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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정씨세고(晋州鄭氏世稿,연기측 자료) - 상언초 (上言草)편

작성자연재31-63|작성시간26.06.12|조회수19 목록 댓글 0

상언초 (上言草)

임금에게 가문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기 위해 작성한 탄원서(상언)의 초안문서

 

伏以

엎드려 고하나이다.

 

臣美身 方遭家世之變故

소신 미신(美身)은 바야흐로 집안과 가문에 청천벽력 같은 변고를 당하였사옵니다.

 

彛倫之舛訛

떳떳한 인륜의 도리가 어지러이 뒤바뀌고 거짓으로 물들었기에,

 

茲敢不避猥越

이에 감히 외람되고 분수에 넘침을 피하지 아니하고,

 

誅仰籲於法駕之前

어가(御駕)의 엄숙한 행차 앞으로 나아가 우러러 호소하려 하나이다.

 

十一世祖 故相臣鄭苯

소신의 11세조이신 돌아가신 정승 정분(鄭苯) 어른께서는,

 

以端宗朝大臣

단종 조정의 중신(重臣)으로서,

 

當癸酉之變

계유정난(癸酉靖難)의 피바람 몰아치던 대변고를 맞이하셨나이다.

 

受後命於謫所

귀양 가신 유배지에서 사사(賜死)하라는 후명(後命)을 받드실 적에,

 

臨死無子

임종을 앞두고 슬하에 이을 아들이 없으셨기에,

 

遺託於後妻邊氏

후처이신 변씨(邊氏) 부인에게 뒤를 의탁하시며,

 

以其從兄之子之產

당형(堂兄)의 아들인 지산(之產)으로,

 

立爲系子郎

후사를 삼아 대를 으뜸으로 이으라 유탁하셨나이다.

 

十世祖也

이분이 바로 소신의 10세조이시옵니다.

 

自是以來

그날 이후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世守宗緒間

대대로 종통의 실마리를 굳건히 지켜왔사옵니다.

 

審官職 迨先大王丙寅

선대왕 때인 병인년에 이르러 관직의 억울함이 마침내 씻겨지고,

 

復臣苯之爵

신 분(苯)의 관작이 비로소 복관(復官)되었나이다.

 

戊寅 降臣苯之諡

무인년에는 신 분(苯)에게 시호(諡號)를 내리는 은전이 내려졌사옵니다.

 

諸父兄 齊往晉州

이에 집안의 여러 부형들이 일제히 진주(晉州)로 내려가,

 

臣苯墓所 焚黃

신 분(苯)의 묘소 앞에서 복관의 고유문을 불사르며 눈물로 고하였나이다.

 

告由有晉州人 鄭重權德海等

이때 고유함을 들은 진주 사람 정중권(鄭重權)과 정덕해(鄭德海) 등이,

 

自稱同姓而來請觀

스스로 같은 종친이라 칭하며 찾아와 참반하기를 청하였나이다.

 

先系其後 重權忽自稱其九世祖鄭遵 爲臣苯所生子云

그러나 선대의 계보가 끊긴 그 후에, 중권이 돌연 자신의 9세조인 정준(鄭遵)이 신 분(苯)의 친아들이라 제멋대로 사칭하고 나섰사옵니다.

 

家起訟 嶺營道臣黃仁儉

이로 인해 가문에 큰 송사가 일어났고, 영남의 감사(監司) 황인검(黃仁儉) 공이,

 

査得鄭遵親父 仁德之名

장부를 명백히 조사하여 정준의 친아버지는 다름 아닌 '인덕(仁德)'임을 밝혀내었나이다.

 

然後 刑配鄭德海等於慶興

그런 뒤에야 율법에 따라 엄히 다스려 정덕해 등을 저 멀리 경흥(慶興) 땅으로 유배 보냈사옵니다.

 

矣退鄕 詐僞愈往愈滋

그러나 고향으로 물러난 뒤에도 그들의 거짓된 사술은 갈수록 더욱 심해졌고,

 

至乙酉年間

급기야 지난 을유년(乙酉年) 사이에 이르러서는,

 

長興人 鄭奎煥者

장흥(長興)에 사는 정규환(鄭奎煥)이라는 자가,

 

溶結晉州之鄭

진주의 거짓 무리들과 몰래 결탁하여,

 

得其世系 僞造磁器誌文

그들의 가짜 세계(世系)를 적은 자기지문(磁器誌文)을 거짓으로 짓고,

 

埋於其遠祖之墳

이를 그들의 먼 조상 무덤가에 몰래 파묻었나이다.

 

惹人相訟

이로써 사람들 사이에 다시금 송사를 야기하였으니,

 

講官掘出 以其九世祖鄭光露

관가에서 무덤을 파내어 고찰해 보니, 그들은 자신들의 9세조인 정광로(鄭光露)를 가리켜,

 

即眞臣苯之子

그가 진짜 신 분(苯)의 아들이라 우겼나이다.

 

逃命於父生之時

아버지가 살아 계실 적에 목숨을 도망하여,

 

居於長興而歺

장흥 땅에 숨어 살다가 뼈를 묻었다고 하였사옵니다.

