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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포유동펌)

[임콩등] 최악의 시나리오 01

작성자형은내맘좋도모르면서|작성시간26.06.21|조회수92 목록 댓글 0

나는 금단을 머금은 너의 목에 입을 맞추고 

 

우리는 에덴을 벗어날 타락의 날개를 나눠가졌다. 

 

누구도 우리에게 죄를 묻지 않고, 벌을 가하지 않았으나

 

나는 선을 등진 열락의 손을 잡고 스스로 지옥에 뛰어들었다. 

 

그의 목을 끌어안고 너의 팔을 잡은 . 살을 베어내는 대신 달콤한 꿈을 꾸며. 

 

고통아래 신음하는 우리의 미약한 날개짓이, 끝이 아님을 알리리라. 

 

  

 

 

최악의 시나리오 

 

written by            

 

 

 

 

 

 

진호는 벤치에 앉아 어린아이 손가락마디 만큼 남은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발로 짓이겼다. 발끝으로 모래를 끌어와 대충 덮고 저만치서 혼자 놀고 있는 아이에게 손짓을 했다. 그네를 타고 있던 아이가 얼른 뛰어와 무릎에 폴싹 앉는다. 

 

 

삼촌! 아빠 언제와?!” 

 

 

 

 

아까도 물었으면서, 낭창한 얼굴을 하고 같은 소리를 한다. 진호는 아이의 하얀뺨을 담배를 잡지 않았던 손으로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기필코 금연을 시작해야 겠다고 다시 마음을 먹었다.

 

 

 

 

오늘 늦는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삼촌이랑 밥먹고 숙제하고 자자. 오케이?” 

 

 

 

 

천진했던 얼굴이 금방 시무룩해진다. 진호는 아이를 달랠 참으로 하도 써먹어서 이상 먹히지 않는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아빠 바쁜거 알면서.. 내년에 학교도 가고 좋아하는 초밥도 많이 먹고.. 뭐냐. 게임기도 사주려면 많이 벌어야겠지? 그치? 삼촌말이 맞지?” 

 

 

 

 

아이는 말에 수긍하기보다는 저가 원하는 대답을 들을수 없을 같아 단념한 고개를 끄덕대었다. 

 

 

 

 

오케이 안할거야?” 

 

“.......오케이.” 

 

 

 

억지로 작은 입술을 쥐어짜낸다. 

 

 

 

 

사나이가 이래서 쓰나...엇차 

 

 

 

 

진호는 아이를 가볍게 안고 일어섰다. 아이는 작고 가는 팔을 진호의 목에 두르고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잠이라도 태세다. 그럴것이 진호가 데리러 오기전에도 놀이터에서 한참을 또래들과 놀았으니까 피곤할만도 하다. 놀이터를 빠져나가며 아이의 등을 쓸어내리는 폼이 능숙하고 자연스럽다. 

 

 

 

 

“....삼초온..배고파.”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도어 다이얼을 누르는데 뜬금없이 귀에다 대고 그런다. 올라오는 내내 숨소리가 새근거리길래 자는 알았더니 그새 깼나보다. 진호는 아이를 토닥이며 현관문을 열었다. 들어서자 마자 아이에게도 희미하게 났던 오키드 향이 코끝으로 깊게 스며든다. 생각같아서는 그대로 누워 자고 싶을만큼 익숙하고 나른한 공기다. 진호는 아이의 등에서 유치원 가방을 푸르고 쇼파에 눕혔다. 그리고 부엌으로 들어가 냉장고를 열어 안을 어본다. 행동에는 아무 거리낌이 없다. 

 

 

 

 

금방 차려줄게. 자면 안된다, .” 

 

 

 

 

아이는 쇼파에 몸을 기대고 누워 고개를 끄덕였다. 반쯤 감겨 껌뻑거리는 눈이 금방이라도 잠에 취해들 같았다. 

 

 

자지말고.. 태환아, 티비봐. 티비 

 

 

 

 

진호는 계란을 두개 집어들고 거실로 와서 직접 리모콘을 찾아 티비 전원을 켰다. 버튼을 누르다가 만화채널에서 멈추고 볼륨을 높였다. 

