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그 이후
사도행전 2:22-24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위 내용은 교회의 첫 번째 설교인 베드로의 설교의 일부입니다. 22절에 보면, “나사렛 예수”라고 되어 있습니다.
먼저 첫째로 예수라는 이름과 나사렛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라는 단어는 헬라어입니다. 이 단어를 히브리어로는 여호수아라고 합니다. 여호수아의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입니다. ‘여호수아’를 줄여서 말하면 ‘예수아’라고도 합니다.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구약 성경에 자주 등장합니다. 모세의 뒤를 이른 장군이 바로 여호수아였고(출 24:13),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에게 언약궤를 빼앗겼을 때, 그 궤로 인하여 블레셋 사람에게 재앙이 임하자 암소에 수레를 연결하여 그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낸 곳이 벧세메스에 사는 여호수아라는 사람의 큰 돌 있는 곳이었습니다(삼상 6:12-14). 구약의 요시야 왕 때에 큰 종교 개혁이 발생했는데 그때 예루살렘의 성의 지도자 이름도 여호수아였습니다(왕하 23:8).
특히 제사장들의 중에도 여호수아가 종종 있었습니다(대하 31:14-15). 우리가 잘 알다시피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된 후 예루살렘에 총독과 대제사장이 서게 되는데 그때 유다 총독은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이고 대제사장은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였습니다(학 1:1; 슥 3:8).
이처럼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구약 시대의 유다 사람들에게는 흔하였고, 신약 시대에 들어와서도 주후 2세기 초까지는 흔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바나바와 사울이 선교 여행을 다닐 때 바보 섬에서 “바 예수”라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납니다(행 13:6). “바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예수의 아들”이라는 뜻인데, 이는 이 거짓 선지자의 아버지 이름이 ‘예수’였고 자신은 그 아들로서 ‘바 예수’라고 이름을 짓게 된 것입니다.
또한 바울 서신에도 “유스도라 하는 예수”가 등장합니다(골 4:11).
그러므로 그 당시 사람들과 성경은 예수님을 말할 때 동명의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기 위해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예수”(마 21:11), “유대인의 왕 예수”(마 27:37), “나사렛 예수”(요 18:5), “다윗의 자손 예수”(막 10:47)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주후 2세기 후부터는 ‘예수’라는 이름은 거의 자취를 감춥니다. 아마도 ‘예수’라는 이름이 메시아에게 구체적으로 사용됨으로써 감히 그 이름을 쓰지 못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한편,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꿈 속에 나타나 마리아가 낳는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으라고 지시하면서 그 아기의 사명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라는 이름과 소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로서 “여호와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분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는 나사렛 예수입니다. 나사렛이란 말이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얻게 된 것은 메시아가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될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성읍 중에서 나사렛은 참으로 멸시를 받던 작은 동네였습니다. 이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사렛이라는 멸시 받는 성읍에서 멸시 받을 메시아가 나올 것이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시기 전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 동네에서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법적인 아버지 요셉은 다윗 왕족에 속하였기 때문에 그의 본적은 예루살렘 근처의 베들레헴입니다. 하지만 요셉 역시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 둘은 정혼하였고, 마리아는 성령으로 임신하게 됩니다. 그때에 로마 황제 시저 어거스터스가 칙령을 발표합니다. 그 칙령은 로마 제국에 속한 모든 사람은 태어난 고향으로 가서 호적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요셉은 가장이기 때문에 아내 마리아를 데리고 그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을 낳고 살게 됩니다. 하지만 헤롯 왕이 예수님을 찾아서 죽이려고 2살 이하의 아이들을 전부 살해하라는 명을 내림으로 요셉과 마리아와 아기 예수님은 애굽으로 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다가 헤롯 왕이 죽자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건너와서 그들이 원래 살던 곳인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 동네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애굽으로 가서 약 2살까지 살다가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와서 갈릴리 나사렛에서 산 것입니다. 그 후 죽 거의 30년을 나사렛에서 삽니다. 물론 공생애가 시작된 후 세례 요한이 죽은 후에는 가버나움으로 가서 살게 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의 대부분의 인생을 나사렛 동네에서 살았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라는 칭호가 붙어 있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님의 공생애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먼저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빌립을 만나 제자로 삼습니다. 그러자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만난 후에 말하기를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고 말합니다. 즉, 갈릴리 지역에서는 이미 우리 예수님은 나사렛 예수로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때 나다나엘이 대답합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
이는 나사렛에 대해 일반 사람들이 어떤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잘 나타나는 대목입니다.
