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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주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들라(시121:1-8)

작성자최우식 목사|작성시간12.01.25|조회수551 목록 댓글 2




꿈을 주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들라

시121:1-8

2011. 1. 16



멍게와 미더덕의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아십니까?



못난 조개가 자기보다 더 못난 해삼하고 연애를 해서 얼마 뒤 자식을 낳았습니다.

 낳아놓고 보니, 생긴 게 너무 엉망이고, 흉측한지라.

 놀란 해삼과 조개가 마주보고 이구동성으로 ‘이게 멍기요?’ 외쳤습니다.

 이리하야 그 첫마디가 이름이 되어 그만 멍기는 멍기가 되었습니다.



 못생겨도 너무 못생긴 멍기는 바다 속 이곳저곳에서 왕따가 되어 떠돌다가, 자기보다 더 못생기고 징그러운 개불을 만나 홀아비 사정 과부가 안다고 이심전심 한풀이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뒤 자식을 낳았는데, 그 놈이 바로 ‘미더덕이 되었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이것은 순전히 못난 놈이 자기보다 더 못난 놈을 쳐다보다가 생긴 불상사입니다.

 자기가 못났으면 그래도 자기보다 더 잘난 놈을 쳐다보고 살았으면, 전복이나 하다못해 소라 정도는 됐을 것 아니겠어요?



 버스에 여자 중학생 둘이 탔습니다.

 한 명은 자리에 앉고, 한 명은 서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타더니, 앉아있는 학생 앞에 서서 말했습니다.

‘어른이 앞에 서 있으면 자릴 비켜줘야지.

 요즘 아이들은 경로사상이 없다니까.’

 그랬더니, 학생이 눈을 치켜뜨고 말했습니다.

‘아줌마가 늙은이요?’

아줌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습니다.

‘아니, 이게 어디서 눈을 똥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거야.’

 그때 학생이 가소롭다는 듯 대꾸하는 말,

‘그럼, 아줌만 눈을 네모로 뜰 수 있어요?’



 요즘은 위, 아래가 없습니다. 상하위계질서가 무너졌습니다. 자기가 중심이요, 자기가 최곱니다. 스승과 제자도 없고요. 자식은 상전, 부모는 종입니다.

 그러니 어른 아이 그 관계가 올바르겠습니까?

 심지어는 하나님까지도 멸시천대를 당합니다.



 옛날에는 멘토가 있었습니다.

 부모가 자식의 멘토요, 스승이 제자의 멘토요, 선배가 후배의 멘토요, 상급자가 하급자의 멘토요, 어른이 아이의 멘토였습니다.



멘토란 세워주는 자, 키워주는 자, 인도하여 주는 자, 지켜주는 자, 가르쳐 주는 자입니다. 그래서 권위도 인정받고, 존경도 받았습니다. 멘토를 받는 자들이 멘토를 우러러 봤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 귀한 전통이 다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이 멘토의 삶의 자세를 귀하게 여기고, 축복해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주만물의 멘토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만인의 영원하신 멘토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을 주셔서 축복을 누리며 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오늘 말씀에서 “꿈을 주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들라”고 하십니다.



 오늘 말씀 시121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 예배를 드리러 올라갈 때 부르는 노래 중 하나로서, 하나님이 도와주심에 대해 찬양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산을 향해 눈을 들어 자신에게 임하는 도움을 보며 아주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1절) 말했습니다.

 이 ‘산’이 무엇입니까?

 이 ‘산’(헤하림)은 현실적으로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거룩한 산을 이야기 합니다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처소인 시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시온에서 영생의 복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산’은 시온으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대망하게 하는 존재를 상징합니다.

 그 존재가 바로 우리에게 꿈을 축복으로 주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시온으로부터 구원이 임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소를 의미하는 산이 아니라, 영생의 복을 꿈으로 주신 구원의 하나님을 눈을 들어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제 성도들은 세상을 향하여 떠 있던 눈은 감고, 하나님을 향하여 감고 있던 눈을 크게 뜨고, 머리를 들어 하나님께 시선을 튜닝해야 합니다. 시선을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는 ‘내일’이라는 시간도 없고, ‘어제’라는 과거도 없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오직 ‘지금, 오늘, 영원한 오늘’만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에게는 ‘저기’가 없습니다.