 

 

 

 

좋아하는 짱구하잖아. 옷갈아 입고와서 .” 

 

 

 

 

이제는 완전히 늘어져 티비와 진호를 번갈아 눈만 굴리던 태환이 오만상 얼굴을 찡그리며 있다가... 한다. 진호는 이럴수록 단호하게 버릇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부로 눈을 부릅뜨고 목에 힘을 주었다. 

 

 

 

얼른.” 

 

 

 

 

어기적 몸을 일으키며 심퉁난 얼굴로 방으로 걸어가는 태환의 뒤에 대고 진호가 넌지시 말을 이었다. 

 

 

 

 

오므라이스 해줄게.” 

 

 

 

 

그릇에 계란을 깨뜨리고 있는데 방에 들어갔던 태환이 얼굴을 빼꼼 내밀며 삼촌 당근 넣지마!! 하고 소리쳤다. 그리고 도로 들어가 방문을 닫는다. 

 

 

 

 

거품기로 계란을 풀며 진호는 피식 피식 자꾸 웃음이 새어 나오는 멈출수 없었다. 누구를 닮아 저렇게 귀여울까 싶다. 아이의 아빠, 엄마를 반반씩 닮아 인물도 훤하고 머리도 명석한데 성격은 귀엽고 나긋한 구석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그들 부부를 닮지 않은 것이다. 선천적인것보다 후천적 환경이 인성발달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던가. 틀린말은 아닌 같다. 태환이 하는 버릇이나 행동은 소름끼치도록 저와 닮아있어 진호도 종종 놀라곤했다. 아이가 태어나서 성장하며 지금까지 줄곧 함께 했다. 아이 아빠보다 저와 함께 추억이 많은 같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선생도 어떨때는 진호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상담을 정도였으니까. 

 

 

 

 

그렇다고 아이의 아빠가 아들에게 무신경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를 달랠때 하는 말이 괜한 거짓말이 아닌것처럼 그는 무척 바쁜사람이었다. 아빠를 기다리다가 자정이 되서야 잠이드는 태환을 재우고 뒷정리를 한뒤에 집을 나서면 피곤한 얼굴로 들어오는 그와 마주친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물론 회사일이 아니면 다른 약속 재쳐두고 집으로 향하는 그였어도 야근이 잦다는게 문제였다. 그는 진호가 집에 들락거리는 것을 탐탁치 않아 했지만 태환을 생각해 어쩔수 없이 내버려 두었다. 진호는 그걸 알고 있었다. 물론 진심으로 어린태환을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점을 이용하려는 면도 부정할수 없었다. 

 

 

 

 

드르르르- 바지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어깨와 사이로 받쳐 받았다. 편집장한테 걸려온 전화였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면서 부산스럽고 시끄러운 건녀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얼핏 우렁찬 정기자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미안해. 진호씨- 너무 정신이 없다 진짜.] 

 

 

 

 

기운이 쪽빠진 편집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문난 그녀의 까탈스러움은 이상스럽게 마감일이 가까워지면 한결 누그러졌다. 

 

 

 

 

아뇨, 데드라인이니까 그렇죠..” 

 

[집이야?] 

 

. 무슨일있어요?” 

 

[일은..무슨?] 

 

그럼 편집장님이 나한테 직접 전화 일이 없잖아요.” 

 

[어머, 진호씨 그렇게 말하는거 아니다? 섭섭해.] 

 

 

 

 

뜸을 들이는 보니 확실히 뭔가 이야기 것이 있는가보다. 

 

 

 

 

뭔데요. 밥먹어야 하니까 얼른 말해줘요.” 

 

[정말? 미안해. 식사하는데.....근데. 있잖아. 진호씨.] 

 

. 말해요.” 

 

[저번에 말했던거..있잖아. - 거기 부산에서 하는 시사회말야..] 

 

 

 

 

진호는 야채를 볶던 손을 멈추고 전화기를 고쳐들었다. 

 

 

 

왜요? 설마 그거 대신 하라고?” 

 

[..그래야 될것같아.] 

 

그거 중만이가 하기로 했잖아요?” 

