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소위 ‘뉴에이지’라고 일컬어지는 음악들에 대해..
이전 ‘New Age movement' 의 성격과 의미를 띤 종교적 뉴에이지 음악들과 요즈음 뉴에이지라 칭해지는 음악들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나는 종교적 운동에서 비롯된 음악이며, 또 하나는 음악의 한 장르로 분류되는 음악이다.
단지 음악적 장르로서의 뉴에이지 음악은 비공식적으로 편안한 분위기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감성적인 발라드 음악을 말한다.
이 음악은 종교적 ‘뉴에이지’ 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종교적 뉴에이지 음악의 장르와 분위기가 비슷하고 편안하게 듣기 좋은 음악이라는 일반 사람들의 견해로 인해 그저 일컬어지는 명칭이다. 전문 음악인들은 이 음악들을 ‘크로스오버’ 내지는 ‘발라드’라고 장르를 구분 짓는다.
이들은 이 음악들을 ‘뉴에이지’라 칭하는 것에 대해 전혀 근거 없는 명칭이라 생각한다. 이루마, 박종훈, 메이 세컨, 이사오 사사끼 등이 이에 속하며 이들 중에는 본래가 클래식 또는 재즈 뮤지션인 경우도 허다하다. 더군다나 이루마 같은 경우 독실한 크리스천이며 ‘뉴에이지’라는 종교적 단어로 인해 가끔 오해가 불거지는 것에 대해 몹시 불편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조만간 이 장르에 대한 올바른 견해와 해석으로 새로운 이름이 제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명상과 치유 - 신비의 음악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뉴 에이지 운동과 뉴 에이지 음악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인가? 뉴 에이지 음악은 뉴 에이지 사상을 구현하고자 하는 음악인가? 이 물음에는 '예'와 '아니오' 두 가지의 대답 모두 가능하다.
뉴 에이지 음악에 대한 접근은 크게 두 가지로 분리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음악적 맥락에서 그 특성을 구분하여 하나의 장르로 이해하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명상이나 심리치료와 연관지어 바라보는 입장이다.
뉴 에이지 음악의 원류는 비틀스가 60년대를 풍미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존 체계의 환경파괴적이고 비인간적인 작태에 환멸을 느낀 지식인들과 예술인들은 동양의 사상, 특히 인도의 요가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기에 이르고, 음악계에서는 토니 스코트, 폴 혼, 폴 윈터 같은 인물들이 동양의 철학과 종교 등의 사상을 담은 음악으로 정서 치유를 시도하기 시작하였다. 당시는 '뉴 에이지 음악' 이라는 개념도 없었던 형편이라 이러한 음악들은 요가나 명상을 위한 배경음악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 후 80년대에 들어와서, 조지 윈스턴, 윌리엄 에커맨 등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뉴 에이지 음악 전문 레이블 '윈드햄 힐(Windham Hill)'의 성공은 뉴 에이지 음악의 급속한 발전과 확산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후, 오늘날의 뉴 에이지 음악은 매우 다양한 범위를 포괄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가장 모호한 장르가 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두 가지의 맥락에서 살펴보았을 때, 뉴 에이지 음악은 명상과 치유에 그 사상적 기반을 둔 다분히 '뉴 에이지'적 음악이고, 또 한편으로는 다양성과 장르파괴라는 현대 대중음악의 대세를 충실히 반영하는 시대의 유행인 것이다.
오늘날의 뉴 에이지 음악은 본래의 취지와는 좀 멀어진 감이 있는, '듣기 편한' 연주곡이라는 이해가 지배적이지만, 명상을 통해 새로운 영성으로 여정을 떠나고자 하는 이들에게 뉴 에이지 음악은 하나의 '신비'적 체험이며, 정신과 육체의 조화로운 건강, 즉 웰빙(well-being)의 동반자가 된다.
♪ 내게 어울리는 뉴 에이지 음악은?
뉴 에이지 음악은 그 역사가 불과 3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다양한 특색과 인접 장르와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어 그 구분에 있어 다소 혼란을 야기한다.
실제로 뉴 에이지 음악의 역사를 살펴보면 록, 클래식, 재즈 등 다른 분야의 음악가들이 장르파괴의 시도를 하면서 의도적으로, 혹은 그들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음악이 뉴 에이지로 분류되는 일이 빈번하였고, 그렇게 다른 음악요소가 흘러 들어와 본래 뉴 에이지 사상을 고수하는 음악과 공존하게 되면서 뉴에이지는 매우 폭넓은 장르로 형성되기에 이른 것이다.
