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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생명의 샘물이십니다./ 요4:1-42

작성자최우식 목사|작성시간12.01.04|조회수534 목록 댓글 2

예수님은 생명의 샘물이십니다.

요4:1-42

2011. 3. 27


<M1/ 청중의 마음열기>

일반적 접근/ (M1S1)

인사(M1S1 A1)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품어, 축복을

  누릴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꿈꾸는 성도가 됩시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이루는 교회가 됩시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품어/ 축복으로 누리는 가정이 됩시다.


웃기는 예화(M1S1 B1)

  초등학교 다니는 이 숙제를 하는데, 숙제는 ‘5대양 6대주를 적어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책을 보아도 잘 몰라서 아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아빠!"  "응?"

 "5대양 6대주가 뭣이어요?"

  한참을 생각 하던 아빠"그런 것이야 쉽지. 받아 적어라." 아주 자신 있게 숙제를 알려주는데, "5대양은 김 양, 이 양, 박 양, 최 양, 강 양이란다." 말했습니다.

 "네~. 그럼 6대주는 뭔데요?"

  아빠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대답했습니다.   "응. 6대주는, 소주, 맥주, 양주, 백세주, 포도주, 그라고 막걸리란다."

  숙제를 기쁜 마음으로 해간 이 다음날 학교에서 선생님께 야단을 맞고, 집에 돌아와 아빠에게 입이 툭 튀어나온 말투로 불평했습니다.

"아빠! 숙제를 잘못했다고 선생님께 혼났어요?"

  그러자 아빠가 미안한 듯 말했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사실은 막걸리가 아니고, 탁주란다. 탁주!”


영적 설명(M1S1 C1)

  말은 내 속에 품고 있던 생각이나 경험이 구체화 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내 속에 을 품고 있으면 술 이야기가 나오고, 음란을 품고 있으면 음란이 구체화되어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늘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늘 사모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듯 말씀이 줄줄 나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성경적 접근(M1S2)

본문 요약(M1S2 A1)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지나가다가 수가 마을 우물가에서 한 사마리아 여자와 나눈 대화와 그때 일어난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이 개 같이 여겨 상종조차 하지 않는, 사마리아인 중에서도 행실이 더욱 부정한 여인과 대화함으로써, 복음은 인종과 빈부귀천의 차별 없이 구원을 얻게 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당시에 논쟁이 되었던 예배 장소도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물질이나 사람에 의해 제한되는 것이 아님을 밝히시므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예배의 본질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만이 그리스도가 되셔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심을 결론적으로 예수님 스스로 선포하십니다.


의문점 제시(M1S2 B1)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하나님을 늘 대적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인 유대인들을 타락시키려고 얼마나 끈질기게 미혹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소위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부하던 유대인들에게 개 취급을 받던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그 사마리아인들을 찾아 갔고, 그 중 가장 죄가 많은 여인을 만나 대화까지 하였는데, 전지전능하신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대표적 질문(M1S2 C1)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을 여섯이나 둘 정도로 타락한 삶을 산 여자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선선한 아침이나 저녁때가 아니라 뜨거운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한낮에만 물을 길어갈 수밖에 없는 왕따입니다.

  그런 더러운 여자와 무슨 대화가 되겠습니까?


세부적 질문(M1S2 D1)

  유대인인 예수님이 그런 여자에게 목이 심히 마르다고 해서 “물을 좀 달라”고 하는 것이 온당하기나 합니까?


대표적 질문(M1S2 E1)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이 와서는 안 되는 사마리아 땅에 온 것은 아닙니까?

  해서는 안 될 상대와 대화한 것은 아닙니까?


