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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 황

막달라 마리아의 기쁨

작성자스데반 황|작성시간26.06.15|조회수21 목록 댓글 0

막달라 마리아의 기쁨

                                                                                                  

요한복음 20:11-18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시신은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에 의해 최고급 왕의 장례가 치러졌습니다(참조, 요 19:39-41). 그리고 곧바로 오후 6시가 되면서 안식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인 토요일 오후 6시까지는 안식일이기에 아무도 시신을 만져서도 안 되고 어떤 일을 해도 안 됩니다. 그리고 토요일 오후 6시가 지나서 안식 후 첫날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이 끝났기에 누구든지 예수님의 시신에 접근이 가능하고 또한 주의 시신을 옮기거나 만져도 됩니다.

 

하지만 안식일이 끝나는 토요일 오후 6시 이후 저녁 및 밤에 누구든 아리마대 요셉의 새 무덤을 찾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단 3시간 내에 신속히 치른 장례라서 주의 시신이 아리마대 요셉의 새 무덤에 안치된 것을 아는 사람은 몇 사람 되지 않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몇 명의 여인들이 전부였습니다. 둘째는, 예수님은 반역자 및 신성 모독죄로 처형 당하였기에 그분을 찾아간다는 것은 그 무서운 죄에 동조하는 것이 되어 재판을 받고 형벌에 처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산헤드린 및 로마에 알렸기 때문에 누구든지 밤에 주님의 무덤을 찾아간다면 그는 그 시체를 훔쳐가려는 범인으로 간주되어 성전 경비병들에게 곧바로 체포될 것이 확실했습니다. 또한 그 무덤은 산헤드린 회원들이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성전 경비병을 동원하여 그 무덤을 인봉하고 지키고 있었기에 그 무덤의 큰 돌을 굴려 그 안에 들어가거나 주의 시신을 꺼내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이 끝난 토요일 오후 6시 이후에 그곳을 찾아가더라도 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제 사도 요한은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 해뜨는 시간부터 막달라 마리아에게 집중하여 기록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주일 미명, 곧 해 뜨는 시간에 큰 지진의 발생과 함께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 같습니다. 물론 두 천사장이 부활의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다가 영접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천사들은 빈 무덤에 잠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때 성전 경비병들은 큰 지진과 함께 천사들이 등장하자 혼비백산하여 모두 도망쳐 버렸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20장 1-2절을 보겠습니다.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을 향해 달려갑니다. 하지만 요한은 젊고 베드로는 늙었기에 요한이 더 빨리 달려가서 무덤에 이릅니다. 더욱이 요한은 아리마대 요셉의 새 무덤 위치를 어머니 살로매를 통해 듣고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무덤에 이르니 경비병은 아무도 없고 무덤을 막고 있던 큰 돌은 옮겨져 있었기 때문에 요한은 무덤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요한이 안을 들여다보니 "세마포가 놓인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섬세하고 조심스런 사람이기에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베드로가 도착하였고, 그는 성격이 급하고 불 같은 사람이기에 당장 무덤 안으로 들어가 확인합니다. 무덤 안에는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지 않았고 다만 주님을 쌌던 세미포와, 가시 면류관 때문에 피흘린 머리를 쌌던 수건이 머리 맡에 따로 개켜져 놓여 있었습니다.

 

지금 요한과 베드로의 증언은 예수님의 시신은 누군가 훔쳐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입니다. 사도 요한이 베드로와 자신이 이 사실을 증언한 이유는 유대인들이 지어낸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

62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즉 안식일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63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64 그러므로 명령하여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클까 하나이다 하니

65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66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마 27:62-66)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대제사장들은 주의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 몇이 천사가 나타난 일들과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사건을 보고하자 곧바로 주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는 거짓말을 퍼뜨렸습니다.

[

11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12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13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14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15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마 28:11-15)

 

사도 요한은 유대인들이 지어낸 이러한 시체 도둑설을 완전하게 무너뜨리기 위해 예수님의 세마포와 머리 수건이 원래 자리에 있으면서도 머리 수건은 따로 개켜져 있었다는 사실을 증언하였습니다. 이는 누군가 시체를 도둑질해 간다면 세마포를 벗겨내어 원위치에 두거나 심지어 머리를 감쌌던 수건을 가지런히 개켜서 자리에 두는 일은 절대 있을 없기 떄문입니다. 

