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를 축복으로 받는 사순절
눅4:25-27
2012. 3. 4. 사순절 제 2주에
* 봉서방님, 둥근달님의 설교를 보충, 삭제 정리한 설교입니다.
2005년도 10월 26일 신문에 ‘교회에 다니면 부자가 된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미국 MIT공대 조나단 그루버 교수의 논문이 발포됐는데, 논문 제목은 <종교시장구조와 종교참여 및 결과>입니다. 그리고 ‘종교는 유익한가?’라는 부제가 붙었습니다.
이 논문의 내용을 보면, 크게 두 가지가 관심을 끄는데, 첫째는 ‘신앙심이 있는 사람이 신앙이 없는 사람보다 성공을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배참석률이 높을수록 소득이 높고, 반대로 도움 받는 복지혜택은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참석률이 두 배가 되면 가계소득이 9.1%가 증가가 되고, 복지혜택은 반대로 16% 감소가 된다.’고 합니다.
이 사순절 절기 동안 하나님을 굳건하게 경외하는 신앙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충만하게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교회 절기에는 40일을 지키는 절기가 두 번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해서 앞으로 40일, 그 기간을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기다린다, 준비한다.’ 해서 대강절, 대림절이라고 부르고, 그 절기를 지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교회역사를 통해서 이 대림절 40일을 지나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터인데, ‘그 다시 오실 예수님을 어떤 마음으로 우리가 맞이할 것이냐?’를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주님께서 다시 오실 재림을 기대하면서 신앙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았던 것입니다.
다음은, 사순절인데, 이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날을 기점으로 해서 주일은 제외하고 40일을 말합니다.
그래서 올해는 2월 22일 성회수요일부터 시작해서 4월 7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고난주간까지 40일을 사순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순절 기간 동안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 그리고 부활을 기대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삶을 살아 갈 수 있을까?’ 그런 신앙적인 훈련을 하며, 경건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마다 사순절이 되면 사순절 특별집회, 사순절 특별 새벽기도회를 하면서 신앙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영어로 사순절을 ‘Lent’라고 합니다.
Lent는‘봄’이라는 뜻입니다.
추운 겨울 속에서 따뜻한 봄으로 가는 계절에는 얼었던 땅이 녹고, 새싹이 돋아나잖아요.
이를 통해 ‘사순절은 우리의 신앙이 과거의 신앙이 아니라, 새로운 신앙으로 거듭나는 기간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분들이 계십니다.
“목사님! 저는 왜 신앙이 성장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단순히 교회에 처음 나오는 초 신자 분들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중직자들 가운데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듣습니다.
여러분 신앙이 성장하지 않는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훈련이 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운동을 하면 건강해지잖아요.
훈련을 하면, 젊은이의 건강을 찾는 거죠.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인들도 훈련을 해야 하는 겁니다.
이렇게 신앙훈련을 하는 때가 어느 때냐?
교회 역사 속에는 특별히 사순절을 신앙훈련을 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1800년대 일본의 후쿠사이라는 유명한 화가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하루는 친한 친구에게서 ‘나에게 수탉 그림을 좀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있다가 오라’고 했습니다.
이 친구가 일주일 있다가 왔는데, 후쿠사이가 그림을 그려 놓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친구가 ‘어떻게 된 거냐?’고 했더니, ‘한 달 있다가 오라’고 다시 말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친구가 한 달 후에 왔더니, 또 ‘다음에 오라’는 겁니다.
그러더니 계속 ‘다음에, 다음에, 다음에’ 그렇게 하기를 1년, 2년, 3년이 지나갔습니다.
이 친구도 대단한 친구지요. 갈 때마다 ‘다음에, 다음에, 다음에’ 하다가 3년이 지나가는데도 죽 기다려 왔으니 말이에요.
이제는 친구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서 ‘지금 당장 수탉 그림을 그려줘라. 지금 안 그려 주면 관두고.’라고 말을 했습니다.
후쿠사이가 이 친구를 봤을 때 더 이상 물러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종이에 수탉을 그려주었는데, 얼마나 잘 그려주는지, 살아있는 닭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친구가 놀랍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야, 후쿠사이! 이렇게 그림을 잘 그리면서 여태까지 왜 안 그려줬냐?’ 했더니, 후쿠사이가 아무 말도 안하고, 자기를 따라오라고만 손짓을 합니다.
