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집
이형권
무너진 흙담 아래
늙으신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풀꽃처럼 흔들리는 곳
긴 겨울밤을 지새우던 쇠죽방
구들장은 무너져 내리고
두레박 속에 메아리를 건져 올리던
우물도 말라버렸지만
그리운 곳에 옛집이 있다
뒤란 동백나무 숲속에서 꽃잎을 줍고
술래가 되어 헤매던 화살바위에서
먼 세상을 그리워하던
생각하면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꿈이 많던 곳
봄이면 장독대에 살구꽃이 날리고
가을이면 담장 밑에 과꽃이 피어나고
비가 내리면 개울가에 나뭇잎 배를 띄우고
눈이 내리면 보리밭에 꿩 덫을 찾아가고
생각하면 저녁노을처럼 그리움이 퍼지는 곳
기러기 떼 울고 가는 차운 히늘에
그리운 사연 무명 솜처럼 띄워놓고
막차의 서늘한 불빛처럼 떠나온 곳
언덕 위에 삐비꽃처럼 흔들리는
애처로운 나이가 되어
문득 되돌아와 바라보는 곳
아직도 여물지 않은 유년의 사랑이 있고
못다 부른 노래가 있다
ㅡ 이형권 시집 '칠산바다' 중에서...
📷
삐비꽃 / 이형권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여행, 바람처럼 흐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