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시말 (伸復始末) - 7. 순조 대: 삼상의 정려(旌閭)와 불천위(不祧) 은전 확정

작성자연재31-63|작성시간26.06.18|조회수3 목록 댓글 0

순조 4년(1804년) 영남과 호남 유생들의 상소에 따라 삼상(황보인, 김종서, 정분)의 집안에 정려(충신을 기리기 위해 붉은 문을 세워 표창함)를 전면 허락했습니다. 이어 순조 8년(1808년)에는 이미 불천위(나라에 큰 공훈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서 신주를 묻지 않고 제사 지내게 함) 은전을 받은 김종서 등의 예에 따라, 진주 정씨 문중의 충장공 정분에게도 최종적으로 불천위 은전을 허락하여 영원히 대대손손 제사를 이어가도록 조치하며 대단원의 명예회복을 마무리 짓는 내용입니다.

 

 

純廟四年甲子

순조 4년 갑자년에

 

命旌閭

정려(旌閭)를 명하시었다.

 

二月十九日

2월 19일에

 

上幸行 明陵時

임금께서 명릉에 행차하셨을 때에,

 

慶尚道幼學任綽

경상도 유학 임작과

 

忠清道進士孟欽奎

충청도 진사 맹흠규와

 

全羅道幼學金章煥等上言

전라도 유학 김장환 등이 상언(上言)을 올렸다.

 

以爲右謹啓臣矣等

그 뜻에 이르기를, “우러러 삼가 아뢰나이다, 신 등은

 

竊伏念故忠臣忠定公皇甫仁

마음속으로 가만히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옛 충신 충정공 황보인과

 

忠翼公金宗瑞

충익공 김종서와

 

莊公鄭苯

충장공 정분은

 

以 端宗朝三相

단종 조정의 세 정승으로서

 

貞忠純節炳著簡冊是白遣

곧은 충성과 지극한 절개가 역사책에 밝게 빛나고 있사옵니다.

 

英廟朝戊寅下敎曰

영조 조정 무인년에 교지를 내려 이르시기를

 

予於三相六臣豈有所惜哉

‘내가 세 정승과 여섯 신하에게 어찌 아끼는 바가 있겠는가’ 하셨고,

 

先大王辛亥特命

선대왕 정조 조정 신해년에는 특별히 명하시어

 

同時死節諸臣配食 莊陵

동시에 절개에 죽은 모든 신하를 장릉에 배식하게 하시고,

 

書以忠臣是白遣

신주에 충신이라 서사하게 하셨사옵니다.

 

判府事臣沈煥之以爲

또한 판부사 신 심환지가 아뢰기를

 

金宗瑞臨危盡節

‘김종서가 위태로움에 임해 절개를 다했으니

 

三相中忠翼祠板在於嗣孫家則

세 정승 중 충익공의 신주가 사손의 집에 있으니

 

旌閭其門有光於 聖興

그 가문에 정려를 내림이 성스러운 조정의 흥성에 빛남이 있을 것입니다’ 하였고,

 

設 先朝已未幼學臣權思吉等

설령 선조 조정 기미년에 유학 신 권사길 등이

 

駕前呼籲矣

어전에서 부르짖어 호소하였을 때에도,

 

禮曹判書臣趙尙鎭覆啓以爲

예조판서 신 조상진이 복계하여 아뢰기를

 

金忠翼貞忠大節

‘김종서의 곧은 충성과 커다란 절개는

 

與六臣相伯仲而

사육신과 더불어 서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우며,

 

悼楔之施於同節諸人而未及忠翼者

홍살문을 세우는 포상이 같은 절개의 여러 사람에게는 베풀어졌으나 충익공에게 미치지 못한 것은

 

實爲未遑之典是如爲白遣

실로 미처 미치지 못한 법전입니다’ 하였사옵니다.

