 二剛二柔와 제3획의 剛柔를 서로 문지름에 八卦가 되고, 八卦가 이미 이루어지면 곧 또 각각 8번 움직여 卦가 一貞卦의 위에서 움직임에 一卦가 八卦가 되고, 八卦는 六四卦가 된다.
鼓之以雷霆하며 潤之以風雨하며 日月이 運行하며 一寒一暑하여
991[本義]此는 變化之成象者라.
[細註]○建安丘氏 가로되 앞에서는 乾坤 貴賤 剛柔 吉凶 變化로서 말하니 이는 對待하는 陰陽이니 交易의 體요, 여기는 摩盪 鼓潤 運行으로서 말하니 이는 유행하는 陰陽이니 變易의 用이다.
乾道成男하고 坤道成女하니
[本義]此는 變化之形成者라 此兩節은 又明易之見於實體者하니 與上文相發明也라.
[細註]○<正蒙>에 이르되, 氣기 어지럽게 움직이다가 합해져서 形質을 이룬 자는 人物의 만 가지 다름을 낳고, 陰陽의 兩端이 순환하여 끝이 없는 자는 天地의 大義를 세우니, 陰陽循環도 마치 磨와 같고, 游氣紛擾도 마치 磨와 같으니, 가운데서 나온 것은 ‘剛柔相摩하고 八卦相盪하여 鼓之以雷霆하며 潤之以風雨하며 日月運行하며 一寒一暑’이니 이는 陰陽의 循環이니 天地의 大義를 세우는 것이요, ‘乾道成男하고 坤道成女’는 이는 游氣紛擾니 인물의 만 가지 다름을 낳는 것이다.
○雲峰胡氏 가로되 剛柔의 二爻가 相摩하여 八卦가 되고, 八卦가 相盪하여 六十四卦가 되니 摩와 盪은 곧 上文의 이른바 變化이다. 六四卦의 가운데에 저절로 雷霆 風雨 日月 寒暑가 있으니 變化하여 象을 이룬 것이다. 卦의 가운데에 저절로 男女가 있으니 變化하여 形을 이룬 것이다. 이 一節은 畫을 그은 이후의 易이 또 이와 같다. 대저 易의 畫을 긋지 아니함에 卦爻의 變化는 天地의 實體 가운데 있고 그 이미 획을 그음에 미침에 天地萬物의 변화는 또 卦爻의 實體 가운데 있다. <本義>는 두 實體로써 나타남을 말했으니 天地에 있는 것은 곧 아직 획을 긋지 않은 易이요, 易에 있는 것은 곧 이는 이미 획을 그은 天地이니 그 體가 모두 진실이요 허구가 아니다.
乾知大始오 坤作成物이라.
992[本義]知는 猶主也라 乾主始物 而坤作成之하니 承上文男女而言乾坤之理라 蓋凡物之屬乎陰陽者 莫不如此하니 大抵陽先陰後하고 陽施陰受하며 陽之輕淸은 未形 而陰之重濁은 有跡也니라.
[細註]○乾은 다만 이 氣의 統體이니 포괄하지 않는 바가 없다. 다만 그 氣의 움직임으로부터 말한 즉 陽이 되고, 그 기의 고요함으로부터 말한 즉 陰이 되니 陽은 항상 陰을 겸하고 陰은 陽을 겸하지 못하는 바이다. 陽大陰小하고 陽全陰半하며 陽饒陰乏(양요음핍)함에 陰은 반드시 陽에 붙는다는 것이 이 뜻이다. 邵子(소자:소강절)가로되 陽은 능히 독립하지 못하니 반드시 陰을 얻은 이후에 설 수 있는 故로 陽은 陰으로서 기초를 삼고, 陰은 능히 스스로 나타내지 못하니 반드시 陽을 기다린 이후에 나타날 수 있는 故로 陰은 陽으로서 唱導함을 삼는다. 陽은 그 처음을 주관함에 그 이룸을 누리고, 陰은 그 법을 본받음에 그 功勞를 마친다.
乾以易知오 坤以簡能이니
[本義]乾은 健而動하니 卽其所知가 便能始物而无所難 故로 爲以易而知大始요 坤은 順而靜하니 凡其所能이 皆從乎陽而不自作 故로 爲以簡而能成物이라.
