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佛供)과 기도(祈禱)의 길목♤
해질 녘, 산사의 은은한 목탁소리와 도심 성당의 깊은 종소리는 우리 마음의 가장 낮은 곳을 두드립니다.
불교의 불공(佛供)과 기독교의 기도(祈禱) ~
겉으로 보기에는
신을 향한 간절한 매달림 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 안에는 인간이 삶을 대하는
두 가지의 숭고한 방식이 깃들어 있습니다.
비워냄으로써 채워지는
‘불공’의 미학 ?
불교에서 올리는 불공은
'나'를 지워가는 과정입니다
향을 피우고
정성스레 꽃을 올리는 행위는
부처에게 복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탐욕과 집착의 먼지를 털어내는 몸짓입니다.
우리가 불상 앞에 절을 올릴 때,
가장 낮은 자세로 몸을 굽히는 것은 '아상(我相)'이라는 높은 벽을 허무는 작업입니다.
"이것을 이루어 주소서"라는 간구 너머에 "내 마음의 소란함을 잠재우고 우주의 이치에 순응하겠다"는
고요한 결단이 있습니다.
결국 불공의 끝은 텅 빈 충만함입니다.
내가 비워진 자리에
타인을 향한 자비가 고이고,
세상의 모든 인연이 소중하게 들어앉는 것입니다.
부름으로써 응답받는
‘기도’의 신비
반면,
기독교의 기도는
고독한 탕자가 절대자를 향해
내딛는 간절함의 대화입니다.
침묵 속에서 자신을 찾는 과정이기 보다,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절대자에게 손을 뻗는 행위 같습니다.
기도는 자신의 연약함을 정직하게 고백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전능자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붙들어 주소서"라고
외치는 그 순간,
비로소 혼자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기도는 내 의를 관철시키려는 주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깨달으려는
몸부림의 시작입니다.
간절한 부르짖음 끝의 만남은
현 상황의 변화가 아니라,
절대자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입니다.
결국, 맞닿아 있는
간절함의 종착지
불공이 호수처럼 잔잔하게
자신을 가라앉히는 길이라면,
기도는 불꽃처럼
하늘나라로 자신을 태우는 길입니다.
이 두 행위가 방법은 다르지만,
향하는 곳은 결국 하나입니다.
신이 원하시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가장 순수한 열망임에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불공은 자신을 비어
세상을 품게 하고,
기도는 자신을 태워
하늘을 모시게 합니다.
우리는
불공을 통해 내 안의 불성을 깨우고, 기도를 통해 내 안의 하나님을 찾습니다
결국 비우는 손이나 모으는 손이나,
그 손끝에 맺히는 것은 '절대자와의 사랑'이라는 이름의 열매입니다.
삶이 고단할 때, 우리는 산사의 법당에 앉아 무념(無念)의 평화를 구하거나,
고요한 예배당에서 눈물어린 고백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 순간 만큼은 인간이 가장 아름다워지는 때가 아닌가 십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더 큰 가치를 향해 고개를 숙일 줄 아는 겸손이야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고귀한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절대자께는 겸손함으로,
인간에게는 온유함으로 .....
태양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