 

한편, 사흘까지 무덤을 굳게 지키라는 명을 받은 성전 경비병들은 주일 저녁 6시까지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을 지키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진이 나고 광명의 천사가 등장하자 너무나 두려워 도망쳤습니다.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마 28:2-4).

 

따라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여인들과 제자들은 주일 이른 아침에 자유롭게 열린 무덤을 들어갔다 나왔다 있었습니다. 

 

아무튼 요한도 베드로를 따라 예수님의 무덤 안으로 들어가서 보니 주의 시신을 쌌던 세마포와 주의 머리를 쌌던 수건이 따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머리의 수건은 개켜져 있었습니다. 이때 요한은 천사들이 여인들에게 전한 말을 기억하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실을 믿습니다. 물론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에 누차 하신 말씀도 기억이 나서 주님이 부활하신 사실을 믿었습니다(막 8:31).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단지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적 사실만을 믿었을 뿐, 주의 부활이 하나님의 구속 경륜에 있어서 얼마나 어마어마한 의미가 담겨 있는지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유월절 만찬에 나누셨던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에 실린 위대한 다락방 강론에 대해서도 아직은 거의 이해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이해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배울 때에야 주의 영의 조명하심으로 확실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이 … 생각났더라"(요 12:16).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도 주의 부활에 대한 소식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상태였으나 영광을 얻으신 부활의 예수님의 설명을 듣고 깨닫게 됩니다.

[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32 (그 후)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더라

](눅 24:22-32)

 

제자들이 숨어서 모여 있는 곳에 부활의 예수께서 그 안으로 들어오셔서 제자들에게 전하십니다.

[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 24:44-48)

 

그러므로 바울은 영광의 주 예수께서 보내신 성령의 조명하심 외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증거하는 십자가 구속의 의미를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2-24)

 

[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고전 2:8-14)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를 알기 위해 늘 성경을 가까이 하되 성경이 알려주는 구속적 의미를 알기 위해 영광의 주 예수께 성령으로 조명하여 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인간의 지혜로는 결코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과 십자가 구속의 은혜를 올바르게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주의 부활로 인한 빈 무덤을 보면서 그들은 주께서 부활하신 역사적 사건은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 구속적 의미를 알지 못하는 두 제자는 아무런 감동 없이 각각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려고 왔지만 시신이 사라졌으니 난감한 상태에서 눈물만 흘리며 무덤 근처에 서 있습니다.

 

오, 성경에서 제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 여인은 바로 예수님의 빈 무덤 앞에서 울며 서있는 여인입니다. 바로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막달라는 갈릴리 근처의 한 마을이며 막달라 마리아란 막달라 마을 출신의 처녀 마리아를 의미합니다. 마리아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마라)에서 온 것으로 '고통' 또는 '괴로움'이라는 뜻입니다.

 

룻기1장20절을보면룻의시어머니나오미가남편과두아들을다잃고난후에자신을"마라"라고부릅니다. 그만큼남편과자식을잃은슬픔이크기에"기쁨" 이란뜻의나오미란이름을고통이란뜻의"마라"로바꾼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막달라 마리아는 그 이름처럼 참으로 말도 다 할 수 없는 고통의 여인이었습니다.

 

성경을 잘 연구해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남편도 없고 자녀도 없습니다. 부모도 없고 친척도 없습니다. 그녀는 가난하였으며 괴로운 인생을 사는 외로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비참한 것은 누가복음8장 2절을 보니, 그녀는 일곱 귀신이 들린 여자였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 악귀를 쫓아내심을 받은 …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가 … 그들을 섬기더라"(눅 8:1-2).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린 가난하고 외로운 비참한 여인이었습니다.

 

성경은 귀신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나 타락한 천사”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귀신들을 큰 날의 심판 때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어둠에 가두었습니다. 즉, 심판 때까지 어둠의 무저갱에 갇혀 있게 하셨습니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유 1:6)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벧후 2:4)

그러므로 귀신들은 어둠에 갇혀 있는 '더러운 귀신' 또는 '더러운 악령'입니다.

