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전2:6-12
이영순전도사
한국 교회의 성장이 정체됐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회 외적인 요인도 있지만 한국교회의 자체적 갱신 여부가 성장의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최근 ‘한국교회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에서 한국 갤럽에 의뢰,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종교인 가운데 개종 경험자는 16.2%이며 이중 58.4%가 기독교에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무종교인 중 교회를 다닌 적이 있는 사람은 73%에 달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종교인구는 2명중 1명뿐이다. 한국교회의 전도 열정은 높지만 새 성도를 확보하고 양육, 관리하는데는 미숙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전도와 양육이 필요합니다. 지속적인 양육이 없다면 새신자의 대다수가 뒷문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효과적인 새신자 양육을 위해서는 구역장과 구역강사 그리고 교사 모든 성도님들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새신자 양육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는 새신자는 갓 태어난 아기와 같기 때문 단순한 지식 전달의 교육이 아닌 양육이 필요합니다. 새신자는 절대 양육과 절대 지도와 절대 보호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새신자에게는 신앙생활과 교회 등록으로 인한 핍박과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새신자는 과거의 죄 때문에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새신자에게는 마귀의 방해와 유혹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신자를 양육하고 지도하고 보호하는 일을 우리 성도님들이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갓 태어난 새신자 양육을 위하여 우리 성도님들이 양육의 자세를 성경적인 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그러기 이전에 전도를 하였다는 것은 어디까지 성장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에 데리고 나온 것으로 전도를 다하였다는 생각보다는 양육하여 나와 같이 전도하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 전도자의 자세이며 저와 우리 성도님들의 자세일 것입니다.
새신자는 갓 태어난 영적아기입니다. 이럴땐 성경본문으로 들어가 어떤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성경적인 원리를 보겠습니다.
첫째는 사람의 영광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도를 해서 해산의 수고가 있습니다. 태어남으로 기쁨이 옵니다. 하지만 칭찬을 기대하거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려고 하는 자세는 잘못되어 있습니다. 교회에서 일을 하다가 인정해 주지 않으면 삐순이와 삐돌이가 많아 실룩실룩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우리 인천제일교회는 없는 줄 압니다.
사람의 영광을 받을려고 하면 보이는 것에 치중하고 물질적인 면을 보고 따를려고 하는 것입니다. 남을 생각해주는 것 같지만 자를 생각하고 자기에게 유익이 되면 하고 유익이 되지 않으면 안하는 것 이것이 욕심이자 개인주의 이기심입니다. 사람의 영광을 위하여 구하는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의 일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한다면 사람의 인정을 받지는 못해도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십니다.
둘째는 유모의 심정 곧 어머님의 마음입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유모의 심정으로 너희들을 사랑하고 애썼다.’라고 하였습니다. 핏덩어리 어린 것을 데려다가 기르고, 기저귀 갈아주고, 먹이고, 길러 가면서 희생하는 분이 유모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식은 아닙니다. 어머님은 본능적으로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배가고파서 우는지 기저귀가 젖어서 우는지 아파서 우는지 압니다. 우리도 전도한 새신자가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구역에 새신자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어떻게 대해 주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어머님은 자신의 은밀한 젖가슴에 어린아이를 품어주면서 제 몸의 일부인 모유를 먹여주는 전형적인 자기희생의 표본이자 사랑의 모습입니다. 어머님은 갓난아이의 온갖 무모한 칭얼거림을 죄다 받아주면서 다독거리는 자입니다. 그 아기가 쏟아내는 불평이나 불만이 더러 무모하고 비합리적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아이가 아직 세상 물정은커녕 자신의 존재에 대한 명민한 자의식과 확고한 정체성조차 없다는 걸 익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새신자가 그 모든 걸 귀엽게 살피면서 수용할 여유가 있어야 한다. 우리 인천제일교회 모든 성도들은 영적으로 갓난 어린 생명 새신들을 따스하게 품을 줄 아는 유순함을 가져야 합니다.