 

讓大臣禀處內

이에 대신들에게 양보하여 품하여 처리하게 하시니,

 

左議政臣李秉模以爲

좌의정 신 이병모는 아뢰기를

 

金宗瑞身佩安危以之死生

‘김종서가 몸에 나라의 안위를 짊어지고서 죽고 살았으니

 

純忠大節何斷悼楔之旋

순수한 충성과 커다란 절개에 어찌 홍살문 세우는 일을 주저하겠습니까마는,

 

而三大臣或旌或否

세 정승에 대해 혹은 정려를 내리고 혹은 내리지 않는 것은

 

恐未知何如而

어떠할지 알지 못하겠으며,

 

以臣謾見不敢臆對是白遣

신의 부질없는 소견으로는 감히 억측하여 대답하지 못하겠나이다’ 하였고,

 

判府事臣沈煥之以為

판부사 신 심환지는 아뢰기를

 

金宗瑞臨危盡節功著簡冊

‘김종서가 위태로움에 임해 절개를 다해 공로가 역사책에 뚜렷하니,

 

旋閭等細節

마을에 정려를 내리는 등의 자질구레한 예절은

 

不足增輝於耳目不敢臆對是白如乎

이목에 광채를 더하기에 부족하므로 감히 억측하여 대답하지 못하겠나이다’ 하였사옵니다.

 

臣矣身等愚衷願有所區區仰暴於天地父母之下者

그러나 신들의 어리석은 마음으로 원하옵고 아쉽게 생각하여 천지와 같은 어버이 아래

에 우러러 드러내고자 하는 바는,

 

夫生民秉彛莫過於忠烈

대저 백성이 타고난 떳떳한 도리는 충성과 열렬함보다 더한 것이 없고,

 

國家褒尚亦莫先於悼楔

국가에서 기리고 숭상함 또한 홍살문을 세우는 일보다 앞서는 것이 없사옵니다.

 

是以雖閭巷匹夫匹婦

이런 까닭으로 비록 시골의 필부와 필부라 할지라도

 

如以忠烈著焉者則

만약 충성과 절개로써 이름이 드러난 자가 있다면

 

申加採訪褒揚旋閭是白如乎

거듭 널리 찾아내어 기리고 높여 마을에 정려를 내리거늘,

 

至若三相與六臣一軆并 命則

더구나 세 정승과 여섯 신하처럼 한몸으로 함께 명을 받은 경우에 있어서랴.

 

國家褒尚之典

국가에서 기리고 숭상하는 법전이

 

六臣與同節諸人中有子孫家皆蒙 旌閭之恩是白遣

여섯 신하와 같은 절개의 여러 사람 중에 자손이 있는 가문은 모두 정려의 은혜를 입었

사오되,

 

三臣家獨未蒙一施之典是白乎所

세 정승의 가문만 유독 한 번도 베풀어지는 법전을 입지 못하였사옵니다.

 

旌閭猶以為細節則

정려를 내리는 것을 오히려 자질구레한 예절이라 하신다면,

 

一片烏頭固不足輕重於三臣之顯晦者而

한 조각 붉은 정문이 참으로 세 정승의 드러남과 어두워짐에 경중이 될 것은 아니오나,

 

萬古遺躅有所瞻仰

만고에 남겨진 자취는 우러러 사모하는 바가 되는 것이요,

 

婦孺行路尙能指點知其爲某忠臣家則

아녀자와 어린아이 등 길가는 이들이 오히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곳이 어느 충신의 가문임을 알게 된다면,

 

風勵俗化亦不可以細節關之是乎

풍속을 격려하고 교화하는 일이 또한 자질구레한 예절이라 관계없는 일이라 할 수는 없사옵니다.

 

於三相節義一體并明而

더욱이 세 정승의 절개와 의리는 한몸처럼 함께 명백하거늘,

 

請表於一忠翼公而不及於二相則

청하여 표창함이 오직 한 분 충익공에게만 이르고 다른 두 정승에게는 미치지 않는다면,

 

左相之議充爲的當是白乎

좌의정의 의논이 실로 합당하다 하겠사옵니다.

