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수은집 내용 중 수은 이홍조가 조카에게 보낸 내용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지금이야 부모님 기일제사가 되어도 제사문화가 퇴색하니 제사지내지 않는 문화로 변하였으나 그 당시는 그렇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수은 이홍조의 형은 연천공 이창조입니다. 임진왜란시 사망한 차남 이형조도 있으나 아명만남아있네요
맏형 연천공 이창조 1586~1640 의 4남중 통덕랑 장남 휘 효심 1609~1628 차남이 휘 효준1614~1670이며 자가 선구인데 장남 휘 효심은 어린나이에 돌아가서 휘 효준의 삼남을 양자로 보내 대를 이었고 묘소는 사직공 묘소아래 있습니다.
그래서 차자인 둘째 휘 효준이 부친인 연천공 이창조의 기일을 지내는 일에 숙부 수은 이홍조가 답신을 보낸 내용입니다
번역해보니 이러합니다.
답효준질(答孝濬姪)
答孝濬姪
답효준질
意外得書。稍慰戀渴。
의외득서。초위연갈。
吾僅支客狀。而兩博氏今十五渡江。卄四入京城。
오근지객상。이양박씨금십오도강。입사입경성。
方以分院之任。奔走延接。晨出夜歸。已是可悶。
방이분원지임。분주연접。신출야귀。이시가민。
且聞 天兵之敗。果非虛傳。時事如此。少無好景像。
차문 천병지패。과비허전。시사여차。소무호경상。
此時從宦。可謂無耻。痛歎柰何。
차시종환。가위무치。통탄내하。
大忌之日。切擬進參。而 國家多事。末由呈由告歸。以伸情理。罪痛何言。
대기지일。절의진참。이 국가다사。말유정유고귀。이신정리。죄통하언。
考妣並祭。本非古禮。吾意以爲如知其非也。莫如速改之爲愈。
고비병제。본비고례。오의이위여지기비야。막여속개지위유。
事之無害於義者。從先祖可也。
사지무해어의자。종선조가야。
妣忌並祭考位。禮家極以爲未安。已行者雖難追改。自今以後。當從古禮。
비기병제고위。예가극이위미안。이행자수난추개。자금이후。당종고례。
而但一廟之內。祭有異同。亦似未安。當問于知禮者以處之。
이단일묘지내。제유이동。역사미안。당문우지례자이처지。
若設紙牓。則决不可並設矣。
약설지방。칙결불가병설의。
효준(孝濬) 조카에게 답하다
뜻밖에 편지를 받아, 그리운 마음과 목마름이 조금은 풀리는구나. 나는 겨우 객지 생활을 버티고 있는데, 두 박씨(博氏)는 이제 15일에 강을 건너고 24일에 서울로 들어갔다. 바야흐로 분원(分院)의 임무 때문에 분주히 사람들을 접대하며 새벽에 나가 밤에 돌아오니, 이미 이 자체가 답답한 노릇이다.
또한 천병(天兵, 명나라 군대)이 패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과연 헛소문이 아니었다. 시국이 이와 같으니 조금도 좋은 기색이 없구나. 이러한 때에 벼슬살이를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할 만하니, 통탄한들 어찌하겠느냐.
부모님의 기제사 날에 꼭 참석하려고 마음먹었으나, 나라에 일이 많아 정식으로 사유를 올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정리를 펼칠 길이 없으니, 죄송하고 아픈 마음을 무슨 말로 다하겠느냐.
아버지와 어머니의 제사를 합쳐서 지내는(고비병제) 것은 본래 옛 예법이 아니다. 내 생각에는 그 잘못된 것을 알았다면, 속히 고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본다.
의리에 해롭지 않은 일이라면 선조의 방식을 따를 수도 있겠으나, 어머니의 기일에 아버지의 신주를 함께 모시는 것은 예가(禮家)에서도 극히 온당치 못하게 여긴다.
이미 행해온 것을 뒤늦게 고치기는 어려우나, 지금 이후로는 마땅히 옛 예법을 따라야 한다. 다만 한 사당 내에서 제사 방식에 다름이 있으면 또한 온당치 못해 보이니, 마땅히 예법을 아는 자에게 물어서 처리하도록 하라. 만약 지방(紙牓)을 설치한다면, 결단코 함께 설치해서는 안 된다.
2026년 6월 7일 해은이대원이 수은유집을 번역해 올려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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