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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연재31-63|작성시간26.06.18|조회수21 목록 댓글 0

輯錄 (집록)71p

 

癸酉六月 昌德宮成

계유년 유월에 창덕궁이 마침내 이루어지니

 

時人謗先生以土木

당시의 사람들이 토목 공사를 일으켰다 하여 선생을 비방하였도다.

 

 

 

소문쇄록(謏聞瑣錄)

 

徐師川有感詩云

서사천(徐師川)이 유감(有感)이라는 제목의 시에 이르기를,

 

經濟三朝一老臣

세 조정에 정치하던 한 늙은 신하

 

廟堂深處儼垂紳

묘당 깊은 곳에 엄연히 큰 띠 드리웠네

 

當年事業人休問

당년의 사업을 사람들아 묻지 말라

 

神殿神宮不日新

신전과 신궁이 불일간에 새롭다

 

自註曰時相鄭笨以三朝元老佐幼主不能補導德義以土木相尙癸酉六月昌德宮殿成民力大困或有言者則曰當今太平捨此無餘大臣云予聞之西河任公

하고, 자기가 주석하기를, “그때의 정승 정분(鄭笨)이 삼조(三朝 세종ㆍ문종ㆍ단종)의 원로로 어린 임금을 섬기면서 덕의(德義)로 보좌하지는 못하고, 집짓기만을 숭상하여 계유년 6월에 창덕궁전이 이루어지니, 민력이 크게 곤궁에 빠졌다. 혹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대답하기를, ‘이제 태평한 시대를 당하여 이것밖에는 남은 큰 일이 없다.’” 하였다. 나는 이것을 서하(西河) 임공(任公 임원준)에게서 들었다.

 

 

 

 

端廟 癸酉 (단묘 계유)

 

以右相 謫樂安

우의정의 신분으로 낙안 땅에 유배되시다.

 

一日 使隨行僧坦禪 具饌祭先祖

어느 날, 수행하던 승려 탄선으로 하여금 제수를 갖추어 선조들께 제사를 올리게 하니,

 

焚埋神主 俄而賜死

신주를 불태워 묻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약이 내려졌도다.

 

英廟丙寅復官

영조 병인년에 이르러 관작이 회복되고,

 

戊寅賜諡

무인년에 시호가 내려졌도다.

 

正廟辛亥 配食莊陵忠臣壇

정조 신해년에 장릉 충신단에 배향되시니,

 

純廟甲子命 旌閭

순조 갑자년에 명을 내려 정려를 세우게 하셨도다.

 

 

 

東綱錄 (동강록)

 

端宗元年癸酉時

단종 원년 계유년의 당시에,

 

皇甫仁 金宗瑞 鄭苯爲三公

황보인과 김종서, 그리고 정분이 삼공의 자리에 있었도다.

 

鄭右相苯 有器局

우의정 정분은 그 기량과 도량이 지극히 넓었으니,

 

是時以全慶等道體察使 押謫樂安郡

이때에 전라 경상 등 도체찰사의 몸으로 압송되어 낙안군으로 유배되었도다.

 

在謫 常奉祖先神主祭之

유배지에 머무는 동안 늘 조상의 신주를 받들어 제사를 모셨는데,

 

一日 睡起精造一飯 祭於神主

하루는 잠에서 깨어나 정성스레 메(밥) 한 그릇을 지어 신주 앞에 제를 올렸도다.

 

旣祭 焚埋其神主

제사를 마치고 그 신주를 불태워 땅에 묻으니,

 

俄而使至 賜死

얼마 지나지 않아 의금부 도사가 이르러 사약을 내렸도다.

 

 

 

國朝大事記 (국조대사기)

 

右大臣鄭苯 赤心保國

우의정 정분은 붉은 마음으로 나라를 보위하였으니,

 

實是忠良之材

실로 이는 충성스럽고 어진 인재로다.

 

伏願殿下 特赦復爵

엎드려 바라오니 전하께서는 특별히 사면하시어 관작을 회복시켜 주소서 하여,

 

以副臣民之望

신하와 백성들의 간절한 바람에 부응하셨도다.

 

 

 

朝野會海 (조야회해)

 

鄭苯 字子0 晉州人

정분의 자는 자유이요, 진주 사람이라.

 

文藝公以吾之子也

문예공 이오의 아들이시로다.

 

太宗朝登科 官至右相

태종 조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이 우의정에 이르렀으니,

 

有器局

진실로 훌륭한 도량과 기국을 지니셨도다.

 

癸酉靖難時 自嶺南回至忠州

계유정난이 일어났을 때, 영남으로부터 돌아와 충주에 이르러,

 

見殉首至 用安驛前

순절한 이들의 수급이 도달한 것을 용안역 앞에서 보았도다.