[細註]○雲峰胡氏 가로되 本義에 가로되 이는 上文의 男女를 이어 乾坤의 道를 말했다. 대저 物의 陽은 乾의 男에 속하고, 陰은 坤의 女에 속하니 一陰一陽이 가히 서로 있고 가히 서로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이치는 곧 陽이 始物을 주장하니 陰은 作成함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陽의 始物을 주장함은 스스로 그러함이나 그러나 어찌하여 易가 되는가? 健하기 때문이다. 陰은 다만 陽을 좇아 스스로 능히 물건을 이루되 어찌하여 簡이 되는가? 순하기 때문이다. 위의 두 구절은 陰陽의 형체를 논하였으니 氣와 形을 겸하여 말한 것이요, 여기는 陰陽의 性情을 논하였으니 氣와 形을 인하여 이치로써 말한 것이다.
易則易知오 簡則易從이오 易知則有親이오 易從則有功이오 有親則可久오 有功則可大오 可久則賢人之德이오 可大則賢人之業이니.
993[本義]人之所爲가 如乾之易則其心明白而人易知하고 如坤之簡則其事要約而人易從이니 易知則與之同心者多故로 有親이요 易從則與之恊力者衆故로 有功이라 有親則一於內故로 可久요 有功則兼於外故로 可大라 德은 謂得於己者요 業은 謂成於事者라 上言乾坤之德不同하고 此言人法乾坤之道하니 至此則可以爲賢矣라.
[細註]○朱子 가로되 乾은 易로서 주장하고 坤은 簡으로서 能하니 이 易簡은 乾坤에 있으니 ‘易則易知 簡則易從’은 도리어 人事로서 말한 것이다. 두 개의 ‘易(이)’자는 또 스스로 같지 않으니 하나는 이 簡易의 易요, 하나는 難易의 易니 요컨대 하나의 글자는 다만 은미하여 털끝만한 차이가 있다.
○雲峰胡氏 가로되 앞의 三節은 天地 사이에 물건마다 乾坤이 있음을 알 수 있고, 여기의 一節은 人心에 저절로 한 乾坤이 갖추어짐을 알 수 있으니 사람의 마음이 마치 乾의 易함과 같은 즉 명백하여 알기 쉬우니 마음을 함께하는 자가 많은 故로 가히 안에 專一함에 賢人의 德이 될 수 있고, 사람의 일을 행함이 마치 坤의 簡과 같은 즉 요약하여 따르기 쉬우니 협력하는 자가 많은 故로 가히 밖에 겸하여 賢人의 業이 될 수 있다. 대저 사람의 마음은 본디 스스로 明白하고 正大하고, 본디 스스로 乾坤과 더불어 同體이나 세상 사람들이 이따금 기울고 험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가히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고, 수고롭고 어지럽게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가히 行持하지 못하게 하여 가히 持久하지 못하고, 가히 넓혀 확충하지 못하여 마침내 스스로 小人에 돌아감이 되니 자못 가히 애석하도다. 本義에 가로되 이는 사람이 능히 乾坤의 道를 본받음을 말함이니 여기에 이른 즉 가히 賢人이 될 수 있으니 대저 衆人을 위하여 말한 것이다. 夫子께서 감히 갑자기 聖人을 말하지 않고, 잠시 가로되 ‘可久可大’라 하고, 잠시 가로되 賢人의 德業이라 하니 衆人이 모두 가히 이르게 하고자 함이다.
易簡而天下之理得矣니 天下之理得而成位乎其中矣니라.
994[本義]成位는 謂成人之位요 其中은 謂天地之中이니 至此則體道之極功과 聖人之能事가 可以與天地參矣라.
右는 第一章이라.
[本義]此章은 以造化之實로 明作經之理하고 又言乾坤之理가 分見於天地而人兼體之也라.
聖人이 設卦하여 觀象繫辭焉하여 而明吉凶하며
[細註]程子 가로되 聖人設卦觀象는 吉無不利에서 그친다.
