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장28-30)
성경본문 : 마태복음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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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고행이라고 생각하고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전도를 하다보면 “예수 믿으면 무슨 재미로 살아요” “젊은 날에 세상재미 다 보고 늙어서 예수를 믿을께요”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신앙생활은 고행이고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일까요?
물론 예수를 믿으면 하지 말아야 될 것도 많고 또 해야 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신앙생활은 고행도 아니고 무거운 짐을 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를 자유케 하고 잃어버린 감격과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고 참된 안식과 쉼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이 왜 우리를 부르셨는지 그 부르심의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 초청의 대상: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우리 주님이 부르시는 대상이 누구입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입니다.
그러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당시의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지워준 종교적인 짐, 율법적인 짐 때문에 피곤하고 지쳐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넓은 의미로 볼 때 죄악의 짐을 비릇한 인생의 무거운 짐 때문에 힘들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인생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워 용기를 잃고 낙담 중에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당신을 힘들게 하고 한숨짓게 만들고 낙담하게 만드는 인생의 무거운 짐은 무엇입니까? 내 인생의 가장 무거운 짐은 죄책감을 통하여 나의 영혼을 짓누르는 죄악의 짐입니다.
그 밖에도 내 사랑하는 자녀가 내 인생의 무거운 짐이 될 때도 있고 내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이 심지어는 나를 낳아준 부모가 내 인생의 무거운 짐이 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질병이, 때로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내 인생의 무거운 짐이 되어 내 인생을 낙망시킬 때도 있습니다.
또 버림받은 아픔과 상처가 내 인생의 무거운 짐이 되어 나를 가시처럼 찌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 그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을 부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주님은 포장마차로 가라! 안마시술소로 가라!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 다 내게로 오라” 어떤 특정한 사람만이 아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돈 있는 자도, 가난한 자도, 배우지 못한 자도, 배운 자도, 권력을 가진 자도,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자도, 상처를 준 자도 상처를 받은 자도 누구든지 오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초청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기서 쉬게 하리라는 말은 참된 안식과 쉼을 말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입니다.
예수님만이 참된 쉼과 안식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품에 안길 때 우리는 참된 안식과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시대의 문제는 따뜻한 품이 없다는 것입니다.
과학문명이 편리함을 가져다 주었지만 품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어린이에게는 어머니의 품이 필요하고 남편에게는 아내의 품이 필요하고 아내에게는 남편의 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품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왜 청소년들이 거리를 방황하고 있습니까?
엄마의 품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에도 왜 서로 갈등하고 미워합니까?
서로 품어 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랑의 품이 없기 때문입니다.
죄인 된 우리에게는 주님의 품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품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인생의 짐을 지고 계십니까?
주께로 나아오십시오.
돌아와 주님의 품 안에 안기십시오.
주님의 품안에만 참된 쉼과 안식이 있습니다.
주님의 품에는 따뜻함이 있습니다.
위로가 있습니다.
자비와 긍휼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의 품에만 참된 안식과 쉼이 있습니다.
세상의 권세와 물질이 당신에게 참된 쉼과 안식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세상의 출세와 성공이 당신에게 참된 쉼과 안식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세상의 과학문명이 당신에게 쉼과 안식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진정한 쉼과 안식을 원하십니까?
주님께로 나아오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우리 인생에 참된 안식을 주실 수 있는 분이 한 분도 안 계십니다.
□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참된 안식과 쉼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첫째로, 멍에를 메어야 합니다. 멍에가 무엇입니까?
소나 말의 목에 얹어서 수레나 쟁기를 끌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둥그렇게 구부러진 막대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멍에를 맨다는 것은 더 이상 나의 의지대로 나의 고집대로 내 마음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 밑에 들어가 예수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직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사십니까?
아직도 멍에를 메지 않는 송아지처럼 사십니까?
멍에를 메면 인생의 재미를 다 놓칠 것 같은 착각을 하고 계십니까?
참 안식은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로부터 속박을 받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멍에를 멘다는 것은 굴복하고 속박당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주님의 멍에를 메어야 모든 인생고의 멍에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말씀에 메임을 당하면 당할수록 자유함을 얻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참된 쉼과 안식을 얻고자 하는
첫째로, 주님이 주신 멍에를 메어야 합니다.
둘째로는 그 멍에를 메고 주님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배워야 할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온유하면 친절, 나약함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온유는 친절도 아니고 나약함도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온유는 ‘하나의 힘이 잘 조절되어 그것이 인격에 나타나는 덕성’을 말합니다.
역설적인 이야기같지만 이렇게 우리가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면 참된 안식과 쉼을 얻게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보복하고 복수하는 그 마음에 어떤 평안과 기쁨이 있겠습니까?
오른쪽 뺨을 맞았을지라도 왼쪽 뺨을 돌려대는 사람에게는 평안이 있지만 보복하고 복수하는 자에게는 평안이 없습니다.
그래서 흔히 맞는 사람은 다리를 쭉 펴고 자지만 때리는 사람은 움크리고 잔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하였어도 용서하고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평안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결코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고행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것은 우리에게 참된 쉼과 안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김은호 목사(서울 오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