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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송&칸쵸네&팝

[샹송] Sans Toi Mamie (쌍 뚜아 마미) / (내사랑,당신이 없다면)

작성시간18.06.30|조회수1,164 목록 댓글 0

      

Adamo - Tombe La Neige (눈이 내리네)

  

  


  Sans Toi Mamie (쌍 뚜아 마미) /  (내사랑,당신이 없다면)

Sans Toi Mamie


Je sais tout est fini.
J'ai perdu ta confiance.
Néanmoins je te prie de m'accorder ma chance.
Si devant mon remord tu restes indifférente,
On n'peut te donner tort.
Mais soit donc indulgente
au nom des joies que nous avons vécues,
au nom de l'amour que nous croyons perdu.
Sans toi m'amie, le temps est si lourd.
Les heures et les jours sombrent sans espoir.
Sans toi m'amie.
모든 게 끝이란 걸 난 안다.
네 사랑은 떠나갔으니까.
한 번 더 둘만이 사랑할 순 없겠니.
네가 외면한다 해도 내 한탄은,
네 탓이 될 수 없으리.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다오.
둘만이 함께 했던 즐거움으로,
끝났다고 생각하는 예전의 사랑을 떠올리며.
네가 없다면, 하루하루가 괴로울 뿐.
기대도 없는 어두운 나날들이겠지.
네가 없다면,
Adamo - Par Les Temps Qui Courent
Sans toi m'amie, je vogue sans but.
Je vogue perdu sous un ciel tout noir.
Comprends que dans les rues, tant de filles nous tentent,
et leur air ingénie nous torture et nous hante
Aussi je viens vers toi pour te confier ma voile,
Toi tu me guideras, tu es ma bonne étoile.
Sans toi m'amie, le temps est si lourd.
Les heures et les jours sombrent sans espoir.
Sans toi m'amie.

네가 없다면, 난 아무 의미 없이 그저 떠돌 뿐이지.
난 모든 것을 잃은 듯 어두운 하늘 밑에서 떠돌 뿐.
거리에서 우리 시선을 끌던 계집애들의 순진한 모습에,
옛날이 떠오르나니 그 모습은 뇌리에 아직 남아 있노라.
나 너한테로 가 내 마음을 털어 놓으리.
나를 넌 이끌어 주리. 넌 나만의 별이 되리.
네가 없다면, 하루하루가 괴로울 뿐.
아무 기대 없는 어두운 나날들이겠지.
네가 없다면.



1943년 11월 1일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 코미소에서 태어났다.
1947년 광부로 일하던 아버지를 따라서
벨기에로 이주하였으며, 광부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의 절대적인 희생으로 좋은

교육기관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던중에 12세

무렵은 교회의 성가대에서 노래 부르고 15세 때부터는 노래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조부한테 받은 기타를 치면서 그것에
곡을 붙여 혼자 즐기고 있었는데,

학교 친구들이 권해 콘테스트를 받게 했다.
몇번 실패한 뒤 어떤 콘테스트에서
우승하고 레코드 회사와 계약,

62년 <쌍 또와 마미> (Sans Toi Ma Mie)의

대히트에 의해 스타가 되었다

La Noche - Adamo


그 후에도 잇따라 뛰어난 작품을 쓰고 그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는 자기자신의 노래외에는 부르지
않는것으로 유명하다.

프랑스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또
불어로 많은 노래를 불렀지만
프랑스인들은 그가 뛰어난 가수라고는 생각치 않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일본에서는 우상적인
존재로까지 큰인기를 얻고 있다



쌍 뚜아 마미 - 은희(번안곡)


돌아선 당신 보내긴 싫어도
잊어야 하겠죠 행복을 빌면서
안녕이라는 한마디 남기고
우리의 사랑 사라져 버렸나


즐거웠던 지난 추억도
잊어야하겠죠 행복을 빌면서
쌍뚜아마미
당신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네
쌍뚜아마미


즐거웠던 지난 추억도
잊어야겠죠 행복을 빌면서
쌍뚜아마미
당신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네
쌍뚜아마미
쌍뚜아마미
쌍뚜아마미