○聖人이 이미 設卦함에 卦의 象을 관찰하고 말로써 매달아 그 吉凶의 이치를 밝히며, 剛柔相推로써 變化의 道를 아니 吉凶의 생김이 得失을 말미암은 것이다. 悔吝은 가히 憂虞함이요, 進退消長은 變化를 이루는 바요, 剛柔가 서로 바뀜에 晝夜를 이루니 晝夜를 관찰한 즉 剛柔의 道를 알 수 있다. 三極은 上中下이다. 極中은 모두 그 時中이요, 三才는 物로서 말한 것이요, 三極은 位로서 말한 것이다. 六爻의 움직임은 位로서 뜻을 삼으니 곧 그 차례요, 그 차례를 얻은 즉 편안하다. 辭는 뜻을 밝힌 바이니 그 말의 뜻을 완상한 즉 그 가히 즐거움을 알 수 있고, 象을 관찰하고 말을 완상함에 능히 그 뜻을 통하고, 變을 관찰하고 占을 완상함에 능히 그 때를 순히 하면 動함이 하늘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本義]象者는 物之似也라 此는 言聖人作易에 觀卦爻之象而繫以辭也라.
[細註]○龜山楊氏 가로되 이는 주역의 책됨을 총괄하여 말한 것이다.
○漢上朱氏 가로되 聖人이 卦를 베푼 것은 본디 象을 관찰하여 말하지 않고도 吉凶을 보았다. 伏羲로부터 堯舜과 文王에 이르기까지 象을 관찰하고 스스로 얻었다. 聖人이 관찰하는 자 그 지혜가 족히 이를 알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이에 卦辭를 달고 또 爻辭를 달아 명백하게 고한 것은 不得已함이니 象을 관찰하고 알지 못한 자를 위하여 베푼 것이다.
剛柔相推하여 而生變化하니
995[本義]言卦爻陰陽이 迭相推盪而陰或變陽하고 陽或化陰하니 聖人所以觀象而繫辭요 衆人所以因蓍而求卦者也라.
[細註]○龜山楊氏 가로되 이는 爻의 變動을 총괄하여 말한 것이다.
○柴氏中行 가로되 剛柔의 爻는 推移가 떳떳하지 않으니 易道의 變化의 이치를 발명한 것이다.
○雲峰胡氏 가로되 周易의 道는 辭變象占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吉凶은 占이니 占은 辭로써 밝힌 故로 말을 매달아 吉凶을 밝혔다고 한 것이요, 剛柔가 서로 미룸은 象이니 變은 象을 말미암아 나오는 故로 剛柔가 서로 미루어 변화가 생긴다고 한 것이다.
是故로 吉凶者는 失得之象也오 悔吝者는 憂虞之象也오.
[本義]吉凶悔吝者는 易之辭也요 得失憂虞者는 事之變也니 得則吉이요 失則凶이며 憂虞는 雖未至凶이나 然已足致悔而取羞矣라 蓋吉凶相對而悔吝 居其中間하니 悔는 自凶而趨吉이요 吝은 自吉而向凶也라 故로 聖人觀卦爻之中에 或有此象 則繫之以此辭也라.
[細註]朱子 가로되 悔는 장차 吉에 나아감에 아직 吉에는 이르지 못함이요, 吝은 장차 凶에 나아감에 아직 凶에는 이르지 않음이다.
○悔吝은 문득 이 吉凶의 交互하는 곳이니 悔는 이 吉의 점점함이요, 吝은 이 凶의 단서이다.
○括蒼龔氏 가로되 憂는 마음에 있고, 虞는 사물에 있으니 마음에 있는 즉 바야흐로 실마리가 있음에 근심이 없어 뉘우침을 이룰 뿐이다. 悔라는 것은 마음에 항상 있어 잊지 않는 故로 그것을 쌓아 吉함을 이루고, 사물에 있는 즉 이미 형체가 있음에 가히 근심할만하니 뉘우침의 가히 미칠 수 있음이 아니다. 그러므로 吝을 이룬다. 吝이라는 것은 입에 이 문채를 함이니 허물을 고치지 않음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쌓아 凶함을 이루는 것이다.
變化者는 進退之象也오 剛柔者는 晝夜之象也오 六爻之動은 三極之道也니
997[本義]柔變而趨於剛者는 退極而進也요 剛化而趨於柔者는 進極而退也니 旣變而剛則晝而陽矣요 旣化而柔則夜而陰矣라 六爻는 初二爲地요 三四爲人이요 五上爲天이라 動은 卽變化也라 極은 至也라 三極은 天地人之至理니 三才 各一太極也라 此는 明剛柔相推以生變化 而變化之極이 復爲剛柔하여 流行於一卦六爻之間 而占者 得因所値하여 以斷吉凶也라.