청중적 접근(M1S3)

시대적 적용(M1S3 A1)

  모든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의 반목으로 인하여 가장 가까운 길인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는 것을 죄악시하여, 한사코 요단강은 건너는 우회 길을 택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같은 상례를 깨뜨리시고, 스스럼없이 사마리아 지경을 통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원계획 속에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증거 되는 것을 포함시키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하여 사마리아를 통행하는 것을 조금도 개의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청중 문제(M1S3 B1)

  이방을 위하여 사도로 세움을 받은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그 때에 너희는 육체로 이방인이요,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2:11-13)

  만일 생명의 샘물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것으로만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 유대인에게만 한정되었다면, 사마리아인들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 이방인인 오늘 날 우리는 더 더욱 허물과 죄 가운데 죽어 지옥에 갈 수밖에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대표적 질문(M1S3 C1)

  그렇다면 예수님이 사마리아 땅으로 간 것이 잘못입니까?


세부적 질문(M1S3 D1)

  예수님께서 수가 우물가에서 여인과 대화를 한 것이 비난받을 일이 됩니까?


대표적 질문(M1S3 E1)


<M2/ 성경의 문제 제기>

본문 문제배경(M2S1)

연대와 장소, 지형특성(M2S1 A1)

  1세기 초 예수님이 살고 계시던 팔레스틴은 남쪽으로는 유대지방, 북쪽으로는 갈릴리지방, 그리고 그 중간으로는 사마리아 지역으로 분할되어 있었습니다.

  남쪽 유대에서 북쪽 갈릴리로 가려면,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지름길로 가는 것이 합리적이었습니다.

  요단 강 동편으로 돌아서 가는 길은 대략 6일 정도 걸리지만,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은 3일밖에 소요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유대인들은 북쪽 갈릴리 지역으로 갈 경우 3일 걸리는 사마리아 땅을 거치지 않고, 6일이나 걸리는 요단 강 동편으로 빙 둘러 우회하여 갔습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이 지름길인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을 이용하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앗수르에 의해 북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래 사마리아인들은 앗수르의 혼혈정책으로 인하여 혈통과 신앙의 순수성을 잃어버렸던 반면에, 남쪽 유대인들은 70년 동안의 바벨론 포로 생활 가운데서도 혈통과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냈습니다.

  그래서 남쪽 유대인들은 북쪽 사마리아인들을 더 이상 유대민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개처럼 여기게 되었고, 이로 인한 두 족속간의 반목이 깊어져서 서로 상종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길을 이용하지 않고, 요단 동편 길을 이용하게 된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이러한 관례를 깨고, 금기시 된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면서 겪게 된 일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문제배경 설명(M2S1 B1)/문제 발생 직전까지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는 마을은 옛 세겜 근처에 있는 지명을 가진 곳으로, 요한복음에서 언급되는 야곱의 우물은 오늘날에도 보존되어 있습니다. 제가 직접 보고 왔습니다.

  이 야곱의 우물로부터 동북쪽으로 1km쯤 떨어진 곳에 수가 마을이 위치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수가 마을을 지나가시면서 심히 피곤하여 갈증이 나게 되어 야곱의 우물 곁에 앉으셨는데 그 때가 정오쯤 되었습니다. (4:6)

  제자들은 마을로 먹을 것을 사러 가고, 예수님 혼자 우물가에 앉아 계셨습니다.


인물 설명(M2S1 C1)/문제발생 직전 가주어

  그 때 마침 한 사마리아 여인이 정오인데도  우물에 물을 길러 왔기에,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7절)고 말을 건네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물을 좀 달라”고 요청하셨을 때 그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여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9절)라고 되묻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 여인이 예수님께 그렇게 묻게 된 이유를 9절에서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 함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영적 설명(M2S1 D1)/문제 발생전 상태 L4

  사마리아 여인의 질문을 받으신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10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인은 사마리아 여인으로서, 사마리아인의 관점에서 예수님을 대했지만, 예수님은 그 여인을 있는 그대로 한 인간으로 만나 주시고 받아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영혼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대화하셨는데, 그녀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깨닫지 못하고, 지극히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입장에서 말했습니다.

  이 대화를 통하여, 예수님은 그녀를 생명 구원으로 이끌어가고 계신 것입니다.

