遺墟記
옛 자취를 기록하노라.
銅穴之山
동혈(銅穴)의 산에서
飛溪出焉
비계(飛溪) 시내가 흘러나오니,
挾飛溪
그 비계 시내를 끼고서
有村 名曰蓼塘
한 마을이 있으니, 이름하여 요당(蓼塘)이라 한다.
有金節齋遺墟
그곳에 금절재(金節齋, 김종서)의 유허가 있고,
有鄭忠莊遺墟
정충장(鄭忠莊, 정분)의 유허가 있으니,
別有記
이에 대해서는 따로 기록이 있느니라.
鄭公 諱苯
정공(鄭公)의 이름은 분(苯)이요,
文定公 諱以吾子
문정공(文定公) 휘 이오(以吾)의 아들이시라.
有器局 識量
타고난 기국과 식량이 뛰어 나셨도다.
我世祖 戮金 曾爲時
우리 세조(世祖)께서 김종서를 주살하시던 그때를 당하여,
鄭公以全 慶양道體察
정공은 전라도와 경상도 양도의 체찰사(體察使)로서
囘 忠州 見徇首
충주(忠州)로 돌아오다가 효수된 머리가 돌려지는 것을 보았도다.
至用安驛
용안역(用安驛)에 이르니,
京官 駟來
서울에서 관원이 사마(駟馬)를 몰아 달려왔으며,
日有傳 旨
날마다 어명을 전하는 자가 있었느니라.
公下馬 拜曰
공이 말에서 내려 절하며 고하기를,
受州路中 不祥
"고을 길 한복판에서 명을 받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니,
可就館否
객관으로 나아가 받아도 되겠는가?" 하니,
日但受 旨 押配
전하는 자가 말하기를, "다만 어명을 받고 압송되어 유배 가라" 할 뿐이거늘,
公又拜曰
공이 또 절하며 말하기를,
生我耶
"나를 살려 주시는구나!" 하였도다.
赴樂安
낙안(樂安) 유배지에 이르러서는,
一不問朝廷事
조정의 일을 일절 묻지 아니하고,
奉神主 在謫
오직 신주(神主)만을 받들고 귀양살이에 처하였느니라.
一日睡起
하루는 낮잠에서 깨어나,
謂隨僧坦 禪曰
따르던 승려 탄선(坦禪)에게 일러 말하기를,
精具飯祀
"제수를 정결히 갖추어 제사를 올리자꾸나.
吾先祭畢 焚主
내가 먼저 제사를 마친 후에 신주를 불태우리라" 하더니,
俄而 賜死至
얼마 지나지 않아 사사(賜死)하는 명이 이르렀도다.
海東野言曰
《해동야언》에 이르기를,
公臨死曰
공이 죽음에 임하여 말하기를,
吾若有二心
"내게 만약 두 마음이 있었다면
晴天 依舊不
맑은 하늘이 옛 모습 그대로이려니와,
然 必有異
그렇지 않다면 필시 변괴가 있으리라" 하였는데,
旣死
마침내 목숨을 거두자,
晴天 忽礮雨
맑던 하늘에 문득 포탄 같은 소나기가 쏟아지고
白虹橫 亘
흰 무지개가 비껴 가로질렀으니,
坦禪 目睹云 耳
탄선이 눈으로 직접 본 바가 그러하다 하였느니라.
金 公鄭公皆 閶廟朝相
김공(김종서)과 정공(정분)은 모두 단종 조의 정승이었는데,
英廟朝
영조(英祖) 임금 대에 이르러,
贈金公 諡忠翼
김공에게는 '충익(忠翼)'이라는 시호를 내리시고,
鄭公 諡忠莊
정공에게는 '충장(忠莊)'이라는 시호를 내리셨도다.
飛溪 曾有節齋祠
비계에 일찍이 절재(김종서)의 사당이 있었으나,
久將仆
오래되어 장차 쓰러질 듯하거늘,
州士林 復相承
고을의 사림(士林)들이 다시 뜻을 이어받고,
州宰金 俋
고을 수령인 김읍(金俋)이
箕應意堂 構之飛溪
마음을 보태어 비계에 당우를 얽어 지었도다.
尹斯文範 稷語曰
사문(斯文) 윤범직(尹範稷)이 말하기를,
吾墻外
"내 집 담장 밖에
畐傳鄭 忠莊遺墟
정충장의 유허가 전해 내려오는데,
墟何不同祀 節齋乎
이 유허에서 어찌 절재 공을 함께 모시지 않으리오?
忠莊遺墟 百餘步
충장의 유허에서 백여 보를 걸어가면
乃節齋遺 墟 垌矣
이에 곧 절재의 유허 터가 있느니라" 하였도다.