가수 Salvatore Adamo [Adamo(아다모)]는 이태리 혈통의 벨지안 작곡가이며 발라드 가수이다. 주로 불어로 불렀으나 여러나라 언어로도 불렀다. 그는 60년대와 70년대에 주로 유럽 여러 국가들과 일본, 라틴 아메리카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하여 100만 앨범이 전 세계적으로 팔렸다. [Tombe La Neige (Falls The Snow)], [La Nuit(The Night)], [Sans Toi Ma Mie(Without You, My Dear)]등을 히트 시켰다. [Salvatore Adamo(살바토레 아다모)]는 1943년 11월 1일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 코미조에서 태어났다. 세살 때 그는 부모와 함께 시칠리아를 떠나 벨기에로 이주하게 되었다. 1950년 [Adamo]는 일년동안 뇌막염으로 누워 있게 되었다. 그 시절, 그곳으로 간 많은 이민자들 처럼 그의 운명도 탄광에서 일하게 되었을 것이나 그의 부모들은 아들이 광부가 되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카톨릭 스쿨에 보내졌으며 거기에서 음악등 예능에 두각을 나타내며 어린 나이에 노래 실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아주 명석한 학생으로 그는 대학이나 그 이상의 교육의 기회가 있었으나 음악에 대한 열정이 그 길을 넘어 불어권 세계에서 대성한 스타로 만든 것이다. [Adamo]는 그의 생애 거의를 벨기에에서 보냈지만 이탈리아 국적을 가진 벨기에 영주권자이다. 1963년 그의 나이 20세에 처음 불러 히트한 [Sans Toi Ma Mie]로 부터 지금까지 [Adamo]는같은 스타일을 항상 고수해 왔다. 그것이 그를 약간 갈라진 독특한 목소리의 [Chanteur Romantique Par Excellence]로 알려지게 하였다. 60년대 후반 [Nicole(니콜)]과 결혼하여 3남매를 두었다. 그의 최전성기인 1966년에 아버지를 익사로 잃었다. [Adamo]는 일찌기 시는 [Victor Hugo(빅토르 위고)]에게서 영향을 받았고 음악은 [French Crooners (프렌치 크루너)], [Jacques Prevert(자끄 프레베르)]나 [Georges Brassens (죠르쥬 브라상스)], [Tangoi], [Italian Canzonette]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하며 자기 노래를 작사, 작곡하기 시작하였다. 1960년 2월 파리에서 열린 결승에서 우승한 [Si J'osais(If I Dared)]로 [Radio Luxembourg Competition]으로 데뷰하였다. 그는 1967년 [Les Arnaud]란 영화에 출연하며 영화 연기의 매력에 빠져보기도 하였다. 그의 긴 음악 여정 중 전성기는 역시 60년대였다. (1964년 전 세계에서 2위로 앨범이 많이 팔린 음악가로 [Beatles]를 뒤따랐다) 그러나 그 후로도 계속 음악을 만들며 음악과 더불어 살아왔다. 80년대 이후 별로 히트송이 없었으나 그는 청중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불어권 나라들에서의 줄 이은 히트뿐 아니라 많은 그의 샹송들이 이태리어, 스페인어, 일본어로까지 번역이 되었다. 1984년 심장 수술을 받고 일을 일시 쉬게 되었다. 80년대에는 [Adamo]의 활동이 주춤해졌는데 그 이유는 그의 음악이 더 이상 유행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 향수의 물결이 일게되자 1990 년 4월 [Casino De Paris]에서의 [Full Season] 공연을 시작으로 작곡을 다시 시작하고 레코드를 내며 순회 공연을 하며 성공적인 재기를 하게되었다. [Adamo] 인기의 비결은 늘 새로운 청중 앞에 나서는 일을 잘 운영해 왔다는 것이다. 1993년 벨기에에서 그의 [Les Filles Du Bord De Mer]를 [Arno(아르노)]가 부른 덕분에 다시 인기가 치솟게 되었다. 그의 노래들은 프랑스나 벨기에뿐 아니라 여러 나라 언어로도 취입되었고 이탈리아, 네덜란드, 독일, 스페인과 일본, 칠레, 아르헨티나에서 히트하며 그 나라들에서 여러 번 공연을 하였다. 2001년은 [Adamo]의 해가 되었다. 샹송 앨범 [Par Les Temps Qui Courent]을 내놓았을 뿐아니라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여러 차례 거대한 [Concert Hall(Olympia, Vorst)을 쉽게 메웠다. 그 여름에 벨기에 왕 [Albert II]세로 부터 팝송 가수로서는 처음으로 받는 영예의 [Cheval‎‎‎‎‍lier(기사)] 칭호를 받았다. 가을에는 좀 색다른 일이 있었는데 [Michel Albin] 출판사에서 처음으로 책을 출간하였다. [le Souvenir Du Bonheur Est Encore Du Bonheur (The Memory Of Happiness Is Also Happiness) A Sicilian Belgian]의 반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이 서정적인 가수는 자신의 재능의 혜택을 [Amnesty International]을 위해서도 나누며 1993년 이래 벨기에의 유니세프 명예 대사로 베트남, 레바논, 보스니아, 코소보, 아프가니스탄등 여러나라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2004년 건강 문제로 순회 공연은 취소했으나 2007년부터 다시 공연 여행을 다니며 현재 벨기에의 몽스시 근교에 살고있다. 출처 : 음악과우정 그리고 사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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