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을 받은 성도, 축복을 주는 성도
창12:1-20
2011. 3. 20
<M1/ 청중의 마음열기>
일반적 접근/ (M1S1)
인사(M1S1 A1)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품어, 축복을
누릴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꿈꾸는 성도가 됩시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이루는 교회가 됩시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품어/ 축복으로 누리는 가정이 됩시다.
웃기는 예화(M1S1 B1)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방학이 되어 집에 다니러 왔던 한 여학생이 눈길에 미끄러져 왼팔에 금이 가고, 인대가 손상되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손녀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경상도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급히 올라와 손녀를 위해 화끈하게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 손녀가 대굴빡이 뿌사지지 않고, 팔이 뿌러져서 감사합니더. 또 다리몽댕이가 뿌러지지 않고, 인대를 다쳐서 감사하고요. 궁둥이뼈가 빠사지지 않아 감사합니더. 또 밥 먹는 팔이 아니라, 왼쪽 팔이 뿌러져서 더욱 감사합니더.’
비장한 마음으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던 모녀는 할머니의 실감나는 사투리와 유머러스한 감사기도를 끝까지 듣지 못하고, 박장대소 포복절도로 웃음보가 터졌다고 합니다.
지난겨울에는 유난이도 눈이 많이 왔습니다.
눈길에 미끄러져 사고를 당한 분도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따사한 생명의 계절, 봄이 더 그립습니다. 그런데 시샘추위로 봄이 머뭇거리고 있어, 봄에 관한 시라도 읊으며 봄을 느끼고 싶습니다.
<봄/ 하얀 나라> 지은 이/ 무명
아직 시린 바람결
고요 속에 흐르면 겨울은 꼬리 흔들고
뼈만 남은 나뭇가지에 물이 오른다.
아장걸음 재촉하며
달과 안개의 숨소리에 맞춰
어느 숲속 날갯죽지 펴고 있을
지루한 침묵을 토하고
잠에서 깨어난 아침 공기를 나긋나긋 씹는
촉촉한 봄 입술
그대
봄 발걸음 소리 들리시나요?
성도 여러분, 너무 아름다운 시입니다.
오는 봄은 임이요, 피는 봄은 애인입니다.
봄은 아름다운 색으로 수채화 한 폭을 그려주는 하나님의 전령사입니다.
그냥 봄 색깔이 내 눈을 감게 하고, 봄 향기가 내 코를 간질간질 자극하고, 봄맛이 내 입을 가득 채우고, 봄기운이 내 마음을 울렁거리게 하고, 봄이 오는 발걸음 소리가 내 귀를 설레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냥 봄 바다에 풍덩 빠진 듯 봄이 주는 생명의 기쁨이 온몸으로 짜릿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 봄을 볼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눈이 안 보이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저는 날 때부터 장님입니다.>라는 표지판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적선으로 하루하루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마저 여의치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의 앞을 지나가던 한 행인이 매직펜을 꺼내 그 맹인의 표지판 문구를 고쳐 쓰고는 ‘대박 나슈.’ 하고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기적같이 평소와는 다르게 많은 돈이 모여졌습니다.
도대체 그 표지판에 뭐라고 적혔을까요?
<봄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봄을 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봄을 볼 수 없는 맹인을 안타깝게 여기도록 사랑을 불러일으키게 한 것입니다.
영적 설명(M1S1 C1)
할머니의 기도는 말투도 말투지만, 긍정과 진솔한 기도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맹인은 비록 자연현상으로 주는 봄을 볼 수는 없었지만, 한 행인의 관심과, 봄을 생명으로 축복으로 누리고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누어주는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감사로 가슴 깊이 새겼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이 주는 은혜인 줄 믿습니다.
성경적 접근(M1S2)
본문 요약(M1S2 A1)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인 은혜로 세우신 약속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창12장을 ‘은혜의 계약장’이라 합니다.
1-3절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시기 위하여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인데, 1절은 “내가 지시하는 대로 떠나서 가라”는 명령이고, 2-3절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복의 근원이 되게 해 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언약입니다.