 

한편, 귀신들린 현상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거짓 예언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귀신이 주는 충동으로 자해나 자살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마가복음 5장을 보면 귀신들린 사람의 현상을 몇가지 보여줍니다.

[

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막 5:2-5)

 

그리고 시공간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특정 지역에 머물기도 하고 심지어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

11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13 …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15 … 그귀신들렸던자가옷을입고정신이온전하여앉았더라

16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사람들에게 알리매

17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막 5:11, 13, 15-17)

 

또한 귀신은 사람의 몸을 주장하여 거품을 흘리게 하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도 하며 불이나 바다나 낭떠러지에서 죽이려고 시도하기도 합니다. 

[

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 귀신이어디서든지그를잡으면거꾸러져거품을흘리며이를갈며그리고파리해지는지라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막 9:17-18, 20-22)

 

몇 년 전 성추행과 교회 재정 배임 횡령등의 부패와 비리 등으로 감옥살이를 한 수 세상을 떠난 김*기&동이라는 거짓 목사는 1970년대 말부터 소위 “귀신론”이라는 엉터리 신학으로 한국 교회를 어지럽게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창세기 6장 3절의 말씀과 한국의 무속적 귀신관을 합쳐서 이상한 귀신론을 만들어 기독교의 진리를 왜곡 시켰습니다.

 

김*기&동 목사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날수를 120년으로 정하였으며 따라서 그 전에 죽는 사람은 그 남은 기간동안 착한 귀신 또는 악한 귀신으로 활동한다고 합니다. 고약한 인간이 40에 죽으면 80년 동안 이 세상에 귀신으로 떠돌며 고약한 짓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좀병이던 감기병이던 다 이 못된 귀신들이 하는 짓이라 하며 병을 낫기 위해서는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귀신을 내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무좀 귀신아 물러가라!"와 같은 기도와 축술을 자행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귀신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아니라, 사탄의 종들이며 타락한 천사들이며 지정의가 있는 영물이라고 알려줍니다.

 

한편, 김*기&동 목사는 이러한 엉터리 귀신론을 가르쳤으나 또한 극 반대편에서는 귀신이나 마귀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귀는 지어낸 이야기라며 귀신에 대해 알려주는 성경을 무시합니다. 귀신은 단지 인간의 신체적 화학 작용이나 정신적 착란 증상으로 보며 마귀의 일을 우습게 여깁니다. 이들은 현대 의학 및 과학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신봉함으로 사탄의 악한 역사를 전혀 보지 못합니다. 이 역시 간교한 마귀가 고차원적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역사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이미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귀신들린 상태의 증상은 여러가지로 나타나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내가 내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더러운 귀신이 나의 몸과 마음을 주장하는 상태입니다.  

 

과거에나 현재에나 분명하게 귀신들린 증상을 알 수 있는 현상은 바로 한 사람에게서 이중인격, 또는 삼중 인격, 심지어 다중 인격이 실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귀가 귀신 들린 사람을 통해 직접 말하는데 이는 귀신이 그 사람의 몸과 생각을 어거하기 때문합니다. 여자인데 남자소리가 나고, 남자인데 여자로 행동합니다. 내 몸을 이용하여 귀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합니다. 심지어 얼굴 표정으로 동물의 흉내도 내고 동물 소리도 냅니다. 왜냐하면 귀신이 들어가서 귀신들린 사람의 몸을 장악하여 자기 멋대로 조종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귀신들린 사람의 삶은 만신창이요, 원치 않는 죄악의 노예가 되는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린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일곱의 서로 다른 더러운 귀신이 이 여인의 마음과 몸을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이 여인의 상태는 구제 불능이며, 지옥자체이며, 죄악 덩어리요, 오직 죽음만을 기다리는 최악의 상태였습니다.