 

京官馳駟來 唱有傳旨

경관이 마차를 달려와 전지가 있음을 소리 높여 외치니,

 

公卽下馬再拜

선생은 즉시 말에서 내려 두 번 절하며 맞이하셨도다.

 

問京官曰 受刑路中 不祥

선생이 경관에게 묻기를, 길 한복판에서 형을 받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니,

 

可就驛館否

역관으로 나아가 행할 수 있겠는가 하니,

 

京官曰 不然 但受旨押歸配所耳

경관이 이르기를, 그렇지 아니하고 단지 명을 받들어 유배지로 압송할 뿐이라 하거늘,

 

公還上馬 與官偕行

선생은 다시 말에 올라 관원과 함께 길을 떠나셨도다.

 

官曹爲公之郞吏者 謂公曰

예전에 선생 밑에서 일하던 관아의 서리들이 선생께 고하기를,

 

問朝廷事 難於應答而赴樂安郡

조정의 일을 물으시면 응답하기가 어려우실 터이니 그냥 낙안군으로 가소서 하니,

 

十餘日 朝夕同處而 一不問朝廷事

십여 일 동안 아침 저녁을 함께 지내면서도, 조정의 일을 단 한 마디도 묻지 않으셨도다.

 

至謫 常奉祖先神主

유배지에 이르러서도 늘 조상의 신주를 정성껏 받드셨는데,

 

一日 睡起 謂隨行僧坦禪曰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수행하던 승려 탄선에게 이르기를,

 

汝精造一器飯 吾祀吾祖

너는 정갈하게 밥 한 그릇을 지어 오너라, 내가 내 조상님께 제를 올리리라 하셨도다.

 

旣祭 焚其神主 俄而吏來 賜死

제사를 마친 후 그 신주를 불태우니, 이윽고 관리가 도달하여 사약을 전하였도다.

 

 

 

 

護閨聞見錄 (호규문견록)

 

監刑官曰 吾若有二心

감형관이 말하기를, 내가 만약 두 마음을 품었다면

 

死後 靑天依舊 不然 必有異常

죽은 뒤에 푸른 하늘이 예전과 같을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기이한 일이 있으리라 하였도다.

 

旣死 忽雲合雨作 白虹橫亘

선생께서 절명하시니, 문득 구름이 모여들고 비가 쏟아지며 흰 무지개가 비껴 가로질렀으니,

 

監刑官張傘入城 坦禪目睹其事而 詳言之

감형관이 우산을 받쳐 들고 성으로 들어갔으며, 승려 탄선이 그 일을 직접 눈으로 보고 상세히 말하였도다.

 

 

 

東國文獻錄 (동국문헌록)

 

讀魯陵志 不涕非人

노릉지(단종의 역사)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로다.

 

孰不爲臣 至於三相六臣之有死也

누군들 신하가 되지 않으리오마는, 삼상과 육신이 죽음에 이른 마당에 있어서랴.

 

生而愛君 爲臣孰不有死

살아서는 임금을 사랑하고, 신하로서 누군들 죽음이 없겠는가.

 

大哉三相六臣之有死也

위대하도다, 삼상과 육신의 저 고결한 죽음이시여!

 

生而愛君 盡爲臣之道

살아생전 임금을 지극히 사랑하여 신하된 도리를 다하고,

 

死而忠君 立爲臣之節

죽어서는 임금께 충성을 바쳐 신하된 절개를 세웠도다.

 

忠憤貫乎日月 意氣凜乎秋霜

충의의 분개함은 해와 달을 꿰뚫고, 고결한 의기는 가을 서리처럼 서슬 푸르니,

 

使百世之爲人臣者 知所以一心死君之義

백 세 이후의 신하된 자들로 하여금, 한마음으로 임금을 위해 죽는 의리를 알게 하였도다.

 

千金一毛 成仁取義

천금 같은 목숨을 한 가닥 털처럼 가벼이 여기며 인을 이루고 의를 취하였으니,

 

君子曰 殷三東九

군자가 이르기를, 은나라의 세 어진 이와 동방 저 한반도의 아홉 충신은

 

跡有異 道同盛矣

자취는 비록 다를지라도 그 품은 도리는 참으로 성대하도다.

 

恭惟惠莊大王 其在黃閣

공손히 생각건대 혜장대왕(정분)께서 의정부에 계실 때,

 

功比周公 曁負扆宸德 俾虞舜魏

그 공로는 주공에 비견되었고, 임금을 모시는 신하의 덕은 우순에 필적하였도다.

 

蕩蕩無能名焉 三相六臣等 丹心光釣魚於桐江

그 드넓은 공덕은 감히 이름 붙일 길 없으니, 삼상과 육신 등의 붉은 마음은 동강에서 고기를 낚던 엄자릉의 절개보다 빛나고,

 

漢帝之切無損

한나라 황제의 간절함에도 그 지조는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도다.