4-9절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나안으로 떠나는 아브라함의 순종과 실천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10-16절에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도 어려움에 처했을 때 세속적인 처신을 함으로 실패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우쳐주고, 17-20절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선택한 자를 은혜로 끝까지 보호하여 축복을 받게 하신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약속인 2-3절에는 ‘복’이라는 단어가 5번이나 반복되어 나타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고자 하는 가장 핵심적인 말이 명실 공히 ‘축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언약대로 자기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으로 순종하여 가기만 하면 큰 민족을 이루게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자기 이름이 창대케 되며, 복의 근원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하셔서,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복을 얻게 됨으로, 아브라함은 복을 받은 사람이 되는 동시에 복을 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의문점 제시(M1S2 B1)
지금 아브라함은 어느 점을 봐도 하나님의 복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언약이 이루어질 그 어떤 조건도 아브라함에게는 없습니다.
대표적 질문(M1S2 C1)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언약하신 것이 말이 됩니까?
세부적 질문(M1S2 D1)
과연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버리고 떠날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 그 아내 사라의 나이가 65인데, 자식도 없고, 자식을 낳을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큰 민족을 이룬다니, 말이나 됩니까?
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장사를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복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대표적 질문(M1S2 E1)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실 땅으로 간다할지라도 그에게 과연 복의 근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닙니까?
청중적 접근(M1S3)
시대적 적용(M1S3 A1)
1960년대 초 미국 청년들이 세계의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려고 수차례 시도를 했지만,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일단의 청년들이 다시 정상 정복에 도전하기로 하고, 등정을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출발하기 직전 몇몇 심리학자들과 기자들이 이 젊은이들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이 산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까?"
첫 번째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글쎄요" 라고,
두 번째 청년은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라고,
세 번째 청년은 "최선을 다해 보겠다."라고,
네 번째 청년은 "한 번 해 보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다 확신이 없습니다.
다섯 번째 청년인 짐 위트카는 "나는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963년 5월 1일, 네 명의 친구들은 차가운 얼음 속에 매장되고, 짐 위트카는 홀로 8,880m 에베레스트 정상에 미국의 성조기를 최초로 꽂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려와서 외쳤습니다.
"나는 할 수 있습니다.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할 수 있습니다."
청중 문제(M1S3 B1)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이 다섯 명의 청년들의 모습과 너무나 닮은 것 같습니다.
대표적 질문(M1S3 C1)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정복하는 것을 성공이라고 다섯 명 모두가 인정했지만, 누가 성공했습니까?
세부적 질문(M1S3 D1)
다섯 명 모두가 성공에 대한 모든 지식은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짐 에리카만 성공하고, 나머지 네 명이 실패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성공에 대한 확신의 차이가 아니었을까요?
대표적 질문(M1S3 E1)
하물며 축복이겠습니까?
더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에 대한 지식도 없습니다. 축복의 근원이 되고 싶은 소망도 없었습니다. 또 축복을 받을 만한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삶과 환경이 축복을 누릴 여건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이 어떻게 축복을 받을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M2/ 성경의 문제 제기>
본문 문제 배경(M2S1)
연대와 장소(M2S1 A1)
창세기는 만물의 기원과 시작을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창세기는 성경 전체, 특별히 인간의 역사와 존재 목적을 이해하는데 근본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처음 주신 말씀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복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복되게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축복된 존재로 살게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우주만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뜻대로 다스려 지켜나가도록 가장 귀한 사명까지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만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고, 사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여 사람이 지은 죄악이 이 땅에 관영하게 되었습니다.(창2-6장)
결국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것을 한탄하시고, 노아의 가족만을 은혜로 복의 그루터기로 남긴 채, 나머지 모든 사람을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니므롯을 중심한 노아 이후의 사람들은 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교만하여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 같이 되려고 했습니다.
이를 보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그 악함을 보시고, 그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온 땅으로 흩으시고, 하나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인간에 대한 저주가 아니라, 악으로부터 인간을 축복된 존재로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셈의 계보를 통하여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삼으시고, 히브리 역사를 시작하시고, 장차 그 후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세우셔서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룩하게 하심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축복된 존재로 회복하게 하신 것입니다.
