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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 황

빛 가운데서의 사귐 (요한일서 1:5-10)

작성자스데반 황|작성시간22.09.19|조회수468 목록 댓글 0

빛 가운데서의 사귐

    

요한일서 1:5-10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지난 주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이며 영원한 말씀이고 나아가 영원한 생명 그 자체인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사도들은 영원한 생명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을 보고 들었고 또한 예수께서 이 땅에서 행하신 일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만져봄으로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또한 메시야, 즉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확증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며 나아가 동일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서로 그리스도 안에서 ‘코이노니아’, 즉 사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귐은 사람에게 최고의 복을 주는데 그것이 바로 하늘의 기쁨의 충만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계속 말합니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5절).

 

여기서 “그에게서 듣고”라고 할 때 ‘그’는 당연히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분에게서 들었다는 것은 그분이 이 땅에 계시면서 하신 말씀들과 메시지를 담은 행위들, 심지어 부활 승천 후에 그의 영으로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신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그리고 그분이 행하신 일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지를 확인하고 증언한 사도들의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그 ‘소식’은 그리스도의 복음이며 사도들이 전한 복음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복음의 시작을 하나님으로부터 펼치기 시작합니다. 즉,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알려줍니다. 하나님께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때 하나님은 아버지로 대표되는 성삼위 하나님이십니다.

 

한편, 사도 요한이 하나님에 대해 비유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대단히 많은데 가장 먼저 ‘빛’이라고 말한 것은 매우 의미 심장합니다. 사실 요한복음에서도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빛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그)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4-5).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빛 그 자체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빛 자체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습니다. 물론 당연히 성부와 성령께서도 하나님이시니 ‘빛’이십니다.

 

그러면 요한이 ‘빛’으로 알리려는 목표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빛’이신데 그 빛이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도다

](요 1:9-10)

 

그러므로 이 세상의 사람들이 죄 가운데 영원히 멸망하는 유일한 이유는 세상에 오신 빛을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 3:19-21)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 9:5).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요 12:3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요 12”46).

 

그러면 사도 요한이 하나님을 ‘빛’이라고 선언하면서 그 빛이라는 단어로 우리에게 전하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사도 요한은 우리로 하여금 ‘빛’에 대하여 더욱 분명한 개념을 가질 수 있도록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라고 더하여 말합니다. 그러면 사도 요한이 말하는 빛과 어둠은 어떤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여기서 빛과 어두움은 옳고 그름, 진리와 거짓, 의와 불의, 깨끗함의 거룩과 더러움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둘은 서로 타협하거나 조금이라도 섞일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빛과 어둠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사탄을 나타냅니다.

[

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

17 그러므로너희는…따로있으며부정한것을만지지말라…

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고후 6:14-17, 고후 7:1)

 

이처럼 어둠과 거짓과 죄악의 근원은 사탄 마귀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요 8:44-45).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말하는 ‘빛’은 하나님의 속성으로서 무한한 거룩과 진리이며 전혀 흠과 티가 없는 상태고 사랑과 선의 상태입니다. 물론 죄와 및 그 세력과는 완전하게 무관합니다. 그런데 어둠이 생겨난 이후로 빛은 어둠을 물리치는 거룩한 힘이 되었고 심지어 어둠을 들춰내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하기에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둠 가운데 나타나셨을 때 그분은 어둠을 들춰내셨을 뿐만 아니라 물리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의 존재와 역할은 빛으로 비유되기에 합당합니다.

 

사실 이런 의미에서 빛은 하나님의 형상에 속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물리적으로도 하나님은 무한한 빛으로 나타나기에 사람이 그 빛을 보면 눈이 멀곤 하였습니다. 아마 더 강력한 빛을 비추신다면 사람은 즉사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죄라는 것을 배경으로 할 때 빛은 무한한 진리와 거룩과 의의 본질을 나타냅니다.