셋째는 복음으로 먹여야합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젖에서 무엇이 나옵니까? 초유가 나옵니다. 이 초유는 면연력을 키워주고 장을 청소하여 줍니다. 이제까지 뱃속의 있는 태변들을 정리하여 탯줄이 잘리어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음식을 섭취하여 소화 할 수 있도록 장을 청소하여 줍니다. 이렇듯 새신자에게 말씀생명의 말씀을 먹여야 합니다. 그래서 이전의 모든 것을 정화시키고 부정한 것을 깨끗케하여 주고 사단과 마귀로부터 공격을 미연에 방지하도록 초유의 말씀을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인도자들은 새신자와 함께 동행을 하면서 초유를 먹을 수 있도록 신앙의 젖줄기를 공급해야 합니다. 이것이 순수한 복음인 것입니다. 요즘에 우유를 먹이는 어머님들이 있는데 우리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듯이 순수한 복음으로 양육하여야 합니다. 그 다음에 21일동안 산모와 아기는 같이 안정을 취합니다. 21일 동안 새신자를 가까이 하면서 친근함으로 자주 방문을 하여야 합니다. 100일을 우리 조상들은 지냅니다. 100동안 아기가 잘 자라도록 새신자 양육에 힘을 기울려야 합니다.
넷째는 사랑으로 양육해야합니다.
사랑하는 어머니로써 자녀를 기르고 돌보는 데에는 시간과 힘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어머니가 새 생명을 얻으면 그 갓난아기를 기르기 위하여 잠을 자지 못하고 기르고 가르치는 등 각별한 관심을 가지며 보호 합니다. 아기가 걸어 다닐 대 뒤에서 쫒아와 안전하게 걷는지 돌봐줍이다. 사랑과 관심의 눈길은 그 아기에게서 떠나지 않습니다. 교회를 나온 새신자들에게 주일날 빠졌는지 나왔는지 아픈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관심을 갖고 기도하면서 사랑을 베풀어야 새신자가 바르게 양육될 수 있습니다. 관심이 없으면 그 생명은 끝나고 맙니다. 구준히 지속적으로 모든 성도들이 특히 구역장과 구역강사 기관장 그리고 교사들이 관심을 갖고 사랑을 베풀어야 그 새신자가 바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는 수고와 애씀이 당연해야 합니다.
새신자가 나오지 않을 대는 그 집에 찾아가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새신자가 설 때까지 물질을 투자 할 수 있으며 물질까지 투자하여 아낌없이 베풀어야 합니다. 양을 잃어벌 때 주님은 아홉아홉마리 양을 놔두고 찾아나셨습니다. 우리도 그 새신자를 위하여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주변의 장기결석자 또 낙심되어 있는 자 어려움에 처해 있는 자들에게 우리는 찾아가서 구원의 손길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수고 애씀이 있어야 교회는 성장할 수 있고 우리의 믿음도 자랄 수 있습니다.
여섯째는 권면과 위로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맘마와 지지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제까지 어머님의 입장에서 말씀드렸고 이제는 아비의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마치 부모가 자식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채찍질도 하고 벌도 주고 권면도 하듯이 그런 부모의 심정으로 이 말을 한다고 말씀합니다. 어린아이가 자라나면서 마냥 ‘오냐, 오냐’로만 응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아이가 곁길로 가지 않도록 삶의 기초를 가르치고 훈계하는 일이 필요하다. 양육은 유모의 젖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젖과 더불어, 아비가 벌어오는 딱딱한 양식을 먹을 수 있어야 하고, 그 양식에 값하지 못하는 짓으로 그 생명의 본분을 훼손할 때 그 아비의 엄한 질책과 선도가 요청되는 법이다. 아울러, 아버지 리더십의 권위로 그들이 자기 현시적인 말의 지혜에 끌리지 않고 하나님의 참 지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눈을 돌리도록 인도한다.아버지는 자녀의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책임지는 든 자녀들의 아버지는 자신이 제시한 길을 놓고 그 자녀들을 설득하고 그 명백한 오류를 훈계하되 더불어 대화하고 토론할 줄 아는 능력과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을 인정할 줄 하는 품성의 소유자이어야 한다.
일곱째는 하나님께 합당한 자가되어야 한다.
이제는 전하는 성도나 새로 나온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깨닫고 삶에서 실천하여 오직 자기나라 영광에 이를 수 있는 자로 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나중에 커서 부모님의 마음을 알듯이 이것이 있으면 자연히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되며, 하나님께 기쁨을 돌리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전도나 양육으로 인하여 무엇을 얻으려는 마음이 아닌 어떻게 해서든지 저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우리는 힘써야 합니다.
