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16대민(주일낮)
*신나는 인생의 원리(잠4:20-27)
인생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는 여러 가지 답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인생이 무엇인가를 설명해주는 구절이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2장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인생은 나그네요 길가는 행인같다고 하였습니다.
행인은 잠깐이면 지나쳐버립니다.
욥기9장25절에 “욥은 자신의 날이 체부보다 빠르게 지나간다”고 하였습니다.
호세아13장3절에 “이러므로 저희는 아침 구름 같으며 쉽게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 마당에서 광풍에 날리우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을 아침 구름, 이슬, 연기,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로 표현하였습니다.
시편102편3절에 “인생의 날이 연기 같이 소멸했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야고보서4장14절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인생은 짧고, 일시적이며, 순간적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길선주 목사님이 여덟살 때의 일입니다. 어느날 같은 또래의 두 친구와 함께 뜰에서 놀다가 풀밭위에 누웠습니다. 파란 하늘에 갖가지 모양의 흰 구름이 흘러 가는데,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세 아이는 자기 마음에 드는 구름에 자기 이름을 붙이고는 변해 가는 구름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바람에 밀려가던 구름들이 제멋대로 흩어져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바라보던 길선주가 주르륵 눈물을 흘렀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두 친구가 "왜 우느냐"고 묻자 대답합니다. "너희들의 구름과 나의 구름이 모두 없어져서 울어" 그 말에 두 친구는 "구름은 원래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없어지는 것인데 그까짓 것을 가지고 우느냐?"고 놀렸습니다. 그러자 길선주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거야, 나도 알지만 장차 네 것이나 내 것이나 너희들 몸이나 내 몸이 저 구름처럼 없어지고 말 것 아니니? 난 그것이 서글프다고" 소년 길선주는 어려서부터 흘러가는 구름 속에서 인생을 생각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구름을 구름으로만 보면 구름일 뿐입니다. 그러나 구름을 인생으로 보면 인생이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이 보이십니까? 어디서 인생을 보셨습니까? 혹 누군가가 인생을 묻는다면 여러분은 무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인생은 건물과 같습니다. 우리는 한 평생을 살면서 내 이름으로 된 한 채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건물이 어떠한가를 한 눈에 보기 위해서는 설계도를 보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이 건물이 어떤 용도로 지어졌고, 어떤 구조로 되어 있으며,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을 폭넓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라는 존재의 설계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어떤 존재이고 내가 무엇을 위해 태어났으며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게 어떤 재능과 성품을 주셨고, 그러므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생 설계도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앞에 서야 하는 법인데, 그 하나님은 말씀이십니다. 말씀속에 하나님이 계시고, 인간이 있고, 인생이 무엇인가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안에서 깨닫는 마음만 있다면 말씀안에서 인생 설계도를 찾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신봉하고 있는 기독교에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절대 주권자로 믿습니다. 이 세상이 우연히 스스로 만들어졌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우주 만물이 신묘막측 함을 우리는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절대자이신 창조주께서 창조주의 절대주권으로 인도하시고 섭리하신다고 분명히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모든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우리에게 주시고 잘 다스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도록 지으셨다는 그런 말씀은 아닙니다. 어차피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 잠시 살다가 떠나야 할 인간으로 살게 하셨던 것입니다.
누구나 인생을 살다보며 나름대로 인생의 이치와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오래 살며 인생을 많이 경험한 자는 더욱 깨달음이 깊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신나는 인생의 원리를 발견하여 우리 모두가 더욱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신나는 인생이 되는 방법은?
1.마음을 지키는 일입니다.(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으로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은 사실은 신나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왜 인생이 신나지 않습니까?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에게는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모두 가벼운 정신병 증상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스트레스성 질환부터 우울증, 정신 분열증에 이르기는 많은 고통들입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지나치게 환경에 민감한 나머지 자신 스스로의 정신 상태를 다스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쉽게 폭발하는 성격과 우유부단한 삶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지식은 높아지는데, 정신적 자기관리가 되지 않아 극심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병리적 현상의 결과인 많은 징후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가정의 위기, 자살, 도박, 흡연, 음주, 신용불량 등 선진국에서도 찾을 수 없는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을 통제하고 주장하는 마음의 교육이 잘못된 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제 마음은 다른 사람들이 제재하기 어렵고, 나아가 자기 스스로도 통제하기 불능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신경 쓸 일이 생기면 우선 소화가 잘 안 됩니다. 잘 내려가던 식사가 뭔가 걸린 것 같고, 심지어 물 한 모금을 마시려 해도 잘 내려가지를 않습니다.