於是 州士皆曰 是
이에 고을의 선비들이 모두 이르기를 "옳도다" 하고,
遂躋忠莊 祀於節齋
마침내 충장 공을 절재의 사당에 함께 올려 제사 지내니,
祀未能各 建者
사당을 각각 따로 세우지 못한 것은
財力之未周也
재력(財力)이 넉넉히 두루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로다.
忠莊後孫弘暹博考文獻
충장의 후손인 정홍섬(鄭弘暹) 문헌을 널리 고찰해 보니,
則菁川世 藳曰
《청천세고(菁川世藁)》에 이르기를,
忠莊卜居安城 加之谷
"충장 공이 안성(安城) 가지곡(加之谷)에 살 곳을 정하셨으나,
而先瓏 在晉州
조상의 무덤이 진주(晉州)에 있었으므로,
故每來往 晉
그런 까닭에 매번 진주를 오가셨도다.
乃置庄公 州蓼塘 飛溪室
그리하여 고을의 요당, 곧 비계의 집을 별장으로 두시고
時時留連 逍遙
때때로 머무시며 노닐으셨도다" 하였느니라.
公之孫 婦宋氏 自安移 飛溪
공의 손부(孫婦) 송씨(宋氏)가 안성으로부터 비계로 이사해 온 이래로,
至公之 玄孫 黎奉諱麟 厚
공의 현손인 여봉(黎奉) 휘 인후(麟厚)와
永同縣 監諱麟德
영동현감을 지낸 휘 인덕(麟德),
五代孫林川郡守 泰
5대손인 임천군수 태(泰),
壬辰 原從勳 號 茂茂東 諱天卿
임진왜란 때 원종공신에 책봉되고 호가 무동(茂東)인 휘 천경(天卿),
六代孫 禮賓寺正 諱光
6대손인 예빈시정 휘 광(光)에 이르기까지
前世居之
앞 세대들이 대대로 이곳에서 살았도다.
忠莊玄孫壻 尹 議
충장의 현손서(사위)인 윤의(尹議)와
顗黃 承旨 廷喆 皆家近地
황의(黃顗), 그리고 승지(承旨) 황정철(黃廷喆)이 모두 이 근처에 집을 짓고 살았으니,
黃承旨 詩曰
황 승지의 시에 이르기를,
丞相里中承旨 宅iso也
"승상(丞相)께서 사시던 마을 속에 승지의 집이 있네" 한 것이 바로 이곳을 말함이로다.
茂東 後孫 移居燕 岐
무동(茂東)의 후손들이 연기(燕岐) 땅으로 이주하여 사니,
即弘暹家
곧 홍섬(弘暹)의 집안이라.
飛溪只餘 遺墟
그리하여 비계에는 다만 옛 자취인 유허만 남게 되었도다.
尹斯文 卽黎議 後孫
윤 사문(윤범직)은 곧 여봉과 윤의의 후손이므로,
故歷歷傳其地云
역력히 그 땅의 내력을 전하는 바가 이러하도다.
鳴呼
아아, 슬프도다!
愛其人 則愛其屋 烏
"그 사람을 사랑하면 그 집의 지붕 위의 까마귀까지 사랑한다" 하였거늘,
矧忠 臣義士之杖屨 棲止處 乎
하물며 충신과 의사가 지팡이를 짚고 신을 신으며 머물러 살던 곳임에랴!
節齋 遺墟已極 景仰
절재의 유허만으로도 이미 우러러 사모함이 지극하거늘,
重以忠莊 遺墟 在尺地
거듭 충장의 유허까지 한 자 안팎의 좁은 땅에 함께 있으니,
殆同孤竹之二 疆
이는 참으로 고죽국(孤竹國) 백이·숙제 두 형제의 강역과 같고,
睢陽之雙 廟 矣
수양성(睢陽城)을 지킨 장순과 허원의 두 사당(雙廟)과 다름이 없도다.
古人 詩曰
옛사람의 시에 이르기를,
人傑地靈
"인물이 걸출하니 땅도 영험하다" 하였으니,
無乃銅山 磅礴之氣
어찌 동혈산(銅穴山)의 드넓고 웅장한 기운과
飛溪活潑之源
비계(飛溪) 시내의 활기차게 살아 꿈틀거리는 근원이,
安知不毓 節齋之卓落
절재의 탁월하고 드높은 기상을 길러내고
而 助忠莊之死 不死乎
충장공이 죽어도 영원히 죽지 않는 불멸의 절개를 돕지 않았음을 어찌 알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