 

한 사람만 귀신들려도 온 집안과 마을이 법썩이고 난리가 나는 데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나 들렸으니 어떠했겠습니까! 막달라 마리아는 홀로 버려진 여인일 뿐만 아니라, 무섭고 끔찍한 사탄의 죄사슬 아래에서 난폭하고 악랄한 귀신들의 폭력과 고통 속에 신음하던 여인이었습니다. 언제 발작스런 행동을 할지 모르는, 악령들이 가득한 그런 비참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친구도 없었고, 나아가 모든 사람에게 철저히 버림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일곱 귀신들에게 너무나 많이 유린당하여 만신창이가 되고, 시시때때로 원치 않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끔찍한 죄악과 사고들을 치고 다니는 상태의 여인이었습니다. 가끔 귀신들이 쉬는 틈을 통해 자신이 벌여 놓은 일을 보면 너무나 어이가 없어 날마다 죽고만 싶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을 용기와 힘마저 상실한 가엾은 여인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이런 지독히 비참한 상황에서 가련한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을 만난 그 날! 주님께서는 이 여인에게서 일곱 귀신을 떠나게 해주셨습니다. 주님을 만난 그 날은 마리아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날이었습니다. 마침내 마리아 자신이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시 얻는 날이었습니다. 정말로 그 날은 다시 태어난 것과 다름 없는 날이었습니다. 더럽고 악랄한 귀신에 의해 이제 내 삶이 조절 당하지 않고, 내가 나의 삶의 주인이 되는 참된 자유함을 맛본 날이었습니다. 따라서 마리아에게 있어서 주님을 만난 그 날은 그녀의 인생에서 최고의 날이요 가장 멋지고 복된 날이었습니다.

 

이제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는 조용히 제 정신으로 앉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그녀의 몸과 마음은 귀신의 것이 아니라 마리아 자신의 것이 되었습니다.  귀신으로부터 해방될 때의 그 환희와 기쁨과 감사와 감격은 도무지 말도 다 표현할 수 없었고 더욱이 그녀는 그녀를 고쳐주신 메시야 예수님과 인격적 교제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 날부터 그녀를 귀신의 저주와 사슬로부터 구원하여 주신 우리 예수님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눅 8:2-3).

 

일곱 귀신이 나간 이후로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을 깊게 사랑하고 존경하며 주님 평생에 그 분 곁에서 우리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주님과 열 두 제자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가서 그들과 함께 하며 섬겼습니다. 그녀는 여인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헌신하면서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옷도 꿰메고 청소도 하고, 심지어 굳은 일을 하여 돈도 벌어와서 주님 및 열 두 제자를 도왔습니다. 아무리 일이 고되더라도 자신에게 새로운 인생을 주신, 사랑하고 존경하는 우리 주님의 일을 돕는 것이므로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죄 사함을 받은 상태에서 새로 얻은 자신의 몸으로 오직 주님만 사랑하며 주를 맘껏 섬기는 여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마운 주님이 십자가 형을 당하게 됩니다. 신성모독죄와 반역죄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로마 병정에게 끌려가는 주님을 본 막달라 마리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주님이 얼마나 거룩하며 정직하시며 또한 얼마나 사랑이 많은 분인지 너무나 잘 아는 마리아입니다. 더욱이 그분을 선지자와 메시야로 믿는 마리아는 그녀의 남은 삶을 고귀한 그분께 다 바치기로 다짐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어떻게든 막고 싶은데, 막고 싶어도 막을 수 없고,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는 힘없는 여인일 뿐입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입니다. 그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주님이 십자가를 끌고 가시는 골고다까지 초조함과 염려와 두려움과 좌절 속에 따라온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께서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오르는 것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고통하며 신음하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멀리서 다 지켜 보았습니다. 그녀의 가슴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고통 당하시다가 죽는 것을 보고 갈갈이 찢겨 버렸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막 15:40-41)

 

새로운 삶은 얻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있어서 새로 찾은 유일한 삶의 목적이요, 위로요, 사랑이었던 우리 주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당하시는 현장은 이 무능하고 가엾은 한 많은 여인에게 견딜 수 없는 슬픔과 좌절과 공포를 안겨다 주었습니다. 참으로 견딜 수 없는 복잡하고 힘든 감정 속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할  수 있는 일은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의 모습은 그녀의 삶에 있어서 모든 소망과 기쁨이 산산 조각나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주님을 만나 간신히 되찾은 삶의 목적을 다시 다 잃어버린 상태가 된 것입니다. 또 언제 일곱 귀신이 다시 찾아올 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제는 어디로 가야할 지, 무엇을 할지, 누구를 의지해야 할지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고통과 죽음을 바라본 처량한 마리아! 그 마리아는 다시 '마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너무나 많이 사모한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이 어디에 묻히는지 본 후 잠시 하루 동안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가슴을 치며 슬픔을 안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주님의 무덤을 떠납니다.