문제 배경 설명(M2S1 B1)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그 목적을 창1:27-28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의 역사는 인류창조와 더불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것은 인간을 축복된 존재가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복되게 살게 하시고, 그 복된 인간으로 하여금 모든 우주 만물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상태로 유지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 축복된 사람이 바로 아담이었습니다.
인물 설명(M2S1 C1)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을 직접 받았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과 영원토록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만 살면 영생하는 축복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았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축복을 영원토록 누릴 수 있는 축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담은 그 후손과 모든 자연 만물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복되게 살게 하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할 통로요, 매개체였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축복을 주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은 깨어진 거울조각같이 산산이 부서져 버렸고, 그 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아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되어 영생을 잃어버렸고, 축복의 근원이 아니라 저주의 근원이 되어 이 세상에 사망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아담은 더 이상 생명과 축복의 존재가 아니라, 사망과 저주의 뿌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영적 설명(M2S1 D1)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성품을 지닌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생명나무를 먹고,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면, 하나님과 함께 영생을 누리며 살게 되는 축복 받은 존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상실한 존재가 되었고, 그의 후손들인 우리 모든 인간들도 덩달아 축복이 아니라 저주의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저주받은 인간 중 한 사람인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오늘 말씀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문제 발생원인(M2S2)
원인(M2S2 A1)
하나님께서 지금으로부터 4100여 년 전인 B.C. 2091년에 하란에 살고 있는 75세가 된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아브라함으로서는 도저히 실행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1절)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있어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으로도 이룰 수 없고, 또 이루어져 본 적도 없는 불가능한 일을 제시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시니라.”(2-3절)
1-3절의 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아브라함이 실행할 수 없고, 아브라함에게 이루어질 수도 없는 것들만 들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아브라함에게 있어 문제투성이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믿지 못할 말씀입니다.
‘떠나라’고 명령할 때 히브리어 원어는 렠-르카(ךל־ךל)로서 “너는, 너는 가라”라는 말입니다. 즉 ‘너는’이라는 단어가 이중으로 반복되어 있는
이것은 ‘아브라함이 자기가 속한 집단에서 혼자 외롭게 떠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하게 부각시키면서, 동시에 ‘아브라함이 이 명령을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은 반드시 떠나야 합니다.
마치 내가 아브라함이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될 만큼 “바로 네가 떠나야한다”는 하나님의 준엄한 음성을 반복해서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떠나야 합니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본토(고향)’라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땅(에레츠)’입니다. 땅은 생활기반이요, 삶의 뿌리가 내려져 있는 근거지입니다.
‘땅을 떠난다.’는 것은 뿌리가 뽑혀지는 아픔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땅’을 떠나는 순간 삶의 뿌리가 없는‘이주민, 나그네, 유랑자’가 되며, 신변보호를 받지 못하는 불안한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친척’은 혈연집단이며, 자신이 소속된 사회관계이고, 사회적 기반을 말합니다.
‘친척을 떠나야 된다.’는 것은 적대적이고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야 하는 상황으로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아비 집’은 자신의 가족을 통 털어 말합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인데, 이 공동체는 끊으려고 해야 끊을 수 없고, 떠나려고 해도 떠날 수 없는 관계로 맺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네게 보여줄 땅”은 아브라함이 떠날 때는 오직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땅이어서 육체의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땅입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떠날 수가 있겠습니까? 떠날 수 없지요.
더구나 약속된 축복은 지금이 아니라 미래에 이루어질 것들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나라)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2절)
“큰 민족(나라)”은 ‘인구가 많이 늘어난다.’는 뜻 이상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나라는 장래 이 땅에 이루어질, 하나님이 다스리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나라를 예고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서 영적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는 것은 ‘성공과 번영과 풍요를 선물하시겠다.’는 뜻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셔서 천국에서 살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왕과 같이 세상 사람에게 유명한 인물이 되며 존경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2절에서 중요한 구절은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는 구절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아브라함이 이제 복 그 자체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3절에 이어지는 내용같이 ‘복을 받은 아브라함이 만민에게 복을 받을 수 있게 해 준다’는 내용과 연결이 됩니다.