특히 정신 노동을 많이 하는 사람들, 증권이나 경매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식사하는 중에도 손 바닥만한 컴퓨터를 옆에 놓고, 그 시황을 보면서 식사를 합니다. 그러니 식사가 맛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특히 목회자들 가운데 이외로 위장이 안 좋은 분들이 많습니다. 교회가 크건 작건, 교인이 많건 적건 자나깨나 교회 생각, 교인 걱정 그래서 오죽하면 이 시대의 목회자들을 가리켜 ‘상처 입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라고 목회자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우리에게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교훈을 주셨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을 지키려고 합니다.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 지위를 지키고, 자존심을 지키려고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이 그곳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근원은 삶에 대한 의미, 삶에 대한 에너지입니다. 이 모든 것이 마음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음은 생물학적, 심리학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 마음은 육체와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온전해야 생활도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은 우리의 육체와 함께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습니다. 이처럼 마음은 우리 인생에 아주 중요합니다.
【병원에서 어렵고 힘든 암 말기 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봉사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 한결같이 후회하는 것이 세 가지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왜 내가 그 때 조금만 더 참지 못했을까?
두 번째는, 왜 내가 그 때 그 일을 다음으로 미루었을까? 예를 들면, 몸에 약간 이상이 생겼을 때, 빨리 진찰을 받았더라면 내 속의 병을 이렇게 키우지 않았을 텐데, 이런 저런 일상적인 분주한 일 때문에 정말 중요한 일을 놓친 결과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후회하는 것이 왜 내가 이토록 짧은 인생을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살지 못했을까? 아쉬워한다는 것입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런 후회를 뒤 따라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마음을 늘 기뻐하고, 감사하고, 어려움이 찾아 올 때 마다 그것을 기도로 바꾸면서 주님의 인도를 받아야 할 줄 믿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처럼 무엇보다도 마음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외부로 표출되는 삶은 즐거운 삶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상태는 곧 외부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을 속인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픕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마음관리를 잘해야 몸도 건강한 법입니다.
잠언 17: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로 표현됩니다. 마음의 괴로움도 얼굴에 나타납니다. 좋은 생각은 마음을 행복하게 합니다. 나쁜 생각은 마음을 불행하게 합니다.
【에이브라함 링컨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친구가 어떤 사람을 추천했습니다. 링컨은 그의 얼굴을 보다가 거절했습니다.
링컨이 본 그 사람의 얼굴에서는 진실성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 말 이 “사람이란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곧 얼굴은 마음의 창이란 뜻입니다. 그 사람의 얼굴을 통해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있습니다.