 

 

 

 

[사실은 그저께 와가지고 그러더라고...결혼준비 때문에 바쁜데 지방 2 뛰는거 시간이 안된다고. 있잖아. 중만씨가 대구도 가기로 한거. 그거는 하겠는데 도저히 부산까지는 못가겠데. 하도 그러길래..] 

 

 

 

그래서 저보고 가라고요? 이번달 시사회 뛰었어요. 거기다가 인터뷰 2 따내고..그래서 특별휴가 준다면서! 이런경우가 어딨어요?!” 

 

 

 

 

진호가 볼멘소리로 타박했다. 돌아오는 것은 한결 부드러워진 편집장의 회유성 멘트뿐이다. 

 

[나도 웬만하면은 진호씨한테까지 안가려고 했지. 근데 마감이니까 다들 묶인거 알잖아. 사람이 없어.이해해줘..] 

 

진짜 대타 없어요?” 

 

[지면 인터뷰는 우리가 단독으로 따낸거 알면서..거기에 신입이나 외부애들 보내?그건 아니지..뒷소리 엄청 나올걸?? 진호씨,한번만 부탁하자...??자기도 처음엔 이거 하고 싶어했잖아!] 

 

 

 

 

편집장의 목소리가 거의 애원조로 들러붙었다. 평소같았으면 쉽게 승낙했을 진호였지만 망설이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주말이라 오랜만에 태환을 데리고 놀이동산에 가려고 했었는데 시사회날과 겹쳤기 때문이다. 부산에 내려가면 빡빡하게 잡아도 최소 1 2일이다. 거기다 주최측 사정에 따라 일정이 흘러가기 때문에 차질없이 간다해도 꼬박 이틀을 묶여 있어야 한다. 편집장 말대로 처음 시사회 인터뷰가 잡혔을때는 하고 싶어서 언질도 넣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탐나는 일은 아니지만 결국 진호는 그러기로 승낙했다. 편집장이 이렇게 매달릴정도면 결국 자신이 해야할일이기 때문이다. 

 

 

 

 

알았어요. 할게요.” 

 

[어머! 진짜??고마워. 진호씨! 줄줄 알았어! 내일 나와서 가져가. 석호씨가 채가기 전에!] 

 

 

 

 

편집장의 호들갑떠는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 . 내일 가서 말해요. 끊을 게요.” 

 

 

 

 

진호는 그말을 끝으로 얼른 폴더를 닿았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천금같은 일주일의 휴가를 위해서 보름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는데. 입사하고 그렇게 바빴던 날들은 처음이었다. 밤낮 쉬지 않고 자판을 두드리고 틈틈이 원고 준비한걸 생각하면 이제와서도 넌덜머리가 난다. 이왕 가기로 한거 딱감고 갔다 오면 되지만 진호는 태환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놀이 동산인데 대신 누가 대신 데려갈수도 없는 노릇이고. 

 

진호는 통화하면서 꺼놨던 가스렌지 불을 다시켜고 야채를 볶기 시작했다. 

 

 

 

 

“...삼촌, 우리 안먹어?” 

 

 

 

 

태환이 식탁 의자를 앉으며 눈을 부빈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티셔츠 바람으로 수건을 목에 걸고 있는 것을 보니 기특하게도 혼자서 손도 씻고 세수도 모양새다. 진호는 대견하기도 하고 괜히 서운스럽기도 복잡한 얼굴로 태환을 가만 내려다 보았다. 

 

 

 

 

당근 없지? 당근있으면 안먹어!” 

 

골고루 먹어야지. 안커.” 

 

삼촌도 작잖아.” 

 

...삼촌 별로 안작어. 그리고 삼촌은 얼굴이 잘생겼잖아?” 

 

 

 

 

진호의 너스레에 태환이 입술을 삐쭉 내밀며 검지손가락을 까닥까닥 저었다. 

 

 

 

 

노노노노노. 우리아빠가 삼촌보다 키도 크고 잘생겼어.” 