인물 설명(M2S2 B1)
그런데 지금 아브라함은 씨족을 중심으로 하는 족장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 자신이 족장 중의 한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나이가 75세요, 그 아내 사라의 나이는 65세입니다.
한 명의 자식을 낳아본 적도 없습니다.
그 때 당시 남자가 30세에 첫 자식을 낳던 시대이니, 자식을 낳기에는 늦어도 한참 늦었고, 어쩌면 생식능력이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식을 낳는 것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는 축복 중의 축복이 자식이었습니다. 자식이 많으면 큰 축복을 받은 겁니다.
또 잘난 자식이 큰 자랑거리라, 그 부모의 이름을 크게 드러나게 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는 자식이 없는 겁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철저히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우상장사를 집안 대대로 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아브라함은 정작 자기가 떠나 가야할 땅을 알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문제점(M2S2 C1)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려면, 아브라함이 아들을 낳아 그 후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게 해서 큰 민족을 이루고, 잘난 자식이나 후손이 나와서 아브라함의 이름을 크게 날리게 하고, 축복받은 자기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이 복을 받기도 하고, 저주를 받게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는 지금 아들도 없고, 아들을 낳을 가능성도 없고, 아들을 낳을 소망도 없으니, 축복을 받은 사람이 아니니,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은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영적 설명(M2S2 D1)
무엇을 따져보아도 결국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떠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문제점인 것입니다.
가주어의 심리묘사(M2S3)
고통 본질/ 크기(M2S3 A1)
아브라함은 자기를 찾아오신 하나님 때문에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아브라함은 이제까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고, 저주할 수밖에 없는 우상을 섬기고, 그것도 모자라 우상의 형상을 만들어 장사를 해서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살아왔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우상이 그의 삶의 전부였습니다. 의지할 대상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어쩌다 듣기는 했지만, 그의 삶 어디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일방적으로 찾아와서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시니, 이것은 정말 황당한 일이지요?
외부적 심리묘사(M2S3 B1)
내부적 심리묘사(M2S3 C1)
그러나 아브라함은 마음속에 어떤 동요는 있었을지 모릅니다.
내가 지금 75세인데, 내가 아들을 낳는다고?, 내가 지금 아들도 없는데, 내가 큰 민족을 이룬다고?,
나는 지금 이 하란에서 겨우 한 족속의 가장에 지나지 않는데, 내 이름이 창대해 진다고?, 나는 지금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축복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데,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복을 받게도 하고, 저주도 받게 하는 존재가 된다고?
사실 아브라함은 수많은 갈등을 했을 겁니다.
독백(M2S3 D1)
‘진짜로 제게 자식을, 그것도 아들을 주신다고요? 이제까지 집안 대대로 우상을 섬기며 살아왔는데, 하나님을 믿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내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은 사람이 되며, 더구나 축복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건 말도 안 됩니다.’ 독백도 했을 것입니다.
