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이형권
적막하지 않고 어찌 봄밤이라 할 수 있을까
저녁바람에 흐느끼던 보리밭이 내 곁에 와 잠들었다
손아귀에 쥐어 본 한 줌 바람 같은 시간들
상엿집 서까래처럼 쓸쓸해졌다
노을 속에서 흔들리는 보리밭을 보면서
나는 사랑의 배후를 본다
감미로운 속삭임이었다가
옹이처럼 새겨진 기억의 파편들
먼 옛날 바윗돌에 새긴 매향비埋香碑는
찾는 이가 없이 홀로 이끼를 머금었다
돌 속에 새겨진 천금 같던 약속이여
이 들녘에서 누가 머물다 갔는지 말해 보렴
열리지 않는 목청으로 봄밤의 심연을 향해
어어어이이 하고 소리를 질러 보느니
적막하지 않고 어찌 이별이라 할 수 있겠는가
들녘에 개구리 울음소리 가득하다
ㅡ 이형권 시집 '다시 청풍에 간다면' 중에서...
📚
이형권 시집 '다시 청풍에 간다면'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여행, 바람처럼 흐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