 

使三相六臣等 丹心於金櫃

삼상과 육신 등의 단심을 철권과 금궤에 새겨 보존하니,

 

保白骨於江湖

강호에 묻힌 백골일지라도 그 푸른 충절은 영원토록 보전되리로다.

 

則上王之壽可延

그리하였다면 상왕(단종)의 천수 또한 능히 연장할 수 있었으리라.

 

光廟之治益隆

광묘(세조)의 다스림 역시 더욱 융성하였을 터인데,

 

不幸中心所激 遂陷焦原

불행히도 마음속에 격동하는 바가 있어 마침내 불타는 들판과 같은 참화에 빠지고 말았으니,

 

嗚呼 惜哉

아아, 슬프고도 애석하도다!

 

 

 

75페이지부터

公配樂安時

선생께서 낙안 땅으로 유배되셨을 때에,

 

有山僧坦禪 往從

산사(山寺)의 승려 탄선이 그 뒤를 따라와 시봉하였도다.

 

一夕 睡起

어느 날 저녁, 잠에서 깨어나

 

謂坦禪曰 精造一器飯

탄선에게 이르기를, 정갈하게 메(밥) 한 그릇을 지어 오너라,

 

吾祭祖先

내가 내 조상님께 제를 올리리라 하셨도다.

 

公沐浴具冠帶 出其先代神主 遂祭之

선생께서 목욕재계하고 의관을 바르게 정제한 후, 선대의 신주를 모셔내어 마침내 제사를 올리시니라.

 

旣祭後 公召子遵曰

제사를 마친 후에 선생께서 아들 준을 불러 이르시기를,

 

我死之後 汝雖欲安奉祖先 不可得也

내가 죽고 난 뒤에는 네가 비록 조상님을 편안히 봉안하고자 하나 그리할 수 없을 것이라 하시고,

 

焚其神主

마침내 그 신주를 불태우시니라.

 

俄頃 邑人來言 有京官來 不久

얼마 지나지 않아 고을 사람이 달려와 고하기를, 한양에서 관원이 오고 있으며 머지않아 당도할 것이라 하거늘,

 

官差來捕公

관차가 이르러 선생을 체포하려 하니,

 

遂脫冠帶 脫衣 兩裝衣帶 手巾 怡연而坐

이에 관대를 벗고 옷을 갈아입으시며, 옷과 띠 그리고 손수건을 정돈하신 후 온화하고 담담한 기색으로 앉으셨도다.

 

子遵 號泣不離側

아들 준이 울부짖으며 곁을 떠나지 못하니,

 

公曰 汝知故 狂奴 否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뜻을 알거늘 어찌 미련하게 구느냐 하셨도다.

 

是汝 今日良策

이것이 바로 오늘날 네가 취해야 할 올바른 도리이니라.

 

又曰 善爲隱匿 以圖存嗣

또 이르시기를, 부디 몸을 잘 숨겨 조상의 대가 끊기지 않도록 도모하라 하시고,

 

在汝 隨時處變也

이는 오직 네가 때에 따라 세상을 헤쳐 나가는 데 달렸도다 하셨느니라.

 

 

樂安謫居其二 (낙안 유배지의 일화 - 두 번째 기록)

 

其妻 牽衣而哭曰

그의 아내가 옷자락을 붙잡고 통곡하며 이르기를,

 

朝命不可拒 身後 凡事 君其治之

조정의 명을 어찌 거역하리오마는, 당신께서 떠나신 후의 모든 일은 장차 어찌하란 말입니까 하니,

 

官差 提公 郞去

관차가 선생을 이끌고 서둘러 떠나 가니라.

 

京來監刑官 將以明日 行刑 欲拘繫於官公

한양에서 내려온 감형관이 장차 내일 형을 집행하고자 선생을 관아에 구금하려 하거늘,

 

不徒 却立門外曰 何必入官 在此死耳

선생께서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문밖에 꼿꼿이 서서 이르시기를, 어찌 굳이 관아 안으로 들어가랴, 내 여기서 죽을 뿐이로다 하셨도

다.

 

監刑官 令人將絞 公曰 死等耳 名節有異

감형관이 사람을 시켜 교형(목을 매는 형벌)을 집행하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죽는 것은 한가지이나 명분과 절개는 저마다 다른 법이로다.

 

吾若有二心 死後 靑天 依舊 不然 必有異常

내가 만약 나라에 두 마음을 품었다면 내가 죽은 뒤 푸른 하늘이 예전과 같을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기이한 이적이 있으리라 하셨도다.

 

旣死 忽雲合雨作 白虹橫亘

선생께서 절명하시니, 홀연히 구름이 빽빽이 모여들고 비가 쏟아지며 흰 무지개가 하늘을 가로질렀도다.

