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포타미아 - 앗시리아
.....미술 세계사 Fine Art History
메소포타미아 시대와 미술
기원전 3,500년경에서 3,000년에 걸친 기간에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을 낀 비옥한
땅에서 수메르인들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태동시킨다.
수메르의 도시국가는 모두가 신의 소유로서 신에 의해서 통치되고 있었다.
그래서 신을 대신하고 있는 신관이 모든 국가의 행정을 통치하고 있다. 이에 영향을 받은
메소포타미아 미술은 신전을 중심으로 한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수메르의 조각은 건축보다 많은 양의 작품을 아직까지 남기고 있는 데,
그것이 바로 돌로 된 소형 인물상군이다.
수메르의 조각가는 소재에 있어서 금속이나 나무를 소재로 하여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유연하고 부드러우며 사실적인 표현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이집트 미술가와 비교하여 훨씬 규칙에 속박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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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문자시대, 수메르 문명 |
아카디안 |
우르 왕조 |
바빌로니아 |
아시리아 |
신바빌로니아 |
페르시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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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
B.C. 2350 |
B.C. 2150 |
B.C. 2000 |
B.C. 900 |
B.C. 612 |
B.C. 538 |
B.C. | ||||||
"자신들의 생명과 땅을 빼앗으려 기회만 노리는 억센 유목 민족 사이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현실에 입각한 사고가 발달하였으며, 사냥이나 전투 장면 등 현실적 작품을 제작하였다."
티그리스, 유프라테스의 두 강 사이에 있는 광대하고 비옥한 관개지역에 흩어져 있던
부족들이 신격화된 통치자에 의해 최초로 통합되어 형성된 메소포타미아는
기원전 4,000년경에 문명이 나타났다.
이 지역은 사방이 트여 있어서 여러 도시 국가간의 항쟁과 침입이 서로 교차하는
복잡한 역사를 갖고 있다. 따라서 미술도 일정하지 않지만,
서아시아 고대의 도시 국가의 절대적 군주를 위한 기념적 양식을 띄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은 남부의 바빌로니아와 북부의 앗시리아로 대별된다.
이집트의 미술이 영원한 저승에의 영위를 위한 것이었다면,
메소포타미아는 자신들의 생명과 땅을 빼앗으려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억센 유목 민족 사이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현실에 입각한 사고가 발달하였고
죽음을 무서워했으며, 현실의 생에 집착한 강력한 이승의 삶을 위한 양상이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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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습격하는 사자: BC 5세기 |
앗시리아 미술의 새 경지란
공적과 권위를 과시하는 것이어서 외정(外征), 향연, 사자사냥 등을 주제로 한 묘사가
아주 구체적이며 기록성을 중시했다. 특히 동물의 표현에는 박진감 넘치는 사실성을
발휘하고 있다. 현실주의 스타일로 강력한 힘의 표현을 하였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생에 대한 억척스러운 집착을 고집하는 성격을 이런 앗시리아 미술에서 볼 수 있다.
수메르 인들은 이집트처럼 체계화된 신을 섬긴 것이 아니라 많은 지방 신을 갖고 있었다.
이 신들은 국가와 영토 등을 소유하고 천체와 날씨, 물, 풍년 등을 관장하여
일반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가지고 있었다.
신전은 그 지역 행정의 중심이 되었고 이 행정적 사항들은
신관에 의해 점토판에 기록되었다. 그래서 이 점토판에는 종교적인 것보다 오히려
생활에 관계된 내용들이 많았다.
< 왕조의 변천사 >
① 수메르 왕조 (BC 4,000 ~ 2,000)
② 구 바빌로니아 (BC 2,000 ~ 1,000)
③ 앗시리아 (BC 1,000 ~ 612년경)
④ 신 바빌로니아 (BC 612 ~ 538)
⑤ 페르시아 (BC 550 ~ AD 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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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라트: BC 22 ~ 21세기, 우르 |
수메르인들의 가장 독특한 건축물은 '지구라트'라고 하는 거대한 계단식 탑이다.
