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제목: 그분의 사랑 때문에
1960년대에 휘튼 대학을 수석 졸업하고 교수직을 얻은 짐 엘리엇은, 에콰도르의 아우카 족이 너무 흉포하여 아무도 그들에게 접근하지 않아 복음을 받지 못했다는 글을 읽고 아우카 족에게로 갔습니다. 그리고 몇 달간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마침내 짐 엘리엇을 찾기 위해서 나섰던 수색대들은 참혹하게 찢겨서 죽어 있는 그의 시체와 유품들을 발견했습니다. 지금은 폐간된 「루크」라는 잡지에 화보가 그대로 실려 온 세계가 경악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이 짐 엘리엇의 부인이 1년 후, 간호원 훈련을 한 뒤에 아우카 족에게로 들어간 것입니다. 남편이 사랑해서 죽었던 그 민족을 향해서 간 것입니다. 그런데 아우카 족의 특징은 남자는 죽이지만 여자는 죽이지 않는 것입니다. 여자를 다치게 한 자는 비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이 부인은 모르고 갔습니다. 그리고 5년 동안 그들을 위하여 헌신하였습니다. 안식년이 되어 돌아간다고 하자 추장이 온 부족들을 모아 놓고, 파티를 열어주면서 물었습니다. “늘 앞서서 고통을 함께하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사실은 5년 전에 당신들이 죽인 그 사람이 내 남편입니다. 그리고 나와 내 남편이 섬기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살게 된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우카 족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했습니다.
제목: 극약 같은 죄
어느 교회 목사가 주일 아침 설교에서 죄에 대하여 아주 강하게 말했더니 이튿날 어느 여자 교인 한 분이 목사 집에 찾아와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목사님, 어제 설교에서는 죄에 대하여 너무 솔직하게 말씀하셨어요. 우리 애들이 그 말씀을 듣고 그러지 않아도 교회에 잘 나오지 않으려 하는데 앞으로는 너무 그렇게 솔직하게 죄에 대해서는 말씀 안하시면 좋겠어요." 이 충고를 듣고 있던 목사가 일어나더니 약장에 가서 '극약'이라고 쓴 약병을 가지고 와서 그 교인에게 하는 말이 "자매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는 뜻을 잘 알겠습니다. 자매님의 말씀은 이 약병에서 '극약'이라고 쓴 딱지를 바꾸라는 말씀이지요. 제가 이 독약이 든 병에서 '극약'이라고 쓴 딱지를 떼버리고 '꿀'이라고 써 붙이면 좋을까요? 그러면 위험하지 않겠지요? 자매님, 사람이 듣기 좋은 말로만 하면 더욱 영혼을 죽이게 됩니다." 했답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사람들은 죄라는 말을 듣기 싫어합니다. 기왕이면 듣기 좋은 말을 썼으면 하는 사람이 많고 아예 어떤 이는 교회에서는 죄라는 말을 빼고 윤리적인 말이나 철학적인 지식이나 때로는 정치적인 발언이나 했으면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극약이 든 병에서 극약이라는 딱지를 떼버리라는 말과는 꼭 같은 것입니다. 이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성경은 죄의 비극적인 결과에 대해서 두려움 없이 솔직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제목: 금보다 소중한 것
캐나다 동남부 클론다이크라는 곳은 유명한 금광지역이다. 몇 년 전 한 토굴 속에서 다음과 같은 유서가 발견됐다. “금이 너무 많이 나와서 세월 가는 줄을 몰랐다. 이제 식량은 떨어졌다. 우리는 금덩이를 옆에 놓고 눈에 갇혀 죽어간다” 그들은 굴속에서 자고 먹으며 정신없이 금을 캤다.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겨울의 한복판에 와 있었다. 평생을 쓰고도 남을 금덩이가 결국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가끔 굴밖에 나와 바람이라도 쐬었더라면 이런 죽음은 면했을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 과속을 멈추고 심호흡이라도 한번쯤 해보자.
제목: 금식대신 감사를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반 이상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게다가 남아있는 사람들마저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도무지 밝은 전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금식기도를 선포하고 경건한 이 신앙인들이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이 상황을 돌보아 주십시오.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를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땐가 또 한 번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자 그들은 다시 금식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식 기도를 놓고 의논하는 자리에서 어떤 농부 한사람이 이렇게 제의를 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리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농사가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지만 이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량이 풍족치 않고 여건이 유럽보다 편안하지는 않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열려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금식 대신에 감사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농부의 그 말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금식기도 주간을 선포하는 대신 감사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 감사 주일의 기본 동기인 것입니다.
목회자를 섬기는 한국강해설교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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