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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에서 서울로, 그리고 각자의 길로

작성자김 재균 (3기)|작성시간26.06.09|조회수29 목록 댓글 0

설악산에서 서울로, 그리고 각자의 길로

아침 일찍 호텔 문을 나섰다.

차가운 산 공기가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고개를 들어 왼편 하늘을 바라보니 아직 떠나지 못한 둥근 달 하나가 아침 햇살을 머금은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달과 해가 잠시 같은 하늘을 나누어 가지는 시간, 세상은 밤과 낮의 경계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호텔 주변에는 동계올림픽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멀리 보이는 스키점프대와 경기장들은 한때 세계 각국의 선수들과 관중들의 함성으로 가득했던 곳이다. 지금은 조용한 산바람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문득 생각했다.

인간은 위대한 꿈을 위해 거대한 시설을 만들지만, 그것을 오래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꾸준한 발걸음이라는 것을.

호숫가를 한 바퀴 돌았다. 물은 끊임없이 흘러 넘쳐 작은 개울이 되어 아래로 흘러갔다. 커다란 금붕어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고, 철새들은 물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자연은 올림픽이 열리기 전에도 이곳에 있었고,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변함없이 자신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인 설악산으로 향했다.

설악산은 언제나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산이다.

대한민국 북동부에 우뚝 솟은 이 산은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 주지만, 그 어떤 계절에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전쟁 이전에는 같은 산줄기가 북녘 땅에 이어져 있었고, 지금도 산은 아무런 경계 없이 이어져 있다. 강산은 그대로인데 인간이 만든 선 하나가 가족을 갈라놓고 그리움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새삼 마음을 무겁게 했다.

오늘 우리는 높은 봉우리를 정복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오색약수터에서 시작해 자연과 대화를 나누듯 천천히 걷기로 했다.

길을 따라가다 작은 산사가 나타났다. 고즈넉한 절집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붉은 꽃들이 기와지붕 곁에서 바람을 맞고 있었고, 세 분의 불상은 햇살을 받으며 말없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침묵이 오히려 긴 설법처럼 느껴졌다.

폭포를 향한 산길은 생각보다 가팔랐다.

정상까지 가는 길은 아니었지만 시간에 쫓기며 걷다 보니 자연의 숨결에 내 호흡을 맞추지 못하고 내 숨소리만 크게 들렸다. 자연은 천천히 걸을 때 비로소 마음을 열어 주는데, 나는 자꾸만 시계를 바라보며 걸어야 했다.

다행히 길에서 만난 한 가족이 “조금만 더 가면 폭포가 나온다”며 응원을 보내 주었다.

그 한마디 덕분에 다시 힘을 내어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용소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물줄기가 바위를 타고 떨어지며 깊은 소를 만들고 있었다. 천 년 묵은 암수 이무기가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수놈은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지만 암놈은 승천하지 못하고 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

전설은 사실보다 아름다운 진실을 품고 있을 때가 많다.

폭포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그때 한 여행객이 다가와 아무 말 없이 내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했다. 낯선 사람의 작은 친절이었다.

돌아보면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알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가지만, 때로는 누군가의 하루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작은 친절 하나를 남기고 떠난다.

내려오는 길은 더욱 바빴다.

정해진 시간까지 버스에 도착해야 했기 때문이다. 산길의 자갈은 발걸음을 붙잡았고, 나는 자연을 바라보기보다 땅만 보고 걸어야 했다.

그 아쉬움이 오래 남는다.

자연은 서두르는 사람보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내려오는 길에 오를 때 만났던 가족을 다시 만났다.

그들은 내가 생각보다 빨리 다녀온 것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웃으며 “군대에서 단련된 몸이라 그렇습니다.“라고 농담을 건넸다.

사실 그 말 속에는 젊은 시절의 감사함이 담겨 있었다. 사관학교 시절 땀 흘리며 쌓아 올린 체력이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를 산길 위로 이끌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가족의 두 딸을 바라보는 순간,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났다.

아들 아홉을 키우셨던 우리 어머니.

딸 하나 없이 얼마나 외로운 순간들을 견디셨을까.

어쩌면 딸 같은 마음을 가졌던 아들은 먼 미국으로 떠나 버렸고, 어머니는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내셨다.

설악산의 푸른 숲 사이에서 오늘따라 유난히 어머니가 그리웠다.

산을 내려온 우리는 버섯과 소고기가 어우러진 따뜻한 점심을 먹으며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문득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번 여행은 단순히 한국의 명소를 둘러보는 일정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다섯 나라에서 온 열한 명의 사람들이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 웃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시간을 나누었던 작은 인연의 여행이었다.

언어도 다르고 살아온 삶도 달랐지만,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감탄하는 마음은 모두 같았다.

이제 우리는 서울에서 헤어져 다시 각자의 길로 떠난다.

누군가는 미국으로, 누군가는 유럽으로, 또 누군가는 아시아의 다른 나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바란다.

그들의 기억 속에 한국이 단순히 방문했던 나라가 아니라 따뜻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작은 친절들이 살아 있는 나라로 남기를.

그리고 언젠가 인생의 어느 길목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우리는 설악산의 바람과 평창의 호수, 그리고 함께 웃었던 그 시간들을 이야기하며 다시 친구가 될 수 있기를.

일주일 동안 함께 걸어 준 여행 동료 여러분.

모두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시기를.

그리고 한국에서의 이 소중한 기억들이 오래도록 여러분의 삶 속에서 따뜻한 등불처럼 남아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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