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유대인들의 교육법 하브루타
친구에게 가르치기를 하면서 자신은 복습할 수 있으니 1석2조 효과가 있단다. 실제로 이 학생의 가르치기 공부법은 학습효과가 매우 뛰어나다. 미국의 행동과학연구소의 학습피라미드 모형에 따르면, 공부 후 24시간이 지난 뒤 기억에 남는 비율이 일방적 수업은 5%, 자습하기는 10%, 시청각수업은 20%, 토론은 50%였다. 그러나 남에게 설명하듯 가르치는 것은 90%가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이런 공부비밀에는 재구조화와 장기기억 전환이 있다. 친구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머릿속에서 재구조화가 일어난다. 한마디로 정리가 되는 셈이다. 또한 이렇게 설명을 하면 자신이 아는지 모르는지 스스로 판단하게 되고.. 모르는 것은 다시한번 복습할 수 있다. 설명은 단기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전환되는 효과도 있다.
하브루타 영재교육방법 : 질문하고 토론하여 학습하라!
복사 http://blog.naver.com/moeblog/220840328403
하브루타는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 토론, 논쟁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의미하는데 부모와 자녀가 혹은 친구나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입니다. 이것이 더욱 발전하면 토론이 되고 더욱 깊어지고 전문화되며 논쟁이 됩니다.
유대인들이 아이를 임신했을 때 태아에게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가정에서 식사를 하면서 아버지와 자녀가 질문하고 답변하는 것도 하브루타입니다. 자녀가 잠들기 전에 어머니가 동화를 들려주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이가 암기와 이해를 잘하기 위해 돌아다니면서 스스로 묻고 답하면서 중얼거리는 것도 모두 하브루타라 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질문하면서 수업하고, 학생들끼리 짝을 지어 서로 가르치면서 토론하는 일련의 과정도 여기에 속합니다.
하브루타의 위력
짝을 이루어 대화하고 토론하는 하브루타가 어떻게 특별한 유대인을 만들어 가는가? 하브루타가 어떻게 유대인들로 하여금 노벨상을 받게 하고,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만드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하브루타가 뇌를 격동시켜 최고의 뇌로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하브루타는 무엇보다도 뇌를 격동시키는 교육입니다. 왜 그런가? 질문과 토론, 논쟁만큼 뇌를 움직이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변호사와 검사의 법정 논쟁을 떠올려 보면 그들의 논쟁은 가장 격렬한 머리싸움입니다. 법정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하고, 상대방의 말을 정확하게 듣고 그 논리를 파악해야 하며, 자신이 왜 옳은지에 대해 치밀한 논리로 설득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예기치 못한 질문을 하거나 증거를 댈 때 그것에 대해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거나 대응하지 못하면 판결에서 지게 됩니다. 토론과 논쟁은 뇌를 계발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며, 고등 사고력을 기르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뇌를 격동시킨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생각하게 만든다는 말입니다. 질문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토론과 논쟁을 하려면 그 과정에서 치열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도 동시에 그것에 대해 반박할 말과 논리를 치열하게 생각해야만 합니다. 하브루타는 세상의 모든 대상과 사물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하게 만듭니다.
하브루타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납니다. 질문이 좋아야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질문이 좋아야 생각을 날카롭게 할 수 있습니다. 배움 역시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인간은 배우려면 질문을 가져야 합니다. 항상 의문을 가지고 질문해야 합니다. 의문을 갖는다는 것은 지혜의 출발입니다. 알면 알수록 의문이 생기고, 질문이 늘어납니다. 그래서 질문은 인간을 성장시킵니다. 유대인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어릴 적부터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데 이것이 호기심을 자극하여 창의적인 사고의 틀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왜?’라는 질문은 노벨상 수상자의 30%를 배출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불과 600만 정도의 인구로 자신들의 20배 규모인 아랍권에 둘러 싸여서도 당당히 맞설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최고의 공부법 하브루타
학습 피라미드(Learning pyramid)는 다양한 방법으로 공부한 다음에 24시간 후에 남아 있는 비율을 피라미드로 나타낸 것입니다. 이 피라미드를 보면 강의 전달 설명은 5%, 읽기는 10%, 시청각 교육은 20%, 시범이나 현장견학은 30%의 효율성을 갖습니다. 우리가 학교나 학원에서 교사가 강의를 통해 설명하는 교육은 5%에 불과하고, 학생들이 책상에 앉아 열심히 읽으면서 공부하는 것이 10%, 그렇게 강조해온 시청각 교육은 20%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토론은 50%, 직접 해보는 것은 75%,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90%의 효율을 갖습니다. 이것은 친구를 가르치는 것으로 1시간 공부한 사람과 동일한 효과를 얻으려면 읽기는 9시간, 강의는 18시간을 해야 합니다. 친구를 가르치는 공부는 강의를 듣는 공부보다 18배의 효율성을 갖습니다. 유대인들이나 핀란드 교육이 우리보다 공부를 덜하고도 성공하는 이유는 이런 공부의 효율성 때문입니다. 우리는 강의와 설명을 듣고, 읽으면서 외우는 수업이 대부분이지만, 유대인이나 핀란드는 토론을 하고 직접 해보고 친구와 토론하면서 서로를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교육은 듣고 외우는 형태에서 벗어나 친구와 토론하고, 직접 체험하고, 질문과 토론을 통해 친구를 가르치는 형태로 바뀌어야 합니다. 친구와 토론하고 직접 체험하면서 하는 소통의 공부가 바로 하브루타이며 90%의 효율성을 가진 최고의 공부방법인 것입니다.