따라갔더니, 뒤의 작업실로 데리고 가요.
그 안에 들어서니, 온 벽면에 수탉그림이 도배한 것처럼 가득한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가 언성을 높여 물었습니다.
‘아니, 이렇게 많은 수탉그림이 있는데, 왜 3년 동안 그림을 안 준 거냐?’
그 때 후쿠사이는 아주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여보게, 친구! 나는 자네에게 가장 좋은 그림을 주고 싶었네.”
여러분, 좋은 그림은 그냥 그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과 연습을 통해서만 그려지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는 고백을 하지만, 내 맘대로, 내 생각대로, 내 편한대로, 내 믿음대로 하나님을 믿어서 올바르게 신앙이 성장하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성장이 된다면 그 신앙은 이상한 거지요.
우리의 신앙은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훈련이 무엇입니까?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기 쉬운 것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훈련은 억지로라도 하는 겁니다.
훈련은 힘들어도 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연단을 통해서 성장하고, 단련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우리에게 크게 나타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고향을 방문하셨다가 실망하고 돌아온 사건이 나옵니다. 실망 정도가 아니라,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눅4:24)고 탄식하십니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귀신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쫓아 내셨고,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권능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런데 고향에서만 안 됐습니다.
왜 안 됐습니까?
예수님을 배척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안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고향사람들에게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년 육 개월 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병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었느니라.”(25-27절)
‘구약시대에도 사렙다의 이름 없는 과부와 이방의 아람나라 군대장관 나아만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문제를 해결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실 올바른 말씀을 사실 그대로 말씀했으면, 고향 사람들이 자기들의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고향 사람들이 어떻게 합니까?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일어나서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쫓아냅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서, 예수님을 산의 낭떠러지에 끌고 가서 밀어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이 말씀을 하셨는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오늘 말씀에 나오는 두 사람 사렙다의 한 과부와 수리아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다 이방인입니다.
그러나 형편과 처지에 있어서 차이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이방여자로서 생활이 극빈한 과부요, 다른 한사람은 이방남자로 권력과 명예와 물질을 많이 소유한 부자요, 군대장관입니다.
‘두 사람 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이 되는 이방사람들인데, 오늘 말씀에 보면,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 사실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3년 6개월 동안의 극심한 흉년 중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과부들에게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보내서 그들의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왕상 17장에 보면, 사렙다 과부는 이방여자입니다. 그것도 이스라엘 역대 왕비 중에서도 가장 극악한 왕비인 이세벨의 고향에 살고 있는 여자입니다. 그녀가 굶어죽는다고 해서 이스라엘의 백성뿐만 아니라, 시돈의 사르밧 사람 그 누구도 안타까워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이방 시돈 여자인 사렙다 과부에게만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서 그의 모든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문둥병에 걸려 비참한 삶을 살거나 죽어가고 있었는데도 그들에게 엘리사 선지자를 보내 고쳐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왕하 5장에 보면, 나아만은 수리아의 군대 장관입니다. 돈도 많습니다. 왕에 버금가는 권력자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는 자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나아만은 문둥병을 고침받기 위하여 엄청난 은금 패물과 의복을 싣고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선지자에게 직접 찾아왔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돈은 많고, 권력은 막강할지라도 결국은 문둥병으로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이 나아만을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선지자로 하여금 고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사람이라고 해서 먹을 것을 주시고, 죽을 수밖에 없는 문둥병을 고쳐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 그 은혜를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하나님께 감사할 자에게만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세상 기준과 사람의 판단으로 ‘저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여길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기준대로 그들에게 은혜주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은혜를 주십니까?
첫째는 하나님은 찾아오시는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찾아오십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울 때,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실 때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려울 때 떨어져 떠나갑니다.
탕자를 보세요. 돈 떨어지니까 친구들이 다 떨어져 나가잖아요. 아무도 그를 돌보지 않습니다. 세상인심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나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필요한 것을 도와주십니다.
