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대산 이상정의 아우 소산 이광정 문집에 나오는 고조이신 수은공 이홍조의 흥고관련 짧은 한시입니다.
사실 이 짧은 한시에도 엄청난 뜻들이 들어 있으니 그래서 우리는 대학자라고 부르는가 봅니다.
나름 번역해 풀어보니 이러합니다.
수은공의 은거 의지와 절구
高祖睡隱公。晩欲藏修於興皋。有絶句。
고조부수은공。만욕장수어흥고。유절구。
고조부 수은공께서 만년에 흥고(興皋)에 숨어 학문을 닦고자 하셨는데, 절구(絶句)가 있었다.
山色杯中落。泉聲席下鳴。
산색배중락。천성석하명。
산 빛은 술잔 속에 떨어지고, 샘물 소리는 자리 아래서 울리네.
他年圖畫裏。難寫故人情。
타년도화리。난사고인정。
훗날 그림으로 그린들, 옛사람의 정취를 그려내기 어렵겠구나.
유허의 방치와 정비 과정
後孫遠在。一區遺墟。埋沒於草莽中。
후손원재。일구유허。매몰어초망중。
후손들이 멀리 떨어져 있어, 한 구역의 옛터가 풀숲 속에 묻혀 있었다.
壬辰正月。家兄往與彼中士友。築壇種松。
임진정월。가형왕여피중사우。축단종송。
임진년 정월에 가형(家兄)께서 가서 그곳의 선비들과 함께 단을 쌓고 소나무를 심었으며,
仍料理數間屋子。有唱酬之什。
잉요리수간옥자。유창수지십。
이어 서너 칸의 집을 정돈하니, 서로 주고받은 시들이 있었다.
선생의 찬탄
眼碧千仞影。心淸漱玉鳴。
안벽천인영。심청수옥명。
눈에 비친 천 길 푸른 절벽의 그림자, 마음 맑게 옥을 씻는 샘물 소리 울리네.
先生六十化。康樂有餘情。
선생육십화。강락유여정。
선생님께서 예순에 세상을 떠나셨어도, 강락(자연의 즐거움) 같은 남은 정취가 있구나.
여기까지가 내용이지만 이것을 풀이하지 않으면 아무런 감흥도 의미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 한시는 사실 소산 이광정 선생의 문집에 기록된 수은 이홍조 공의 유허(遺墟) 관련 글로 단순히 옛터를 정비했다는 사실을 넘어, 가문의 정신적 뿌리를 확인하고 선조의 풍류를 계승하려는 후손들의 치열한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1. ‘흥고(興皋)’에서의 은거와 산수(山水)의 의미
山色杯中落。泉聲席下鳴。
(산 빛은 술잔 속에 떨어지고, 샘물 소리는 자리 아래서 울리네)
이 구절은 수은 공의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보여줍니다. 단순히 자연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산 빛이 술잔에 담기고 샘물 소리가 내 곁에서 울린다는 것은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어 일상 속에서 도(道)를 체득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소산 선생이 이 절구를 인용한 것은 수은 공께서 안동 입향 후 겪으셨을 고난 속에서도 지켰던 내면의 평온과 풍류를 후손들이 잊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2. ‘유허(遺墟)’의 매몰과 ‘창수(唱酬)’의 복원
一區遺墟。埋沒於草莽中。
(한 구역의 옛터가 풀숲 속에 묻혀 있었다)
여기서 '초망(草莽, 풀숲)'은 세월의 무상함과 가문의 시련을 상징합니다.
이를 임진년에 가형(家兄)이 선비들과 함께 '단을 쌓고 소나무를 심어' 정비했다는 것은 단순히 집을 수리한 것이 아니라, **가문의 정신적 지표를 다시 세우는 의례(Ritual)**였습니다.
'창수(唱酬)'는 시를 주고받는 행위로, 단순히 글자 유희가 아닙니다. 선조의 정신이 깃든 공간에서 후손과 당대의 지인들이 시를 읊으며 선조의 가르침을 공유하고 가문의 결속을 다지는 공동체적 소통을 의미합니다.
3. ‘강락(康樂)’에 담긴 심화된 찬미
先生六十化。康樂有餘情。
(선생님 예순에 세상을 떠나셨어도, 강락의 남은 정취가 있구나)
'강락'은 중국 육조 시대의 대시인 사영운을 뜻합니다. 그는 산수 시(山水詩)의 개조로 불리는데, 소산 선생은 수은 공을 사영운에 비유하였습니다.
수은 공은 단순히 현감을 지낸 관료가 아니라, **산수 자연과 깊이 교감하며 예순의 삶을 마친 '도학적 풍류학자가'**였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 지혜로운 자는 물을 즐기고 어진 자는 산을 즐긴다)"의 경지에 수은 공이 도달했음을, 후손으로서 자랑스럽게 선언하는 것입니다.
4. 소산 이광정 선생의 관점
소산 선생은 1714~1789년이라는 시대에 사셨던 분으로, 이 글을 쓸 당시 가문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선조들의 기록을 발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에 몰두하셨습니다.
2026년 6월7일 소산이광정 문집의 한시를 족손 해은 이대원이 번역하여 글로 남겨둔다.
저작권은 해은이대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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