 

아무튼 진리와 거룩과 의의 본체로서 빛이신 하나님은 만물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분 앞에서 숨을 수 있는 어둠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빛으로서 완전하게 순결하시며 그 순결함이 무한하기에 그 분 안에는, 그리고 그 분이 계신 곳에는 오염이나 더러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의 빛’이시니 말씀으로 모든 어두움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이는 말씀 하나님이신 우리 주 그리스도는 ‘빛’으로서 무한한 분별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완전한 지식을 가지신 분으로서 ‘빛’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 앞에서 속임이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며 오류나 비진리는 결코 그 앞에 설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 앞에서는 숨은 어둠의 일들이 감추어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숨어서 행음하여도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그 누구도 분별하거나 확인할 수 있는 완벽한 거짓말을 해도 빛이신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모르실 수 없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남의 것을 훔치더라도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완전하게 아십니다. 아무리 간교한 계략과 술책과 눈 속임수로 완벽하게 사람들을 속여 이윤을 취하더라도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결코 속일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를 달아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깊은 마음 속까지 다 아십니다. 스스로 자기 기만에 빠져서 자신조차 모르는 자기 마음의 간교함 까지도 우리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다 아십니다. 그래서 내 양심은 떳떳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때 꼭꼭 숨겨져 있던 마음의 죄악들이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우리가 지은 죄악들이 사람들에게 들통나지 않을 때 마음 편하게 지내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지은 죄악들에 대해 회개하지 않을 경우 반드시 어떤 모양이든 죄값을 치르게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삶 가운데 철저하게 경험했던 다윗은 성령으로 감동하여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11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12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 흑암과 빛 모두가 하나님께 숨겨질 수 없나이다. */)

](시 139:7-8, 11-12)

 

이처럼 우리 주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마음과 생각 속에 있는 선한 것들 및 악한 것들에 대해 완벽하게 아시며, 심지어 숨은 동기까지 완전하게 아십니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대상 28: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느니라”(렘 17:9-10)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잠 16:2).

 

“스올과 아바돈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리요”(잠 15:11).

 

그러나 양심이 화인 맞은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외치며 양심의 가책을 거부하며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이에 그들은 영원한 주의 진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 4:1-2).

 

그러므로 하나님은 어둠과 거짓과 죄와 더러움을 무한하게 증오하며 싫어하십니다.

[

4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5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6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시 5:4-6)

 

하박국 선지자도 하나님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나이다”(합 1:13).

 

이러한 의미로 하나님께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그분의 모든 속성에 있어서 전혀 어둠이 없고 또한 그분의 행실과 역사에 있어서 전혀 어둠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튼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선언한 후,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 만일 어둠에 행하면 이는 거짓말이라고 선포합니다. 또한 그 사람은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논리적으로, 그리고 실재적으로 가장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그분 안에서 빛 가운데 행한다면 우리가 빛 안에서 서로 사귐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한다고 선언합니다.

 

지금 6절과 7절은 두 개의 ‘if’, 즉 ‘만일’이 담겨 있고 전부 현재형 동사로 되어 있습니다. 즉, 가정형으로 현재 동사로 되어 있는데, 이는 이 서신을 받는 신자들의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만일)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요일 1:6-7).

 

자, 1-5절까지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알려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6절부터 사도 요한은 곧바로 그 진리를 신자들에게 적용합니다. 이에 “만일 우리가”라고 하여 ‘우리’라는 대명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우리’는 요한 사도 및 그와 함께 하는 복음의 사도들과 참 선생들과 주의 제자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지금 6절 이하에서 말하려는 것은,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은 우리의 머리 속에서 진리로 인식되는 선에서 멈추지 않고 반드시 삶 속에서 선택과 결단과 결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부터 10절까지는 다섯 개의 ‘만일’이 있고, 그 ‘만일’은 모두 신자들의 선택과 결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복음을 들을 때 복음은 반드시 우리의 선택과 결단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무엇보다 5절에서 하나님은 빛이라는 사실을 복음의 핵심으로 삼고, 7절에서 강력하게 “빛 가운데 행하라”고 권합니다. 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빛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표현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라 

