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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야기

라파엘로의 숭고한 시, 그리고 초승달의 위로

작성자김 재균 (3기)|작성시간26.06.20|조회수32 목록 댓글 0

라파엘로의 숭고한 시, 그리고 초승달의 위로

오늘은 쉬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자전거를 타고 맨해튼 센트럴파크 옆에 자리한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을 찾았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거장 Raphael의 특별전 *Raphael: Sublime Poetry *를 보기 위해서였다.

마침 미국의 연방 공휴일이라 박물관 입구부터 사람들로 가득했다. 전시관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직원에게 길을 물었고, 안내를 받아 전시장으로 향했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관람객들은 작품 앞에 멈춰 서서 각자의 방식으로 예술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누군가는 작품 설명을 꼼꼼히 읽고 있었고, 누군가는 그림 앞에서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지나며 작품들을 바라보았다. 많은 관람객들 때문에 모든 설명을 천천히 읽을 수는 없었지만, 사진으로 기록해 두고 사람들이 적은 곳에 머물며 작품 하나하나를 오래 바라보려 노력했다.

라파엘로의 재능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단순히 “재능”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 느껴진다.

그는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그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이기도 했다. 수많은 습작과 수정, 그리고 끊임없는 연구가 없었다면 우리가 오늘 만나는 라파엘로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대규모 라파엘로 회고전이라고 한다. 170여 점이 넘는 드로잉과 회화, 태피스트리, 장식 예술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유명한 성모상과 초상화들은 물론이고, 그가 작품을 완성하기 전 남긴 섬세한 습작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아름다움이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 아름다움은 술집에서 친구들과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종류의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성당의 높은 천장을 올려다볼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했다. 압도적이고 경건하며, 어딘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드는 아름다움이었다.

그의 그림 앞에 서면 감탄보다는 오히려 침묵이 먼저 찾아온다.

아마 그것이 진정한 위대함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전시장을 나오자 뉴욕의 초여름 햇살이 따뜻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나는 다시 자전거에 올라 센트럴파크 옆 길을 따라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조금 전 보았던 그림들이 머릿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한 달 전 한국 고향에서 머리를 다친 이후 아직 완전히 예전의 상태로 돌아오지는 못했다. 걷다가도 갑자기 피곤함이 밀려오고, 평소보다 잠이 많아졌다. 집중력이 흐려질 때도 있고, 이유 없이 멍해질 때도 있다.

그래서 다음 달에는 전문의를 만나 검사를 받을 예정이다.

하지만 오늘 라파엘로의 작품들을 바라보며 한 가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위대한 그림도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았다.

수많은 밑그림과 수정,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을 거쳐 비로소 걸작이 되었다.

어쩌면 회복도 그런 과정인지 모른다.

조금 더디더라도 몸은 자신만의 속도로 상처를 치유하고 있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잠시 눈을 붙인다는 것이 네 시간 가까이 지나 버렸다. 눈을 뜨고 발코니로 나가니 초승달 하나가 맨해튼의 빌딩 사이를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말없이 안부를 묻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달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라파엘로가 남긴 숭고한 아름다움도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 오늘 우리 곁에 살아 있고, 나의 작은 상처 역시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기억 속으로 멀어질 것이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려 한다.

오늘 내가 만난 것은 단지 한 화가의 작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재능과 노력, 그리고 시간이 만들어 내는 회복의 힘이었다.

초승달은 여전히 맨해튼의 밤하늘을 건너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조금 느릴 뿐 여전히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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