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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 황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 126:1-6)

작성자스데반 황|작성시간20.10.12|조회수437 목록 댓글 0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편 126:1-6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하나님께서 주를 의지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전혀 예기치 못한 경사스런 일들은 신자들의 입에 한 없는 웃음을 머금게 합니다. 또한 하나님과 자신만이 아는 비밀로 인해 그 신자는 평생 끝없는 감사와 찬양을 주께 돌리게 됩니다.

 

남유다는  주전 586년 멸망 후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서 50년의 쓰라린 포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강가에 앉아서 고국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시편137편을 보면 바벨론 포로로 있는 남은 자들이 부르는 구슬픈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4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

8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시 137:1, 4, 8)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바사 왕 고레스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유다 백성에게 고국으로 돌아갈 자유를 허락한 것입니다.

 

[

22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3 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대하 36:22-23)

 

그 해는 주전 538년이었습니다. 남유다는 주전 606년부터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예레미야가 예언한 대로 7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70년은 긴 시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땅에 정착하여 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심지어 그곳에서 태어난 자들도 대다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기억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꿈을 꾸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시인도 그러한 남은 자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끝없는 간절한 기도는 마침내 갑자스런 고레스 왕의 칙령을 통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이에 모든 유다 백성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해방은 마치 꿈꾸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이 놀라운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이루어진 것임을 깨닫고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다”고 기뻐하며 찬양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1-3절). 

 

사랑하는 여러분!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시편 126편은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건을 기억하는 노래입니다. 이때 그 사건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와 자비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있는 주의 백성을 하나님께서 좌정하기로 언약하신 시온 산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 때에 그들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그들의 혀에는 찬양이 찼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기쁨은 욥이 전혀 예상치 않게 하나님께서 그에게 회복시켜주신 삶을 누릴 때의 기쁨과 감사와 같았을 것입니다.

[

9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11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셨더라

](욥 42:9-12)

 

또한 그 기쁨은 베드로가 이제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구원을 베푸심으로 그 구원을 체험하며 누린 감사 및 기쁨과 같을 것입니다.

[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

3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

4 잡으매 옥에 가두었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행 12:1-12)

 

이때 베드로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 기쁨을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 신앙의 동료들에게 얼마나 빨리 알려주고 싶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시편의 특징은 ‘기쁨’입니다. 시인은 기쁨이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2절을 보면, “찬양이 찼었도라”라고 할 때의 원어는 (린나ㅎ)인는 기쁨에 의해 터지는 외침이라는 뜻입니다. “와 ---“라고 너무 기뻐 소리지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3절을 보면 “우리는 기쁘도다”라고 하는데 원어 (세메힘)입니다 이는 “신난다, 기쁘다. 기분 좋다”라는 뜻입니다.

 

5절에서는 다시 (린나ㅎ)를 사용하여 “기쁨으로 터지는 환호성”으로 표현했고, 6절 역시 (린나ㅎ)로 “기쁨으로 터지는 외침”을 표현했습니다. 즉,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것입니다.

 

제가 한번은 집에 일찍 갔더니 클라라가 기대치 않았다가 저를 봐서 그런 것인지 너무나 반가워서 미친 듯이 이방 저방으로 계속 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꼬리는 큰 원으로 계속 돌리고 있는데 거의 실성한 개 같았습니다. 심지어 내 앞에서 신음 소리까지 내는 것을 보고, ‘아 이 개가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도 클라라를 보면 더욱 반가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 중 가장 기쁜 사건은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자 제자들은 다 도망하였고 그 중 하나는 자살하였습니다. 주를 따르던 많은 여자들과 다른 제자들 역시 너무나 상심이 컸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제자들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목격한 막달라 마리아의 경우는, 그 기쁨이 무한했습니다.

[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요 20:15-18)

 

또한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는 부활 승천하셔서 만유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을 받음으로 주께서 자기들의 마음 안에 와 계신 것을 알고 무한한 기쁨과 감사 가운데 늘 찬양하였습니다.

[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2:42-47)

 

이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께서 부으시는 성령으로 인한 기쁨과 감격과 사랑이며 또한 하나님 나라의 기쁨인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부활하시고 영광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보내시는 성령의 충만함에 의해 하늘의 기쁨과 감사를 한량없이 누릴 수 있습니다.

[

18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엡 5:18-20)

 

이러한 하늘의 기쁨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로 인한 말로 다 표현 못할 기쁨입니다.