  그 여인은 현실과 물질에 대한 관심으로 살아갔지만, 예수님은 영혼에 대한 관심으로 그녀를 인격적으로 배려하신 것입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 존재하는 대립과 반목하는 관계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은총이 함께 하는 곳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유대인들도 사마리아인들도 똑같이 다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하므로, 그것이 유대인 또는 사마리아인 구분 없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이 사실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알고 있는 것조차도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10절에서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인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게 하는 생명의 샘물이 누구인지를 알게 하기 위해 직설적으로 질문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한 시기에 예수님은 야곱의 우물가에서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한 사람,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선물이요,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생명의 생수임을 생수에 관한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님이요, 예수님이 참된 생명수임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그렇게 자세하게 직접적으로 말씀으로 깨우쳐 주셨는데도, 여인은 지금 자기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선물이신 구원의 생명수이심을 깨닫지 못하고, 그 생명수가 이 땅 어디인가에서 퍼서 마실 수 있는 우물물인 줄 알고, 11절에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을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통하여 그 뜻을 희미하게 깨닫고, 예수님을 믿지 못하여 12절에서 “당신이 우리 조상 야곱보다 더 크십니까?”긴가민가하여 질문합니다.


  바로 여기에 오늘 말씀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드러난 이 사마리아 여인의 문제가 되는 모습은 무엇입니까?

‘영생의 샘물이신 예수님이 자기 바로 앞에서 말씀하고 있는데도 그 예수님이 영생의 샘물임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지 못하여 예수님을 자기들의 조상 야곱보다도 못한 존재로 의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 발생원인(M2S2)

원인(M2S2 A1)

  이 사마리아 여인의 무지하고 의심에 쩐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13-14절에서 구체적으로 명백하게 ‘예수님 자신이 영생의 샘물이심’을 대답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우물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13-14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기에 전적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비로소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어느 정도 깨닫습니다. 그래서 여인이 너무 좋아서 15절에서 호들갑을 떨며 말합니다.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그런데 15절에 나타난 여인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하나님 나라의 진리가 밝히 드러날수록  인간은 죄인이 되어 육신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고, 죄로 더럽혀진 심령으로 깨닫게 되는 우리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는 더 깊고 높은 신비가 되어 ‘하나님 그 분 자체를 복으로 보지 못하고, 그 하나님에 관한 것들만 복으로 보게 된다.’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전적으로 옳은 예수님의 이 말씀이  지금 현재의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전적으로 더 불가능한 말씀이 되었다’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인물 설명(M2S2 B1)

  사마리아 여인‘예수님 자신이 영생을 주는 샘물이심을 알지 못하고, 자기에게 지금 말씀하시고 계신 예수님이 한 번 마시기만 하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되는 어떤 신비의 물을 가지고 있는 분 정도로만 알고, 그 물을 달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아직도 세상적인 눈을 뜨고, 예수님을 육신의 예수로만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목이 마르신 예수님이 자기에게 “물을 좀 달라”요청한 물이 야곱의 우물에서 나는 샘물이었으니까, 예수님께서 주시려는 생명의 샘물도 땅에서 나는 어떤 신비한 약물 정도로만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10절과 11절에 나오는 “생수”는 문자적으로는 ‘샘물이나,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우물 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수”는 그런 땅이나 골짜기에서 나는 물질적인 의미에서의 생수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생수’에 대하여 야곱의 우물이 아닌 또 다른  곳에서 나는 어떤 약수로 알고, “주여, 물을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게 하겠습니까?”(11절)라고 대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점(M2S2 C1)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 여자를 한 인격자로 보시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목이 마른 그 육신적 문제를 통하여, 그 여인이 가지고 있는 영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서 영적인 문제가 문제시 되면 육적인 것으로는 완전히 해결 할 수 없게 됩니다.

  영적인 문제에서 매듭이 생길 때는 영적인 것으로만 그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요 2:20-22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했을 때, 유대인들“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되묻고 있습니다.

  예수님“성전이신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요 2:21)이지만, 유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성전만을 성전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인간은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경험과 생각의 범주 안에서만 생각합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인간의 영역에 개입하고 알려줌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영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목마른 세상 사람들을 생수로 초청했습니다.