 오직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있는 ‘여기’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꿈을 꿈꾸며 사는 사람들은 ‘영원한 오늘’이라는 시간개념과 ‘ 여기, 이 자리’라는 공간 개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 인생을 변화시키고 바꾸는 말은 ‘오늘, 지금, 여기, 이 자리’ 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꿈은 오늘,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시작하여 영원히 계속되는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지금 이 시간, 여기 이 자리에서 꿈을 주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받아 그 꿈을 꾸시는 성도, 그 꿈을 이루는 늘푸른교회, 그 꿈을 품어 축복으로 누리는 가정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하여서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2011년에 꿈을 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그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 그렇게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꿈이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축복을 누리며 살게 할 것입니다.



첫째로, 본문은 우리에게 꿈을 주시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말씀해 주십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지금 시편 기자는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절에서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자조적으로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2절에서 독백처럼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온다.”고 대답합니다.

 시인은 순례자를 여행 중에 안전하게 인도하시고 지켜주시는 분은 오직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성도들에게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과 함께 하시고 이도하시고 도와주시고 지켜주십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 사실을 알고, 다른 그 어떤 것에도 미련을 두지 않고, ‘오직 꿈을 주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얼마나위대하고 놀라운 축복인지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들은 그래서 어떤 권력이나 지식이나 힘 있는 사람의 조언을 듣기보다는, 조용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 조용하고 고요한 시간에 꿈을 무너뜨리는 그 모든 것을 이기게 하는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나에게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꿈에 대한 답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꿈을 품어 축복으로 누리는 비결을 명확하게 듣게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나 세상과는 도무지 비교할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은 우리에게 최고 최대의 복이 되는 것입니다.



 연세대학교 소아과 김동수교수의 간증입니다.

 그는 다른 병원에서 고치지 못한 어린아이를 돌보게 되었습니다.

 김 교수를 찾아온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가 하루에 두 번씩 고열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호소하면서, ‘다른 병원에서 강력한 항생제를 써 보았지만 전혀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병원에서는 ‘정확한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개복수술을 해야 한다.’고 권했지만, 아버지는 차마 어린 자식의 배를 가를 수 없어 김 교수를 찾아온 것입니다.

 아이가 입원한 날부터 김 교수는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부모에게도 ‘같이 기도하자’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간농양이라는 검사결과에 따라 먼저 병원에서처럼 강력한 항생제 치료를 했습니다.

 치료를 시작한 지 이틀 후부터 감쪽같이 열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2주 후 아이는 거의 정상이 되었고, 한 달 후에는 완전히 회복되어 퇴원을 했습니다.



한 의사가 김 교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먼저 병원에서도 똑같은 항생제 치료를 했는데, 왜 거기서는 좋아지지 않고, 여기서는 좋아졌습니까?’

김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기서는 기도의 마이신을 더 썼기 때문이지. 그것도 용량의 두 배나 강하게 썼거든.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할 때는 우리가 일하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거라네.’



예수님께서 아홉 제자는 산 밑에 남겨두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제자만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셨다 내려오셨습니다.

 그때 보니, 아홉 제자들이 아주 난처한 입자에 빠져 있었습니다. 벙어리 귀신 들린 어린아이를 고치지 못해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아이 아비에게 아이가 아픈 자초지종을 듣고, 아이의 아비가 믿음이 없는 것을 책망하시고,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막9:23)고 선포하신 후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막9:25) 하심으로 아이를 고쳐주었습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묻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막9:28)

예수님“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막9:29)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기도함으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말씀으로 무에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2011년에 우리에게 꿈을 주신 그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시다. 하나님이 주신 그 꿈이 비록 우리에게 크고 불가능한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에게는 작고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믿는 자에겐 능치 못함이 없다’ 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꿈을 주신 것임을 분명하게 믿고, 우리의 건강, 자녀, 물질, 이생, 신앙, 모든 문제들을 내려놓고, 간절하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으신 축복으로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2011년 연초에 우리에게 꿈을 주신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간절하게 기도함으로 풍성한 축복을 응답으로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둘째로, 본문은 우리에게 꿈을 주시는 분은 보호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해 주십니다.



3-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 하고, 주무시지도 아니 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너의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 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 하리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지켜 주심과 돌보심이 자기에게까지 확장되리라’는 확신과 소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선조들을 도우셨던 바로 그 하나님께서 졸지도 아니 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 하면서 자기를 지키시고 돌보시고 계신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한 순간도 어김없이 성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감찰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배려를 의인화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낮의 해’는 무섭게 이글거리는 태양의 열기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태양의 타는 듯한 광선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그늘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는 열대지방의 태양의 그 뜨거운 열기를 체험해 본 사람들에게는 아주 쉽게 공감을 가지게 합니다.

 또 ‘밤의 달’ 역시 위험할 수 있습니다.

 광야 사막의 밤은 영하 30-40도로 춥습니다.