[細註]變化는 進退의 象이라는 것은 이는 剛柔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이요, 剛柔는 晝夜의 象이라는 것은 이는 剛柔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대저 柔가 변하여 剛에 나아감은 이는 물러남이 지극함에 나아간 것이요, 剛이 化하여 柔에 나아감은 이는 나아감이 지극함에 물러난 것이요, 이미 變하여 剛한 즉 낮으로 陽이요, 이미 化하여 柔한 즉 밤으로 陰이니 子午卯酉라고 말함과 같으니, 卯酉는 이 陰陽이 아직 정해지지 않음이요, 子午는 이 陰陽이 이미 정해짐이다. 또 四象의 老少가 있음과 같은 故로 이 兩句는 오직 子午卯酉로서 말한 즉 분명하다. 그러나 陽이 化하여 柔가 됨은 다만 이같이 사라지고 수축되어 감이 痕迹(흔적)이 없는 故로 가로되 化라 하고, 陰이 변하여 剛이 됨은 이는 그 형세가 점점 자라서 머리와 얼굴이 있는 故로 가로되 變이라 하니 이는 또한 ‘陰半陽全’ ‘陽先陰後’하여 陽은 가볍고 맑아 형체가 없고 陰은 무겁고 탁하여 자취가 없음을 볼 수 있다.
○節齋蔡氏 가로되 進은 息이요, 退는 消요, 變化는 爻의 움직임이요, 剛이 변화하여 柔가 되면 곧 柔進剛退의 象을 가히 볼 수 있고, 柔가 변화하여 剛이 되면 곧 剛進柔退의 象을 가히 볼 수 있으니 이는 剛柔의 바탕이다. 剛은 낮의 陽이요, 柔는 밤의 陰이다. 그러므로 剛이 用事하면 곧 낮의 象을 가히 볼 수 있고, 柔가 用事하면 곧 밤의 象을 가히 볼 수 있다. 動은 變易이요, 極은 太極이니 그 變易의 無常함이 곧 太極의 道이다. 三極은 三才를 이름이니 각각 한 太極을 갖추었다. 변하여 六爻에 이른 즉 一卦의 體가 갖추어짐에 三才의 道가 갖추어지니 이는 上文의 剛柔가 서로 미룸에 변화가 생긴다는 뜻을 말한 것이다.
○雲峰胡氏 가로되 變은 柔로부터 剛해짐이니 剛하면 곧 化로 돌아가고, 化는 剛으로부터 柔해짐이니 柔하면 곧 變으로 돌아가니 문득 예컨대 悔는 凶으로부터 吉함이요 吉하면 곧 吝에 돌아가고, 吝은 吉로부터 凶함이니 凶하면 곧 悔에 돌아가는 것과 같다. 變化는 剛柔의 정해지지 않음이요, 剛柔는 변화의 이미 이루어짐이요, 悔吝은 吉凶의 정해지지 않음이요, 吉凶은 悔吝의 이미 이루어짐이다. 一卦의 六爻의 사이에 三才와 太極의 이치가 있지 아니함이 없으니 여기에서 가로되 三極이라 함은 이는 卦爻가 이미 움직인 후에 각각 한 太極을 갖춤이요, 뒤에 가로되 易에 太極이 있다는 것은 곧 卦爻가 아직 생기기 전에는 統體(全體)로 한 太極이다.
是故로 君子所居而安者는 易之序也오 所樂而玩者는 爻之辭也니
998[本義]易之序는 謂卦爻所著事理當然之次第라 玩者는 觀之詳이라.
[細註]혹자가 묻건대 ‘所居而安者 易之序也(居하여 편안히 여기는 바는 易의 차례요)’와 ‘居則觀其象之居(居한 즉 그 象을 관찰한다는 居)’는 같지 않으니, 위의 ‘居’字는 이는 모두 몸의 처한 바에 나아가 말한 것이요, 아래의 ‘居’字는 이는 靜이 動과 상대됨으로 말한 것입니까? 朱子 가로되 그렇다.
○雲峰胡氏 가로되 ‘所居而安’은 이는 분수를 편안히 여김이요, ‘所樂而玩’은 이는 이치를 궁구함이니 君子가 安分한 즉 窮理가 더욱 정밀하고, 窮理한 즉 安分이 더욱 견고해진다.
是故로 君子 居則觀其象而玩其辭하고 動則觀其變而玩其占하나니 是以自天祐之하여 吉无不利니라
[本義]象辭變은 已見上이라 凡單言變者는 化在其中이라 占은 謂其所値吉凶之決也라.