[

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창 21:5-6)

 

예수님은 특히 부활하신 후에 나누실 성도의 기쁨을 미리 언급하셨습니다.

[

22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 16:22-24)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지금 힘들고 지쳐있습니까? 슬픔이 밀려옵니까? 괴롭습니까? 이유가 무엇이든 만일 슬프고 지쳐있다면 시편 126편을 읽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특히 부활 승천하셔서 만유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을 믿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주를 믿사오니 주의 성령으로 충만케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느새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신기한 기쁨이 신자의 가슴 깊은 곳에 임하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4절을 보면,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라고 노래합니다. 남방은 유다의 불모지로서 그 유명한 네게브(Negeb) 사막 지역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사막은 평소에는 바짝 마른 상태로 있다가 갑자기 비가 내리면 언제 말랐었느냐는 듯이 순식간에 진흙으로 바뀌게 됩니다. 즉,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큰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갑작스런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심령이 마른 땅같이 갈라져 있었는데 어느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남방 시내들 같이 기쁨이 차고 넘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개역 개정은 4절의 번역을 ‘포로’라고 번역했는데 그 원어는 (쉐비테누)입니다. 이 단어의 뜻에는 “포로”라는 뜻과 “행운 또는 큰 재물”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서로 상반되는 두 의미 가운데 하나를 택하여야 하는데 개역 개정은 ‘포로’를 택하였습니다. 구약에서 이 단어의 사용 용도 역시 거의 반반이기에 어떤 의미를 택할지는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이 단어의 뜻은, 4절을 5절 및 6절과 함께 묶어서 볼 때 “기쁨으로 거두는 것”과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포로’라는 뜻은 문맥에 맞지 않습니다. 그 대신 ‘재물’ 또는 큰 행운이 연결됩니다. 즉, 과거에는 없었던 엄청난 복을 뜻하는 것입니다.

 

또한 만일 4절을 ‘포로’로 보면, 시편 126편 자체가 아직 바벨론 포로 상태에서 지은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렇다면 1-3절은 가상적인 노래가 됩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이 노래는 이미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기쁨 가운데 노래하며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4절의 (쉐비테누)는 큰 행운이라고 번역함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사실 포로와 큰 행운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죄에 포로되었던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으로 자유를 얻는데, 성경은 그 자유에 무한한 큰 재산이 따라온다고 알려줍니다.

 

이에 신자의 구원을 상징하는 출애굽 사건에서도 놀랍게도 폭력 한번 사용하지 않고 애굽의 보석들을 풍성하게 받아서 나오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한 전쟁에서의 승리를 의미하며 그 승리에는 항상 풍성한 재산이 따라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내보내리라 그가 너희를 내보낼 때에는 여기서 반드시 다 쫓아내리니

2 백성에게 말하여 사람들에게 각기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

3 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 땅에 있는 바로의 신하와 백성의 눈에 아주 위대하게 보였더라

](출 11:1-3)

 

하나님께서 하시는 놀라운 일에는 언제나 구원 뿐만 아니라 차고 넘치는 선물을 부어주십니다. 신약은 그 선물을 은사라고 말합니다.

[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엡 4:7-8)

 

지금 시편 126편의 3-4절이 그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가 받은 큰 선물을 남방 시내들 같이 차고 넘치게 하소서”(3-4).

즉, 이제 고국으로 돌아온 시인의 입장에서 다시 예루살렘 성에서 과거처럼 풍성한 선물을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남방의 시내가 차고 넘치는 그러한 풍성함을 달라는 기도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구원을 받은 우리 신자들의 삶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차고 넘치는 풍성한 삶이 되도록 기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바벨론 포로로 있으며 힘든 때에 시편 137편처럼 많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제 주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셨고 70년 만에 시온 산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이에 그들은 하나님을 뵙게 될 수 있었으며 나아가 더욱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다림이 긴 것 같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느냐는 듯이 바쁜 시절로 바뀌게 됩니다. 언제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될까 하며 간절하게 기도하던 때가 과거의 추억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항상 갑작스런 변화를 동반합니다.