 

使者張傘入城 坦禪 目睹其事而 詳言之

감형관이 우산을 받쳐 들고 성안으로 들어갔으니, 승려 탄선이 그 일을 직접 눈으로 보고 이와 같이 상세히 전하였도다.

 

 

 

公之器局 (선생의 도량과 기상)

 

鄭苯 晉州人

정분은 진주 사람이라,

 

檢校贊成事文定公以吾之子

검교찬성사 문정공 이오의 아들이시로다.

 

有器局

진실로 훌륭한 도량과 기국을 지니셨도다.

 

世祖誅金宗瑞時 以全慶等道都體察使 自嶺南 回至忠州

세조가 김종서를 주살할 당시에, 선생께서는 전라 경상 등 도도체찰사의 몸으로 영남으로부터 돌아와 충주에 이르렀는데,

 

見殉首至

앞서 화를 당한 이들의 수급이 도달한 것을 보셨도다.

 

用安驛前 京官馳駟來 唱云 有傳旨

용안역 앞에 이르렀을 때 한양의 관원이 말을 달려와 전지가 있음을 소리 높여 외치니,

 

公卽下馬再拜 問京官曰

선생께서 즉시 말에서 내려 두 번 절하며 경관에게 묻기를,

 

受刑路中 不祥 可就驛館 否

길 한복판에서 형을 받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니, 저 역관으로 나아가 행함이 가하겠는가 하셨도다.

 

京官曰 不然 但受旨押歸配所耳

경관이 이르기를, 그렇지 아니하고 단지 명을 받들어 유배지로 압송할 뿐이라 하거늘,

 

公還上馬 與官偕行

선생께서는 다시 말에 올라 관원과 함께 길을 떠나셨도다.

 

 

 

赴樂安郡 (낙안군으로 가시는 길)

 

曾爲公之郞吏者 謂公曰

일찍이 선생 밑에서 일하던 관아의 서리들이 선생께 고하기를,

 

問朝廷事 難於應答 而赴樂安郡

조정의 일을 물으시면 참으로 대답하시기 어려우실 터이니, 마음 쓰지 마시고 그냥 낙안군으로 가소서 하니라.

 

與官偕行 十餘日 朝夕同處

관원과 함께 길을 가며 십여 일 동안 아침 저녁을 한자리에서 지내면서도,

 

而 一不問朝廷事

조정의 일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묻지 않으셨도다.

 

難於應答而赴樂安郡

응답하기 곤란한 일들을 뒤로 한 채 묵묵히 낙안군 유배지에 당도하시니라.

 

至謫 常奉神主 一日睡起 謂隨行僧曰

유배지에 이르러서도 늘 신주를 받드셨는데, 하루는 잠에서 깨어나 수행하던 승려에게 이르기를,

 

汝精具一飯 吾祀吾祖

너는 정성스레 메 한 그릇을 지어 오너라, 내가 내 조상님께 제를 올리리라 하셨도다.

 

旣祭 盡焚神主 俄而使至 賜死

제사를 마친 후 그 신주를 모두 불태우니, 이윽고 의금부 도사가 이르러 사약을 전하였도다.

 

79페이지부터

 

金宗瑞等黨附安平大君

김종서 등이 안평대군에게 아부하여 무리를 짓고

 

謀危宗社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하려 모의하였다가

 

自首陽大君入告

수양대군이 들어가 고함으로부터

 

鋤除於是

이에 이르러 제거되었다.

 

王仁宗瑞及右議政鄭苯

왕은 김종서 및 우의정 정분과

 

兵曹判書趙克寬

병조판서 조극관,

 

吏曹判書閔伸

이조판서 민신,

 

右贊成李穰等

우찬성 이양 등을

 

皆治死

모두 사형에 처하고

 

遂命策勳

마침내 공훈을 책록하도록 명하였다.

 

鄭右相苯謫樂安時

우의정 정분 선생이 낙안으로 유배되었을 때,

 

僧坦禪徒之一

어느 한 스님이 탄선(坦禪)의 무리를 따라

 

一日縣人言使者至

하루는 고을 사람이 사자가 이르렀다고 말하니,

 

俄而來捕公

이윽고 사자가 와서 선생을 잡으려 하였다.

 

公沐浴服兩褠衣而哭

선생께서는 목욕재계하고 두 겹의 홑옷을 입으신 채 통곡하시니,

 

公止曰

선생께서 스스로 이를 만류하며 이르시기를,

 

朝命不可拒

“조정의 명은 거역할 수 없으니

 

即就捕

곧 체포에 따르라” 하셨다.

 

使者以明日用刑

사자가 다음 날 형을 집행하려 하니,

 

欲繫于官

선생을 관아에 가두고자 하였으나

 

公却立門外曰

선생께서 문밖에 우뚝 서서 말씀하시기를,

 

何必入官

“어찌 굳히 관아에 들어가겠는가,

 

在此死矣

여기서 죽을 뿐이다” 하셨다.