 

그리고 안식일이 끝나기를 간절히 기다린 후, 일요일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무덤으로 달려옵니다. 무덤에 와 보니 주님의 시신이 없습니다. 큰 일이 났습니다. 너무나 당황스러웠습니다. 주님을 너무나 사랑한 마리아는 마지막으로 그 시신에 향을 뿌리며 감사의 사랑을 고백하기를 원했는데, 안식일을 지키기 위하여 자리를 빈 사이에 주님의 시체가 사라진 것입니다. 주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 가련한 한 여인이 급하게 뛰어다니며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걸 어쩌나! 주님의 시체가 없어지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그 와중에 제자들을 기억하고는 제자들에게 달려갑니다. 눈물을 흘리며 달립니다. 가난한 농부의 딸이 병든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을 알리기 위하여, 들에 있는 아버지에게 그 슬픈 소식을 알리기 위하여 달리는 그러한 슬픔과 눈물의 달리기입니다. 이 황당하고 슬픈 소식을 제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달려가는데 눈물이 앞을 가려 달릴 수가 없습니다. 마침내 제자들이 있는 곳에 도착하였습니다. 마리아는 고통과 좌절 속에 숨을 헐떡이며 눈물로 외칩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의 시체가 없어졌어요! 우리 주님의 시체가 없어졌어요!"

그녀는 눈물로 눈이 퉁퉁 부은 채 큰 소리로 제자들에게 외쳤습니다.  

 

시체가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시몬 베드로와 요한이 달려왔습니다. 그들은 무덤을 보고 확인했습니다.

'아! 정말로예수님의시신이없어졌구나!'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제자들의 반응은 마리아에게는 정말로 기가 막힌 것이었습니다. 마리아는 그들이 함께 눈물을 흘리며 주님의 시체를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할 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0절을 보니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본 후 각각 뿔뿔이 흩어진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11절에서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자들은 갈 곳이 있었으나 막달라 마리아는 갈 곳이 없습니다. 그녀는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계시는 곳이면 그곳이 이 여인의 집이었습니다. 이제 갈 곳이 없습니다. 그 당시는 도굴범들이 하도 많던 시대라 그녀는 '누가 우리 주님을 훔쳐 갔을까' 하는 걱정을 합니다. 근심하는 마리아의 손에는 여전히 시체에 바르려고 준비한 향유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시신에 향을 부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주님의 시체라도 보며 향을 뿌리며 시체 썩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연장시키며 이 한 맺힌 여인의 말로 다 표현 못할 감사를 죽은 시체에 쏟아부을 수 있을텐데….'

 

주님의 시체가 안치되어 있던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 앞에서 그녀는 손에 향유를 들고 멍청이 서서 기다리고, 울고, 낙망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혹시 내 눈이 잘못 본 것이기를 바라보며 또 무덤 안을 들여다 봅니다. 그때 놀랍게도 무덤 안에 두 천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말합니다.

[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요 20:11-13)

 

놀라운 것은, 마리아 앞에 나타난 두 천사마저도 이 슬픔의 여인에게는 놀라움도, 위로도 되지 않았습니다(12-13). 오직 이 여인이 원하는 것은 예수님의 시체이며 누가 그것을 가지고 갔는지를 알고 싶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녀 앞에 갑자기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십니다. 하지만 그녀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슬픔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요 주님을 만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예수께서 먼저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말합니다.

"당신이 우리 예수님의 시신을 옮겼습니까? 어디다 옮겼는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그 시신을 가져가겠습니다."

 

그녀는 흐느끼는 고통 속에서 부활의 주님을 알아 보지 못합니다. 이에 우리 주께서 가련한 눈물의 여인 말달라 마리아를 친히 부르십니다. 다정한 목소리요, 마리아의 마음을 잘 아시는 우리 주님의 음성입니다.

"마라아야!"