예수께서 복음 사역을 시작하시자, 귀신들린 사람이 두려워 떨며 소리지릅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막 1:24).
이는 영의 세계에서도 마귀들이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로 알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맹인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지릅니다”(막 10:47).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는 큰 무리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정확하게 나사렛 예수로 알고 있다는 뜻이며 심지어 맹인 바디매오도 ‘나사렛 예수’을 잘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호하며 외칩니다.
[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11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마 21:9-11)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해서도 일반 사람들은 그들을 나사렛 예수와 함께 하던 자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마 26:71-72).
가룟 유다가 돈을 받고 예수님을 팔 때 성전 군병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수많은 종들은 “나사렛 예수”를 찾으러 갑니다.
[
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
7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그들이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더라.
](요 18:4-5, 7-8)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일 때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기록하게 했습니다.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요 19:19).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날에 청년으로 나타난 천사가 여인들에게 말합니다.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요 16:6).
천사마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향해서 “나사렛 예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사렛 예수와 관련된 일인데 여인들이 그의 시체를 보지 못하고 그가 살아나셨다고 말하는 천사들을 보았다고 함이라”(눅 24:23).
나중에 그리스도인들이 활동하고 특히 바울 사도가 이방인들을 향하여 전도할 때 유대인들이 복음을 대항하며 나사렛 예수님의 ‘나사렛’을 본 따서 “나사렛 이단”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행 24:5).
이처럼 유대인들은 나사렛 예수를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그냥 자신들과 똑 같은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자신들과는 다른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알고 있었다면 예수님을 그렇게 함부로 대하지는 못하였을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친히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을 때는 예수님의 모든 모습이 인간들인 자신들과 너무나 같다고 보았기 때문에 참람하다며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한편,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있던 유대인들은 지난 30년 이상 나사렛 예수를 잘 알고 있었던 자들입니다. 그들 중에 35세 이상은 예수님보다 더 많은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날 때부터의 소문을 익히 들어 나사렛 예수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지난 3년 동안 있었던 일들은 계속적으로 유대 땅 전체에 퍼지는 소문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이전 대통령들의 사건들을 알고 있듯이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절기마다 예루살렘에 올라왔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직접 보고 아는 사람들도 많았고, 또한 예수님과 손을 잡고 대화를 하고 함께 놀던 갈릴리 사람들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지금 제가 사 복음서 전체를 통해 나사렛을 말하려는 것은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를 어릴 때부터 알고, 십자가에 죽을 때도 알고, 부활하신 이후에도 알더니, 오늘 베드로의 설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성령 강림 사건에 의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성령은 다름 아닌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되신 ‘나사렛 예수’가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한편, 바울은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이라고 부릅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도다”(고전 15:45).
즉, 첫 ‘사람’ 아담은 인류의 대표로서 인류를 영광의 자리로 이끄는데 실패하고 도리어 인류를 타락시킨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사람’ 아담은 새 인류의 머리로서 새 인류를 영광의 자리로 인도하는데 성공합니다. 이때 마지막 사람은 다름 아닌 ‘나사렛 예수’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를 사람들 앞에서 증언하십니다. 특히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땅에 살던 유대인들에게 증언하셨습니다. 무엇을 증언하셨습니까?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22절).
지금 이 말씀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인정한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인정하도록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으로 증언하셨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증언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를 통해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셨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사야 35장은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셔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을 예언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시면 그분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습니까?
[
4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사 35:4-6)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악한 헤롯 왕도 제거하지 않으시고 더욱이 로마 제국을 무너뜨려 이스라엘 나라를 세계 최고의 왕국으로 만드시려는 기미를 보이시지 않자 감옥에서 예수님에 대해 확인하고자 그의 제자들을 보내 묻게 하였습니다.
[
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마 11:2-3)
이때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자신이 구약이 예언했던 그 메시아인 사실을 이사야 35장 4-6절을 인용하여 입증하십니다.
[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마 11:4-6)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흠 없고 완전한 사람이 되었는데, 하나님은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나사렛 예수님을 통해 나타내심으로 그가 그리스도임을 증언하신 것입니다.