  깊은 우물에서 나온 생수라 할지라도 이 세상의 물은 다만 일시적으로 사람의 육체적 갈증을 덜어줄 뿐이지만,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생수는 예수님 자신을 말하는 것으로서, 사람의 영적 갈증을 영원히 그리고 완전히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생수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마다 그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여 영생의 보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이 마르지만, 예수님께서 주시는 그 생명의 샘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여, 그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은 여전히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생수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먼 길로부터 물을 길러오는 자신의 수고를 덜어달라고 예수님께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15절)


영적 설명(M2S2 D1)

  바로 이 사실이 사마리아 여자에게는 문제의 뿌리가 되는데, 사마리아 여인은 아직도 예수님그분이 생명의 샘물이신 것을 깨닫지 못하고, 믿음을 가지지 못하여, 예수님이 그토록 간절하게 주시고자 하는 생명의 샘물이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주어의 심리묘사(M2S3)

고통 본질/ 크기(M2S3 A1)

  그러면 왜 이 여인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그토록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미 그녀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세상관과 인생관, 가치관, 지식, 경험 등이 너무 확고해서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던지 그것으로 판단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하면 자기가 이제까지 야곱의 우물에서 수고하여 길어 먹었던 그 물, 마셔도 마셔도 목이 말랐던 그 물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도 그 정도이리라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생각은 사람이 스스로 깨달을 수도 없고, 뛰쳐나올 수도 없습니다.

  이 여인은 그 먼 길을 걸어와 물을 길어도 길어도 수고뿐이지, 만족함이 없습니다.

  이 여인은 수고하여 길어온 물을 마셔도 마셔도 그 때뿐이지, 목마름은 계속이 됩니다.

  이 여인은 그래서 이제는 육체의 뿌리를 태우는 쾌락을 통하여 육체의 목마름을 해결하려고 남편을 여섯이나 갈아보았지만, 자기의 영혼만 피폐해질 뿐, 육체의 갈증은 더 해 가기만 했습니다.

  결국 이 여인은 세상을 등지고,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마지막 죽음 앞에 자기를 내어놓을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요,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 신앙적 자아를 만듭니다.


외부적 심리묘사(M2S3 B1)

내부적 심리묘사(M2S3 C1)

독백(M2S3 D1)

 ‘나는 이제 다 해 보았다. 그래도 내 욕망은 채울 수가 없구나. 이제는 죽음만이 나를 삼키려고 하는구나.’ 독백하기도 합니다.


영적 설명(M2S3 E1)

 세상은 모든 것을 삼키는 존재요, 죽음이 왕 노릇 하는 현장입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죽음을 만족시키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는 필요만이 있을 뿐, 만족함이란 없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도 얼마나 처절하게 그 고통을 당하였던지,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을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사마리아 여인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요, 절망도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는 부르짖고 탄식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은 문제를 만들 줄은 알지만,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모르고, 능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M3/ 성경 문제 해결>

본문 해결 시작(M3S1)

헌신적 멘트(M3S1 A1)/헌신작정 과정

 사도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는 친히 모든 사람을 다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심으로”(요2:25)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모든 것, 그 속에 있는 것도 친히 다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 속에 있는 것을 다 아시는 예수님께서 느닷없이 그녀에게 엄하게 명령하십니다.

“가서 네 남편을 데려오라”(16절)

  이 여자는 일순간 멍하도록 당황했지만, 본능적으로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 대답했습니다.

  그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은 아주 의외로 부드럽게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이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 되도다.”(18절) 여인의 대답을 책망하지 않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너무나도 정확하게 자기의 숨겨진 모습을 인정하여 지적하시므로, 여인은 더 이상 자기를 감출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자기보다도 더 정확하게 자기를 아시는 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여, 내가 보나 선지자이로소이다.”(19절)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라고 하는 여인의 요청에 대해, 예수님은 어떤 의도로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을까요?