 

혹시 지금 바벨론 포로와 같은 지루하고 긴 기다림 가운데 있습니까? 결혼 문제로, 직장 문제로, 장래 문제로, 관계 문제로, 경제 문제로, 건강 문제로, 외로움으로 지루한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마치 현실이 바벨론의 70년 포로 생활처럼 무한하게 길게 느껴집니까? 과거에 주께서 부으시던 풍성함과 자유가 그립습니까? 그렇다면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리기 바랍니다. 소망을 포기하지 않기 바랍니다. 주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때가 차면 반드시 주께서 주의 약속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갑작스러운 은혜를 맛보려면 5절이 있어야 합니다. 즉,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이 과정을 지나야만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시는 현장을 보며 큰 기쁨으로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5-6절)

 

그들이 씨를 뿌린 때는 포로의 기간이었습니다. 그들은 고통과 근심의 기간 동안 열심히 씨를 뿌렸습니다. 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영광스러운 미래를 바라보며 인내함으로 기다리면서 씨를 뿌렸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열매를 보았습니다. 즉,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씨를 뿌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작은 일이라도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포로 기간에 좋은 신앙 서적을 읽는 것도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마음과 행동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것도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서로 소망을 갖도록 격려하는 것도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미래에 쓰임 받기 위해 성경을 깊게 연구하면서 영적인 실력을 쌓는 것도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따스한 말과 행동으로 계속 복음을 전하며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것도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포로의 기간이라도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주 앞에서 칭찬 받을 수 있는 일을 한다면, 그것이 바로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주를 위해 실천하며 순종한다면 그것이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올 것입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것은 “씨앗 주머니를 들고 울면서 일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동사의 형태가 동작의 계속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울면서 일하는” 것은 단회적인 동작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동작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는 열매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씨를 뿌리는 일은 매우 단조롭고, 또한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하는 일이기에 눈물이 날 정도로 지치고 고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씨를 뿌리고 또 뿌리면 비록 그 눈에 눈물이 있을지라도 반드시 기쁨으로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올 날이 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간다”고 할 때의 눈물은 아무런 열매가 보이지 않아 지쳐서 흐르는 눈물이기도 하지만, 과거의 죄에 대한 애통함으로 인한 눈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였던 신실한 주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면서 바벨론 강변에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언제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렵니까!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시고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그들은 항상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비만을 구하였습니다.

 

사실 신실했던 주의 백성들은 왜 자기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는지 말씀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 바벨론 포로가 된 이유는 다름아닌 하나님 앞에서 우상 숭배의 범죄함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참된 회개만이 회복의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눈물로 회개의 씨를 뿌렸습니다. 과거의 모든 우상 숭배의 죄악을 회개하고 또한 모든 인간적 수단을 포기하며 오직 믿음을 붙잡고 기도하였습니다.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슬픔 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면서 기도했습니다. 생명을 걸고 기도했습니다. 시인은, 이렇게 눈물로 기도의 씨를 뿌리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사실, 성경을 보면 어느 시대나 자기시대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

 

그러므로 주께서 회복을 허락하실 때까지 회개의 눈물을 흘립시다. 상황이 열악하더라도 수고의 눈물,  희생의 눈물, 사랑의 눈물, 중보의 눈물, 슬픔과 아픔의 눈물, 영적 체험의 눈물을 흘립시다. 그러할 때, 때가 되면 우리는 정녕 기쁨 가운데 단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버리지 않고 사랑하시며 또한 우리의 눈물의 씨앗에 백배의 결실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감격의 눈물과 감사의 눈물을 한없이 흘리게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하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신 31:6).

 

성경을 읽으며 주의 음성을 듣고 눈물을 흘리기 바랍니다. 어려운 이들과 함께 그들의 고통을 나누며 눈물을 흘리기 바랍니다. 고난과 가난과 여러 가지 아픔 가운데 있는 자들과 함께 아파하는 눈물을 흘리기 바랍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인하여 차고 넘치는 열매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눈물로 씨를 뿌리면 하나님이 응답하십니까? 우리의 눈물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눈물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눈물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또한 눈물로 씨를 뿌리셨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주께서 눈물로 드렸던 기도의 응답은 십자가를 피하게 된 것으로 응답된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 이후, 부활로 응답되었습니다. 즉, 주의 백성들의 죄에 대해 친히 주 예수께서 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님을 부활시키심으로 죽음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예수님을 만유의 주와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피로 값 주고 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만유의 주시며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예수님의 보혈과 눈물 때문에 반드시 기쁨으로 거둘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올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눈물은 내일의 기쁨의 열매를 거두는 아름다운 거름인 것을 믿기 바랍니다.