 

其子變韶 爲此誌於光露之墓

또한 그 아들인 변소(變韶)가 아버지 광로의 묘소에 바로 이 지석을 묻었다고 꾸며대며,

 

遂以光露遺戒

마침내 광로가 남긴 유계(遺戒)라 일컬었나이다.

 

諱之於子孫故 至今不傳

자손들에게 철저히 숨기게 하였기에 지금까지 전해지지 않았던 것이라 변명하며,

 

今來大覺云

이제야 비로소 크게 깨달아 찾아낸 것이라 허무맹랑한 말을 늘어놓았사옵니다.

 

諸父兄 聞而驚之

집안의 모든 부형들이 이 소식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하였나이다.

 

得見所謂誌則 文凡數十行

그들이 내놓은 이른바 지석의 글을 얻어 보니, 그 문장이 무려 수십 행에 달하고,

 

刊鉄五十餘字 大抵假托

철자하여 새긴 것이 50여 자에 이르렀으나, 이는 대저 날조되고 가탁된 것에 불과하나이다.

 

粧撰 都不成說

조잡하게 꾸며낸 글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아 도저히 말이 성립되지 아니하나이다.

 

家捉得眞賊十六條 則奎煥聞而私自對卞

우리 가문에서 그들이 꾸민 가짜 지석의 허점 16조항을 조목조목 잡아내자, 규환이 이를 듣고 사사로이 스스로 변명하려 하였나이다.

 

故美身家 又逐條下破起訟

그리하여 소신 미신의 집안에서는 다시 그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파헤치고 깨뜨려 송사를 제기하였나이다.

 

完營則 奎煥終始逃躱不與相訟

그리하여 전라감영(完營)에서 재판이 열렸으나, 규환은 처음부터 끝까지 요리조리 도망치고 숨으며 송사에 당당히 임하지 아니하였나이다.

 

潛入京師 遍謁權門

도리어 서울(京師)로 몰래 잠입하여 권세 있는 대가집 문턱을 두루 드나들며,

 

誇示僞誌

그 가짜 지석을 과시하고 다녔사옵니다.

 

觀者不察 以新爲貴

사정을 깊이 살피지 못한 이들은 그저 새로이 출토된 지석이라 하니 이를 귀하게 여겨,

 

遽至筵達

급기야 임금님께서 계신 조정의 연석(筵席)에까지 말이 상달되기에 이르렀나이다.

 

諸父兄 雖欲剚心瀝血

집안의 부형들이 비록 가슴을 찌르고 피눈물을 쏟으며,

 

仰暴於天日之下

하늘 아래 그 억울함과 저들의 죄악을 명백히 폭로하고자 하였으나,

 

이下土蹤跡 抑於權貴

지방에 외롭게 처한 처지라 그 종적과 호소가 권세가들의 힘에 눌려 차단당하였사옵니다.

 

掩鬱多年

그리하여 가슴을 치며 답답하게 억울함을 삼킨 세월이 벌써 여러 해가 흘렀나이다.

 

終莫能遂

끝내 뜻을 펴서 바로잡지 못하였사옵니다.

 

次第茺身歿然

그러는 사이에 가문의 어른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 흙으로 돌아가셨나이다.

 

此在奎煥 卽汾陽王之郭崇韜耳

이 규환이라는 자가 행하는 짓은, 실로 당나라 분양왕(汾陽王) 곽자의의 후손이라 사칭했던 '곽숭도(郭崇韜)'의 해괴한 망동과 다름없나이다.

 

又聞昨年九월 奎煥之族鄭奎應者

또한 들으니 지난 해 9월에 규환의 일족인 정규응(鄭奎應)이라는 자가,

 

乃敢呈禮曹

이에 감히 예조(禮曹)에 소장(訴狀)을 올렸다 하옵니다.

 

以臣苯配享於渠祖鄭名世之私祠

저들의 조상인 정명세(鄭名世)의 사당(私祠)에 신 분(苯)을 제멋대로 배향(配享)하겠다고 청탁을 올렸으니,

 

嗚呼

아, 슬프고 통탄할 노릇이옵니다!

 

以堂堂哲輔 比肩齊列

어찌 조정의 당당한 정승이셨던 분을 저런 시골뜨기 무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나란히 세우며,

 

降歆芬苾 於退鄕無名之徒

시골에 은거한 이름 없는 무리의 무덤가에서 제사 향기를 내리게 한단 말입니까!

 

其爲羞辱 非專祠之比

그 가문과 조상에 가해지는 수치와 모욕은, 비단 사당 하나를 온전히 지키는 일에 비할 바가 아니옵니다.

 

而猶有所不敢者

그럼에도 저들이 감히 두려워하지 않고 이처럼 망동을 부리는 것은,

 

一方輿情 深用菀望

온 지방의 여론과 사림(士林)들이 마음속으로 깊이 원통해하고 한탄하는 바이옵니다.

 

伏乞聖明 依明明朝寬大之典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명(聖明)하신 전하께서는 명명백백한 조정의 넓고 크신 법전에 의거하시어,

 

特賜任用

특별히 다스려 바로잡아 주시옵소서.