](갈 5:6, 16, 19, 25-26)

 

이것이 바로 “빛 가운데 행하면”이라는 표현과 정확하게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빛 가운데 행할 수 있도록 생명의 말씀이신 독생하신 하나님이 사람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이며 둘째 아담으로서 그리고 우리의 그리스도로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책을 위해 속량을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계속 빛 가운데 행하기를 선택하며 순종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나면서 더욱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나아가 성도들과도 더욱 그리스도 안에서 사귐을 가짐으로 하나님께서 복음을 우리에게 주신 궁극적인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롬 8:29-31)

 

[

13 너희안에서행하시는이는하나님이시니자기의기쁘신뜻을위하여너희에게소원을두고행하게하시나니…

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빌 2:13, 15-16)

 

[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골 1:19-23)

 

[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살전 5:22-24)

 

그런데 좀더 구체적으로 본문을 살펴보면,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하면서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라”라고 권합니다. 사도 요한이 말하는 구조를 보면, 전하는 소식을 먼저 바르게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대표적인 진리로서 “하나님은 빛이시다”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신자들에게 “빛 가운데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는 이로써 주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전하여주신 복음의 구조가 ‘지식’과 ‘행함’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복음은 언제나 우리에게 지식 및 행함을 권합니다. 행함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함으로 발생되는 빛된 행실입니다. 이러한 열매가 가능하려면 복음의 원리, 즉 지식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성경을 읽고 또한 그 성경을 바르게 해석함으로 복음의 바른 지식을 취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거룩함을 얻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한편, 7절에서 말하는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신다”는 표현은 죄의 세력에 대한 승리를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즉, 더욱 하나님처럼 빛에 거하게 되며 더욱 하나님을 닮아 깨끗하여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능력이 신자에게 있지 않고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에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사도 역시 사도 요한과 동일한 진리를 선포하였습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4).

 

물론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양심을 새롭게 하고 깨끗하게 하는 데는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역사로 인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역사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보혈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성령의 생수가 흐르는 것입니다.

[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 즉, 성령을 부으시는 시기는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후라는 것입니다. 이는 십자가의 속량을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이후를 뜻합니다. */

](요 7:37-39)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이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지식인 2-3절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요일 1:2)

 

그리고 사람으로 오신 영원한 생명의 속죄 사역을 믿음으로 붙들어야 합니다.

[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 10:4-5, 10)

 

[

16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히 10:16-22)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 생활은 어떤 신비체험을 위한 것도 아니고 이 세상에서 주의 섭리로 기도 응답을 받아 잘 살게 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 생활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목적이며 그 교통은 우리의 삶에서 ‘진리를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곧 “빛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기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3 너희는내가일러준말로이미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3-5)

 

지금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오늘 본문의 6-7절과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즉, “빛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헬라어 원어 (페리파테오)의 의미인 '동행한다', ‘거한다’라는 의미로서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행한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어둠에 거하면서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즉, 으슥한 어둠 속에 거하며 돌아다니면서 “나는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며 위선이며 자기 기만입니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며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진리 되신 우리 주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 상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고 하셨습니다.  

 

또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후반에서 동일한 내용을 선포합니다.

[

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6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요일 2:3-6)

 

[

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요일 3:23-24)

 

[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요일 5:2-3)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주셨다는 증거입니다. 이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받아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주께서 주시는 생명과 능력으로 주의 계명을 지키는 상태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바로 의의 상태이며 빛에 거하는 상태로서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상태요 또한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서 사귐의 상태에 있는 다른 성도들과 코이노니아가 되는 것입니다. 이에 3절에서 사도 요한은 이미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종류의 거짓 신자의 상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율법 행위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만 얻을 수 있는 참된 믿음의 효력에 대해 무지한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율법주의자들로서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 집단과 같습니다. 그들은 지독히 교만하며 자기 기만에 빠진 자들로서 인간이 얼마나 부패한 존재인지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나타나지 않는 자들입니다. 즉, 빛 가운데 행함이 없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오늘 본문에서처럼 거짓말 하는 자들이며 진리를 행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믿음은 거짓 믿음입니다.

