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를 떠나 안동으로 — 빛과 사람, 그리고 시간의 마을
아침 일찍 눈을 떴다.
호텔 창문 너머로 보문호수가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젯밤 단체 채팅방에 올라온 사진 속 호수는 마치 다른 세상처럼 화려했다. 호숫가를 따라 늘어선 조명들은 물 위에 별빛처럼 내려앉아 있었고, 밤은 그 모든 풍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감싸 안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문득 생각했다.
왜 어떤 풍경은 낮보다 밤에 더 아름다울까.
아마도 빛의 마법 때문일 것이다. 밤은 불필요한 것들을 어둠 속에 숨기고 가장 아름다운 부분만 세상 밖으로 꺼내 놓는다. 낮에는 평범하게 보이던 풍경도 밤이 되면 신비로워지고, 익숙한 공간도 낭만적인 무대로 변한다.
하지만 아침의 호수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화려함 대신 겸손함이 있었고, 찬란함 대신 평온함이 있었다. 밤이 빛의 아름다움을 가르쳐 준다면, 아침은 고요함의 가치를 알려 주는 것 같았다. 나는 호숫가를 천천히 걸으며 어젯밤의 화려함과 오늘 아침의 겸손함을 동시에 배우고 있었다.
전날 밤에는 작은 일도 있었다.
침대 이불을 젖히자 기다렸다는 듯 긴 머리카락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 사는 세상에 그런 실수쯤이야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방바닥에는 작은 과자 봉지가 남겨져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실수라기보다는 청소 과정에서 놓친 흔적처럼 보였다.
나는 사진을 찍어 두었다가 아침에 호텔 직원에게 보여 주었다.
직원은 방 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담당 직원을 혼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모든 직원들이 조금만 더 신경 써 주었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호텔 청소를 하는 분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나는 안다. 병원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회사가 살아야 직원도 살고, 직원이 행복해야 손님도 행복할 수 있다.
누군가를 꾸짖는 것보다 함께 더 나아질 방법을 찾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을 남긴 채 호텔을 나섰다.
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대구를 향해 출발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모명재였다.
그곳에는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이여송 휘하에서 조선을 도왔던 두사종의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조선을 떠나지 못했던 그는 중국에 남겨 둔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며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모명재(慕明齋)’.
그 이름 자체가 ‘명나라를 그리워하는 집’이라는 뜻이었다.
수백 년 전 낯선 나라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한 사람의 그리움이 오늘까지도 건물 이름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가슴을 울렸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떠나온 곳을 완전히 잊지 못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미국에서 수십 년을 살고 있지만 해마다 부모님 산소가 있는 고향 영산포를 찾는다. 두사종의 마음속에도 아마 비슷한 고향의 강과 들판이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모명재 옆 한국전통문화체험관에서는 현미 견과류 강정 만들기 체험이 진행되었다.
외국인들은 서툰 손놀림으로 견과류와 곡물을 섞으며 즐거워했다. 단순히 간식을 만드는 시간이 아니라 한국 음식 속에 담긴 정성과 지혜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요리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과 직원들의 따뜻한 미소는 강정보다도 더 달콤하게 기억 속에 남았다.
마침 대구에 사는 군 후배가 잠시 들러 주었다.
여행 중 만나는 뜻밖의 인연은 늘 반갑다. 오래된 이야기와 근황을 나누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은 훨씬 넉넉해졌다.
대구를 떠난 우리는 안동으로 향했다.
점심상에는 안동찜닭과 안동간고등어가 올랐다.
내륙 깊숙한 안동에서 바다 생선이 명물이 되었다는 사실은 흥미로웠다. 먼 동해에서 실려 온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지는 동안 오히려 더 깊은 맛을 품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마치 사람의 인생과도 닮아 있었다.
시간이 스며들수록 더 깊어지는 것.
그것은 음식만이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점심을 마친 뒤 우리는 하회별신굿탈놀이를 관람했다.
양반의 허위와 탐욕을 풍자하고, 권력자의 위선을 웃음으로 비트는 탈춤은 수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통쾌했다.
무대 위의 탈들은 웃고 울고 분노하고 사랑했다.
마치 인간의 희로애락이 그대로 새겨진 얼굴 같았다.
외국인들도 자막을 따라가며 함께 웃었다. 언어는 달라도 웃음과 풍자는 국경을 넘어 전달되는 모양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우리는 탈을 써 보고 장단에 맞춰 춤도 추었다.
장구를 제대로 배워 본 적은 없지만 마음이 시키는 대로 두드려 보았다.
인생도 어쩌면 그런 것 아닐까.
정확한 박자를 몰라도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살아가는 것.
이후 우리는 하회마을로 향했다.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지만 언제 와도 좋은 곳이다.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고, 수백 년 된 기와집과 초가집들이 시간을 붙잡고 있는 듯했다.
부용대에서는 마을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강은 변함없이 흐르고 있었고, 마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삼신당 앞에서는 사람마다 소원을 적어 나무에 매달고 있었다.
나 역시 종이에 짧은 영어 문장을 적었다.
“May all people be healthy, and may peace prevail throughout the world.”
모든 사람의 건강과 세계의 평화.
나이가 들수록 소원은 점점 단순해진다.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면 충분하다.
마을 한편에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방문을 기념하는 장소도 남아 있었다.
한 시대를 대표했던 여왕도 결국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우리 역시 언젠가는 모두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래서 더욱 생각한다.
주어진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짧은 세상이라면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재미있게, 조금 더 사랑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회마을을 떠날 무렵 하늘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다음 목적지인 평창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자 창밖으로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비는 마치 며칠 동안 이어진 여행의 열기를 식혀 주는 듯했다.
창문을 타고 흐르는 빗물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제 우리 여행도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함께 걷고 웃고 음식을 나누고 문화를 배우며 만든 기억들이 각자의 가슴속에 오래 남기를 바랐다.
그리고 며칠 후 각자의 나라로 돌아갈 때에도 모두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조용히 기도해 보았다.
비 내리는 경북의 산과 들은 버스 창밖으로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마치 여행의 마지막 장을 조용히 넘겨 주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