‘생수를 달라’고 하는 여인에게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어떻게 보면 동문서답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그 사마리아 여인이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17절)고 대답했을 때, 그 여인의 가슴속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죄의식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지금까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도 함께 사는 남편이 아닌 남자가 있으면서도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 대답하는 사마리아 여인의 모습에서 가슴 깊숙이 숨겨놓은 그 여인의 죄의식을 꿰뚫어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여인의 거짓 대답에 대해 책망을 하지 않고, 그 마음속에 있는 죄의식을 인정하여 용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있어서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그토록 그 여인을 갈증과 수고로 찌들게 하여 죄책감에 빠지게 했던 세상으로 따라온 욕구를 임시적으로 해결해주는 물이 아니라, 여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죄로 깨닫지도 못하고 있는 그 죄를 깨닫게 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게 할 영생수이심을 알도록 의도적으로 유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으로 하여금 여인의 가장 은밀한 부분에 숨겨져 있는 그 아픔을 시인하게 하시고, 다시금 그녀의 숨겨진 과거를 정확하게 지적하여 밝힘으로써 여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동시에 예수님이 바로 생명의 샘물의 본체이신 것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녀는 예수님을 ‘당신’이라고 부르지 않고, ‘선지자’라고 부르게 되었고, 예수님이 메시야이신 것을 알고는 하나님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능력을 사람이 받아들이고 응답하는 데서 인간 내면에 변화를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예배 처소가 어디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가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곳이 바른 예배의 장소입니다.


  영적인 갈급함을 사마리아 여인은 육적인 것으로 채우려고 했으나 만족이 없었습니다.

  인간은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곤고하고 더욱 갈급하게 된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문제를 영적인 것으로 보시고, 참된 예배를 가르쳐 주시고, 그녀를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전혀 의미 없는  인생을 살아가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계기가 이렇게 전개된 것입니다.    찾아주는 이 없이 고아처럼 내던져진 존재였던 그녀에게도 인생의 봄은 찾아 왔습니다.

  그 계기는 오직 예수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하여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게 되자, 그 사실을 알리고자 하는 그 마음이 너무 불일 듯 일어났으므로, 자신에게 중요한 물동이까지 버려두고, 마을로 급히 들어가서 마을 사람들에게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4:29)라고 외쳐 증거 함으로써, 사마리아에 교회가 세워지게 하는데 최초로 쓰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물에서 육신의 생수를 구하던 한 여인이 생명의 샘물이신 예수님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폐인처럼 살아가던 인생을 정리하고 새롭게 변화된 여인의 고백은 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의 선포를 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30절)

  이 사실을 예수님은 이렇게 증언하십니다.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함으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39절)

  나중에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이틀간이나 자기들과 함께 머물게 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더 많이 믿게 되었고, 예수님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세주이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생명의 샘물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된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서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간에 자신의 죄에 대한 깨달음과 뉘우침이 없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에 대한 참된 지식이 없이는 영생의 필요성을 깨달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생명의 샘물이신 예수님을 믿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병든 자를 고치는 치유자로 오셨습니다.

  인간의 문제는 우리가 서로 너무 쉽게 사람들이 잘잘못을 판단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관심은 죽은 자를 살리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수가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이 가지고 있는 그녀의 부도덕성을 지적하신 것이 아니라, 그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받아주셨습니다.

  사마리아에서 예수님은 길 잃고 방황하는 한 가련한 여인과 대화하시며 그를 배려해주시고, 인정해주시고, 받아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보살펴 주신 행동은 죽어가는 여인을 생명의 길로 부른 구원 행위였습니다.

  수가 마을 우물가에서 만난 그 여인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남편을 다섯이나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죄인이었고, 약점이 많았고, 철저하게 왕따 당할 수밖에 없는 꺼림칙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마리아에서는 그녀를 인정해 주는 사람도, 반겨주는 사람도 없었기에, 그녀는 사람의 이목이 두려워 다른 사람이 물을 길러 오지 않는 정오에 우물에 물을 길러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눈에는 그녀가 부도덕해 보였겠지만, 예수님은 그 여인을 보는 관점이 달랐습니다.


헌신의 감정(M3S1 B1)/헌신각오 시 자기극복

  예수님께서 누리는 기쁨의 근거는 하나님께서 그 분에게 주신 일을 행하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 후에 그녀가 보인 행동과 믿음을 통하여 이제 추수 때가 이미 무르익었다는 것을 인지하십니다.