그 생각은 곧 얼굴에 그대로 표현됩니다. 얼굴에 나타난 것은 곧 그 사람의 마음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살이에서 가장 어렵고 중요한 것이 마음관리입니다. 마음을 관리하
지 못할 때 자기 자신의 삶의 관리 또한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지키고 마음을 잘 관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곧 신나는 인생의 원리가 되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입을 조심 시켜야 합니다.(24)
“궤휼을 네 입에서 버리며 사곡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사람에게서 실수를 찾아본다면 말의 실수를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귀와 눈과 입과 코, 즉 耳目口鼻가운데 눈은 죄가 들어오는 통로가 되고 입은 죄가 쏟아져 나오는 통로가 됩니다.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탐욕이 일어나고 그래서 죄가 됩니다. 입은 먹을 것이 들어가고, 또 마음에 있는 것이 나옵니다. 그래서 입은 들어가고 나오는 출입이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입에서 말이 나옵니다. 그 말은 마음의 표시입니다. 마음속을 우리가 볼 수는 없지만 입을 통해서 마음의 상태가 드러납니다. 내 속에 있는 마음이 입을 통해서 밖으로 그대로 노출됩니다. 마음이 아름다우면 입술을 통해서 나오는 것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악하고 추하면 입술도 역시 악하고 추해집니다. 태초에 에덴동산에서의 사람의 마음은 그냥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입만 벌렸다 하면 아름다운 노래만 나아왔습니다. 하나님 찬양만 나왔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는 순간부터 선과 악이 공존했습니다. 그래서 한 입에서 찬송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가 ‘이것으로 우리가 주 하나님을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 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에 대한 교훈은 야보고서 3장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3장8절에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말씀 하였습니다.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자 하는 마음으로 말을 하면 상상할 수 없는 창조적인 힘을 발휘하지만, 나쁜 영향력을 미치고자 하는 마음으로 말을 한다면 상대방에게 심각한 피해를 남기되 일평생 영향을 주게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신앙 생활하는 사람의 입술이 변해야 하는데 먼저 목회자의 입술이 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에 권사님, 집사님 등의 순으로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무엇이든지 죽이는 입술(혀)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흔히들 참 잘 죽이는데 먼저 자신을 잘 죽입니다. 더워서 죽이고, 추워서 죽이고, 기분이 좋아 죽이고, 기분이 나빠 죽이고, 속상해 죽이고 답답해 죽이고, 거기에다 정말 환장까지 합니다. 그래서 늘 죽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입술로 자식도 죽이고, 남편도 죽이고, 부모도 죽이고, 친구도 죽입니다.
잠 18장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여러분에게 잘못하고 해 끼치는 사람일지라도 욕하고 저주하고 입으로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원하는 일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5장 44절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고 남을 많이 비판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는 경고의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은 온 동네 소문에 정통한 경우도 있는데 동네 정보가 훤하여 누구네 집 가게의 부도가 날 것 까지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집에는 온갖 수다쟁이들이 모여서 말 짓기를 하는데 그 집에서 동네의 온 소문이 만들어져 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의 알 것 모를 것 다 알면서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 남의 말을 해 보면 그 순간은 매우 즐겁고 유쾌하여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것 같기도 하여 음식으로 치자면 별식과도 같은데 솔로몬은 남의 말하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잠언18장8절에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남의 말하는 것은 별식과 같아서 들을수록 재미가 있고 먹을수록 맛이 있어서 남의 험담을 통해 자기 만족을 누리고 남을 비난함으로서 일종의 쾌감을 얻습니다.
그런 사람끼리는 동료 의식도 강하게 느끼면서 서로가 일체감으로 남을 비난하고 흠집 내고 비판하면서 말 공장을 항상 가동합니다.
하지만 우리 성도들은 이 입을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더더구나 말의 실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성도는 가급적으로 말을 적게 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오늘 본문도 입술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24절에 “궤휼을 네 입에서 버리며 사곡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지키기 원한다면 입을 지켜야 합니다.
여기서 궤휼이란 ‘사악한 말’을 뜻합니다. 악하고, 삐뚤어지고, 왜곡된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곡은 ‘완악함’을 뜻합니다.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 온전한 말, 바른 말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잠언 18장 20~21절에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케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이 어디에 달려있습니까? 여러분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10~11절에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고 하였습니다.