우리의 공부는 한 마디로 ‘듣고 외우고 시험보고 잊어버리고’의 끊임없는 반복입니다. 우리에게 공부는 외우는 것이고, 책상에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이고, 혼자 책과 씨름하는 것입니다. 인내하는 것이고 견디는 것이며 엉덩이 싸움입니다. 우리 교육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생각하기를 가장 싫어하는 아이들로 만든다는 점입니다. 교과서에 있는 정답을 외워 정답을 찾는 시험만 계속 보다보니 외우는 것을 할 줄 알아도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어떤 미래가 있을까요?
일방적으로 강의하고 설명하는 것을 듣고, 혼자 책과 씨름하는 공부는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을 만들 뿐입니다. 그렇게 외운 지식들은 이제 스마트폰 하나면 모두 해결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공부 방법을 소통과 질문, 토론으로 바꾸는 것은 한국 문화를 바꾸는 것이고, 한국의 미래를 밝게 하는 것입니다.
[출처] 행복한 교육 15년 2월호
13〉리더는 질문 잘하는 사람
육동인 강원대 초빙교수·직업학 박사
어느 나라건 그 나라의 사회적 성격이나 문화적 특징을 규정하는 용어가 있다.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중국의 ‘만만디’(천천히 천천히)가 상징적이다. 프랑스의 ‘톨레랑스’(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 방식에 대한 존중), 네덜란드의 ‘오베를러흐’(이해당사자 모두의 의견을 책상 위에 놓고 합의할 때까지 회의하는 것) 같은 표현도 유사하다.
이런 관점에서 유대인을 표현하는 용어는 ‘후츠파’다. “뻔뻔한, 용기 있는, 오만한”이라는 의미를 갖는 이 단어는 “다소 건방지게 보일지 몰라도 상대가 누구인지에 관계없이 끊임없이 당당하게 토론하는 문화”를 뜻한다. 21세기 이스라엘 경제성장의 비결을 연구한 ‘창업국가’라는 책에서는 전 세계를 주름잡는 유대인 창의력의 원천을 바로 ‘후츠파’에서 찾는다.
유대학자들은 대화와 토론을 하는 동안 평소 생각할 수 없었던 무수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때문에 저절로 상상력과 창의력이 길러진다고 가르친다. 대표적인 유대계 기업인 구글을 키운 에릭 슈밋 전 회장은 “회사의 성장동력은 신기술이 아니라 직원들의 대화와 토론”이라고 말할 정도다. 우리에게 익숙한 ‘브레인스토밍’도 결국 대화와 토론을 통해 아이디어를 모은다는 차원에서 같은 맥락이다.
대화와 토론, 다시 말해 건강한 소통문화는 조직의 경쟁력을 향상시킨다. 하지만 거꾸로 몰락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유명한 책 ‘아웃라이어(Outlier)’에서 저자 맬컴 글래드웰은 1997년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의 원인을 “기장의 잘못된 판단과 지시에 부기장이 감히 반대 의견을 내지 못해 발생한 비극”이라고 진단했다. 우리 사회의 수직적 위계(位階)로 인한 불통문화에 대한 뼈아픈 지적이었다. 20년이 지난 요즘도 대한항공 오너 일가와 관련된 이런저런 사건이 뉴스에 오르내리고,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행 재판에 ‘위계’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건강한 소통문화의 정착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