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설교예화

[스크랩] 아버지는 인생코치

작성자월삭|작성시간07.09.09|조회수53 목록 댓글 0


아버지는 인생코치
세계 명사를 키운 그 말씀 그 행동
빌리 그레이엄 목사

20세기 최고의 전도사로 북한에도 두차례나 다녀온 빌리 그레이엄 목사. 92년 4월 평양에서 김일성에게 성경을 전달하며 복음을 전했던 그는 지난 97년 자서전 <내 모습 그대로>(Just As I Am)를 내면서 두 가지 표지를 사용해 화제가 됐다. 양복 정장과 낡은 진 셔츠를 각각 입고 촬영한 사진을 썼는데 진 셔츠 차림이 크게 히트하면서 나오자마자 베스트 셀러로 뽑혔다. 가장 자리가 하얗게 헤진 셔츠를 입은 모습이 독자들에게 더욱 친근감을 준 것이다.
그레이엄 목사의 고향 집은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롯 근교의 큰 농장. 아버지는 대공황으로 우유 값이 폭락하고 거래 은행이 문을 닫는 바람에 예금을 몽땅 잃고 파산 일보 직전까지 몰리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가뭄이 들어 비 한방울 내리지 않아도, 농작물이 잘 자라지 않아도, 애지중지하는 암소가 갑자기 죽어도, 태연히 우스개 소리를 잘했기 때문에 이야기를 들으려는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 왔다.
아버지는 빌리에게 어릴 때부터 축사를 청소하고 우유를 짜는 일을 시켜 노동의 소중함을 가르쳤다. 갓 태어난 송아지를 맡겨 동네 친구와 함께 길러서 내다 판 돈을 나눠 갖도록 함으로써 동전 한 닢을 귀히 여기는 절약정신을 일깨워 줬다.
소를 팔러 갈 때도 아들을 데리고 갔다. 한번은 이웃 농가에 가서 한참 소 자랑을 늘어 놓으면서 흥정을 벌이고 있는데 빌리가 불쑥 끼여 들었다.
"아빠, 저 암소는 내가 젖을 짤 때마다 뒷발질을 해대는데요. 아주 신경질을 잘 부려요."
돌아 오는 길에 아버지는 엄숙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앞으로는 어른끼리 흥정할 때 절대로 끼여 들지 말아라!"
여름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온 가족을 이끌고 휴가를 갔다. 새벽 네시에 출발해서 열시간 동안 꼬박 차를 타고 가서 여러 민박 집을 일일이 돌면서 값을 확인하곤 가장 싼 집에 짐을 풀었다. 대개 1인당 1달러정도 하는 집을 용케 찾아내곤 했다. 기간은 2-3일에 지나지
않았지만 고된 농장 일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유일한 때였다.
농장 일은 참으로 힘 들었다. 어른들의 일손을 제법 거들만큼 자랐어도 힘에 부칠 때가 많았다. 밭에다 씨를 뿌리고 난 다음 노새가 끄는 쟁기를 잡고 가면서 비료를 주었다. 봄 여름 가을 내내 밀 보리 등 곡식과 채소를 가꾸면서 머슴 아이들과 뛰놀며 지냈다.
새벽 2시30분 시계가 따르릉 울리면 꼭지를 얼른 누르고 다시 이불을 뒤집어 쓴다. 하지만 소용이 없다. 2층 복도에서 벌써 묵직한 걸음 소리가 뚜벅뚜벅 다가 온다. 아버지다. 걸음 소리를 신호로 곧장 일어나 언덕 아래로 달려 내려가 머슴 페드로를 깨우는 게 빌리의 첫 일과였다.
그 길로 외양간에 가서 암소의 따뜻한 배에다 머리를 대고 젖을 짰다. 왔다 갔다 하는 꼬리에 맞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스무마리를 거치면 어느새 날이 밝아 오면서 아침 일과가 끝났다. 오후에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똑같이 우유를 짰는데 두시간 정도가 걸렸다. 그 다음엔 커다란 삽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쇠똥을 치우고 외양간을 청소했다. 청소가 끝나면 머슴들과 함께 건초창고와 사일로에서 싱싱한 건초와 사료를 가져다가 여물통에 채워 넣었다.
빤짝빤짝 빛나는 5갤런짜리 우유통을 아침 저녁으로 처리장까지 운반하는 것도 빌리의 몫이었다. 보통 오후 5시30분이 돼야 일이 끝났다.