이것은 모든 주요 신전에 필수적인 것이었는데, 거대한 진흙 벽돌을 층층이 올라갈수록
점점 작아지게 쌓고 꼭대기에는 성전을 만들어 바깥 계단으로 가게 되어 있다.
메소포타미아 미술
: 메소포타미아 남부지역에서 가장 오래 된 문명을 이룩한 수메르(sumer)인의 미술
메소포타미아란 그리스어로 '두 강의 사이'를 뜻하는 말로,
티그리스 강(江)과 유프라테스 강(江) 사이에 있는 광활한 지역을 가리킨다.
이 지역에는 수만 년 전부터 인류가 살았던 흔적이 있으며,
BC 5,000 ~ BC 4,000년에는 농경생활을 영위한 정착주민도 나타나고,
이어 BC 3,500 ~ BC 3,000년에는 이미 역사시대로 접어들었다.
즉 수메르인에 의해 많은 도시국가가 건설되고 설형문자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수메르인이 건설한 도시국가에 국왕이 나타난 BC 3,000 ~ BC 2,340년에 이르는
초기 왕조시대에는 도시문명의 발달과 함께 미술 또한 고도로 발달하였지만,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물은 그리 많지 않다.
건축물은
석재가 거의 산출되지 않기 때문에 수메르인은 햇볕에 말린 벽돌이나 목재로 집을 지었다.
따라서 그들 건축물은 건축물의 기초부분을 제외하고는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라가시· 우르·우루크·니푸르·에리두·키시 등의 도시 폐허가 그 좋은 예이다.
이 중 우르에서는 초기 왕조시대의 분묘군이 발굴되고 그 곳에서 천장이 돔으로 된
지하실이 발견되었다.
지구라트[聖塔]도 오래 된 것은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우루크에는 BC 3,500 ~ BC 3,000년에 건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구라트의 유적이 있으며, 그 성전 바깥 벽이 백색 도료를 사용한 벽돌로 건립된 데서
'하얀 신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 '하얀 신전'은 구부러진 참배통로가 있는
수메르 종교건축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유구이기도 하다.
조각에서도 석재의 부족을 말해 주듯 규모가 큰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신전의 예배상(像)과 봉헌상(像), 기념비적인 부조, 장식조각 등이
여러 유적에서 발굴되었다.
이 중 우루크에서 발굴된 《여성 두상(女性頭像)》는 '하얀 신전'과 거의 같은 시대의
대리석으로 된 상으로, 감성적인 표현이 뛰어나다.
또 아스마르(고대 이름은 에슈누나)의 아브신전에서 발굴된 일군의 신상(神像)은
이보다 5세기 정도 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같은 대리석으로 된 것으로
원뿔과 원통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기하학적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들 예배상의 거대한 눈에는 채색된 동공을 끼워 넣었으며,
이는 예배자와 눈에의한 영혼의 교신(交信)을 말해주고 있다.
한편, 목재와 금박·라피스라줄리[靑金石]·조가비 등을 소재로 만든 조각상이나 부조는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만들어졌다.
곧, 우르 제1·2왕조의 왕묘군(BC 2,000년대 후기)에서 발굴되어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떨기나무에 뒷다리로 선 숫양[雄羊]》은 그 좋은 예이다.
이 밖에도 같은 시대 우르 왕묘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황금의 투구와 식기, 조가비를 세공해 장식한 하프, 그리고 유명한 《우르의 스탠더드》
등이 미술적 일품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바빌로니아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에 위치한 이라크의 남부를 바빌로니아라고 했다.
최초의 주민들은 수메르 인들로 기원전 3천년 이전부터 문자를 발명해
그들의 문화와 종교·예술을 고대 서아시아 전역에 전파시켰다.
수메르 인들은 전반적인 생활양식뿐만 아니라 예술·종교·문학에 있어서도 후세인이나
고대 동방의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여 주었다.
바빌로니아에서는 예술가와 장인의 구별이 없었으며 그들은 모두 존경을 받았고,
그들의 기술을 지혜의 화신인 에아신에게서 부여받았다고 생각했다.