헌신의 행동(M3S1 C1)/헌신의 구체적 행동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사이에 있었던 대화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지만, 예수님 핵심을 찌르는 질문과 대답을 통해 여인은 자신의 인생살이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기다려온 메시야를 발견하고, 기쁨에 겨워 그 사실을 전하기 위하여 마을로 가게 된 것입니다.


영적 설명(M3S1 D1)/헌신행동의 정의

본문 해결 방법(M3S2)

하나님의 심정(M3S2 A1)/M2->M3로 이끄심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속에는 신앙이 어떻게 생성되고 어떻게 발전해 가는지에 대한 전형적인 모습이 나타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꿰뚫어보는 예수님을 통하여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고, 그 여인이 가진 믿음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충격을 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39a절)고 말을 전하였더니, 사마리아 사람들이 듣고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39b절)는 요한의 증언에서 보다시피,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이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잘 아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는, 그녀가 새롭게 변한 것이 아마도 큰 충격으로 다가 왔을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와 그 제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예수님께 몰려와서 그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였으며, 예수님은 그들의 청을 받아들여 이틀을 유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졌습니다.”(41절)

  예수를 만난 뒤에 새롭게 변하여 그리스도를 전했던 여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돌아온 자들이었지만, 그리스도의 말씀을 직접 듣고 더 많은 사람이 확고한 믿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여인의 말을 들었을 때는 막연한 믿음에 이르게 된 자들도 예수를 직접 대면하여 말씀에 자신을 내 맡겼을 때 믿음에 이르게 되는 경험을 직접 하게 된 것입니다.(참조. 42절)


  오늘 본문에서 믿음에 이르게 되는 길은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를 ‘선지자’로 인식하는데서 출발했습니다.

  예수를 선지자로 인식한 그녀의 믿음의 눈은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예수님을 ‘메시야’로 깨닫게 하는 믿음으로 성장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식하는 믿음을 통하여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로 고백하게 됩니다.(42절)

  그들이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로 고백하는 믿음은 예수님을 유대인만의 구세주로 보는 것이 아닌, 세상을 위한 구세주로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세상의 구주”로 지금 여기서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때를 성취하시는 분이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M3S2 B1)/해결하시는 능력

하나님의 행동(M3S2 C1)/가주어에역사하신 방법

영적 설명(M3S2 D1)

헌신자의 큰 복(M3S3)

인간의 헌신(M3S3 A1)/복받기 위한 가주어헌신

복주는 하나님의 속성(M3S3 B1)

복의 종류(M3S3 C1)/육, 정, 영의 복

영적 설명(M3S3 D1)가주어의 복받는 영적 법칙

<M4/ 현 청중 문제(적용)>

청중 해결 동기(M4S1)

문제 종류와 고통의 크기(M4S1 A1)/예화

  1940년 2차 대전 당시의 일입니다.

  영국군 33만 5천명이 독일군에게 쫓겨 불란서 조그마한 어촌인 덩케르크에 포위됐습니다.

  첩첩이 독일의 전차와 기갑부대에 포위되고, 공중에는 독일의 전투기들이 계속해서 폭탄을 투하하고, 기총소사를 하며, 바다에는 독일의 잠수함 유보트가 영국의 어떠한 군함도 근접하지 못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영국의 33만 5천명 대군이 그곳에서 몰살하든지 포로가 될 운명이었습니다.

  전 유럽이 나치의 손길에 무너지고 말 형편이었습니다.

  정말 홍해 가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형편이었습니다.

  물러가자니 바다이고, 그 밑에는 독일의 유보트가 진을 치고 있고, 공중에는 독일의 비행기요, 지상은 독일의 기갑부대가 밀고 들어오는데 33만 5천명은 꼼짝없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 때 영국 황실과 윈스턴 처칠 수상은 ‘온 교회와 온 교역자와 성도들과 믿지 않는 모든 백성들도 다 영국과 이 33만 5천명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전 국민이 존경하는 윌리엄 템플 경에게 설교를 하도록 부탁했습니다.