창 28장에 보면,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여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채고, 형 에서가 배가 고픈 것을 이용하여 형 에서가 받아야 할 장자의 명분을 빼앗음으로, 형 에서에게 미움을 받아 죽음의 위기를 당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도움으로 브엘세바를 떠나 외삼촌이 살고 있는 하란으로 도망을 칩니다.
야곱이 고향을 떠나 그 멀고도 먼 하란으로 가다가 해가 져서 처량하게 루스 광야에서 돌 베게로 잠이 듭니다.
야곱은 거기엔 아무도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야곱은 ‘나 혼자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야곱은 도망가는 자기의 처지가 정말 외로웠습니다. 형 에서가 이곳까지 쫓아올까 봐 너무 두려웠습니다. 앞날에 대해 심히 불안했습니다.
야곱은 차라리 형 에서의 칼에 찔려 죽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누가 찾아왔습니까?
자기를 죽이려고 혈안이 된 형 에서입니까?
그토록 야곱을 오매불망하던 어머니입니까?
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꿈에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닥다리를 환상으로 보여주십니다. 야곱이 자세히 보니, 하늘과 땅 사이에 사닥다리가 내려져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더 자세히 보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 하리라”(창28:13-15)
야곱은 그곳 이름을 루스(허망한 땅)라 하지 않고, 벧엘(하나님의 집)이라 부르고, 그곳에 단을 쌓고, 하나님께 서원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야곱이 외롭고, 어렵고, 두렵고, 힘들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창 32장에 보면,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천신만고의 머슴살이를 했지만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벧엘에서 야곱에게 약속하신대로 야곱을 거부로 만드시고, 네 명의 아내와 열 한 명의 아들과 달 한 명을 거느린 대 가족이 되게 하셔서 드디어 고향으로 금의환향하게 합니다.
그런데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오다가 어떻게 됩니까? 얍복강에 이르러 어려운 난관을 만납니다.
형 에서가 동생 야곱이 돌아오는 소문을 듣고, 옛날에 야곱이 자기를 배반했던 것을 잊지 않고 ‘4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야곱을 죽이겠다.’고 오고 있는 겁니다.
야곱으로서는 형의 이 마음을 바꾸려고 별별 계책을 야비할 정도로 다 써보았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야곱과 야곱의 가족과 노비는 다 죽을 수밖에 없고, 그 많은 짐승 떼와 재물은 다 형에게 빼앗길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절대 절명, 인생 최고의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제 얍복 강가에서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너무 피곤했고, 너무 두려워서 절망했고, 자기로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더 이상 없었습니다.
야곱에겐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야곱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 앞에 자기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적인 줄 알고 어떤 사람과 밤새도록 씨름을 했는데, 그 사람이 야곱을 이기지 못하니까,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위골시켰습니다.
그래도 야곱이 그 사람을 놓아주지 않습니다.
드디어 날이 새려합니다.
그 사람은 “날이 새려하니, 제발 나를 좀 보내 달라”(창32:26)고 통사정을 합니다.
그 때 야곱이 단호하게 요구합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당신을 가게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야곱의 이름을 묻더니, 야곱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창32:28)
알고 보니까,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얍복강 야곱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야곱은 찾아오신 하나님을 꽉 붙잡았던 겁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새 이름으로 축복하십니다.
이제는 속고 속이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야곱이 아니라, 야곱은 하나님과 대면하였음에도 죽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지켜주시며,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야곱은 그래서 그 땅을 브니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문제를 야곱에게 약속하신 대로 다 해결해 주시고, 야곱은 승리하는 인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울 때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힘들고 괴로울 때 다 떠나가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외로울 때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끝까지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말씀에 사렙다 과부가 나옵니다.
왕상 1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로 하여금 사렙다 과부를 찾아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물과 떡을 달라”고 하게 하십니다.
평상시에는 나그네에게 물과 한 끼 식사의 떡을 대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은 3년 6개월 동안 가뭄과 씨름하고 있을 때입니다. 나 한사람 살기도 힘들 때입니다.
거기다가 엘리야 선지자는 원수의 나라 이스라엘 사람이요, 그것도 남자입니다.