부활하신 주님이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시자 주의 익숙한 음성을 알아듣고 마리아의 눈이 열립니다. 주님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깜짝 놀랍니다. 터질 것 같은 반가움과 기쁨으로 마리아가 대답합니다.

"랍오니"(선생님!)

주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는 감격의 눈물을 터뜨리고 맙니다. 그리고 너무나 반갑고 좋아서 주께로 달려가 주님께 메어 달립니다. 이에 예수께서 마리아를 진정시키시며 말씀하십니다.

"마리아야, 이렇게 메어 달리지 말거라. 내가 아버지께로 올라가야 한단다. 그러면 내가 너에게 성령으로 다시 오마. 그 대신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내가 한 말을 전해 주거라.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이렇게 하여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우리 주님을 만난 첫번째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지금까지 십자가에 돌아가신 주님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순간, 그녀에게는 모든 슬픔과 절망이 순식간에 다 사라지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과 더 가까운 교제를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승천 이후 약속대로 성령으로 그녀의 마음 속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녀에게 이 사실은, 부활하신 주님이 자신의 영혼 안에 계시는 것을 확증시켜주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막달라 마리아는 가장 큰 위로와 확신을 갖고 주와 동행하며 남은 삶을 힘차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사랑하는 주님을 실제적으로 눈과 눈으로 맞대고 볼 날을 기다리며 성령으로 자신의 영혼에 와 계신 주님을 사랑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천국 복음 사역을 죽는 날까지 기쁨과 확신으로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독교의 중심은 죽음의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두 번 만나야 합니다. 한번은 십자가의 주님을 만나야 하고 또 다른 한번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직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만을 만나고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우리가 죄사함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받았으되 날마다 또 다시 패배하고 쓰러져 우는 마리아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진정한 시작은, 부활하여 승리하신 우리 주님을 실제로 성령 안에서 만나며 주의 생명과 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성령 강림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로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신 부활의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이 땅에 살지만 하늘 나라의 시민이며, 죄 많은 세상에서 살지만 우리 주님을 실제로 만나며 그 부활의 주님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풍성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만나기 전 막달라 마리아처럼 죄와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죄라는 폭군 아래 신음하며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죄에 시달리며 늘 죄에 패배하며 살던 비참했던 우리들이었습니다. 죄를 이기고 싶어도 이길 수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의 종노릇하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우리의 삶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소망과 능력과 감사와 평강과 기쁨이 넘치는 삶이 되었습니다. 확신과 감격 속에서 날마다 춤을 추는 듯한 하늘의 황홀함 가운데 사는 삶이 되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으로 우리의 영혼에서는 생수가 흘러넘치는 삶이 되었습니다.

 

오,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한 신앙 생활은 무덤 앞에 서 있는 비참한 막달라 마리아와 다르지 않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적이 없을 때, 우리는 하늘의 기쁨과 신령한 은혜를 알지 못하기에, 미움과 시기와 분쟁과 악독이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게 됩니다. 부활의 주님으로 인도함을 받지 못한 인생은, 자존심과 이기심의 자세로 살기에, 결국 허무와 미움과 후외와 절망으로 마치게 됩니다.  

 

오, 부활하신 주님께로 달려갑시다. 우리를 만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온갖 고통을 한없이 당하시고 갖은 수모를 다 겪으시고 보혈을 흘리고 죽으신 후 부활하신 우리 주님을 만납시다. 그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만일 우리가 오늘의 삶의 순간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우리에게 아무런 역사를 나타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구속사적 의미를 모르는 성도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능하게 되고, 세상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쓸모 없는 소금처럼 될 것이며, 이에 불신자들이 빛을 잃은 교회와 하나님을 조롱할 것입니다. 오, 부활의 주님을 모르는 자들은 구원 받은 것 같으나 구원의 능력을 모르는 가련한 자들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납시다. 그분은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서 만유를 다스리십니다. 그분은 지금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분을 영접하기 바랍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가 되면, "랍오니" 하고 외치며 감격과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에 부활하시고 승리하신 우리 주 예수께서 성령으로 우리 모두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의 모든 슬픔, 고통, 외로움과 좌절을, 마리아가 체험했던 기쁨과 감사와 승리로 바뀌어 주시기를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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