[細註]○易은 八卦와 六爻를 상징함이 있는 然後에 辭가 있으니 卦爻의 辭요, 점은 老陰老陽을 변화시킴이 있는 然後에 占이 있으니 變爻의 辭요, 象의 변화는 이치에 있음에 아직 일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辭는 곧 각각 象을 인함에 그 吉凶을 가리키고, 占은 곧 나의 만난 바의 말을 인하여 결단한 것이니 그 사람들에게 보여줌이 더욱 상세하다. 그러므로 君子는 居하여 周易을 배운 즉 이미 象을 관찰하고 또 말을 완상하여 그 처한 바의 마땅한가 여부를 상고하고 움직여 점대에 물음은 곧 이미 변화를 관찰한 것이니 또 占을 완상하여 그 만난 바의 吉凶을 상고하여 선하고 吉한 것은 곧 행하고, 악하고 凶한 것은 곧 멈춘다. 이로써 動靜의 사이에 들어 이치에 어긋남이 없음에 하늘로부터 도와주어 이롭지 아니함이 없는 것이다. 대저 관찰하는 자 한번 보고 결단하고, 완상하는 자 반복하여 말을 버리지 않는다.
○節齋蔡氏 가로되 觀象과 玩辭는 易을 배움이요, 觀變과 玩占은 易을 씀이다. 易을 배우면 곧 그 이치를 다하지 아니한 바가 없고, 易을 쓰면 곧 오직 一爻의 때를 다하여 居함에 이미 하늘의 이치를 다하고 動함에 반드시 하늘의 道에 合하는 故로 하늘로부터 도와주어 길하여 이롭지 아니함이 없는 것이다.
○平菴項氏 가로되 吉凶은 失得이 이미 정해진 것이니 그 근심하고 헤아리는 처음에 悔吝이라고 이른 것이요, 變化는 易의 쓰임이니 그 변화하는 바는 곧 剛柔 두 물건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吉凶은 관찰하는 것은 반드시 悔吝으로부터 시작하고, 變化를 관찰하는 것은 반드시 剛柔로부터 시작하니 文王이 이 네 가지를 관찰하고 말을 매달았으니 易을 읽는 자 또한 마땅히 이 네 가지를 관찰하고 文王의 辭를 완상한 즉 靜居와 動作에 이롭지 아니함이 없을 것이다.
○雲峰胡氏 가로되 象과 變은 剛柔變化의 다름이 있고, 辭와 占은 吉凶悔吝의 다름이 있으니 君子가 거하여 易을 배움에 이미 象과 辭의 이치를 다하고, 움직여 易을 씀에 變과 占의 마땅함에 나아가니 動靜에 易이 아님이 없음은 곧 天이 아님이 없는 故로 하늘로부터 도와주어 吉하여 이롭지 아니함이 없는 것이다. 天地의 사이에 剛柔變化는 일시의 한가함도 없어 사람이 大化의 가운데 있고, 吉凶悔吝은 한 순간의 멈춤도 없어 吉은 하나일 뿐이요 凶悔吝은 셋인 故로 上文에 사람들에게 吉凶悔吝으로써 보여준 것은 聖人의 易을 짓는 일이요, 이는 다만 吉하고 凶悔吝이 없는 것은 君子의 易을 배우는 공부이다.
右는 第 二 章이라.
[本義]此章은 言聖人作易君子學易之事하니라.
彖者는 言乎象者也오 爻者는 言乎變者也오.
[細註]程子 가로되 彖者言乎象者也는 辭也者各指其所之에 그친다.
○彖은 卦의 象을 말함이요, 爻는 때를 따르는 변화이니 得失을 인하여 吉凶이 있으니 능히 이와 같은 즉 허물이 없다. 位는 貴賤의 구분이 있고, 卦는 小大의 뜻을 겸하니 吉凶의 道를 辭에서 가히 볼 수 있다. 悔吝으로써 防備를 삼은 즉 뜻(마음)을 은미하고 작음에서 보존하니 두렵지만 허물이 없는 것은 능히 뉘우치지 때문이다. 卦에 小大가 있음은 時의 中에 小大가 있음이요, 小大가 있음에 곧 辭의 험함과 쉬움이 다르니 辭는 각각 그 일을 따른다.
1000[本義]彖은 謂卦辭니 文王所作者요 爻는 謂爻辭니 周公所作者라 象은 指全體而言이요 變은 指一節而言이라.