 

 

 

 

알고 있어, 임마. 그래서 내가 이렇게 목을 메고 붙어 있는거잖아. 진호는 소리없이 히죽 웃었다. 영문도 모르고 태환은 삼촌을 따라 웃는다. 태환이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을 동안 진호는 얼른 밥을 볶고 계란을 부쳐 널찍한 접시에 보기좋게 올려놓았다. 일루와, 하고 손짓을 하는데도 들은척도 안한다. 예뻐죽겠다가도 저럴때면 얄미워서 머리통 한번 쥐어박고 싶다. 

 

 

빨리와라? 진짜 맛있는데. 안먹어?” 

 

 

 

 

숙제도 많잖아, 하며 뭔데 저렇게 눈을 못떼나 싶어 거실로 가보니까 티비에서 애니메이션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뭐라고..가만 서서 보는데 익숙한 장면이 스쳐간다. 진호는 작년에 영화를 본적이 있다. 3D 애니메이션 처리된 물고기가 실사 바다를 배경으로 가족을 찾아 떠나는 영화였다. 단관 개봉인데도 평이 하도 좋아서 뒤늦게 코멘트를 싣는다고 영화관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 물고기가 결국 엄마를 찾는 장면이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과 함께 화면가득 채워졌다. 그걸 넋놓고 보고 있는 아이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이 없다. 

 

 

 

 

아이는 정말 수가 없다. 세상에서 제일 단순한 같으면서도 가장 혼란스럽고 복잡하다. 다른 부분은 능숙하게 맞춰줄수 있지만 이럴때는 정답을 모르겠다. 부엌에 오무라이스 접시를 들고와서 태환의 무릎위에 올려놓고 채널을 다른곳으로 돌렸다. 태환은 저가 보던 채널이 돌아가도 아무말 않고 진호가 쥐어주는 숟가락을 들었다.  

 

 

 

 

식기전에 먹어. 그리고 숙제하자.” 

 

 “....” 

 

 

 

 

진호는 아무말없이 태환의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아이의 처진 눈을 보니 가슴이 뚫린 마냥 허전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태환은 접시를 절반도 비우지 못하고 숟가락을 내려 놓았다. 급하게 일어서 소화제를 찾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체해서 그런게 아닌 것을 알고 있으니까. 진호는 태환을 일찍 재웠다. 숙제는 어떡하냐고 걱정하는 아이의 이마를, 귓불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달랬다. 태환은 금방 쉭쉭 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다. 

 

 

 

 

방문을 닫고 거실 티비를 끄자 마치 세상이 멈춘것마냥 조용하다. 설거지를 끝내고 청소기로 거실을 돌릴까 하다가 아이가 자고 있다는 것을 깨닫았다. 굳이 진호가 청소를 하지 않아도 바닥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다. 진호는 태환의 가방에서 학습장을 꺼내 보다가 숙제거리를 빼냈다. 바르고 예쁜 글씨 쓰기 라고 적힌 책을 넘기며 바닥에 앉아 쇼파에 몸을 기댔다. 어찌나 꾹꾹 눌러썼는지 종이가 쭈굴쭈굴하다. 진호는 테이블 위로 양팔을 붙이고 앉아서 이면지에 가득히 아이의 글씨체를 흉내내본다. 연필도 일부로 짧게 쥐고 큼직하게 그림그리듯 한글자씩 보았다. 평소에 자판만 두드렸지 잡을 일은 많지 않아서 힘들게 노력하지 않아도 엇비슷하게 써졌다. 반쯤 써내려 가다가 얼마나 남았나 싶어 몇장 넘기다가 노트 한귀퉁이를 보고 진호는 얕은 탄식을 뱉어냈다. 

 

 

 

 

엄마 이름 홍진희  홍진희  홍진희... 

 

반복해서 적힌 익숙한 이름. 

 

 

 

 

남편의 잦은 부재와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미국으로 건너가 재혼한 진호의 누나. 엄마는 천사라서 하늘로 돌아갔다고 믿는 태환의 엄마. 아이의 아빠가 증오하는 그의 부인...그렇게도 수식어가 많은, 진호는 뇌리속에서 바래진 누나의 얼굴을 떠올렸다. 태환이 돌을 넘길때 떠났으니 5년도 훌쩍 넘는 시간이다. 진호 자신도 이렇게 그녀가 희미한데 사진 없이 엄마의 얼굴을 끼워맞추며 그리워할 아이 생각을 하자 가슴이 저릿해진다. 진호는 테이블위로 엎드려 팔에 고개를 묻었다. 지난 단란했던 가정의 모습이 스쳐지나 간다. 그렇게도 산산히 조각나길 바랬던, 결국 신이 저의 편을 들어 완벽했던 세사람. 