 

臨刑曰

형벌에 임하여 말씀하시기를,

 

死等耳

“죽는 것은 한가지이나,

 

名節有異

이름과 절개는 다르도다.

 

吾若有二心

내가 만약 두 마음을 품었다면

 

死後靑天依舊

죽은 뒤에 푸른 하늘이 예와 같을 것이요,

 

不然必有異常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이변이 있으리라” 하셨다.

 

旣死

이미 목숨을 거두시니

 

忽雲合雨作

홀연히 먹구름이 모여들고 비가 쏟아지며,

 

白虹橫亘

흰 무지개가 비껴 가로질렀다.

 

使者張傘入城

사자가 우산을 펼쳐 들고 성으로 들어가는데,

 

坦禪目見而言

탄선이 눈으로 직접 보고 이를 말하였다.

 

鄭右相苯有器局

우의정 정분 선생은 기국과 도량이 있으셨으니,

 

太宗十六年丙申登親試文科

태종 16년 병신년에 친시 문과에 급제하셨다.

 

歷世宗文宗至端宗

세종조와 문종조를 거쳐 단종조에 이르기까지,

 

與皇甫金爲三公

황보인, 김종서와 더불어 삼공(三公)이 되시어

 

節齋死

절재(김종서)가 죽음에 이르자

 

公以全慶道體察使歸自嶺南

선생께서는 전라도·경상도 체찰사로서 영남으로부터 돌아오시다가,

 

至忠州聞節齋死矣

충주에 이르러 절재가 화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으셨다.

 

至用安驛前

용안역 앞에 이르렀을 때,

 

使者馳謂曰

사자가 말을 달려와 이르기를,

 

有旨公下馬再拜

“왕명이 있으니 선생께서는 말에서 내려 두 번 절 하소서” 하였다.

 

至受刑路中不祥

형을 받으러 가는 길에 이르러 상서롭지 못한 징조가 있으니,

 

可就驛館否

“역관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하겠는가” 물었으나,

 

答曰

답하여 이르기를,

 

某但受旨

“나는 다만 왕명을 받들 뿐이다” 하고

 

押去配所耳

유배지로 압송되어 갈 따름이었다.

 

公上馬赴樂安

선생께서 말에 올라 낙안 유배지로 가실 때,

 

使者卽舊郞僚

사자는 곧 옛 조정의 부하 관리였으므로

 

謂公必問朝廷事

선생께서 필시 조정의 일을 물으시리라 생각했으나,

 

難應答而偕行十餘日

응답하기 어려워하며 열흘 남짓을 함께 동행하는 동안,

 

一不問朝廷事

선생께서는 조정의 일을 단 한 마디도 묻지 않으셨고,

 

只勞苦謝別而已

다만 그 노고를 위로하고 고마워하며 작별하셨을 뿐이다.

 

公常奉神主居謫

선생께서는 유배지에서도 늘 조상의 신주를 받들어 모시고 거처하셨는데,

 

一日睡起

하루는 잠에서 깨어나

 

謂僧坦禪曰

스님 탄선에게 이르시기를,

 

精具飯吾祭吾祖

“정결하게 밥을 지어라, 내가 내 조상께 제사를 올리리라” 하셨다.

 

旣祭焚埋神主

제사를 마치고 신주를 불태워 땅에 묻으시니,

 

居無何使者至賜死

그리 오래지 않아 사자가 이르러 사약을 내렸다.

 

 

2. 진주 정씨 족보 서문

 

晉陽之鄭爲吾東望族而入本朝

진양 정씨는 우리 동방의 명망 높은 가문으로 조선 왕조에 들어와서도,

 

至忠莊公以端廟朝相臣

충장공(정분)에 이르러 단종 조의 정승이 되셨으니,

 

辨一死於熊魚

곰 발바닥과 물고기 사이에서 한 번의 죽음을 결단하셨도다.

 

植萬古之綱紀

만고의 강기를 세우셨으니,

 

其貞忠卓節炳烺於國史野乘

그 곧은 충성과 탁월한 절개는 국사와 야승에 찬연히 빛나고 있도다.

 

嗚呼

슬프도다!

 

此晉州鄭氏一譜

이 진주 정씨의 한 권 족보는

 

不祖忠莊公而祖持平公各祖其祖

충장공을 시조로 삼지 않고 지평공을 시조로 삼아 각기 그 조상을 선조로 모셨으나,

 

宜연연吾見持平公諱以州爲行而不覺心動

마땅히 그러할 것이나 내가 지평공의 휘자가 고을 이름으로 행해진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요동쳤도다.

 

如見忠經焉

마치 《충경(忠經)》을 보는 듯하구나.

 

蓋忠莊公之諱

대개 충장공의 휘자 아래에,

 

下專也

오로지 ' 순(蓴)' 자가 계셨도다.