  전 국민에게 전해지는 방송시간에 윌리엄 템플은 조용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위기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시간 그는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지금은 우리 온 국민이 예배해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의 마을에서 예배당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 어른으로부터 시작하여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한명도 빠지지 말고, 모두 예배당에 가십시오. 지금은 온 민족이 함께 예배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온 민족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온 국민이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때입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예배에 승리해야 할 때입니다.”

  영국의 군인들도 다 기도하고, 국민들도 다 기도하고, 특히 믿는 사람들은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처칠 수상 자신도 웨스트민스터 사원 성가대 좌석에 앉아 하루 종일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인간으로써 막다른 골목에 처해서 힘으로 능으로 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입니다.

  그러자 크고 비밀한 일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병기가 나타난 것입니다.

  갑자기 악천후가 다가와서 거대한 파도가 치고, 소낙비가 쏟아져서 모든 독일 전차들이 진흙탕에 바퀴가 빠져서 한 대도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악천후로 비행기도 뜨지 못했습니다.

  독일의 기갑부대도 진흙탕에 주저앉고, 비행기도 뜨지 못하고, 파도가 너무 세니까 모든 독일의 잠수함들이 철수를 했습니다.

  그렇게 폭풍우가 불더니, 순식간에 영국군이 있는 덩케르크만 조용하고 폭풍우가 그쳤습니다.

  다른 데는 아직까지도 비바람이 치는데, 거기만 조용했습니다.


헌신의 방법과 촉구(M4S1 B1)/성도의 신앙촉구

  하나님은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에는 반드시 그 믿음대로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이 된 성도들에게 믿음대로 사시기를 촉구하십니다.

  하나님은 믿음대로 기도하시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믿음대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드리는 찬양을 받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믿음대로 충성하고, 헌신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믿음대로 사시는 성도들에게 생명의 샘물이 되십니다.


영적 설명(M4S1 C1)/헌신하게 될 때 영적법칙

하나님의 청중개입(M4S2)

청중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M4S2 A1)/문제해결

하나님의 속성(M4S2 B1)/M2S2 속성 수평이동

하나님의 방법(M4S2 C1)/M2S2 속성 수평이동

영적 설명(M4S2 D1)/

청중의 더 큰 복(M4S3)

청중의 헌신(M4S3 A1)/문제해결의 실마리

복주는 하나님의 속성(M4S3 B1)/하나님의 능력

복의 종류(M4S3 C1)/M3S3복, 청중에게 적용

영적 설명(M4S3 D1)/ 복주시는 영적 법칙

<M5/ 청중의 결단 내용과 복>

결단의 필요성(M5S1)

결단의 이유(M5S1 A1)/M3,M4의 복받기위한 결단

아이템(M5S1 B1)/목회안목, 계획 제시

  지금은 사순절 절기 중입니다.

  이 사순절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보내기를 위하여 우리 늘푸른교회는 매주 금요일 9-10에는 심야기도회를 하고 있으며, 그리고 고난주간 새벽에는 특별 새벽기도회를 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결단의 복(M5S1 C1)/아이템 중심 복

영적 설명(M5S1 D1)/하고픈 열정 심어

결단의 방법(M5S2)

방법의 중요성(M5S2 A1)/구체적 방법 제시

해야 할 것/ 하지 말 것(M5S2 B1)/구체적 행동

방법의 의미(M5S2 C1)/행동 하나하나 의미부여

영적 설명(M5S2 D1)/성경 가주어처럼 됨

결단의 축복(M5S3)

촉구(M5S3 A1)/꼭 지금 결단해야 함 강조

결단하지 않은 결과(M5S3 B1)/복 놓침

복의 종류/ 크기/ 범위(M5S3 C1)/실질적 복

영적 설명(M5S3 D1)/결단이 복이 되는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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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전호위 | 작성시간 12.03.14 귀중한 말씀 감사합니다.
  • 작성자주주바라기 | 작성시간 12.03.16 귀한 말씀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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