여덟 번째로는(다섯번째) 목숨까지 주기를 즐겨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950년대는 6.25 동란으로 인하여 살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때 남편을 전쟁터에서 잃은 한 여인이 배속에 아기를 잉태하고 있었습니다. 인적이 없는 외딴 집에 사는 여인은 산기를 느껴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어 이웃 마을에 사는 외국인 선교사에게 도움을 청하려 눈이 오는 새벽녘에 집을 나셨습니다. 여인은 도중에 아기를 낳고 말았습니다. 여인은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의 옷을 하나씩 벗어 아기를 감쌌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동맥을 끊어서 피를 사방으로 부렸습니다. 눈 속에 묻힌 자신의 아기를 살리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 이웃 마을 선교사가 그 길을 지나가다가 핏자국을 따라가서 보고 눈 속에 묻힌 여인을 발견했습니다. 여인은 발가벗은 몸으로 얼어서 죽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품에 안겨 있는 아기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여인을 장사지내고 아들을 양자로 삼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사춘기가 될 무렵 자신과 부모가 서로 다른 것을 두고 많은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고민하다가 반항아로 변해갔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선교사가 그를 불러 그가 태어날 때 일어난 사건을 자세히 일러 주었습니다. 그때 그는 방으로 들어가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틀이 지나서야 문을 열고 어디론가 달려갑니다. 그가 간 곳은 그 어머니의 무덤이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무덤을 끌어안고 울고는 자신의 옷을 하나씩 벗어서 그 무덤을 덮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 그때 얼마나 추우셔서요 그리고 얼마나 부끄러우셔서요”하면서 하염없이 울었답니다. 부끄러움과 추위를 참아가면서 자식을 위해 죽을수 있는 분이 어머니입니다. 영혼의 전도자는 이런 유모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자녀들의 아버지,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의 단 한 분 아버지가 되는 하나님의 입장을 헤아리며, 그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 하나님의 책임을 의식하여 이 땅에 그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한 교회 공동체, 사회 공동체, 국가 공동체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우리는 양육해야 합니다. 이사명은 오늘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맡기셨습니다.
이영순전도사
한국 교회의 성장이 정체됐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회 외적인 요인도 있지만 한국교회의 자체적 갱신 여부가 성장의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최근 ‘한국교회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에서 한국 갤럽에 의뢰,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종교인 가운데 개종 경험자는 16.2%이며 이중 58.4%가 기독교에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무종교인 중 교회를 다닌 적이 있는 사람은 73%에 달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종교인구는 2명중 1명뿐이다. 한국교회의 전도 열정은 높지만 새 성도를 확보하고 양육, 관리하는데는 미숙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전도와 양육이 필요합니다. 지속적인 양육이 없다면 새신자의 대다수가 뒷문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효과적인 새신자 양육을 위해서는 구역장과 구역강사 그리고 교사 모든 성도님들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새신자 양육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는 새신자는 갓 태어난 아기와 같기 때문 단순한 지식 전달의 교육이 아닌 양육이 필요합니다. 새신자는 절대 양육과 절대 지도와 절대 보호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새신자에게는 신앙생활과 교회 등록으로 인한 핍박과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새신자는 과거의 죄 때문에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새신자에게는 마귀의 방해와 유혹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신자를 양육하고 지도하고 보호하는 일을 우리 성도님들이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갓 태어난 새신자 양육을 위하여 우리 성도님들이 양육의 자세를 성경적인 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그러기 이전에 전도를 하였다는 것은 어디까지 성장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에 데리고 나온 것으로 전도를 다하였다는 생각보다는 양육하여 나와 같이 전도하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 전도자의 자세이며 저와 우리 성도님들의 자세일 것입니다.
새신자는 갓 태어난 영적아기입니다. 이럴땐 성경본문으로 들어가 어떤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성경적인 원리를 보겠습니다.
첫째는 사람의 영광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도를 해서 해산의 수고가 있습니다. 태어남으로 기쁨이 옵니다. 하지만 칭찬을 기대하거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려고 하는 자세는 잘못되어 있습니다. 교회에서 일을 하다가 인정해 주지 않으면 삐순이와 삐돌이가 많아 실룩실룩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우리 인천제일교회는 없는 줄 압니다.