 

我國先賢尊慕朱子

우리나라의 선현들이 주자를 존경하고 사모하여,

 

謂草間蜘蛛亦當敬之以字傍有朱也

풀숲의 거미조차도 그 이름 옆에 '주(朱)' 자가 있다는 이유로 마땅히 공경해야 한다고 하였거늘,

 

今吾况見同胞之名行

지금 내가 하물며 한 겨레의 이름이 행해진 것을 보고,

 

而憶忠莊無足怪者

충장공을 추모하는 것이 어찌 괴이하다 하겠는가.

 

嗚呼

슬프도다!

 

任國家安危

국가의 안위를 가슴에 짊어지고

 

守死不貳其感人於數百年之後

죽음으로써 지켜 두 마음을 품지 않으셨으니, 수백 년이 흐른 뒤에도 사람을 감동시킴이 이와 같도다.

 

若此彼食君之祿而負國賣君者

이와 같거늘, 저 임금의 녹을 먹고도 나라를 배신하고 임금을 판 자들은,

 

抑獨何心也

도대체 어떠한 마음을 품었던 것인가.

 

蓋忠莊公之諱下蓴也

대개 충장공의 휘(이름)는 아랫글자가 '순(蓴)' 자이시다.

 

 

燃藜室記述(연려실기술)

 

鄭苯(정분)

鄭苯字子㐕晉州人

정분의 자는 자유요, 진주 사람이라.

 

高麗檢校贊成郊隱以吾之子

고려 검교찬성을 지낸 교은 이오의 아들이며,

 

太宗丙申文科

태종 병신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도다.

 

壬申拜右相

임신년에 우의정에 제배되었으나,

 

癸酉配靈光賜死 一作配樂安

계유년에 영광으로 유배되었다가 사약을 받았으니, 일설에는 락안으로 유배되었다고도 하느니라.

 

忠莊公

시호는 충장공이라.

 

肅廟朝復官爵

숙종 조에 이르러 관작이 회복되었고,

 

英廟戊寅贈諡

영조 무인년에 시호를 내렸도다.

 

公有器局

공은 도량과 기국이 남달랐도다.

 

靖難時方以全慶道軆察使自嶺南回

계유정난이 일어났을 때, 마침 전경도 체찰사로서 영남으로부터 돌아오다가

 

至忠州見徇首

충주에 이르러 효수된 목을 보았도다.

 

行至用安驛前

길을 떠나 용안역 앞에 이르렀을 때,

 

京官馳馹來遇路上

한 서울 관원이 역말을 달려와 길 위에서 마주치더니

 

喝有傳旨

임금의 전지가 있다고 큰 소리로 외치누나.

 

公卽下馬再拜曰

공이 즉시 말에서 내려 두 번 절하고 말하기를,

 

受刑路中不祥

"길 한복판에서 형벌을 받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니,

 

可就驛舘否

역관으로 나아감률이 가하겠는가?" 하니,

 

官曰不然某但受旨押歸謫所耳

관원이 말하기를, "그렇지 아니합니다. 소인은 다만 전지를 받들어 유배지로 압송해 갈 뿐입니다" 하도다.

 

公又再拜曰

공이 또 두 번 절하며 말하기를,

 

活我耶

"나를 살려주는 것인가" 하고는,

 

還上馬與官偕行

다시 말에 올라 관원과 더불어 함께 행하였도다.

 

官曾爲公郞吏

그 관원은 일찍이 공의 밑에서 낭리를 지낸 자라,

 

謂公必問朝廷事難於應答

공이 필시 조정의 일을 물어볼 터인데 응답하기가 곤란하리라 생각하였으나,

 

而赴樂安郡十餘日

락안군으로 가는 십여 일 동안

 

朝暮同處一不開口

아침 저녁으로 함께 지내면서도 끝내 입 한 번 열지 않았도다.

 

到謫所勞苦謝別而已

유배지에 이르러 그간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하고 작별할 뿐이었도다.

 

公在謫常奉祖先神主祀祭

공이 유배지에 있으면서 늘 조상의 신주를 받들어 제사를 지냈는데,

 

一夕睡起謂隨行僧曰

어느 날 저녁 잠에서 깨어나 수행하던 승려에게 말하기를,

 

汝精具一飯吾祀吾祖

"너는 정결하게 밥 한 그릇을 지어 오너라. 내가 내 조상께 제사를 올리리라" 하도다.

 

旣祭盡焚神主

제사를 마치고 나서 신주를 모두 불태우니,

 

俄而使至賜死 日月錄

이윽고 금부도사가 이르러 사약을 내렸도다. (출처: 일월록)

 

在謫有山僧坦禪者往從之

유배지에 있을 때 탄선이라는 산승이 있어 왕래하며 따랐도다.