즉,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기적을 행하셨다고 말합니다. 이때 예수님을 통해 기적이 나타난 것은 우리 예수님의 신성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람이신 나사렛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하나님이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기적은 평범한 사람이신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입증한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신성은 다른 사건들을 통해 예수님이 친히 입증하십니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로 입증되는 사건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나타낸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나와 성정이 같은 나사렛 예수였습니다. 그러나 죄가 없으신 마지막 아담으로서 우리를 대신하여 완전한 의를 이루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신약 시대의 첫째 설교에서 대단히 의도적으로 예수님에 대해 그리스도라는 칭호조차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그리스도라고 말한 때는 다윗의 영원한 왕위를 이을 영원한 왕을 언급할 때 부활을 말하면서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이때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 곧 사람인 사실을 강조하며 부활을 언급합니다.
[
30 (다윗)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행 2:30-32).
그 다음에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말한 것은 하나님이 사람 예수, 곧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로 선포하는 때입니다. 이 역시 구약 4천년 동안 기다려 왔던 그 메시아가 바로 나사렛 예수라고 하나님이 증언하신 것을 뜻합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
그리고 마지막으로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말한 것은 예수님의 그리스도의 직분을 알고 믿어야 구원의 의미를 알 수 있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말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행 2:38).
또한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라고 말하는 것도 의도적으로 삼가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주라고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주’라고 말한 경우는 오직 다윗의 씨인 사람 예수가 온 우주를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여겨질 때에 ‘주’라고 부릅니다.
[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다윗의 씨인 사람 예수)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 2:34-36)
여기서 주는 나사렛 예수가 다윗의 뒤를 잇는 그 왕으로써 만왕의 왕이요 만유의 주가 되셨음을 하나님이 선포하신 것입니다.
아무튼 베드로는 유대인들이 매우 익숙하게 아는 ‘나사렛 예수’에 대해 집중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 속에서는 단 한 번도 ‘나사렛 예수님’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분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던 그 나사렛 예수이며, 따라서 십자가가 없는 부활은 있을 수 없고, 또한 동시에 십자가와 부활은 모두 사람이신 나사렛 예수와 관련됩니다.
셋째는, 23절을 보니,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죽임을 당한 분입니다.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뵈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도다.”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분으로서 완벽하고 흠 없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역할을 하심으로 그리스도로 확증되었는데, 이제 하나님의 정하신 뜻대로 유대인들의 손에 의해 법 없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습니다.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영혼은 죽음과 함께 낙원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품에 안긴 것을 말하며, 또한 그는 완전한 의인이기 때문에 그의 몸 역시 썩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즉, 부활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광의 부활은 그의 몸과 영혼이 전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뵙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그 예수님은 36절을 보면,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입니다. 곧, ‘나사렛 예수’입니다.
33절을 보면,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예수를 높이셨다”고 합니다. 이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하늘로 부르셔서 승천하게 하심을 의미하며, 나아가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즉위한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베드로의 설교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계속 ‘예수’라는 이름만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나사렛 예수를 말합니다.
나사렛에서 예수가 태어났고, 나사렛 예수가 자라났으며 하나님은 나사렛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큰 능력과 기사와 표적을 나타냄으로 나사렛 예수는 완전한 그리스도로 입증되었고, 나사렛 예수가 부활하셨으며, 나사렛 예수가 승천하신 것이고, 나아가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즉위하심으로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받아 자기 형제들에게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에 성령은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되신 이후 ‘그리스도의 영’으로 불립니다. 그것이 바로 베드로가 성령 강림 사건을 계기로 그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교회 역사 상 첫째 설교를 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베드로의 설교를 들어보면, 나사렛 예수의 가장 중요한 일대기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온전한 삶, 죽음, 부활, 승천, 왕으로 즉위하심, 그리고 성령을 보내심입니다. 그런데 이 일대기는 예수님의 신성보다는 인성과 관련된다는 사실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즉, 탄생 사건도 사람이기 때문이요, 죽음도 사람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고, 부활도 사람이기 때문이요, 승천도 사람들 앞에서 부활의 몸을 가진 사람이 구름 타고 하늘로 오르심이요, 다윗의 영원한 왕위로 즉위하신 분, 곧 온 우주의 주가 되신 분도 사람이요, 성령을 보내신 분도 사람이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신성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성령을 영원히 무한하게 보내십니다. 따라서 피조물이 있기 전에도 하나님 아버지와 성자 하나님은 성령을 서로 주고 받으시면서 영원한 하나됨을 유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과 함께 사람을 지으신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성령을 보내시는 일은 있었어도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보내는 일은 없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신분, 곧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는 안수를 통해 성령을 받게 하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된 이후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이루시고 또한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구속을 이루시고 그리스도가 되시사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받아 자기 형제들, 곧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성령을 보내시게 됩니다. 그것도 모든 민족들에게 노소남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성령을 부으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참 사람이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만이 얻으신 권한입니다. 이에 성령은 하나님의 백성의 입장에서 볼 때 아버지로부터 나오시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시는 성령을 받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롬 8:9).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나사렛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유의 주이십니다. 그분은 아버지께로부터 성령을 받아 자기 백성에게 성령을 보내십니다. 그분은 이미 마지막 아담이 되셨고, 온 우주적인 교회의 머리입니다. 그분은 지금 부활체를 입고 계십니다.