떡은커녕 물 한 방울도 도저히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렙다 과부가 엘리야에게 말을 합니다.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는데, 나는 떡이 없습니다. 그리고 통에 한 움큼의 가루와 조금의 기름뿐인데, 나와 내 아들이 먹을 마지막 양식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 남은 것을 드시면 우리는 죽을 겁니다.”(왕상 17:1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보내신 엘리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다 안다. 두려워하지 말고, 그것으로 먼저 내가 먼저 먹을 떡을 만들어 내게 가져오고, 그 다음에 너와 네 자식이 먹을 떡을 만들어라 ”고 합니다.
이 떡을 엘리야 선지자가 먹으면 이 과부와 그 아들이 굶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엘리야 선지자는 ‘네가 먹을 것이 아니라, 내가 먹을 것을 먼저 만들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말하기를 “그러면 비가 올 때까지 네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라는 약속을 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말 우리 같으면 엘리야에게 줄 수 있습니까? 나 먹기 바쁜데, 내가 안 먹으면 나와 내 자식이 분명히 배가 고파 죽게 되는데, 어떻게 줍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달라는 것입니다.
삼상 25장에 보면 나발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양과 염소 4천 마리를 가진 엄청난 부자입니다. 그런데 도둑 떼들이 와서 이 양과 염소를 뺏아 갑니다. 얼마나 어려운 상황입니까?
한편 다윗은 이 때 장인인 사울임금에게 쫓겨 더 이상 예루살렘에 있을 수가 없어서 그 일행과 함께 여기저기 도망을 다니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발이라는 사람의 어려움을 아시고, 이런 환란 중에 있는 다윗과 그 일행을 보내 주셔서 도둑 떼를 다 물리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발은 자기의 양과 염소 떼를 보호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다윗과 그 일행이 사울 임금에게 늘 쫓겨 다니다 보니, 그들에게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윗이 나발에게 사람을 보내 부탁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먹을 것을 좀 주시오.”
‘재산을 나누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먹을 것을 좀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발은 자기의 그 많은 짐승 떼를 도둑들로부터 지켜준 다윗의 요청을 거절합니다.
나발은 없어서 못주는 게 아닙니다.
나발은 있는 것을 안 준 것입니다.
나발은 마음이 그만큼 완악했습니다.
그리고 나발은 다윗을 무시한 겁니다.
나발이 어떻게 됐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발을 10일이 있다가 몸이 빳빳하게 굳게 해서 비명횡사시키셨습니다.
그 재산은 어떻게 됐습니까?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처사로 인하여 지킴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비가일은 다윗의 아내가 되어, 그 많은 재산들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아주 귀하게 쓰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죽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필요에 의해서 사람을 보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더 큰 축복을 위해서 우리에게 헌신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나발이 그때에 다윗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면, 왕이 된 다윗이 누구를 도와주었겠습니까? 누구를 세웠겠습니까?
다윗은 어려울 때 자기를 도와준 나발을 높이 들어 세웠을 것입니다. 당연한 겁니다.
그러면 나발이 ‘나발’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지 않았을 겁니다. ‘나발’은 ‘어리석은 자, 미련한 자’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를 죽이려 하는 사울 임금의 손자 므비보셋을 돌보아준 사람입니다. 보통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나도 모르는 내 형편, 내 처지, 내 생각, 내 경험, 내 뜻을 앞세우다가,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시려고 할 때 도움을 받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셔야 합니다.
사렙다 과부는 엘리야 선지자의 말에 한 마다 항의도 하지 않았습니다.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가 있느냐?’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렙다 과부는 자기와 자기 아들이 한 번 밖에 먹을 양식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마지막 남은 양식을 가지고 대접을 했습니다.
그 결과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비가 오기까지 통의 가루와 기름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아니 하였더라” 증언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거저 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울 때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지막 남은 시간, 마지막 남은 열정, 마지막 남은 돈과 물질, 마지막 남은 재능, 마지막 남은 희생까지도 요구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때 그것을 과감하게 드릴 수 있는 사람은 변명하거나 핑계를 대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려울 때 우리를 찾아오셔서 마지막 때에 더 큰 것을 요구하실 지도 모릅니다.
그럴지라도 순종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효성교회에 다니는 김세진 집사는 모태신앙인입니다.