 

一日邑인傳有京官來

하루는 고을 사람들이 서울에서 관원이 온다고 소문을 전하더니,

 

俄而官差來捕

이윽고 관리가 들이닥쳐 공을 잡으려 하였도다.

 

公沐浴具冠帶出

공이 목욕을 하고 의관을 정제하여 나온 뒤,

 

其祖先神主再拜焚之

그 조상의 신주에 두 번 절하고 불태웠도다.

 

遂脫冠帶服雨裝衣帶手巾

마침내 의관을 벗고 비장 옷을 입은 뒤 손수건을 허리띠에 차고는,

 

與其妻永訣

그 아내와 더불어 영원한 이별을 고하누나.

 

妻牽衣而哭

아내가 옷자락을 붙잡고 통곡하니,

 

公止之曰

공이 만류하며 말하기를,

 

朝命不可拒

"조정의 명은 가히 거역할 수 없는 법이니,

 

身後事君其治之

내 사후의 일은 부인이 잘 다스려 주오" 하고는,

 

遂被執去

마침내 붙잡혀 가도다.

 

監刑官將以明日行刑

감형관이 장차 이튿날 형을 집행하려 하여

 

欲拘繫於官

관아 안에 가두어 두고자 하였으나,

 

公不從却立門外曰

공이 따르지 않고 문밖에 물리쳐 서서 말하기를,

 

何必入官

"어찌 굳이 관아로 들어가겠는가.

 

在此卽死耳

여기서 곧 죽을 뿐이다" 하도다.

 

監刑官將欲絞

감형관이 장차 목을 매려 하니,

 

公曰死等耳

공이 말하기를, "죽음은 매한가지이나

 

然名節有異

그 명분과 절개에는 다름이 있도다.

 

吾若有貳心死後晴天依舊

내가 만약 딴 마음을 품었다면 죽은 뒤에도 맑은 하늘이 여전할 것이요,

 

不然必有異常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예사롭지 않은 변괴가 있으리라" 하도다.

 

旣死忽雲合雨作

공이 절명하자 홀연히 구름이 모여들고 폭우가 쏟아지니,

 

刑官與地方官張傘入城 丙子錄長貧胡撰

형관과 지방관이 황급히 우산을 받쳐 들고 성안으로 들어가니라.

(출처: 병자록 장빈호 찬)

 

 

 

國朝名臣言行錄 別集卷一 

 

鄭苯(정분)

 

字子㕀

자는 자유요,

 

晉州人。

진주 사람이라.

 

太宗十六年丙申登第。

태종 십육년 병신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官至右議政。

벼슬이 우의정에 이르렀도다.

 

世宗二十四年

세종 이십사년에,

 

諭平安道觀察使鄭苯曰

평안도 관찰사 정분에게 타이르시기를,

 

“近聞邊郡之民迫於飢困

"근래에 들으니 변방 고을의 백성들이 굶주림과 곤궁함에 몰려

 

不能聊生

어찌 살아갈 수 없다고 하되,

 

而卿不以聞

경은 내게 아뢰어 알리지 않으니,

 

是何意歟

이것이 대체 어찌 된 뜻인가.

 

甚非予委卿之意也。

내가 경에게 변방을 맡긴 뜻에 심히 어긋나는 일이로다.

 

自聞此言

이 말을 들은 뒤로부터

 

夙夜軫念

내 밤낮으로 아프게 생각하노니,

 

卿其盡心賙賑

경은 모름지기 마음을 다해 구휼하고 진대하라.

 

如有窮餓失業者

만약 곤궁하고 굶주려 생업을 잃은 자가 있거든

 

官給衣糧

관가에서 옷과 양식을 주어

 

曲加撫恤。”

곡진하게 어루만져 구제하라." 하셨도다.

 

鄭右相苯有器局。

우상 정분은 도량과 기국이 남달랐도다.

 

靖難時

계유정난이 일어났을 때,

 

以全、慶都體察回自嶺南

전라도와 경상도의 도체찰사로서 영남으로부터 돌아오다가,

 

至忠州

충주에 이르러

 

見徇首

목이 베여 매달린 이들을 보았도다.

 

行至用安驛前

길을 떠나 용안역 앞에 이르렀을 때,

 

京官馳馹來遇路上

한 서울 관원이 역말을 달려와 길 위에서 마주치더니,

 

白有傳旨

임금의 전지가 있음을 고하누나.

 

公卽下馬再拜

공이 즉시 말에서 내려 두 번 절하고

 

問京官曰

관원에게 묻기를,

 

“受刑路中不祥

"길 한복판에서 형벌을 받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니,

 

可就驛館否?”

역관으로 나아가 행함이 가하겠는가?" 하니,

 

官曰“不然。

관원이 말하기를, "그렇지 아니합니다.

 

某但受旨

소인은 다만 전지를 받들어

 

押歸謫所耳。”

유배지로 압송해 갈 뿐입니다" 하도다.