그 추운 밤 노천에서 싸늘한 달빛을 맞으면서 잠을 자면 저체온 현상이 일어나 심한 현기증을 느끼게 되고, 더 심한 경우 정신이상이 되며, 결국은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낮의 해도, 밤의 달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 죽음으로 인도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런 모든 위험과 죽음에서 당신의 꿈꾸는 자녀들을 보호하여 주시고, 꿈을 이루는 교회를 지켜주시고, 꿈을 품고 사는 가정을 축복해 주신다.’는 보장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꿈을 주시고, 그 꿈을 이루셔서 축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악한 마귀는 두 가지 계략으로 교회와성도와 그 가정을 넘어뜨립니다.

 첫 번째, 마귀는 배신감이 들게 만듭니다.

 교회가 부흥하지 못하고, 성도가 시험에 빠지고, 성도의 가정이 복 받지 못하고 살 때 그 원인을 살펴보면, 전체 교인들의 마음에 이상한 배신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목사에게 배신감을 느낀다든지, 성도 간에 배신감이 역사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교회는 꿈이 없어지고, 기쁨이 소멸되고, 감사가 없어지고, 무너지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그 배후에 누가 숨어 있을까요?

 악한 마귀가 숨어 있습니다.

 누가 교회와 성도와 그 가정에 역사하고 있을까요? 사탄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성도들이 꿈꾸지 못하게 하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교회가 이루지 못하도록 하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품어 축복으로 누리지 못하게 하는 이런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마귀로부터 오는 마음입니다.

 두 번째, 마귀는 ‘하나님도 어찌할 수 없다’는 마음이 생기게 합니다.

 한 마디로 ‘불신’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고난 가운데 있다고 합시다. 그 문제를 놓고 1년, 2년 계속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아니 하는 겁니다. 이때 생기는 감정이 낙심이요, 그 행동이 자포자기입니다. 원망 불평이 일어나고, 성도 사이에 다툼이 있게 됩니다.

‘아, 이것은 하나님도 어쩔 수 없어. 하나님도 도저히 하실 수 없어. 아무리 기도하면 뭐해?’ 하며 하나님을 불신하고, 목사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과 사람들의 방법과 경험과 생각을 기준으로 하여 우리 신앙생활의 모든 것을 판단하고 해결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아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바로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는 두 가지 시험은 바로 배신감과 낙심입니다.

 이 두 가지는 마귀의 가장 기본전략입니다.



 베드로에게 마귀가 어떻게 역사합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보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주는 그리스도이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함으로 가장 귀하고 정확한 신앙고백을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대답에 너무 기쁘셔서 베드로를 이렇게 칭찬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겠다.”(마16:17-19)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으며,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으며, 이보다 더 능력이 어디에 있습니까?

 베드로는 예수님께 절대적인 인정과 칭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 자기가 대적자들에게서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고, 제 3일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더니,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주님께 일어나지 않도록 제가 막겠습니다.”라고 자기의 의지를 강력하게 말했습니다.

 베드로의 이 말과 행동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마17:23에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예수님께서 정말 조금 전에 그렇게도 칭찬하시고 이정하셨던 베드로를 “사단”이라고 책망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그 책망의 이유를‘하나님의 일을 사람의 생각과 방법으로 가로 막아 이루어지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통해서 역사하고 있는 사단의 정체를 꿰뚫어보시고, 예수님을 배반하고, 그 사단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수제자 베드로를 책망하신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들이겠습니까?

 정말 우리들은 이 교활한 마귀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합니까?

 그는 75세에 하나님으로부터, “아들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꿈이었습니다.

 1년이면 이루어질 그 아들 얻는 약속, 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25년이 걸렸습니다.

 25년 동안 아브라함이 무엇을 했습니까?

 아무리 환란과 곤고와 핍박과 비난이 몰려와도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지키셔서 자기에게 주신 그 꿈을 축복으로 누리게 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아들 이삭으로 인하여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꿈을 축복으로 누리게 해 주실 것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뭣입니까?

‘하나님도 어쩔 수 없다며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이 주신 그 약속과 꿈을 붙들고 버티고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천사나, 권세자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까지도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이 주신 꿈에 대한 믿음을 져버리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드는 것,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백성다운 올바른 자세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인간은 너무나 연약하고 어리석습니다.

자주 넘어지고 실패하고 낙심하고 죄 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문제를 기쁨으로 맡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며, 영원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거부케 하는 교만과 낙심을 모두 내어버리고, 용기와 겸손한 마음을 품고, 꿈을 주신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본문은 우리에게 꿈을 주시는 분은 구원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해 주십니다.