영적 설명(M2S3 E1)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아내 사라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하란을 떠나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그 아버지가 애초에 이민가려고 했던 가나안 땅으로 갔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4절)
결과적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가운데 용기 있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진정으로 믿고 순종하게 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이러한 결단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행동으로 인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떠나기는 했지만,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조카 롯을 데려가고, 우상장사로 모은 그 모든 것들을 그대로 가져 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라’ 했는데, 가지고 함께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우상장사를 한 것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다 버리지 못하고 떠난 것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요, 그 아내 사라의 낭가 65세인 것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M3/ 성경 문제 해결>
본문 해결 시작(M3S1)
헌신적 멘트(M3S1 A1)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 부족하고 온전하지 못한 순종을 헌신으로 받으셔서, 약속과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아브라함을 인도하시고, 비로소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7절) 땅을 축복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그곳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아 예배를 드릴 믿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바탕이 되는 땅을 언약대로 주시고, 언약대로 그 땅에서 우여곡절 끝에 살게 하시고, 끝내는 아들 이삭을 언약의 자식으로 주셔서,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헌신의 감정(M3S1 B1)
헌신의 행동(M3S1 C1)
영적 설명(M3S1 D1)
본문 해결 방법(M3S2)
하나님의 심정(M3S2 A1)
하나님은 자식을 낳을 수 없다고 소망을 끊은 아브라함을 찾아 오셔서 소망을 갖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축복을 받지 못하게 하는 우상을 끊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그 죄악의 자리를 떠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아내 사라를 누이라 속여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려는 세속적인 처신을 함으로 아내 사라를 애굽 왕 바로에게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과 사라를 은혜로 끝까지 보호하여 축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속성(M3S2 B1)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오, 그 언약은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허다한 허물을 덮으시고 용납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축복을 회복시키시는 축복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소망을 잃은 자에게 소망을 주시는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끊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믿음까지도 은혜로 주시는 믿음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온전하게 드리지 못하는 자들일지라도 예배를 드리게 하셔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예배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끝까지 지켜주시는 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행동(M3S2 C1)
영적 설명(M3S2 D1)
헌신자의 큰 복(M3S3)
인간의 헌신(M3S3 A1)
복주는 하나님의 속성(M3S3 B1)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복 그 자체이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번 언약하신 것은 반드시 축복으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복의 종류(M3S3 C1)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대로 100세에 아들 이삭을 약속의 아들로 낳게 하셔서 큰 민족을 이루게 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대로 일생 동안 개인적으로도 복을 누리고 사는 축복을 받은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대로 이름이 창대케 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대로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영적 설명(M3S3 D1)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대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고, 훗날 그 후손 중에서 예수님을 태어나게 하셨고, 그 예수님을 만민의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고, 그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모든 성도들이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영적 축복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M4/ 현 청중 문제(적용)>
청중 해결 동기(M4S1)
문제 종류와 고통의 크기(M4S1 A1)
2009. 5. 8 방영됐던 MBC 휴먼다큐 '사랑' 중 <풀빵 엄마> 편이 2010년 11얼 23일 자랑스럽게도 한국 최초로 국제 에미상 다큐멘터리 부문상을 수상했습니다.
'풀빵엄마'는 풀빵을 팔며 두 아이, 딸 은서와 아들 홍현이를 키우는 위암 말기의 싱글 맘 최정미 씨의 이야기를 담은 실제 이야기입니다.
두 어린 자식을 앞두고 시한부 암과 싸워 나가는 기구한 운명의 최정미 씨 사연은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는데, 최정미 씨는 방송 두 달 후 2009년 7월 결국 사망해 시청자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었습니다.
유해진 PD는 “제가 받은 상이 아니라, 고인이 된 최정미 씨가 받은 상이라”며, “그분의 깊은 모성애를 세계인이 인정해 준 것 같아 기쁘다”며 소감을 밝혔습니다.
저는 직접 이 방송을 보지 못했습니다.
인터넷을 보다가 160여장으로 스크랩 되어 있는 풀빵 엄마 최정미 씨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160여장이라는 많은 사진 속에서 비록 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최정미 씨의 벌겋게 충혈 된 눈에 흐르는 그 눈물만 보고서도, 저는 엄마의 그 절절한 아픔과 슬픔을 가슴이 저리게 느꼈습니다.
사진만 보고서도 많이 울었습니다.
풀빵엄마 최정미 씨 이야기는 인간의 사랑이라면 가장 먼저 지목될 모성애 이야기입니다.
최정미 씨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한 쪽 다리를 저는데다, 아빠 없이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겨운 삶인데, 위암말기라는 극한 처지이면서도 죽을 때까지 절절한 모성애를 보여 주었습니다.