 

公又再拜曰

공이 또 두 번 절하며 말하기를,

 

“生我耶?”

"나를 살려주는 것인가?" 하고는,

 

還上馬

다시 말에 올라

 

與官偕行。

관원과 더불어 함께 행하였도다.

 

官曾爲公之郞吏

그 관원은 일찍이 공의 밑에서 낭리를 지낸 자라,

 

謂公必問朝廷事

공이 필시 조정의 일을 물어볼 터인데

 

難於應答

응답하기가 곤란하리라 생각하였으나,

 

而赴樂安郡十餘日

낙안군으로 가는 십여 일 동안

 

朝暮同處

아침 저녁으로 함께 지내면서도

 

一不開口

끝내 입 한 번 열지 않았도다.

 

到謫所

유배지에 이르러서는

 

勞苦謝別 而已。

그간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하고 작별할 뿐이었도다.

 

公在謫

공이 유배지에 있으면서

 

常奉祖先神主祠祭。

늘 조상의 신주를 받들어 제사를 지냈는데,

 

一夕睡起

어느 날 저녁 잠에서 깨어나

 

謂隨行僧曰

수행하던 승려에게 말하기를,

 

“汝精具一飯。

"너는 정결하게 밥 한 그릇을 지어 오너라.

 

吾祠吾祖。”

내가 내 조상께 제사를 올리리라" 하도다.

 

旣祭盡

제사를 모두 마치고 나서

 

焚其神主。

그 신주를 불태우니,

 

俄而使至賜死。

이윽고 금부도사가 이르러 사약을 내렸도다.

 

【竝《日月錄》。】

(이상은 모두 일월록에 실려 있느니라.)

 

 

名臣錄 卷十 

 

鄭苯 (정분)

 

鄭苯字子㕀

정분의 자는 자유요,

 

晉州人。

진주 사람이라.

 

太宗十六年丙申登第。

태종 십육년 병신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官至右議政。

벼슬이 우의정에 이르렀도다.

 

鄭右相苯有器局。

우상 정분은 도량과 기국이 남달랐도다.

 

靖難時

계유정난이 일어났을 때,

 

以全、慶都體察

전라도와 경상도의 도체찰사로서

 

回自嶺南至忠州

영남으로부터 돌아와 충주에 이르렀을 때,

 

見徇首。

목이 베여 매달린 이들을 보았도다.

 

行至同安驛前

길을 떠나 동안역 앞에 이르렀을 때,

 

京官馳馹來

한 서울 관원이 역말을 달려와

 

遇路上

길 위에서 마주치더니,

 

白有傳旨。

임금의 전지가 있음을 고하누나.

 

公卽下馬再拜

공이 즉시 말에서 내려 두 번 절하고,

 

問京官曰

관원에게 묻기를,

 

“受刑路中不祥

"길 한복판에서 형벌을 받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니,

 

可就驛館否?”

역관으로 나아가 행함이 가하겠는가?" 하니,

 

官曰“不然。

관원이 말하기를, "그렇지 아니합니다.

 

某但受旨

소인은 다만 전지를 받들어

 

押歸謫所耳。”

유배지로 압송해 갈 뿐입니다" 하도다.

 

公又再拜

공이 또 두 번 절하며

 

曰“生我耶?”

말하기를, "나를 살려주는 것인가?" 하고는,

 

還上馬

다시 말에 올라

 

與官偕行。

관원과 더불어 함께 행하였도다.

 

官曾爲公之郞吏

그 관원은 일찍이 공의 밑에서 낭리를 지낸 자라,

 

謂公必問朝廷事

공이 필시 조정의 일을 물어볼 터인데

 

難於應答

응답하기가 곤란하리라 생각하였으나,

 

아赴樂安郡十餘日

낙안군으로 가는 십여 일 동안

 

朝暮同處

아침 저녁으로 함께 지내면서도

 

一不開口

끝내 입 한 번 열지 않았도다.

 

到謫所

유배지에 이르러서는

 

勞苦謝別而已。

그간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하고 작별할 뿐이었도다.

 

公在謫

공이 유배지에 있으면서

 

常奉祖先神主祠祭

늘 조상의 신주를 받들어 제사를 지냈는데,

 

一夕睡起

어느 날 저녁 잠에서 깨어나

 

謂隨行僧曰

수행하던 승려에게 말하기를,

 

“汝精具一飯。

"너는 정결하게 밥 한 그릇을 지어 오너라.

 

吾祠吾祖。”

내가 내 조상께 제사를 올리리라" 하도다.

 

旣祭

제사를 모두 마치고 나서

 

盡焚其神主

그 신주를 모두 불태우니,

 

俄而使至賜死。

이윽고 금부도사가 이르러 사약을 내렸도다.

 

【《日月錄》。】

(출처: 일월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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