고된 노동 때문에 저녁을 먹고 좀 쉬다 보면 졸려서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올 A에 가깝던 성적이 고등학교에 가선 C 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10학년 때는 프랑스어에 과락을 맞고 여름방학 때 친구가 모는 차를 2시간이나 타고 가서 담당 교사로부터 개인지도를 받기도 했다. 하루에 잠을 네시간 남짓밖에 못자는 생활이 계속 됐다.
어릴 때는 세계 최고의 부흥목사가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이모 집에 갔을 때 성경 책을 좀 읽으라는 말을 듣고선 10분만에 책장을 덮곤 쪼르르 달려가서 "한 권을 금방 다 읽었어요"라고 말한 적도 있다. 주일 날 교회에서는 친구가 성경 책 좀 달라고 부탁하자 휙 던져 주었다가 기관차처럼 씩씩 거리며 달려 온 사모에게 야단을 맞기도 했다.
"다시는 이런 짓 해선 안돼! 이 책은 하나님의 말씀이란 말이야."
목사의 설교도 딱딱하기 짝이 없었다. 우스운 예화 한마디 섞지 않아 어린 빌리의 눈에 마치 장의사같이 보였다. 찬송도 잠언을 내용으로 한 것밖에 부르지 않아 지겨웠다. 진창길 10마일을 운전해야 하기에 주일 저녁 예배에는 늘 참석할 수 없었다. 우유 짜러 가기 전에 어머니가 들려주는 성경 이야기로 보충했다.
아버지는 자녀들이 담배와 술을 가까이 못하도록 특별히 신경을 썼다. 빌리는 머슴 페드로에게서 씹는 담배를 배워 몰래 즐겼다. 꼬리가 길면 붙잡히기 마련. 어느날 입에 담배를 넣고 오물거리거리다가 아버지에게 들켰다. 그 날로 페드로는 해고당하고 말았다.
술에 대해서도 입도 벙긋 못하도록 아버지는 단단히 못을 박았다. 금주법이 폐지되자 맥주를 몇 병 가져 와서 빌리와 여동생을 부엌으로 부르더니 각자 한 병씩 마시도록 지시했다. 어린 나이에 목구멍을 동그랗게 해서 넘기는 요령을 어찌 알랴. 그냥 마셨더니 쓰디 쓴 맛에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남매의 표정을 보고 아버지는 말했다.
"지금부터는 어떤 친구가 술을 권해도 이미 맛 봤는데 싫더라고 말해야 한다. 이것만 이유로 대면 돼."
아버지는 전기톱을 사용하다 얼굴을 크게 다쳐 대수술 끝에 생명을 건진 다음부터 신앙에 불이 붙어 어머니와 같이 부지런히 부흥회에도 다녔다. 교회 일에도 열심이어서 샬롯 지역의 기독교 실업인 모임에서 전도대회를 열기 위해 목장을 빌려 달라고 하자 선뜻 승낙했다.
빌리가 열여섯 살 때였던 그 날 대회가 한창 진행 중일 때 학교에서 돌아오던 빌리는 찬송가가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었다. 일하던 머슴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거침없이 대꾸했다.
"아버지께 장소를 빌려 달라던 광신자들이 모였어."
빌리의 냉소적인 자세는 프로 야구선수 출신 빌리 선데이 목사의 샬롯 전도대회에서 마침내 깨지고 말았다. 회중 가운데서 나와 결신자 대열에 섰는데 눈물이 주루룩 흘러 내렸다.
아버지가 다가와서 팔로 어깨를 감싸 안아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아버지는 말했다.
"얘야, 네가 오늘 그 자리에 섰다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워."
세월이 흐른 뒤 아버지는 그 날 목장에서 열린 실업인 전도대회에서 목사가 한 기도 내용을 말해 주었다.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할 전도자가 이 샬롯 땅에서 나오게 하시옵소서."
그 전도자가 바로 집회장소를 제공한 집 맏아들일 줄 누가 알았으랴. 아버지는 빌리가 교회를 건성으로 다니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간절히 기도하셨다. 큰 아들이 자기를 대신하여 목사가 되어 길 잃은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를. 아버지의 기도가 크게 응답 받아 빌리는 세계를 교구 삼는 20세기 최고의 부흥목사가 됐다. <김 종 환 = 뉴욕일보>








=====================================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터넷①』
(≫≪) 미군 희생 여중생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창골산 봉서방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