 

臣矣身等俱與三相家同一鄉衆議恊

합신들은 모두 세 정승의 가문과 동일한 고향 사람으로서 여러 사람의 의논이 화합하여,

 

不勝秉彛之心

타고난 떳떳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茲敢相率不避畏越之誅

이에 감히 서로를 이끌고 외람되이 월권한 죄벌을 피하지 아니하며,

 

畏足曼顙於 法駕之前爲白去乎

두려운 걸음으로 임금의 수레 앞에 머리를 조아려 아뢰나이다.

 

伏願 聖明俯燭臣矣身等微衷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명하신 임금께서는 신들의 미천한 참뜻을 굽어 살피시어,

 

特命依司故忠臣忠定公皇甫仁

특별히 명하사 옛 충신 충정공 황보인과

 

忠翼公金宗瑞

충익공 김종서와

 

莊公鄭苯三忠旌閭之典

충장공 정분 세 충신의 정려를 내리는 법전을 의당 따르게 하소서.

 

一以依大臣并擧三忠之議

하나로는 대신들이 세 충신을 나란히 거론한 의논을 따르시고,

 

一以依朴彭年等已行之例

또 하나로는 박팽년 등이 이미 행한 전례를 따르시어,

 

特許悼楔之典伏蒙 天恩

특별히 홍살문을 세우는 법전을 허락하여 하늘 같은 은혜를 입게 하소서.” 하였다.

 

二十七日禮曹判書尹光普覆啓曰

27일에 예조판서 윤광보가 복계하여 아뢰기를,

 

觀此上言則

“이 상언을 살펴보건대,

 

故忠臣忠定公皇甫仁

옛 충신 충정공 황보인과

 

忠翼公金宗瑞

충익공 김종서와

 

莊公鄭苯

충장공 정분에게

 

請悼楔之典事有此呼籲爲白有卧乎所

홍살문을 세우는 법전을 청하는 일로 이와 같이 부르짖어 호소함이 있었사옵니다.

 

端宗朝三相貞忠大節

단종 조정 세 정승의 곧은 충성과 커다란 절개는

 

炳烺于宇宙之間

우주 사이에 밝게 빛나고 있으니,

 

苟有當施之典

진실로 마땅히 베풀어야 할 법전이 있다면

 

何所靳惜而

어찌 아낄 바가 있겠습니까마는,

 

悼楔之尚今不擧

홍살문을 세우는 일이 지금까지 거행되지 않은 것은

 

實爲未遑之典

실로 미처 미치지 못한 법전이오니

 

恐當許施是白乎矣

아마도 허락하여 시행함이 마당할 듯하옵니다.

 

係于 恩典臣曹不敢擅便

다만 이는 은혜로운 처분에 관계되는 일이라 신의 조(曹)에서는 감히 마음대로 편의대로 하지 못하겠으니,

 

上裁何如

임금의 재결은 어떠하시옵니까?” 하니,

 

傳曰依回啓施行

전교하시기를, “복계한 대로 시행하라” 하셨다.

 

 

 

순묘(純廟) 8년 무진년의 명(命)

 

八년戊辰 命不祧

순조 8년 무진년에 불천위(不祧)를 명하시었다.

 

二月日進士李基善等

2월 어느 날, 진사 이기선 등이

 

駕前上言以爲

임금의 수레 앞에서 상언을 올려 이르기를,

 

臣矣身等竊伏念故忠臣

“신들은 가만히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옛 충신인

 

公臣皇甫仁

공신 황보인과

 

忠翼公臣金宗瑞

충익공 신 김종서는

 

靖難之日與忠定公臣皇甫仁

정난(靖難)의 날에 충정공 신 황보인과

 

忠翼公臣金宗瑞同心殉節

충익공 신 김종서와 마음을 같이하여 절개에 순국하였으니,

 

其貞忠毅烈實爲伯仲是白遣

그 곧은 충성과 굳센 정렬은 실로 우열을 가리기 어렵사옵니다.