최정미 씨는 서울 삼성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저 같은 위암환자는 그 생존율이 몇 %나 됩니까?’라고 묻는 그녀의 질문에 주치의 임호영 교수는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저희가 1차 항암치료를 했는데, 불행하게도 실패를 했습니다. 이제 재발을 해서 2차 항암치료를 하고 있는데, 병 자체는 상당히 말기 쪽에 속한 상황입니다. 2008년 초부터 치료했으니, 지금 1년이 조금 넘으셨네요. 그 당시로 봤을 때, 1년 반, 2년 그 이상은 말씀드리기가 어려워요.’
그러니까 최정미 씨는 지금 길어도 1년, 짧으면 6개월의 시한부 인생입니다.
2009년 당시 이런 절망적 상황에 있는 최정미 씨는 모자원(모자가족 보호시설, 3년 거주)에서 지내고 있었으며, 아이들은 24시간 어린이집에 맡겨져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그녀는 그 해 11월까지 모자원에서 나가야 할 처지였고, 딸 은서는 2009년 3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상황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녀는 항암치료로 피폐해진 몸으로 새벽부터 풀빵 반죽을 준비하고, 저녁까지 9시까지 한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장사를 해야 했습니다.
늦은 밤 장사가 끝나 파김치가 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일곱 살짜리 은서가 아픈 엄마를 좀 더 누워 계시게 하려고 동생 홍현이를 미리 목욕시키고, 밥을 차려 먹여 살뜰하게 돌보아 주고, 설거지까지 해 놓습니다.
그리고 ‘엄마, 많이 춥지? 저려?’ 하며,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의 차디찬 손발을 제법 야무지게 만져 줍니다.
딸 은서는 그렇게 엄마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엄마의 일을 대신하면서도 ‘제가 엄마한테 잘 해 준 게 있으면 좋겠는데, 잘 해 준 게 없다’고 마음 아파할 뿐만 아니라, 어린이 집에서 다른 아이들이 다 잠을 잘 때 그 고사리 손을 모아 ‘우리 엄마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그래서 엄마와 함께 지내게 해 주세요.’라고 매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런 어린 딸을 보는 엄마 마음이 어떨까요?
최정미 씨는 그런 은서의 마음 씀씀이와 자기의 손발을 만져주는 은서의 야무진 손을 볼 때마다 마음이 찡하게 저려옵니다. 은서가 아직 일곱 살짜리 아이인데, 너무 빨리 철이 들어버린 것 같고, 또 엄마인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자꾸 은서에게 짐을 지우는 것 같아서입니다.
그럴수록 그녀는 그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습니다. 자신은 없어져도 되는데, 아이들의 그늘막이 되어줄 사람이 없어지는 것은 생각만 해도 암의 고통보다 더 끔찍한 고통이 되기 때문이래요. 그래서 그녀는 입만 열면 ‘자신이 살아서 아이들의 그늘막이 되어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한 겨울 길가에서 풀빵장사를 손이 꽁꽁 얼면서 하다가도 자녀들이 길 건너편에서 오는 것을 보게 되면, 마스크를 쓴 얼굴 너머로 환하게 웃게 만드는 그 힘은 바로 가족이라는, 자식이라는 그 끊지 못할 사랑이 준 힘이 아니겠습니까?
위를 많이 잘라냈기 때문에 밥을 잘 먹지 못하는 엄마에게 자꾸만 ‘엄마, 밥 먹었어?’ 묻는 은서 때문에, 그녀는 힘겨워도 억지로라도 조금씩 음식을 먹으려 노력합니다.
도저히 넘어가지 않는 설날 떡국을 은서가 숟가락에 떠서 입에 넣어주면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먹다가 그만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어린이 집 재롱잔치에서 사회자가 은서에게 묻습니다. ‘누구누구 왔어요?’ ‘엄마요’
사회자가 또 묻습니다.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요?’ ‘네’
‘그래요. 그러면 지금 한 번 해 보세요.’
은서가 울먹거리며 말을 합니다.
‘엄마, 엄마 우리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엄마도 울고, 은서도 울고,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도 울고, 시청자도, 저도 모두 울었습니다.
이런 어린 자식들, 부모의 그늘막이 필요한 자식들을 두고, 어떻게 죽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풀빵 엄마 최정미 씨는 ‘그 자식들을 생각하다 보면, 자기가 말기 암 환자라는 것을 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소원을 말합니다.