행복하게 사는 것도 말로 인해 이루어지고, 불행한 것도 말로 인해 이루어집니다. 의인이냐 악인이냐의 차이는 의인은 선한 말을 하고(잠 12:25) 악한 사람은 악한 말을 하는 데에 있습니다(잠 12:13). 악인은 악한 말을 하기 때문에 악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말씀대로 “궤휼을 네 입에서 버리며 사곡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는 대로 사는 것이 신나는 인생의 원리인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발을 악에서 떠나게 해야 합니다.(27)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대한민국이 세계 1위를 차지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자랑스러운 1위도 있지만 이혼 증가율 세계 1위, 저출산과 고령화 진행률 세계 1위, 자살률 OECD 국가 중 1위 등 부끄러운 1위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항목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술’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직장인 23%가 알코올 중독 상태라는 충격적인 보고가 나왔습니다. 얼마 전 탤런트 최진실 씨의 충격적인 자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그녀를 자살로 몰아간 것은 인터넷에 떠돈 악성 루머와 악성 댓글이므로 이런 것을 올린 사람을 처벌할 수 있도록 소위 ‘최진실 법’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간과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녀를 자살로 끌고 들어간 것은 바로 ‘술’이라는 사실입니다. 평상시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술을 정말 많이 마셨고 숨진 날 밤에도 술을 마시고 귀가한 후 자택 안방에서 울다 욕실로 들어가 목을 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알코올 중독 수준에 이르면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어디 술뿐이겠습니까?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중독이 있습니다. 도박 중독, 인터넷 중독, 음란 중독, 이 모든 중독에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끊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누군들 이 무서운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모든 중독자들이 끊어보려고 안간 힘을 씁니다. 하지만 안 되는 데 어쩌겠습니까? 그래서 어느 방송에 나온 알코올 중독자가 그 자신도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 보려고 그렇게 아등바등 거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고 결국 알코올에 중독에 빠진 순간 정말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 고백한 것을 보았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더랍니다.
우리는 우리의 발이 악한곳을 향하여 가지 않도록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본문 26-27절에 "네 발의 행할 첩경을 평탄케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이것을 새번역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발로 디딜 곳을 잘 살펴라. 네 모든 길이 안전할 것이다. 좌로든 우로든 빗나가지 말고, 악에서 네 발길을 끊어 버려라." 항상 바른 길만 찾아가라는 말이지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악의 소굴에는 발길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발을 잘 지켜야 합니다. 아무데나 발을 들여놓다가는 죽습니다.
그리고 전도서5장1절에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기 성전에 들어갈 때에 발을 삼가라는 말씀은 하나님은 행위의 신중함을 보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삼갈지어다”로 번역된 히브리 원어 “솨마르”는 “조심하다”, “신중히 하다”, “준수하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 예배를 하는 사람은 발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발을 조심해서 하나님께 예배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즉 발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행위를 바르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막되게 세상을 살던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행동으로, 삶으로 경건을 유지하던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예배할 자격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의 경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서 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불은 보통 불이 아니라 번지지 않고 꺼지지 않는 불이어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확인하기 위해서 가까이 가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출애굽기3장4-5절에 “모세야 모세야,....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신을 벗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때 모세가 신을 벗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가 신고 있는 신발에 더러운 흙이나 먼지가 묻어 있었기 때문에 벗으라고 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신발이 낡고 헤어진 것이기 때문에 벗으라고 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 경우에 모세의 신은 지금까지 살아오던 그의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아오던 모세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 알지만 그의 삶은 육신위주의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불신앙의 삶이었습니다. 전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며 살던 삶이었습니다. 더구나 모세는 사람을 때려죽인 과거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애굽을 도망쳐 나와 숨어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신은 피를 흘린 신입니다. 혈기를 부리며 자신의 주먹을 휘두르던 신입니다. 그런 신을 신고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먼저 신을 벗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더러워진 삶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오라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도 후회함이 없는 현재의 삶을 위해 그리고 신나는 인생을 위해 말씀하시기를 “네 발의 행할 첩경을 평탄케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하셨습니다. 발걸음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발걸음 즉 내가 남긴 발자취는 나로 인해 남겨진 역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발이 어느곳을 향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복된 발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사야 58장 13-14절에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 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
즉 발을 삼가서 안식일에, 주일날에 사사로운 길로 가지 않고, 오락을 구하여 가지도 않고, 성일을 존귀히 여겨 성전으로 나아오는 발 이 복된 발이라는 말씀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발을 붙잡아 교회고 나가지 못하게 하고, 세속으로 향하게 합니다. 마귀는 예배시간에 손님이 오게 해서 교회에 못나가게 합니다. 바쁜일, 피치 못할 일이 생겨서 교 회에 못 나가도록 우리의 발을 붙잡고 늘어집니다. 이런 유혹과 시험을 걷어차고 교회로 나오는 자의 발은 복된 발입니다.
이처럼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고 성전으로 나오는 것이 신나는 인생의 원리인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