 

列聖朝褒嘉之典亦無異同

열성조께서 기리고 찬양하신 법전 또한 다름이 없었으므로,

 

故 英廟朝丙寅一體復官是白遣

그러므로 영조 조정 병인년에 일체 관작을 복구시켜 주셨고,

 

戊寅一體 贈諡賜祭是白遣

무인년에는 일체 시호를 증하시고 제사를 내려 주셨으며,

 

先大王朝辛亥一體配食於 莊陵忠臣壇是白遣

선대왕 정조 조정 신해년에는 일체 장릉의 충신단에 배식하게 하셨고,

 

又於甲子년 特蒙一體旌閭之恩是白遣

또한 갑자년에는 특별히 일체 정려를 내리는 은혜를 입었사옵니다.

 

至於不祧一事則

그러나 사당에서 신주를 옮기지 않는 불천위의 한 일에 이르러서는,

 

忠翼公臣金宗瑞

충익공 신 김종서가

 

先大王朝其年國大臣曁白已蒙 恩典是白乎矣

선대왕 조정 그해에 나라의 대신들과 함께 이미 은혜로운 법전을 입었사오되,

 

獨忠莊公臣鄭苯

유독 충장공 신 정분만은

 

尚未蒙一施之 恩是白乎所

아직 한 번도 베풀어지는 은혜를 입지 못하였사옵니다.

 

筭其後孫散在嶺湖尚傳嫡嗣而

그 후손들을 셈해 보니 영남과 호남에 흩어져 살면서 오히려 적손의 대를 전하고 있으나,

 

家聲零替香火寂寞

가문의 명성이 쇠락하여 제사의 향불이 쓸쓸하오니,

 

以堂堂一體忠節

당당하게 한몸과 같은 충성과 절개를 지니고서도

 

或祧或不祧

혹은 신주를 옮기고 혹은 옮기지 않음은

 

實爲 聖世之闕典是白如乎

실로 성스러운 시대의 빠진 법전이 되옵니다.

 

臣矣身等亦嘗聞其風而欽慕矣

신들 또한 일찍이 그 풍모를 듣고 흠모하여 왔사옵니다.

 

公議所激不避畏越

공론이 격발하는 바에 따라 외람됨을 피하지 아니하고,

 

相率齊籲於 法駕之前爲白去乎

서로를 이끌고 임금의 수레 앞에 일제히 부르짖어 아뢰나이다.

 

伏乞天地父母俯垂鑑諒

엎드려 비옵건대 천지와 같은 어버이께서는 굽어 살피시고 양해하시어,

 

特許忠莊公臣不祧之典

특별히 충장공 신에게 불천위의 법전을 허락하시어,

 

俾遵兩相臣已行之例

두 정승 신하가 이미 행한 전례를 따르게 하심으로써

 

以伸公議以慰忠魂焉

공론을 펴고 충직한 혼령을 위로하게 하소서.” 하였다.

 

同月日禮曹 啓曰

그달 어느 날 예조에서 올린 계사에 이르기를,

 

觀此進士李基善等上言則

“이 진사 이기선 등의 상언을 살펴보건대,

 

爲忠莊公鄭苯一依

충장공 정분을 위해 한결같이

 

忠翼公金宗瑞忠定公皇甫仁已行之例

충익공 김종서와 충정공 황보인의 이미 행한 전례에 의거하여

 

請不祧之典事有此呼籲爲白有卧乎所

불천위의 법전을 청하는 일로 이와 같이 부르짖어 호소함이 있었사옵니다.

 

鄭苯貞忠大節

정분의 곧은 충성과 커다란 절개는

 

與皇甫仁金宗瑞公

황보인, 김종서 공과 더불어

 

生同其志死同其傳

살아서는 그 뜻을 같이하고 죽어서는 그 전해짐을 같이하여

 

實爲伯仲

실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우니,

 

列聖朝褒奬之典亦無同異是白乎則

열성조께서 기리고 장려하신 법전 또한 다름이 없었사오니,

 

令此呼籲容或無恠是白乎矣

이제 이 호소를 올리게 한 것은 혹 괴이할 것이 없을 듯하옵니다.