사람의 영광을 받을려고 하면 보이는 것에 치중하고 물질적인 면을 보고 따를려고 하는 것입니다. 남을 생각해주는 것 같지만 자를 생각하고 자기에게 유익이 되면 하고 유익이 되지 않으면 안하는 것 이것이 욕심이자 개인주의 이기심입니다. 사람의 영광을 위하여 구하는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의 일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한다면 사람의 인정을 받지는 못해도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십니다.
둘째는 유모의 심정 곧 어머님의 마음입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유모의 심정으로 너희들을 사랑하고 애썼다.’라고 하였습니다. 핏덩어리 어린 것을 데려다가 기르고, 기저귀 갈아주고, 먹이고, 길러 가면서 희생하는 분이 유모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식은 아닙니다. 어머님은 본능적으로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배가고파서 우는지 기저귀가 젖어서 우는지 아파서 우는지 압니다. 우리도 전도한 새신자가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구역에 새신자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어떻게 대해 주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어머님은 자신의 은밀한 젖가슴에 어린아이를 품어주면서 제 몸의 일부인 모유를 먹여주는 전형적인 자기희생의 표본이자 사랑의 모습입니다. 어머님은 갓난아이의 온갖 무모한 칭얼거림을 죄다 받아주면서 다독거리는 자입니다. 그 아기가 쏟아내는 불평이나 불만이 더러 무모하고 비합리적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아이가 아직 세상 물정은커녕 자신의 존재에 대한 명민한 자의식과 확고한 정체성조차 없다는 걸 익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새신자가 그 모든 걸 귀엽게 살피면서 수용할 여유가 있어야 한다. 우리 인천제일교회 모든 성도들은 영적으로 갓난 어린 생명 새신들을 따스하게 품을 줄 아는 유순함을 가져야 합니다.
셋째는 복음으로 먹여야합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젖에서 무엇이 나옵니까? 초유가 나옵니다. 이 초유는 면연력을 키워주고 장을 청소하여 줍니다. 이제까지 뱃속의 있는 태변들을 정리하여 탯줄이 잘리어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음식을 섭취하여 소화 할 수 있도록 장을 청소하여 줍니다. 이렇듯 새신자에게 말씀생명의 말씀을 먹여야 합니다. 그래서 이전의 모든 것을 정화시키고 부정한 것을 깨끗케하여 주고 사단과 마귀로부터 공격을 미연에 방지하도록 초유의 말씀을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인도자들은 새신자와 함께 동행을 하면서 초유를 먹을 수 있도록 신앙의 젖줄기를 공급해야 합니다. 이것이 순수한 복음인 것입니다. 요즘에 우유를 먹이는 어머님들이 있는데 우리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듯이 순수한 복음으로 양육하여야 합니다. 그 다음에 21일동안 산모와 아기는 같이 안정을 취합니다. 21일 동안 새신자를 가까이 하면서 친근함으로 자주 방문을 하여야 합니다. 100일을 우리 조상들은 지냅니다. 100동안 아기가 잘 자라도록 새신자 양육에 힘을 기울려야 합니다.
넷째는 사랑으로 양육해야합니다.
사랑하는 어머니로써 자녀를 기르고 돌보는 데에는 시간과 힘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어머니가 새 생명을 얻으면 그 갓난아기를 기르기 위하여 잠을 자지 못하고 기르고 가르치는 등 각별한 관심을 가지며 보호 합니다. 아기가 걸어 다닐 대 뒤에서 쫒아와 안전하게 걷는지 돌봐줍이다. 사랑과 관심의 눈길은 그 아기에게서 떠나지 않습니다. 교회를 나온 새신자들에게 주일날 빠졌는지 나왔는지 아픈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관심을 갖고 기도하면서 사랑을 베풀어야 새신자가 바르게 양육될 수 있습니다. 관심이 없으면 그 생명은 끝나고 맙니다. 구준히 지속적으로 모든 성도들이 특히 구역장과 구역강사 기관장 그리고 교사들이 관심을 갖고 사랑을 베풀어야 그 새신자가 바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는 수고와 애씀이 당연해야 합니다.