[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 2:14-17)

 

그러므로 우리가 그릇된 믿음에서 벗어나려면 바른 복음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고 그 지식은 반드시 우리로 하여금 자아 부인 및 믿음을 갖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함과 의로움을 낳아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서 그 사람의 믿음이 진짜 믿음으로 입증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알려고 겸손하게 주의 자비를 구해야 할 것이며, 바른 복음 안에서 나를 쳐 복종시키는 가운데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주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으로 주의 계명을 지키는 삶, 즉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온전히 닮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고 우리의 왕이시며 우리의 영원한 선지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 나아가 항상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4-16)

 

이와 동일한 권면이 바로 8-10절을 통해 권면한 내용으로서 세 개의 가정을 추가하며 신자들에게 바른 지식을 알려주고 그 지식 안에서 바른 선택을 하도록 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8-10절).

 

이 구절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우리는 죄 덩어리라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자백하라는 것입니다. 즉, 죄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범죄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시인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더욱 철저하게 그리스도께 나아가 죄 씻음, 즉 죄 사함 및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받으라고 합니다.

 

한편, 영지주의는 (하마르티안 우크 에코멘), 즉 “우리가 죄가 없다”고 가르쳤는데, 이는 우리 안에 죄의 성향, 또는 죄의 세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주장은 자기 기만하며 속이는 주장이었습니다. 사람 안에 죄가 없습니까? 죄의 세력이 없습니까?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에게 아직 죄의 세력이 남아 있습니까 없습니까? 아직 있습니다. 여기서 언급한 죄는 다른 용어로 ‘육신’입니다. 바울은 신자들에게 죄가 남아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14-24)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에 죄가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놓칠 때 곧바로 죄악을 범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저질러진 범죄를 보며 내가 그리스도를 놓쳤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잘못을 시인하고 그리스도께 나아와 자백하면,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의 죄악을 탕감하여 주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사귐이 회복되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표현은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라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은 자신이 하신 언약에 무한히 신실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죄악을 사하여 주시고 받아주실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시면서도 공의를 이루려면 누군가 그 죄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량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 3:24-28)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 처해 있었고 또한 죄값을 치러야 하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에 우리에게 복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참 믿음일 때 우리는 단번에 영원히 이루어지는 죄 사함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신자가 된 이후에도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믿음으로 내가 지은 자범죄에 대한 죄책에서, 그리고 내 안의 육신인 죄의 세력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은 완전한 의인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대신 참 믿음을 소유하고 하나님과 진정한, 인격적, 실제적 교제가 있는 자입니다. 그는 결코 죄를 합리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일 죄를 범한 경우는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과 죄 씻음을 받습니다. 이때 죄 씻음이란 자신의 마음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자백함으로 다시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성화될수록 주의 계명으로 우리의 신앙 양심이 매우 예민해지기 때문에 회개하고 자백할 것이 더욱 많아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와 사귐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지극히 거룩하시기에 어두움에 거하는 죄인과 사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하시기에 우리를 빛 가운데 행할 수 있도록 은혜의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그 길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으로서, 오직 그분께 나아가 죄의 문제를 해결 받는 것입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렘 31:34).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완전치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귐이 가능합니다. 그 사귐은 우리가 완전하고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오직 그 아들의 피로 인하여 죄 사함과 죄 씻음을 받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도 여러 면에서 부족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빛입니다. 나아가 성령 안에서 빛의 역할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4-16)

 

오늘도 이 귀한 복음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더욱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빛 가운데 거하고 진리를 행함으로 하나님과 철저한 사귐을 갖는 영광스런 주의 자녀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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