 

不祧之典事體莫重

다만 불천위의 법전은 사안과 체통이 매우 무거우니,

 

臣曹不敢擅便議于大臣處何如

신들이 감히 마음대로 편의대로 하지 못하겠사오니 대신들에게 의논해 봄이 어떠하옵니까?” 하니,

 

傳曰依 允

전교하시기를, “윤허한 대로 하라” 하셨다.

 

三月十八일都承旨洪義浩 啓曰

3월 18일에 도승지 홍의호가 올린 계사에 이르기를,

 

以忠莊公鄭苯不祧之典事

“충장공 정분의 불천위의 법전에 관한 일로

 

議于大臣則

대신들에게 의논을 구한즉,

 

議政府左議政臣李時秀以為

의정부 좌의정 신 이시수는 이르기를

 

賤疾方劇神思昏塞

‘지저분한 질병이 바야흐로 심하여 정신과 생각이 혼미하고 막혀서

 

不得收議惶恐侯讎云

의논을 거두어 내지 못하니 황공하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하였고,

 

奉朝賀臣李敬一病未獻議

봉조하 신 이경일은 병으로 의논을 바치지 못하였으며,

 

右議政臣金載瓚以為

우의정 신 김재찬은 이르기를

 

鄭苯與皇甫仁金宗瑞以同時三相

‘정분은 황보인, 김종서와 더불어 동시대의 세 정승으로서

 

同日同禍勳伐樹立大抵一般

같은 날에 함께 화를 당하였고 훈공과 가업을 세운 것이 대개 일반적이거늘,

 

而不祧之典施於兩臣未及於鄭苯

불천위의 법전이 두 신하에게는 베풀어지고 정분에게는 미치지 못하였으니,

 

多士之合辭陳請未必無據

많은 선비들이 말을 합하여 진청하는 것이 반드시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朝家之到今崇報不宜異同

조정에서 지금에 이르러 보답을 높임에 있어서 마땅히 다름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니,

 

伏惟 上裁

엎드려 임금의 재결을 바라나이다’ 하였고,

 

領中樞府事臣徐龍輔

영중중추부사 신 서용보와

 

行判中樞府事臣韓用龜

행 판중추부사 신 한용구는

 

俱在外不得收議

모두 지방에 있어서 의논을 거두지 못하였사옵니다.

 

大臣之議如此 上裁何如

대신들의 의논이 이와 같으니 임금의 재결은 어떠하시옵니까?” 하니,

 

傳曰依 允

전교하시기를, “윤허한 대로 하라” 하셨다.

 

 

 

예조(禮曹)의 추가 청원과 재결

 

同月二十日禮曹 啓曰

그달 20일에 예조에서 올린 계사에 이르기를,

 

人臣功存民國則

“신하로서 공로가 백성과 나라에 남아 있다면

 

特命不祧許令世祀

특별히 불천위를 명하여 대대로 제사를 지내게 허락함은

 

禮制也國典也

예법의 제도요 나라의 법전이옵니다.

 

又若忠節最不容湮沒者亦施不祧之典

또한 충성과 절개가 가장 인멸될 수 없는 자에게도 역시 불천위의 법전을 베풀어 왔사옵니다.

 

國朝以來以翊聖之功

우리 조정 이래로 임금을 도운 공로와

 

兼殉國之節者

나라를 위해 순국한 절개를 겸비한 자로는

 

莫如壬辛死事之臣

임신년(신임사화)에 국사를 위해 죽은 신하만 한 이가 없사옵니다.