 

 

 

 

제대로 정신을 차렸을때는 요환과 함께 현관문을 나설쯤이었다. 누적된 피로에 취해서 한번 눈을 감으면 깨어나도 금방 맥을 차릴수가 없었다. 앞서가는 요환을 따라가려고 걸음을 빨리하다 비척거리며 그의 팔을 잡는 꼴이 되버렸다. 요환이 돌아보며 진호의 허리에 손을 둘러 제대로 서게 한다. 야간을 하고 돌아온 요환의 얼굴은 피곤에 쩔어 더욱 하얗게 질려 있었다. 피곤해 하면서도 매번 진호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귀찮을만 한데도 내색하지 않고 매일 돌아와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그것은 요환이 태환을 돌봐주는 진호에게 지불하는 값이었다. 적어도 진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충분히 여유가 되는데도 차를 뽑지 않았다.   

 

 

그러니까 여기 오지말고 집에 가서 쉬라니까.” 

 

태환이 숙제 못했어. 데려다주고 그거 먼저 하고 .” 

 

 

 

 

오피스텔 로비를 나오며 요한이 하는 말을 진호는 애써 무시했다. 그도 대꾸를 하지는 않았다. 리모콘 소리가 주차장을 울리고 백라이트 불빛이 번쩍일때까지 진호는 가만 서서 하늘색 파스텔 셔츠를 입은 요환의 너른 등을 쳐다보았다. 옴살맞은 기분이 들었다. 문을 열던 요환이 진호를 부르며 얼른 타라는 목짓을 한다. 

 

 

 

 

그제서야 진호는 비척비척 걸어가서 차문을 열고 조수석에 앉았다. 요환의 차가 주차장을 나가며 도로로 들어섰을때 진호는 벨트를 메고 등받이에 기대앉았다. 이대로 눈을감으면 잠이 들것 같아서 요환을 떠볼겸 넌지시 말을 건넸다. 

 

 

, 뽑을까?” 

 

맘대로 .” 

 

 

 

 

예상했던 대답과 너무 맞아 떨어져서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그럼 뽑을래.” 

 

 

 

 

요환은 홀깃 고개를 돌렸다가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 주말에 부산가. 태환이 데리고 놀이동산 가기로 했던건 아마 못갈 같아. 대신 다음주에는 데리고 갈게..” 

 

 

 

 

진호로써는 어렵게 꺼낸 말이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상기된 얼굴이 그걸 말해주었다. 역시 예상하는 대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을테지만 진호는 긴장했다. 조금이라도 아쉬운 기색을 해주기를 바랬다. 그것도 안된다면 최소한 무엇 때문에 가는지 몇일 있다 오는지 등등, 가볍게 물어줬으면 했다. 그런데도 돌아오는 말은 진호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뿐이었다.  

 

 

     

 

이제 오지마. 일하는 아줌마 두기로 했어.” 

 

 

 

 

하마터면 누구맘대로 그러냐고 소리라도 내지를뻔한 목구멍을 간신히 막았다. 

 

 

태환이 때문에 오는거야. 보모 노릇하고 형보러 오는거 아니라고!” 

 

 

 

 

진호는 자신을 업신여기는 요환의 태도에 화가났다. 요환은 능숙하게 핸들을 돌리며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태환이 매일 안봐도 되잖아..” 

 

 

 

 

진호는 단순하기 짝이없는 요환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그는 모든걸 간파하고서도 모른척 행동했다. 가끔 그가 방심한 사이 이런식으로 불쑥 뱉어내는 말들은 진호를 괴롭게 했다.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되받아 말이 없었다. 태환이 자신을 따르고 의지하지만 아이의 아빠가 그러겠다는데 어떤말을 있을까. 게다가 요환이 벼르고 있다가 드디어 꺼낸 다짐은 진호가 어떤 억지를 갖다붙여도 먹혀들지 않을것이다. 