 

한편, 이스라엘 민족은 눈물로 씨를 뿌린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바벨론으로부터 정치적인 해방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외적인 해방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혼의 참된 해방은 얻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으로부터 해방된 이후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범죄하여 결국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자리까지 갈 정도로 타락하고 부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성경은 죄로부터의 해방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영광이며 모든 기쁨의 원천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오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해방의 극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와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신 것입니다. 죄의 종 되었던 자리에서 맘껏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로 옮겨진 자들이 진정 하늘 나라의 광복과 넘치는 하늘의 은사를 얻은 자들입니다. 성경은 이를 ‘요벨’이라고 하여 희년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된 자들! 나아가 주의 보혈로부터 나오는 성령의 생명의 역사에 의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자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와 희락과 평강을 누립니다. 즉, 환경을 초월하는 완전한 구원의 해방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생의 축복이라고 부릅니다. 이 축복을 누릴 때면 우리는 이미 우리의 모든 기도를 응답하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감사의 눈물,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늘의 풍성한 열매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울며 씨를 뿌렸기 때문에 지금 당장 그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즉,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울며 씨를 뿌리는 자마다 당장 성령 안에서 하늘의 평강과 기쁨을 거둘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하지만 내 영혼이 그리스도안에서 하늘의 기쁨과 평안을 당장 거둘 수 있을지라도 내 주변의 영혼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계속 그들을 위해 울며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래야 영혼 구원과 하나님 나라 확장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사탄의 포로가 되어 어두움의 권세 가운데 있는 수없이 많은 백성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혹시 여러분의 부모일 수 있으며 여러분의 형제 또는 자녀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친한 친구나 이웃일 수 있습니다. 그들을 그냥 두면 죄의 권세 아래에서 신음하다가 마침내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그들에게 가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광복을 알리며 구원의 기쁨, 자유함의 기쁨을 전달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나를 위해 보혈과 눈물의 씨를 뿌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나도 함께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울며 씨를 뿌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즉, 우리가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눈물로 복음의 씨를 뿌리는 수고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는 이미 위대한 자리에 섰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눈물로 씨를 뿌리는 수고”입니다. 복음 전도와 예수 생명을 증거하는 사역을 위하여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배도의 세력 앞에서 복음을 순수하게 지키기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복음을 잃어가는 한국 땅에 복음을 잃지 않은 교회들이 설 수 있도록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아직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는 작고 연약합니다. 그러나 이 교회는 주께로부터 사명이 뚜렷하게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명이 이루어질 때까지 인내하며 눈물로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많은 땅들이 열매를 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옥토로 준비된 밭은 우리 교회가 전하는 복음을 받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내하며 계속 주를 바라보며 계속 그분이 시키는 대로 순종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계신 주 하나님이요 현재 만유의 주시며 만왕의 왕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믿음으로 눈물의 씨를 뿌리는 자들에게 반드시 기쁨의 열매를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영원한 기쁨과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고 결국 영원한 하늘의 상급과 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때 주어지는 열매는 잠깐의 웃음과 기쁨이 아니라 영원한 웃음과 기쁨이 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우리가 흘린 눈물 대신에 영원한 면류관으로 우리의 품에 안겨 주실 것입니다.

 

오, 주의 약속을 기억하며 신실하시고 변함없으신 우리 주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도다

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24 내심령에이르기를여호와는나의기업이시니그러므로내가그를바라리라

25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애 3:22-25)

 

“너희는 …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욜 2:26, 27).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사 51:11).

“(우리 주 그리스도는)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사 61:3).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게 하소서”(시 56:8).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더라”(계 2:4-5).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의 생각과 계획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즉, 우리는 그분의 계획이 워낙 무한하고 높아서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이에 우리는 다만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의 성품과 마음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이며, 아들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이 땅에 보내신 주의 마음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이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형통할 때나 일이 막힐 때나 우리의 영원한 위로자시며 동반자시고, 나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이제는 부활 승천하셔서 만유의 주와 만왕의 왕이 되신 그리스도를 늘 바라보며 그분의 지시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어떤 상황에서도 주 안에서 하늘의 평강과 기쁨과 감사를 누리는 무한한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오늘 각자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면서 또한 주께서 친히 세우신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남은 삶을 위해 하나님의 앞에서 눈물로 복음을 뿌리는 새로운 결단으로 서시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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