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세기는 음악 역사상 세 번째의 신음악(New Music)이 탄생되었습니다.
즉, 14세기의 아르스 노바, 17세기의 바로크, 그리고 20세기에 바로 세 번째의 신음악이 생겨났는데, 보통
근대음악, 또는 현대음악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근대음악을 현대음악보다 앞선 시기의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20세기의 음악은 세계 1,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하여 대략 세 시기로 나눠집니다.
그 첫 시기가 20세기초부터 제 1차 세계대전까지로 낭만주의가 해체된다는 1890년부터 1917년 사이가 그것입니다. 이 시기에 나타난 경향은 보다 개성화 된 후기 낭만주의 성격의 것으로서, 순간적인 이상을 정묘한 음색(음화)에 고정시키려는 드뷔시의 인상주의(Impressianism), 원시적 생명력의 동경으로 나타난 스트라빈스키, 바르코크, 프로코피에프 등의 원시주의((Primitivism) 그리고 예술감각과 종교체험의 일치를 꾀한 스크라빈의 신비주의(Mysticism), 제1차 세계 대전 전부터 대전 중까지에 걸쳐 유행했던 소음(타)악기로만 구성된 미래주의(Futurism)음악이 나타났습니다.
두번째의 시기는 1,2차 세계대전의 사이로서,1918년부터 1945년 까지를 가리킵니다.
첫번째로 나타난 것은 낭만파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난 부조니, 힌데미트 등의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입니다. 또한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반음계주의(Cromaticism)의 증대로 점차 조성이 파괴되어 무조음악(Atonal Music)이 나타났으며, 쇤베르크는 무조성을 지켜가면서 대규모의 악곡 구성을 가능케하는 기법을 추구, 마침내(다만 상호관계에 형성되는) 12음에 의한 작곡기법을 창시하였고, 베베른과 베르크는 이를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그 후 바르토크는 수치관념을 철저히하여 보다 다면적이고 독자적인 음악기법을 확립하였으며, 메시앙도 신비주의의 영향을 받아 자기의 독자적인 체계를 확립하였습니다.
소련에서는 당의 정치적 요청에 의하여 서구적인 모더니즘을 일체 불식해 버린다는 방침으로 신고전주의적 경향이 가장 완성된 모습으로 나타나,19세기의 작곡기법으로서의 회귀를 보이고 있습니다.
프로코 피에프, 쇼스타코비치, 하차두리안, 카발레프스키 등이 그들입니다.
세 번째의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를 말합니다.
쇤베르크가 이룩한 12음기법은 2차대전의 종료와 더불어 젊은 세대의 습작으로서 또는 후진국 작곡가들에 위해 채택되어집니다. 또한 더 나아가서는 쇤베르크가 취한 음높이 뿐 아니라 리듬, 강약 음색 등도 순열적인 사용에 의해 정밀한
음악 감각을 표현하는 음열주의가 대두 되었습니다.
그 외에 쇄이퍼(Pierre Schaeffer)에 의해 고안된 구체음악(Concerete Music), 이것은 악기나 성대에서 제조되는 소리만을 음악의 재료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녹음기에 녹음이 된 다양한 소리를 음악의 재료로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또한 전자기기의 발달로 전자음악(Electronic Music)이 2차대전 이후부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즉, 전자기기의 힘으로 소리를 제작, 변형, 녹음, 재생시켜 음악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음악이 탄생된 배경은 새로운 음악적 사고와 그 사고에 맞는 음악적 재료를 자유롭게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1950년 부터 서독 쾰른의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실험적으로 시작하여 1953년 창시자 아이메르트(H. Eimert)에 의하여 '음향습작 1, 2'라는 곡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슈톡하우젠에 의하여 더욱 발전을 보게 되었습니다.
2차 대전 이후의 특징 중의 하나는 불확정성 음악으로 연주 결과를 연주 전에 예측할 수 없는 음악적 재료가 음악 속에 투입되어 있는 것으로써, 우연의 음악(Chance Music)이라고도 불리우는 이것은 존 케이지를 선도로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20세기에는 음악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하는 여러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러한 음악적 조류에 관하여는 아직도 찬반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즉 이 논쟁은 20세기 현대 음악과 인간과의 관계인데, 반대적 입장은 현대음악이 인간의 지각적 한계를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하여튼 앞으로 세계가 여러 모습으로 변화할 것임에 틀림없듯이 음악도 변화할 것임은 틀림없으며, 그것이
어떻든 간에 음악은 인간에게 삶의 여유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20세기의 음악을 현재의 시점에서 근대음악 또는 현대음악이라고 합니다.