 

 

 

 

진호는 철렁 내려 앉는 속을 진정시키며 벨트를 쥐고 물었다. 

 

 

 

 

“.....? 갑자기 그러는데?” 

 

너도 일에만 집중해. 언제까지 조카 뒤치닥 거리나 하고 있을거야?” 

 

 

 

 

표정없는 얼굴로 운전에 집중하는 요환이 야속하고 밉다. 진호는 그의 옆얼굴을 노려 보았다. 

 

 

 

 

웃기지마. 형은 생각해서 그러는거 아니잖아?" 

 

 

 

 

나는 형이 어떤사람 인줄 알아. 못지 않게 이기적인데다 강한척 하면서 실은 약해 빠졌지. 알량한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서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고 . 나는 그래서 미칠 같이 화가 . 진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요환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작게 저었다. 진호는 자신을 무시하는 그의 태도에 울컥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를 겨우 삼켰다. 

 

 

 

 

사람 바보 취급하지마.” 

 

“..그런거 아냐.” 

 

여기서 내려줘.” 

 

 

 

 

벨트를 푸르려고 움직이는 진호의 손을 요환이 잡아 챘다. 

 

 

 

 

왔으니까 괜한 심술 부리지마.” 

 

내려줘. 빨리 내려줘!"

 

 

 

 

진호는 힘을주어 손을 뿌리쳤다. 

 

 

 

 

고집피우지 말라고! 애야? 왜이렇게 유치하게 굴어?!” 

 

“.......” 

 

 

 

차라리 요환의 말대로 어린애 였다면 마음껏 칭얼대고 투정이라도 부릴텐데..그럴수도 없다. 진호는 고개를 떨구고 씩씩 숨만 내셨다. 요환은 있는데로 미간을 찌푸렸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그가 언성을 높이는 일은 최근 진호와 이런식으로 투닥거릴때 뿐이었다. 하물며 여섯살박이 아들도 이처럼 요환의 신경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진호야..” 

 

 

 

차안의 침묵을 깬건 때아닌 요환의 다정한 목소리였다. 그저 상냥하게 이름 한번 부른것인데 그의 부드러운 손이 머리를 쓰다듬고 얼굴을 어루만지는 같은 착각에 일렁였다. 차라리 화를 내고 윽박을 질러 자신을 밀어낸다면 조금은 밀어 날수도 있을 같았다. 헌데 그는 이런식으로 자신을 어르고 달랜다. 진심을 한껏 담아서.. 진호는 이미 수년전 자신에게 깊은 생채기를 내고 돌아선 요환의 진심에 가까이 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렇게 부르지마... 조금의 틈도 안내줄거면서 그렇게 다정하게 굴지 말란말야. 

 

 

 

 

“..... 이제 형한테 아무 감정없어.” 

 

 

 

 

덤덤한 어조였다. 정말로 털어버렸으니까 마음 놓으라고는 차마 덧붙이지 못했다. 그말을 끝으로 가만히 앉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쓰다, 거짓을 토해내는 혀끝은 너무도 써서 진호는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 졌다. 진호는 고개를 숙여 하얗게 질린 손바닥을 쳐다보았다. 매일밤 요환을 떠올리며 은밀한 상상으로 더럽힌 . 더러운 쾌락의 찌꺼기가 덕지덕지 묻은 손으로 그의 아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고 씻기고 재울때면 진호는 알수 없는 희열에 젖어 들었다. 마치 그의 부인이라도 같은 착각속에서 몸부림치고 다시 밤이 되면 욕망을 주어 모은다. 진호는 언젠가 아주 크게 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길가다 트럭에 치여 죽거나,아니면 직접 뛰어들거나. 그리고 후에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내던져 질것이라 생각했다. 정말 신이 있다면 말이다. 

 

 

 

 

. 내가 진짜 미쳐버려서 스스로 지옥으로 떨어지기 전에..... 

 

 

그러니까....계속 이렇게만 지내게 해줘.” 

 

 

 

 

요환은 무표정한 얼굴로 핸들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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