기원전 3천년 초, 바빌로니아의 도기 제작은 이미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앗시리아의 아르파시야와 이란의 수사에서 출토된 도기는 모양도 아름답고
채색한 장식의 취향과 기술도 뛰어났던 것을 보여준다.
바빌로니아의 건축에는 진흙과 짚으로 만든 벽돌과 삼목이 주재료로 사용되었다.
궁전이나 신전의 외벽은 화려한 장식을 붙여 치장했으나 내구성이 없는 진흙 벽돌로만
되어 있어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므로 바빌론의 건축물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바빌론 건축의 특징적인 요소는 약간 튀어나온 버팀벽이 달린 정면과 계단을 쌓거나
삼각형 모양으로 된 수직의 수로와 총안이다.
또 가장 독특한 건축물은 '지구라트'라고 하는 거대한 계단식 탑이다.
이것은 모든 주요 신전에 필수적인 것이었는데,
거대한 진흙 벽돌을 층층이 올라갈수록 점점 작아지게 쌓고 꼭대기에는 성전을 만들어
바깥 계단으로 가게 되어 있다.
기원전 2,500년경에는 팔장을 낀 자세의 자연스러운 환조 석회석상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바빌로니아 돌 공예의 진정한 매체는 저부조이다.
벽화와 함께 발달한 이 부조는 채색이 되어 있으며,
입체적 효과를 덧붙인 정교한 벽화의 변형이다.
벽화는 고운 바탕의 흰색 석고벽에 검은색으로 윤곽을 그린 다음 붉은 색과 검은색으로
칠했으며, 청·황·노 색을 제한적으로 사용했다.
벽화는 전형적인 왕실 의식·제사·서임식·사자의 사냥 장면등을 묘사한 것으로
릴리프에서와 같이 인습에 따라 머리와 다리는 옆 모습 그리고 몸통은 앞 모습이며,
눈은 보통 앞을 바라보고 있다.
바빌로니아 고유의 특징적인 조각은 매우 단단한 돌로 만든 작은 원통형 도장에
무늬를 조각한 '미니아튀르'이다.
기원전 5천 ∼ 3천년 사이에 거의 보편적으로 사용된 이 도장은
서 아시아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발달 순서가 분명히 나타난다.
가장 훌륭한 작품들은 아카드 시대에 제작된 것들로 주제도 흥미롭고
완성품의 아름다움도 뛰어나다.
그 외에 조개나 유리·돌·상아로도 모양을 만들고 조각을 해서 큰 작품을 장식하거나
모자이크 조각으로 사용했다.
동이 사용된 예는 유사 이전에도 발견되었으나 많은 양을 사용하고 또 장식용으로
금속을 쓴 것은 바빌로니아인들이 최초였다.
그들은 금·은·동으로 많은 작품을 제작했으며,
처음에는 망치로 두들겨 펴서 만들었으나 나중에는 청동 적조물로 신전이나
궁전 입구에 괴물상을 만들어 세우기도 했다.
앗시리아 (기원전 1,000년경 ~ 612)
앗시리아 미술은 메소포타미아 미술의 슈메르·악카드의 전통을 잘 소화시켰고
그 위에 전혀 다른 경지를 열어 고대 오리엔트 미술에 하나의 새로운 유형을
명확히 창조해 그 지리적인 환경에 따라 시리아, 소아시아, 더 나아가
에게해 주변의 미술에까지 그 영향을 미쳤다.
앗시리아 미술의 새 경지란
공적과 권위를 과시하는 것이어서 외정(外征), 향연, 사자사냥 등을 주제로 한 묘사가
아주 구체적이며 기록성을 중시했다.
특히 동물의 표현에는 박진감 넘치는 사실성을 발휘하고 있다.
현실주의 스타일로 강력한 힘의 표현을 하였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생에 대한 억척스러운 집착을 고집하는 성격을 이런 앗시리아 미술에서 볼 수 있다.

.....지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