 

副一方之願 則不無小補於風化矣

온 지방의 간절한 염원에 부응해 주신다면, 왕실의 교화와 무너진 인륜을 바로잡는 데에 적지 않은 보탬이 될 것이옵니다.

 

啓議大臣 右議政李厚源

우의정(右議政) 이후원(李厚源) 등 대신들과의 대신 회의를 거쳐 아뢰나이다.

 

 

 

[예조 및 금영 제 (禮曹 · 錦營 題)]

 

禮曹題

예조에서 판결하여 제(題)를 내리노라.

 

禮判金履度

예조판서 김이도(金履度)

 

一日血孫一日奉祀 자謂各有所據互相爭卞 固非一朝一夕而覺

하루는 핏줄인 자손이라 하고 하루는 제사를 받드는 이라 하며, 스스로 각기 근거가 있다고 주장하며 서로 다투고 변론한 것이 진실로 일조일석에 생겨난 변고가 아니로다.

 

此事實之前則 収闋之擧안得不已

이 사실 관계를 명백히 밝히기 전에는, 송사를 거두고 조용히 가라앉히는 조치가 어찌 그칠 수 있겠는가.

 

毋論如此如彼 直出於背關見飭之措辭 不必砲口至此事

이러쿵저러쿵 가타부타 논할 것 없이, 이는 직설적으로 관문을 등지고 경계와 칙령을 살피는 조치에서 나온 대목이니, 굳이 이 일에 대해 다시 입을 열어 시비를 따질 필요는 없도다.

 

 

 

上同題

상동(위와 같은 내용의) 제(題).

 

本曹 誠不欲擅斷人家大事

본 예조에서는 애당초 남의 가문의 중대한 대사를 제멋대로 독단하여 결판내고자 하지 않았노라.

 

故 只還收背關而已

그리하여 다만 관문을 다시 거두어들였을 뿐이로다.

 

豈欲立言於豎撤間哉

어찌 이처럼 세우고 철회하는 어지러운 사이에 사사로이 말을 보태려 하겠는가.

 

以言以單 旣知其寃枉

올린 글과 단자(單子)를 통해 이미 그 원통함과 억울함을 충분히 알았노라.

 

本曹 亦豈無商量之道乎

본 예조라고 어찌 깊이 헤아려 상량(商量)할 방도가 없겠는가.

 

但 事體至重

다만 사안의 격식과 체통이 지극히 중대하니,

 

恐非私自決正者 不可不一番

사사로이 스스로 판결하여 바로잡을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단 한 번이라도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도다.

 

上聞行査

조정에 상문(上聞)하여 철저히 조사하여 시행한,

 

然後 方可歸正 旣豎之門不必自下停撤以待

그런 연후에야 바른 곳으로 귀결될 것이니, 이미 세워진 문을 굳이 아래에서 스스로 철회하고 기다릴 필요는 없느니라.

 

上言下正事

이에 상언에 대해 아래와 같이 판결하여 바로잡노라.

 

 

 

錦營題

전라감영(錦營)에서 판결하여 제(題)를 내리노라.

 

道伯趙翼永

전라도관찰사 조익영(趙翼永)

 

互相勝負 無文獻之致

서로 이기고 지기를 다투나 명백한 문헌적 근거를 가져오지 못하니,

 

侯百不惑 今幾八十餘年 以待後日爲宜事

이에 미혹되지 않은 지가 이제 거의 80여 년이라, 후일의 명백한 증거를 기다려 처리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로다.

 

 

 

禮曹題

예조에서 다시 판결하여 제(題)를 내리노라.

 

建則謂有儀曹公牒 爲刊則謂有儒賢序文

정려를 세운 것에 대해서는 예조의 공식 문서(公牒)가 있다고 하고, 책을 간행한 것에 대해서는 유현(儒賢)들의 서문이 존재한다고 하니,

 

今皆呈現 其言似非全無依據

이제 그것들을 모두 눈앞에 드러내어 증명하니 그 말들이 온전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닌 듯하도다.

 

且聞 自本道兩下之際 亦不得立落云

또한 들으니, 본 도(전라도)에서 양측의 주장을 내려 판결할 때에도 어느 한쪽으로 아주 떨어뜨려 결판을 내지 못하였다고 하도다.

 

蓋事在久遠

대저 일의 전말이 너무나 아득히 오래된 과거에 있는지라,

 

宜存難愼

마땅히 어렵고 신중함을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이로다.

 

彼 亦一邊之言 此 亦一邊之言

저들의 주장 또한 한쪽의 말일 뿐이요, 이쪽의 주장 역시 한쪽의 말에 불과하니,

 

何可聽其言而決給乎

어찌 귀에 들리는 말만 믿고 섣불리 판결하여 넘겨줄 수 있겠는가.

 

姑爲退待事

우선은 판결을 물리치고 더 기다리도록 조치하노라.

 

歲在癸卯十月 日開刊

계묘년(癸卯年) 시월 어느 날에 책판을 열어 비로소 간행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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