吉凶者는 言乎其失得也오 悔吝者는 言乎其小疵也오 无咎者는 善補過也니
1001[本義]此는 卦爻辭之通例라.
[細註]龜山楊氏 가로되 吉凶은 失得의 보답이니 失이 있는 즉 得이 있고, 失이 없는 즉 得이 없다. 悔吝은 大咎가 없으니 작은 흠을 말할 따름이요, 無咎는 본디 허물이 있음이니 그 허물을 잘 보충하는 故로 허물이 없는 것이다.
○雲峰胡氏 가로되 前章에서는 卦爻 가운데 吉凶悔吝의 말을 하고, 일찍이 無咎의 말을 언급하지 않았고, 이 章에서 바야흐로 언급하니 대저 허물이 없음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허물을 고침을 귀하게 여긴 것이요, 無咎는 허물을 잘 보충함이니 聖人이 사람들에게 스스로 새롭게 됨의 뜻을 허락함이 간절하도다.
○臨川吳氏 가로되 이는 上章을 이어 바로 두 聖人의 말을 매단 뜻을 풀이한 것이니 彖는 文王이 매단바 一卦의 辭이니 名卦의 象을 인하여 말한 것이니 곧 上章의 이른바 ‘設卦觀象(괘를 베풀어 象을 관찰함)’이요, 爻는 周公이 매단바 六爻의 辭이니 揲蓍(설시)의 변화를 인하여 말한 것이니 곧 上章의 이른바 ‘剛柔相推而生變化(剛柔가 서로 미루어 변화를 낳는다)’이다. 卦畫이 변화함에 蓍策의 변화로써 말한 것은 대저 蓍策이 세 번 변하여 九를 얻은 즉 剛이 變하여 柔로 化하고, 蓍策이 세 번 변하여 六을 얻은 즉 柔가 變하여 剛으로 化함이다. 彖辭와 爻辭에 혹 가로되 吉이라 하고 혹 가로되 凶이라 한 것은 그 일의 得이 있고 失이 있음을 말한 것이요, 辭에 가로되 悔라 하고 가로되 吝이라 한 것은 그 일이 비록 큰 失은 없으나 이미 작은 흠이 있음을 말한 것이요, 辭에 가로되 無咎라고 한 것은 그 능히 허물을 보충하기를 잘함이니 過가 있으면 마땅히 咎가 있으니 능히 보충한 즉 過가 아니다. 그러므로 얻어 허물이 없는 것이다.
是故로 列貴賤者는 存乎位하고 齊小大者는 存乎卦하고 辨吉凶者는 存乎辭하고
[本義]位는 謂六爻之位라 齊는 猶定也라 小는 謂陰이요 大는 謂陽이라.
[細註]혹자가 묻건대 上下貴賤의 位는 무엇입니까? 朱子 가로되 二四는 곧 四는 貴하고 二는 賤하며 五三은 곧 五는 貴하고 三은 賤하며 上初는 上은 貴하고 初는 賤하니 上이 비록 位가 없으나 그러나 본디 이는 귀하고 소중하니 이른바 귀하되 位가 없고 높되 백성이 없음이니 人君에 있어서는 곧 天子의 아버지가 되고 天子의 師傅가 되고, 他人에 있어서는 곧 청렴하고 고상하여 사물의 밖에 있어 일에 참여하지 않는 자이니 이는 貴함이 되는 바이다.
○龜山楊氏 가로되 天道는 陽을 貴하게 여기고 陰을 賤하게 여기니 陰陽이 貴賤의 이치가 있음에 貴賤을 진열하는 것은 반드시 六位에 의탁한 이후에 분명해지고, 陽은 크고 陰은 작으니 陰陽은 小大의 이치가 있음에 小大를 정하는 것은 반드시 卦象을 빌린 이후에 드러나니 貴賤은 예컨대 ‘以貴下賤大得民(屯卦 03.☵/☳ 初九 象傳 : 귀함으로써 천한이 에게 낮추어 크게 백성을 얻는다)’의 말 같음이 모두 爻位의 진열한 바요, 小大는 예컨대 ‘小往大來(泰卦) 大往小來(否卦)’의 말 같음이 모두 卦彖(卦辭, 彖辭)의 정한 바이다.
憂悔吝者는 存乎介하고 震无咎者는 存乎悔하니
1002[本義]介는 謂辨別之端이니 蓋善惡已動 而未形之時也니 於此憂之 則不至於悔吝矣라 震은 動也니 知悔則有以動其補過之心 而可以无咎矣라.
