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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자른 반 고흐

작성자nabie|작성시간01.03.05|조회수203 목록 댓글 0
1888년(35세) 2월, 파리를 떠나 아를르로 가다. 노란 색의 집을 빌어서 거주하며 작품에 정열을 쏟다. 6월, 지중해의 생트 마리 드 라 메르로 여행하다. 10월, 고갱이 아를르로 오자 공동생활을 시작하다. 11월, 돌연 발작을 일으켜 스스로 귀를 자르고 이 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하다. 고갱, 아를르를 떠나다. 귀에 붕대를 감고 파이프를 문 자화상 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 and Pipe 1889년 1월, 아를. 캔버스 유채, 51 cm × 45 cm 레이 블록 컬렉션(시카고) [책소개]「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지음 ▼ ‘태양의 화가’ ‘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고독과 절망끝에 37세에 권총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한 그는 세계 미술사의 화인(火印)으로 남았다. 반 고흐가 세상을 떠난지 100여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해마다 열리는 ‘고흐전’엔 인파가 들끓는다. 유럽은 고흐의 예술성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가난과 절망에 몰아넣었던 죄의식에서 ‘고흐 신화’를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도 가난 속에서 4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화가 ‘이중섭 신화’가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추측과, 너무 많은 신화 속에서 그들의 그림은 오히려 감금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흐가 죽고나자 그에 대한 수많은 평전과 소설이 출간됐다.그러나 이 책은 고흐가 직접 남긴 그림과 편지글 모음이다. 더이상의 가감도 없는 고흐의 목소리를 통해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더욱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원재료다. 고흐는 짧은 기간에 많은 양의 그림을 쏟아냈던 것처럼 편지도 많이 썼다. 특히 동생 테오와 1872년 8월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668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다. 화상(잋商)이었던 동생 테오는 고흐의 유일한 후원자였고 동반자였다. 고흐의 편지는 단순히 안부를 전하거나 생활비를 부탁하는 수단에 머무르지 않았다. 자아와 나누는 고독한 대화였고 세상에 던지는 절규였다. “나는 늘 두가지 생각 중 하나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는 물질적인 어려움에 대한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색에 대한 탐구다.”(1883년 9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편지에는 강렬한 색채를 찾아 남프랑스의 벌판을 헤매던 예술적 방황외에도 젊은 시절 사촌누이에게 구혼을 거절당한 사랑의 상처, 매춘부와 동거로 가족과 동료들로부터 겪게 된 갈등, 고갱과의 다툼 끝에 자신의 귀를 잘랐을 때의 심정 등이 솔직하게 표현된다. 사전지식없이 편지글만 읽는 독자들에겐 복잡 다단한 그의 인생행로를 잘 알기 힘든 점이 흠. 그러나 편지와 함께 원색의 그림을 실어 고흐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정신병원을 나온 고흐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곳은 파리 북쪽의 조용한 시골마을 오베르. 이곳에서 그는 70일간 70작품을 그려내는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운 뒤 자살한다. “너 하나만이라도 내가 원하는 전체 그림을 보게 된다면. 그래서 그 그림 속에서 마음을 달래주는 느낌을 받게 된다면….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테오에게 보낸 편지, 1889년 1월)   ---> 반 고흐가 귀를 자른 이유를 알기위해 이 책을 읽어야겠는데 사실 이 책 보기가 겁나요.(제가 들은 바로는 고갱과 의견차이로 다툼이 있었는데 칼로 고갱을 찌르려 했데요. 그래서 고갱은 떠나고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고흐는 접대부가 귀를 갖고 싶다는 말에 그 칼로 자신의 귀를 잘랐다는...이거 맞나여? 기억력이 안 좋아서리...-_-;;) 그리고 반 고흐의 그림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반 고흐의 이야기에 정신이 쏠려 정작 반 고흐의 그림은 잘 보지 못하는 거 같아요. 어느 책이 이런 글이 있더군요. 미술가를 보는가, 미술을 보는가. 전 반 고흐의 그림은 별로 안 좋아하죠. 보면 어지러워요. 그렇지만 반 고흐의 그 이야기들에 왜 그렇게 마음이 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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