19세기 후반의 각 나라별 국민주의적 경향은 강대국(?) 중심의 새로운 세계질서가 확립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음악 또한 바그너의 영향을 지나치게 받고 있었습니다.
19세기 후반의 음악은 여기서 점차 탈피하려는 경향을 보이며 새로운 음악적 특성을 보입니다. 바그너 음악에 대립되는 드뷔시의 음악적 개혁(목신의 오후를 시작으로...)은 가장 큰 특징인 인상주의를 창시하게 됩니다.
인상주의는 미술의 회화에서도 쓰이는 말이지만, 환상적인 것, 끊임없이 변화하는 음색, 형식적 발전이 아닌 매 순간 순간마다 바뀌는 울림이 특징으로, 그 당시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당혹과 비난이 따랐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음악적 표현에 찬사를 받게 됩니다. 동시에 인상주의와는 반대되는 표현주의, 신고전주의, 신비주의 등의 여러 음악정 특징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밖에도 근대/현대음악에서 중요한 것은 조성음악에서의 음악이 점차 비조성 음악으로 출현되는 것과 더불어 쉰베르크의 12음악(한 옥타브를 구성하는 12개음 - 흰건반7개, 검은 건반 5개)을 중복없이 음렬을 만들어 이를 바탕으로 모든 선율과 화성적 요소를 구성하는 작곡법)등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민족주의 음악(Nationalism)
낭만후기(19C말)에는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는 낭만파 음악이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의 변두리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바로크 이래로 독일이 쥐어왔던 음악상의 주도권이 점차 여러 나라, 여러 민족에게 분산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즉, 각기 자기 나라와 민족의 개성과 특성을 나타내려는 음악이 많이 작곡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를 '민족주의 음악(Nationalism)'이라고 부릅니다.
러시아의 민족주의 음악가로는 먼저 '국민악파 5인조'를 들 수 있는데 보로딘, 큐이, 발라킬레프, 무소르그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또한 러시아에는 서유럽과 러시아 민족주의를 절충한 이른바 '모스크바 악파'가 있었는 데, 여기에는 우리가 잘 아는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가 속합니다.
러시아 외의 국가에서 활동하던 민족주의 음악가들로는 보히미아(체코슬로바키아)의 스메타나 드보르작, 노르웨이의 그리그, 에스파니아의 아르페니츠,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은 모두 다른 나라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기 나라의 민족적 특색을 음악 속에 살리려고 하였습니다.
인상주의
프랑스 국민들은 예로부터 독일인과는 역사적으로 반목이 많았고, 문화적으로
독일인에게 절대로 질 수 없다는 긍지가 대단했습니다.
이러한 프랑스에서 독일의 바그너리즘에 반발한 프랑스의 젊은 음악가들이 프랑스의 독특한 민족주의, 즉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음악사조를 만들게 됩니다.
미술분야에서의 인상주의는, 대상을 뚜렷한 선이나 형태로 그리는 것을 지양하
고, 그것으로부터 일어나는 감정의 표출도 억제한 채 오로지 대상에서 받은 인상만을 그리는 회화의 수법을 말하는데, 음악에서도 전통적인 화성이나 선율, 지적 형식미 등에 의한 제약을 받지 않고, 자신의 눈과 마음이 느끼는 순수한 인상,
분위기, 느낌 등을 그대로 표현하는 이미지즘(imagism)적인 음악들이 작곡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인상주의의 최고봉인 드뷔시를 들 수 있습니다.
이 모두가 낭만시대의 산물이며, 낭만시대의 음악이 고금을 통한 모든 음악 중에서 가장 친근감을 주는 음악이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작곡가
인상주의의 대표적 작곡가 : 드뷔시, 라벨, 시벨리우스, 그라나도스, 라흐마니노프
표현주의의 대표적 작곡가 : 스트라빈스키, 바르토크, 쉰베르크
신고전주의의 대표적 작곡가 : 스트라빈스키, 힌데민트
전자 음악의 대표적 작곡가 : 슈톡하우젠, 케이지, 아이메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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