새신자가 나오지 않을 대는 그 집에 찾아가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새신자가 설 때까지 물질을 투자 할 수 있으며 물질까지 투자하여 아낌없이 베풀어야 합니다. 양을 잃어벌 때 주님은 아홉아홉마리 양을 놔두고 찾아나셨습니다. 우리도 그 새신자를 위하여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주변의 장기결석자 또 낙심되어 있는 자 어려움에 처해 있는 자들에게 우리는 찾아가서 구원의 손길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수고 애씀이 있어야 교회는 성장할 수 있고 우리의 믿음도 자랄 수 있습니다.
여섯째는 권면과 위로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맘마와 지지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제까지 어머님의 입장에서 말씀드렸고 이제는 아비의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마치 부모가 자식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채찍질도 하고 벌도 주고 권면도 하듯이 그런 부모의 심정으로 이 말을 한다고 말씀합니다. 어린아이가 자라나면서 마냥 ‘오냐, 오냐’로만 응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아이가 곁길로 가지 않도록 삶의 기초를 가르치고 훈계하는 일이 필요하다. 양육은 유모의 젖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젖과 더불어, 아비가 벌어오는 딱딱한 양식을 먹을 수 있어야 하고, 그 양식에 값하지 못하는 짓으로 그 생명의 본분을 훼손할 때 그 아비의 엄한 질책과 선도가 요청되는 법이다. 아울러, 아버지 리더십의 권위로 그들이 자기 현시적인 말의 지혜에 끌리지 않고 하나님의 참 지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눈을 돌리도록 인도한다.아버지는 자녀의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책임지는 든 자녀들의 아버지는 자신이 제시한 길을 놓고 그 자녀들을 설득하고 그 명백한 오류를 훈계하되 더불어 대화하고 토론할 줄 아는 능력과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을 인정할 줄 하는 품성의 소유자이어야 한다.
일곱째는 하나님께 합당한 자가되어야 한다.
이제는 전하는 성도나 새로 나온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깨닫고 삶에서 실천하여 오직 자기나라 영광에 이를 수 있는 자로 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나중에 커서 부모님의 마음을 알듯이 이것이 있으면 자연히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되며, 하나님께 기쁨을 돌리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전도나 양육으로 인하여 무엇을 얻으려는 마음이 아닌 어떻게 해서든지 저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우리는 힘써야 합니다.
여덟 번째로는(다섯번째) 목숨까지 주기를 즐겨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950년대는 6.25 동란으로 인하여 살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때 남편을 전쟁터에서 잃은 한 여인이 배속에 아기를 잉태하고 있었습니다. 인적이 없는 외딴 집에 사는 여인은 산기를 느껴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어 이웃 마을에 사는 외국인 선교사에게 도움을 청하려 눈이 오는 새벽녘에 집을 나셨습니다. 여인은 도중에 아기를 낳고 말았습니다. 여인은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의 옷을 하나씩 벗어 아기를 감쌌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동맥을 끊어서 피를 사방으로 부렸습니다. 눈 속에 묻힌 자신의 아기를 살리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 이웃 마을 선교사가 그 길을 지나가다가 핏자국을 따라가서 보고 눈 속에 묻힌 여인을 발견했습니다. 여인은 발가벗은 몸으로 얼어서 죽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품에 안겨 있는 아기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여인을 장사지내고 아들을 양자로 삼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사춘기가 될 무렵 자신과 부모가 서로 다른 것을 두고 많은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고민하다가 반항아로 변해갔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선교사가 그를 불러 그가 태어날 때 일어난 사건을 자세히 일러 주었습니다. 그때 그는 방으로 들어가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틀이 지나서야 문을 열고 어디론가 달려갑니다. 그가 간 곳은 그 어머니의 무덤이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무덤을 끌어안고 울고는 자신의 옷을 하나씩 벗어서 그 무덤을 덮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 그때 얼마나 추우셔서요 그리고 얼마나 부끄러우셔서요”하면서 하염없이 울었답니다. 부끄러움과 추위를 참아가면서 자식을 위해 죽을수 있는 분이 어머니입니다. 영혼의 전도자는 이런 유모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자녀들의 아버지,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의 단 한 분 아버지가 되는 하나님의 입장을 헤아리며, 그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 하나님의 책임을 의식하여 이 땅에 그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한 교회 공동체, 사회 공동체, 국가 공동체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우리는 양육해야 합니다. 이사명은 오늘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맡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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