[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일 3:2-3)
지금 나사렛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우리가 거할 영원한 집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1-3)
그분은 현재 낙원 또는 셋째 하늘의 중앙, 곧 하나님의 보좌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행 7:55-56).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라”(계 22:4).
요한계시록을 보면 죽임 당하신 어린양이 있습니다. 그 어린양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며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나사렛 예수입니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계 5:6).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계17:14).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셨던 나사렛 예수님은 지금 이미 우주의 왕이시며 만유의 주이십니다. 앞으로 이 땅에 거할 하늘의 영원한 집을 마련하고, 또한 태초부터 택함 받은 모든 주의 자녀들이 다 구원을 받으면, 나사렛 예수께서는 구름 타시고 이 땅에 재림하셔서 주의 모든 택한 백성들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 혼인 잔치는 하늘에서 열릴 것이지만, 이 땅은 오직 불신자들과 마귀와 거짓 선지자만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내리는 불로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또한 지구의 모든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새하늘과 새땅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
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계 19:19-21)
그 후 영원한 새하늘과 새땅이 오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등불로 계실 것입니다.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계 21:22-23).
특히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된다”는 뜻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1장 18절을 보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요 6:46)라고 증언하셨습니다. 즉, 아담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신 나사렛 예수님은 우리가 보고 만지고 대화를 나누고 포옹도 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어린 양을 볼 것입니다. 그분은 나사렛 예수입니다.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에 관해서는 오직 그분의 영광을 볼 것이지만, 삼위 가운데 말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자 하나님은 나사렛 예수님이 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얼굴을 다시 볼 것입니다. 제자들이 나사렛 예수님을 보며 만지며 함께 웃으며 함께 걸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나사렛 예수님과 함께 만지며 걸으며 웃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이시며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과 교제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는 말씀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던 그리스도 안에서 제자들이 하나님을 본 것처럼 장래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구속함을 받은 모든 백성들이 ‘등불’이신 어린 양, 곧 나사렛 예수님을 통해 주 여호와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도 피조물인 우리는 무한하고 영원한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을 것이지만 하나님의 세계와 피조의 세계를 연합하고 있는 어린 양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나사렛 예수님은 새로운 우주와 세계의 중심에 서 있을 것입니다. 주의 백성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은 피조물의 창조주시며 새 인류의 머리이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복을 누릴 것이며 그분과 연합하여 끊임없는 생명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등불이신 어린양은 상처를 입은 몸으로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부활체의 몸에 있는 십자가의 흔적을 늘 보면서 영원히 나사렛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와 주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이는 구속 사역의 영원한 마무리와 완성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세계와 피조물의 세계의 영원한 연합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부활의 몸을 가지고 우리 눈으로 친히 나사렛 예수님을 보며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과 무한한 영광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역시 부활의 영광으로 변화한 가운데 가장 영광스러운 부활체로 계신 마지막 아담,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만지고 대화하면서 감당할 수 없는 사랑과 기쁨과 평강을 맛볼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8-10).
지금 이 시간 부활하신 예수님이 어디에 계시며 그분이 어떤 모양으로 있는지 우리의 믿음의 눈을 떠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이며,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물론 그분은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참 사람이 되신 나사렛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이신 나사렛 예수님으로 인하여 더욱 부활의 소망을 갖고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신’ 나사렛 예수께서 영원한 만유의 주이시며 영원한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영원토록 보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부활 주일을 맞이하여 온 우주의 중심에 계신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며 주의 성령으로 충만하여지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