주유소 건설업을 했지만, 세상적인 방법으로 사업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하게 사업을 했습니다.
사업이 아주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IMF 때 회사가 부도가 나고, 동생은 공사현장에서 떨어져 죽고, 아내는 심한 병에 걸렸습니다. 더 이상 헤어 나올 길이 없었습니다.
절망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김 집사를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김세진 집사는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하나님은 옛 친구들을 보내주셔서 다시 작은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김 집사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사업은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하게 해 주시옵소서’
건설업이 잘 돼서 운수업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남양주시에서 서울까지 오가는 버스회사인데, 버스가 120대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버스를 인수하고 나니까, 의자에 역술인 광고가 붙어 있는 겁니다. 이것을 당장 떼어 버렸습니다. 광고를 내면 돈이 들어오지만 ‘이건 아니라’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새로운 시트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여 놓았습니다. 사람들이 찢어 버리면 또 다시 붙이고, 찢으면 또 붙이고 했습니다.
이 회사에는 파업이라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직원들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자녀들에게 장학금도 주고요, 복지에도 신경을 많이 씁니다.
그리고 꿈이 있다고 합니다. 그건 아파트를 지어서 직원들에게 한 채씩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를 물었더니, 김 집사가 말하기를 ‘전에는 내 뜻대로 살았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았더니, 하나님이 사업도 번성하게 해 주시고, 기쁨도 주시고, 복음도 전하게 해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세상 사람들은 다 나를 버려도, 우리 주님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주님이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찾아오셔서 마지막 남은 밀가루와 기름을 달라고 하실 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어려울 때, 힘들 때, 없다고 얘기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남은 것을 드리고, 그 시간을 드려서 헌신하여, 하나님이 사렙다 과부를 축복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여러분에게 그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하나님이 고쳐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의 노력으로 문제가 해결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엘리사 선지자 시대에 문둥병자가 많이 있었지만,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고침 받은 사람은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27절)고 했습니다.
나아만은 이방 수리아의 군대장관입니다.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철천지원수의 대장입니다.
나아만은 불치의 병, 문둥병 환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치유해 주셔서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사렙다 과부는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난을 해결해 주셔서 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창 1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하시고, 100세의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백 세라는,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나이에 낳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해도 바쳤습니다. 순종했습니다.
‘죽으면 다시 살게 하시겠지, 없으면 다시 주시겠지 ’ 이 믿음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이 믿음으로 아브라함을 복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 하시되, 더 좋은 방법으로 해결하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능력은 내 생각보다 크고, 내 계획보다 넓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내가 어려울 때 찾아오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의지할 곳 없는 사람은 돈 떨어져, 권력 떨어져, 몸에 병들면 인생이 끝이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절대 끝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 오시는 하나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을 통해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힘들고 어렵다고만 말씀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찾아 가십니다.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남은 것들을 주님을 위해서 한 번 마음껏 써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온전히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렙다 과부처럼, 나아만 장군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은혜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어느 부부가 대판으로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당신 물건 다 싸가지고 나가!” 그랬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내가 큰 가방을 가지고 나오더니 남편에게 “여보! 나는 다 필요 없소. 단 하나만 가지고 가겠어요.” 말했습니다.
남편은 얼떨떨해서 “뭐야? 뭘 가져갈 건데?”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당신, 이 가방에 들어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에 꼭 모셔야 하는 분이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주인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조셉 크리븐슨이라고 하는 청년이 결혼전날 약혼녀가 수영을 하다가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너무나 슬퍼서 자포자기를 하며 ‘하나님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하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시비를 걸고, 아주 삐뚠 삶을 살았습니다.
크리븐슨은 더 이상 고향에서는 살 수가 없어서 아일랜드를 떠나 멀리 캐나다로 갔습니다.
그곳에 가서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세상이나 자기 자신이 자기를 버려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스티븐슨은 교회 역사 속에 남을 찬송시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 찬송을 기쁨으로 불렀습니다.
바로 487장 찬송 <죄 짐 맡은 우리 구주>입니다.
1.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2. 시험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 말고 기도드려 아뢰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3. 근심걱정 무거운 짐 아니 진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드리세
세상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