[細註]○‘無咎’는 본래는 허물이 있으나 허물을 잘 보충한 즉 허물이 없음이 되는 것이다. 震은 움직임이니 움직여 허물이 없고자 함은 마땅히 悔에 있을 따름이다.
○南軒張氏 가로되《周易》의 384爻는 悔吝를 근심함은 분별에 존한 것이 많되, 오직 豫卦(16.☳/☷)의 六二에 ‘介于石不終日貞吉(절개가 돌과 같은지라 날을 마치지 아니함이니 貞하고 吉하다.)’이라 하니, 豫의 때에 있어 능히 굳게 지켜 自守하는 자로다. 진동하여 허물이 없음은 뉘우침에 존한 것이 많되 오직 復卦(24.☷/☳)의 初九에 ‘不遠復 無祗悔 元吉(멀리가지 않고 돌아오는지라 뉘우침에 이름이 없으니 크게 善하여 吉하다.)’이라 하니, 復의 初에 있어 능히 뉘우침에 허물을 고치는 자로다.
○丹陽都氏 가로되 그 悔吝을 근심하는 것은 반드시 근심을 생각하고 예방하여 그 처음에 재앙을 막고, 진동하여 허물이 없는 것은 반드시 두려워하여 닦고 반성하여 그 끝에 허물을 반성한다.
○雲峰胡氏 가로되 앞에서 가로되 悔吝이라는 것은 그 작은 흠을 말함이라 하고, 여기에서 가로되 悔吝을 근심한다는 것은 분별에 있다 하니, 대저 마땅히 그 은미함에서 삼가여 가히 작은 흠도 스스로 용서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요, 앞에서 가로되 허물이 없다는 것은 허물을 잘 보충함이다 하고, 여기에서 가로되 진동하여 허물이 없다는 것은 뉘우침에 있다 하니, 대저 그 허물을 보충하는 마음을 움직이고자 하는 것은 반드시 뉘우침의 가운데로부터 오는 것이니 뉘우침은 天理가 싹터 움직이는 기틀이요, 뉘우치지 아니한 즉 人欲이 점차 고질화되어 스스로 알지 못하게 된다.
是故로 卦有小大하며 辭有險易하니 辭也者는 各指其所之니라.
[本義]小險大易가 各隨所向이라.
[細註]○張子 가로되 ‘辭各指其所之’는 聖人의 情이니 가리켜 하여금 때를 따르고 이로움을 따라서 性命의 이치를 따라서 三極의 道에 이름이니 능히 따르면 곧 凶悔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誠齋楊氏 가로되 謙卦(15.☷/☶) 復卦(24.☷/☳)의 卦辭를 읽는 자 마치 平易한 길을 가는 것과 같고, 마치 陽春을 만난 것과 같아 마치 堯舜과 周公과 孔子를 대하는 것과 같으니 얼마나 그 氣象이 和樂한가? 그 말이 평이함에 사람들에게 가는 바의 얻음이 장차 吉함을 가리킨 것이요, 遯卦(33.☰/☶) 剝卦(23.☶/☷)의 卦辭를 익는 자 마치 바람과 큰 물결을 건넘과 같고, 마치 눈과 서리를 밟는 것과 같아 마치 桀紂(걸주)와 盜跖(도척)을 대하는 것 같으니 얼마나 그 氣象이 두려운가? 그 말이 어렵고 험함에 사람들에게 가는 바의 잘 못이 장차 흉함을 가리킨 것이다.
○潘氏 가로되 卦는 작고 큼이 있으니 그 消長(=興亡)을 따라 구분되고, 말은 험함과 쉬움이 있으니 그 安危를 인하여 구별되고, 말이란 것은 각각 그 향하는 곳이 있으니 凶함은 곧 그 가히 피할 수 있는 방향을 가리키고, 吉함은 곧 가히 따를 수 있는 곳을 가리켜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雲峰胡氏 가로되 본디 凶함에 뉘우쳐서 가는 바는 곧 吉하고, 본디 吉함에 인색하여 가는바는 凶하고, 無咎라는 것은 본디 잘못이 있으니 능히 허물을 뉘우치는 자이니, 그 가는 바가 善으로 감에 惡으로 가지 않고, 吉로 감에 凶으로 가지 않는다.
右는 第三章이라
[本義]此章은 釋卦爻辭之通例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