‘요즘에는 계속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크는 모습도 보고, 내 아이들이 내 입에 밥을 먹여 주는 것도 좋고, 매일 빨래하는 것도 재미있고, 너무 좋아요. 열심히 살아야지요. 아이들이 커서 성년이 될 때까지는 내가 그늘막이 되어 줘야죠. 돼 줄 수 있어요.’
그것이 ‘자기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라’고 말하는 최정미 씨는 이미 아이들에게 영원히 죽지 않는 엄마라는 존재로 남아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풀빵 엄마 최정미 씨 이야기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부모와 자식으로 맺어진 가족이라는 사실을 새삼 되돌아보게 합니다.
‘가족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며, 기적인지 모릅니다.
이런 댓글이 있었습니다.
‘왜 힘든 사람들만 더 힘들게 되는 거죠. 나쁜 사람들도 많은데. 과연 신은 있는 걸까요? 참 가슴이 먹먹합니다.’
‘가슴이 아프네요. 저 아이들 우짜노.’
‘하아, 어떡해요? 저 어린 것들을.’
헌신의 방법과 촉구(M4S1 B1)
풀빵엄마 최정미 씨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한 쪽 다리를 저는데다, 아빠 없이 어린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겨운 삶인데, 위암말기라는 극한 처지이면서도 풀빵을 팔며 죽을 때까지 절절한 모성애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녀는 그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자신은 없어져도 되는데, 아이들의 그늘막이 되어줄 사람이 없어지는 것은 생각만 해도 암의 고통보다 더 끔찍한 고통이 된대요. 그래서 그녀는 입만 열면 ‘내가 살아서 아이들의 그늘막이 되어 주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합니다.
그리고 딸 은서는 ‘엄마, 엄마 우리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엄마한테 잘 해 준 게 있으면 좋겠는데, 잘 해 준 게 없다’고 마음 아파할 뿐만 아니라, 어린이 집에서 다른 아이들이 다 잠을 잘 때 그 고사리 손을 모아 ‘우리 엄마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그래서 엄마와 함께 지내게 해 주세요.’ 매일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영적 설명(M4S1 C1)
하물며 하나님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까지도 우리에게 그리스도로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이시기까지 희생하신 하나님이신데,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신 축복을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개입(M4S2)
청중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M4S2 A1)
하나님은 자식을 낳을 수 없다고 소망을 끊은 우리를 찾아 오셔서 소망을 갖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을 끊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 죄악의 자리를 떠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의 유익을 위하여 세속적인 처신을 함으로 죄악 된 삶을 살게 될지라도 우리를 은혜로 끝까지 보호하여 축복을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속성(M4S2 B1)
하나님의 방법(M4S2 C1)
영적 설명(M4S2 D1)
청중의 더 큰 복(M4S3)
청중의 헌신(M4S3 A1)
복주는 하나님의 속성(M4S3 B1)
복의 종류(M4S3 C1)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대로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셨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은 사람이 되게 하셨고, 아브라함처럼 받은 축복을 주는 사람이 되게 하셨고, 훗날 우리 후손 중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태어나게 하시고, 그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모든 성도들이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영적 축복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영적 설명(M4S3 D1)
<M5/ 청중의 결단 내용과 복>
결단의 필요성(M5S1)
결단의 이유(M5S1 A1)
지금은 사순절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참된 축복을 주셔서 우리는 축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예수님처럼 축복을 주는 성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이템(M5S1 B1)
결단의 복(M5S1 C1)
영적 설명(M5S1 D1)
결단의 방법(M5S2)
방법의 중요성(M5S2 A1)
해야 할 것/ 하지 말 것(M5S2 B1)
방법의 의미(M5S2 C1)
영적 설명(M5S2 D1)
결단의 축복(M5S3)
촉구(M5S3 A1)
결단하지 않으면 나타나는 결과(M5S3 B1)
복의 종류/ 크기/ 범위(M5S3 C1)
영적 설명(M5S3 D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