 

如故重臣李晚成

옛 중신 이만성 같은 이는

 

與四大臣同倡豫建之論

사대신(노론 사대신)과 더불어 대리청정을 예견하여 세우는 논의를 함께 창도하고,

 

力排凶焰肯贅大策

흉악한 기세를 힘써 배척하며 기꺼이 큰 계책을 보태어

 

使 宗社轉危爲安

종묘사직을 위태로움에서 돌려 편안하게 만들었으며,

 

竟與四大臣同被酷禍

끝내 사대신과 함께 참혹한 화를 입었으니,

 

其偉功卓節實無異同

그 위대한 공로와 탁월한 절개는 실로 다름이 없사옵니다.

 

而四大臣則崇報無憾

그러나 사대신에게는 보답을 높임에 유감이 없어

 

哀榮備至

슬픔과 영예가 지극함에 이르렀고

 

恩侑屢降於廟院

은혜로운 제사가 서원과 사당에 여러 번 내려졌으나,

 

不能并入於祀祧

사당의 불천위에는 함께 들어가지 못하였사옵니다.

 

而獨故重臣則雲仍甚替

게다가 유독 옛 중신은 후손들이 매우 쇠락하고

 

年代且促香火未繼

연대 또한 오래되어 제사의 향불이 이어지지 못하여

 

廟主將埋

사당의 신주를 장차 묻어야 할 형편이옵니다.

 

忠功雖同於四臣

충성과 공로가 비록 네 신하와 동일하거늘

 

而褒奬未施於一視

기리고 장려함이 한결같이 보아주는 데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同朝之傷歎士林之咨嗟

조정을 함께한 이들의 가슴 아픈 탄식과 사림의 한숨이

 

當復如何

당연히 다시 어떠하겠습니까.

 

今此章甫之齊聲

이제 이 유생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는

 

可見公議之不湮

공론이 인멸되지 않았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니,

 

以已施於四大臣者

이미 사대신에게 베푼 것으로써

 

許施於故重臣

옛 중신에게도 베풀기를 허락함이

 

恐合輿論伏惟 上裁

아마도 여론에 부합할 듯하오니 엎드려 임금의 재결을 바라나이다.

 

黃一浩東議之嚴

황일호는 동인의 논의가 준엄하였고

 

凶禍 之酷尚令人涕隕氣湧

흉악한 화의 참혹함이 여전히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하고 기운이 솟구치게 하나이다.

 

其爭則義取義之三士也

그 다툼인즉 의로움을 취한 세 선비요,

 

其死則沁都殉節之諸賢也

그 죽음인즉 강화도에서 순절한 여러 현인들이옵니다.

 

隻手三綱宇宙同傳之 敎

‘한 손으로 삼강을 붙들어 우주에 함께 전한다’ 하신 교지는

 

極其褒揚殆無餘蘊

그 기리고 높임이 지극하여 거의 남은 뜻이 없사옵니다.

 

而但沁都諸賢並令不祧

그러나 다만 강화도의 여러 현인들에게는 모두 불천위를 명하셨으나,

 

惟一皓未蒙一體之 恩

오직 황일호만이 일체로 하시는 은혜를 입지 못하였으니

 

誠爲欠典惟在上裁

참으로 빠진 법전이 되오니 오직 임금의 재결에 달려 있사옵니다.

 

鄭苯與皇甫仁金宗瑞以同時三相

정분은 황보인, 김종서와 더불어 동시대의 세 정승으로서

 

同日同禍勳伐樹立大抵一般

같은 날에 함께 화를 당하였고 훈공과 가업을 세운 것이 대개 일반적이거늘,

 

而不祧之典施於兩臣未及於鄭苯

불천위의 법전이 두 신하에게는 베풀어지고 정분에게는 미치지 못하였으니,

 

多士之合辭陳請未必無據

많은 선비들이 말을 합하여 진청하는 것이 반드시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朝家之到今崇報不宜異同

조정에서 지금에 이르러 보답을 높임에 있어서 마땅히 다름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니,

 

伏惟 上裁

”엎드려 임금의 재결을 바라나이다.

 

傳曰依允

전교하시기를, “윤허한 대로 하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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