7-8절에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영혼의 실체를 확인해 본 사람은 없지만, 영혼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 역시 한 명도 없습니다.

 성경의 교훈에 의하면, 사람의 생명은 영혼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은 그 영혼이 갈망하는 것입니다.

 시42편에 보면, 고라자손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서 가지는 심정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시42:1-2)

 하나님을 갈망하는 영혼의 애타는 심경이 사슴의 생명의 갈급함과 육체의 목마름으로 비유되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왜 사슴이 그토록 시냇물을 갈급함으로 찾아다닙니까? 생명이 시냇물에 있기 때문입니다.

 왜 고라자손들의 영혼이 하나님을 그토록 갈망합니까? 하나님께 가야 그 영혼이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육체도, 생명도, 영혼도 하나님이 주신 꿈의 숙소입니다. 그 꿈의 숙소 중 가장 귀하고 영원한 숙소가 영혼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지닌 요소 가운데 영혼만큼 귀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로 환난을 면하게 하시고, 우리의 영혼을 지켜 주시고, 우리가 들락거리는 세심한 부분까지도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음부터 적당한 때까지’ 보호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꿈 때문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구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광야 같은 이 세상, 마귀가 삼킬 자를 찾아 광분하는 이 세상에서 구원받았다는 것은 기적이고, 최고의 축복이요, 위대한 꿈의 결실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께서 주신 꿈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고, 축복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우리는 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그 구원의 감격을 날마다 꿈으로 나누는 증인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입을 담대히 열어 그 꿈을 주신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복음으로 담대히 전해야 합니다.



 영국에서 윌리엄 캐리를 인도에 선교사로 파송하였습니다.

 그는 정말 부지런히 일하여 타밀어 활자와 중국어 활자를 만들고, 인도 문법책을 만들어 산스크리티어로 구약성경을 번역하고, 벵갈어로 신약성경을 번역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을 20년에 걸쳐 완성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처소에 불이 나 이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잿더미가 되어버렸습니다. 20년 동안 해 놓은 일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윌리엄 캐리 선교사와 그 동역자들은 그 잿더미 가운데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본 말씀이 롬8:28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선교사들은 이 말씀에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 우리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선을 이룰 줄 믿습니다.’ 고백한 후에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인도에서 윌리엄 캐리 선교사가 20년 동안 해 왔던 그 모든 것들이 다 잿더미로 변했다.’는 소식이 영국에까지 전해 졌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영국 젊은이들의 마음 가운데

성령의 불길이 타 올랐습니다. ‘우리가 하지 못한 일을 그가 했는데, 그것이 잿더미가 되어버렸구나’ 안타까움이 생겼습니다.

 윌리엄 캐리 선교사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주신 꿈이 런던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성령의 불길로 활활 타오르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선교에 헌신한 사람들이 3천 명이 넘었고, 실제로 인도로 간 사람만 5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윌리엄 캐리 선교사가 20년 동안에 이루었으나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된 일을 2년 안에 완전히 복구했다고 합니다.

 인도 선교활동이 활성화된 것은 당연하고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꿈을 어느 때는 무너뜨리기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꿈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꿈으로 확신하면, 하나님은 오히려 나의 그 꿈을 성령의 불길로 불 붙이셔서 우리 늘푸른 교회와 이 음성 땅에 믿음의 불길로, 전도의 불길로, 헌신자의 불길로, 축복의 불길로 불타오르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넘어져도 은혜요, 일어서도 은혜요, 나가도 축복이요, 들어와도 축복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면 어떻게 쓰시든지 다 하나님의 선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부르짖어도 응답되지 않는 것 같은 막막한 일도,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바 되면 그 안에 숨은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꿈과 하나가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도 한 분 한 분의 그 귀한 꿈을 합력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그 뜻대로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루시고, 축복으로 우리에게 누리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말씀으로 마귀를 멸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꿈을 축복으로 누리는 능력의 종, 축복의 통로가 능히 될 것입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은 없어요.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꿈을 가지고, 여호와의 구원을 위하여 헌신하시길 바랍니다.


 이제 우리 모두 2011년에는

 꿈을 주신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들고,

 꿈을 꾸는 성도가 됩시다.

 꿈을 이루어 드리는 늘푸른 교회가 됩시다.

 꿈을 품어 축복으로 누리는 가정이 됩시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며, 하나님의 백성답게 축복의 근원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 축복,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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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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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전호위 | 작성시간 12.03.14 감사합니다.
  • 작성자두돌비 | 작성시간 12.03.14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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