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 진도 - 나의조상

진도김씨

작성자餘白 갱구|작성시간08.06.13|조회수112 목록 댓글 0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입향시기/연도   고려 초기
 성씨시조   김국빈(金國儐)
 입향시조   김경호(金敬浩)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에 본관을 둔 성씨.

[연원]
진도김씨의 시조 김국빈중국  후한(後漢) 사람으로 의 세 나라로 갈려 싸우던 건안(建安)의 난리를 피해 고국을 떠나 배를 타고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죽포(竹浦)에 도착했다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신라 미추왕(味鄒王, 262~284)의 부름을 받아 경주에서 군국정사(軍國政事)라는 벼슬을 살았다.

[입향 경위]
실제로 진도를 본관으로 득성(得姓)한 사람은 왕건나주를 공격하기에 앞서 진도를 공략할 때 협력한 23세손 김경호(金敬浩)이다. 김경호는 940년,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 건국 유공자들을 포상할 때 옥주후(沃州候)가 되었다(옥주진도의 옛 이름이다). 이후 그 가족들은 개경으로 옮겨 살았다.

개경으로 옮겨간 후 진도김씨의 가세는 번창하였다. 김경호의 큰아들 김구석(金九碩)고려  정종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냈고, 15세손 김형숙(金亨淑)의 부인은 진도임회박씨였다. 그의 조카 김경조(金慶祚)는 고려 말기 이방원에 의한 정몽주 숙청 때에 정몽주와 함께 죽어, 지금도 선죽교에 세워진 비에 진도사람 김경조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48세손 김춘림(金春霖, 1589~?)대에 이르러 고려 말 우의정을 지낸 홍주이씨 이서(李舒, 1332~1410)의 9대 손녀를 부인으로 맞는 등 명문을 이루었다.

[세거 현황]
진도김씨개경으로 옮겨간 후 경기도에 2파, 황해도에 3파, 영남에 4파가 있었으나, 오늘날은 개성파만 남게 되었다. 진도김씨 개성파는 주로 개성·칠원·개풍 등지에서 살다가 한국전쟁 때 그 일부가 남하하여 서울부산에 주로 살고 있다.

[묘역]
옥주후의 작위를 받았다는 김경호의 묘소는 ‘옥주부 동쪽 20리 사현(沙峴)에 있다’고 했고, 그의 아버지 묘는 낭산(郎山)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사현모래재, 몰고개의 한문표기로, 지금의 진도  향동재 정도로 비정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