한편으로는, 뉴 에이지 음악이 이렇게 아주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는 만큼 그 안에서 어느 정도 특색을 잡아 분류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분류는 '장르 구분'이라고 할만한 작업도 아니고, 이런 작업에 분명한 체계나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유통이나 검색의 편의상 나눈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이전 ‘New Age movement' 의 성격과 의미를 띤 종교적 뉴에이지 음악들과 요즈음 뉴에이지라 칭해지는 음악들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나는 종교적 운동에서 비롯된 음악이며, 또 하나는 음악의 한 장르로 분류되는 음악이다.
단지 음악적 장르로서의 뉴에이지 음악은 비공식적으로 편안한 분위기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감성적인 발라드 음악을 말한다.
이 음악은 종교적 ‘뉴에이지’ 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종교적 뉴에이지 음악의 장르와 분위기가 비슷하고 편안하게 듣기 좋은 음악이라는 일반 사람들의 견해로 인해 그저 일컬어지는 명칭이다. 전문 음악인들은 이 음악들을 ‘크로스오버’ 내지는 ‘발라드’라고 장르를 구분 짓는다.
이들은 이 음악들을 ‘뉴에이지’라 칭하는 것에 대해 전혀 근거 없는 명칭이라 생각한다. 이루마, 박종훈, 메이 세컨, 이사오 사사끼 등이 이에 속하며 이들 중에는 본래가 클래식 또는 재즈 뮤지션인 경우도 허다하다. 더군다나 이루마 같은 경우 독실한 크리스천이며 ‘뉴에이지’라는 종교적 단어로 인해 가끔 오해가 불거지는 것에 대해 몹시 불편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조만간 이 장르에 대한 올바른 견해와 해석으로 새로운 이름이 제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명상과 치유 - 신비의 음악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뉴 에이지 운동과 뉴 에이지 음악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인가? 뉴 에이지 음악은 뉴 에이지 사상을 구현하고자 하는 음악인가? 이 물음에는 '예'와 '아니오' 두 가지의 대답 모두 가능하다.
뉴 에이지 음악에 대한 접근은 크게 두 가지로 분리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음악적 맥락에서 그 특성을 구분하여 하나의 장르로 이해하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명상이나 심리치료와 연관지어 바라보는 입장이다.
뉴 에이지 음악의 원류는 비틀스가 60년대를 풍미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존 체계의 환경파괴적이고 비인간적인 작태에 환멸을 느낀 지식인들과 예술인들은 동양의 사상, 특히 인도의 요가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기에 이르고, 음악계에서는 토니 스코트, 폴 혼, 폴 윈터 같은 인물들이 동양의 철학과 종교 등의 사상을 담은 음악으로 정서 치유를 시도하기 시작하였다. 당시는 '뉴 에이지 음악' 이라는 개념도 없었던 형편이라 이러한 음악들은 요가나 명상을 위한 배경음악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 후 80년대에 들어와서, 조지 윈스턴, 윌리엄 에커맨 등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뉴 에이지 음악 전문 레이블 '윈드햄 힐(Windham Hill)'의 성공은 뉴 에이지 음악의 급속한 발전과 확산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후, 오늘날의 뉴 에이지 음악은 매우 다양한 범위를 포괄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가장 모호한 장르가 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두 가지의 맥락에서 살펴보았을 때, 뉴 에이지 음악은 명상과 치유에 그 사상적 기반을 둔 다분히 '뉴 에이지'적 음악이고, 또 한편으로는 다양성과 장르파괴라는 현대 대중음악의 대세를 충실히 반영하는 시대의 유행인 것이다.
오늘날의 뉴 에이지 음악은 본래의 취지와는 좀 멀어진 감이 있는, '듣기 편한' 연주곡이라는 이해가 지배적이지만, 명상을 통해 새로운 영성으로 여정을 떠나고자 하는 이들에게 뉴 에이지 음악은 하나의 '신비'적 체험이며, 정신과 육체의 조화로운 건강, 즉 웰빙(well-being)의 동반자가 된다.
♪ 내게 어울리는 뉴 에이지 음악은?
뉴 에이지 음악은 그 역사가 불과 3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다양한 특색과 인접 장르와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어 그 구분에 있어 다소 혼란을 야기한다.
실제로 뉴 에이지 음악의 역사를 살펴보면 록, 클래식, 재즈 등 다른 분야의 음악가들이 장르파괴의 시도를 하면서 의도적으로, 혹은 그들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음악이 뉴 에이지로 분류되는 일이 빈번하였고, 그렇게 다른 음악요소가 흘러 들어와 본래 뉴 에이지 사상을 고수하는 음악과 공존하게 되면서 뉴에이지는 매우 폭넓은 장르로 형성되기에 이른 것이다.
한편으로는, 뉴 에이지 음악이 이렇게 아주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는 만큼 그 안에서 어느 정도 특색을 잡아 분류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분류는 '장르 구분'이라고 할만한 작업도 아니고, 이런 작업에 분명한 체계나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유통이나 검색의 편의상 나눈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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