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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보이느냐?(막8:22-26)

작성자최우식 목사|작성시간12.03.08|조회수2,644 목록 댓글 16

무엇이 보이느냐?

8:22-26

 

 

인체는 우주의 축소판이라고 합니다.

평균 체중을 지닌 성인이라면 하루 동안 다음과 같은 인체활동을 경험합니다.

성인의 심장103689번을 뜁니다.

26880를 돕니다.

(지구 둘레 46,286km이므로 지구를 5,800회전)

그런가 하면 성인은 2340번의 을 쉽니다.

그리고 약간의 불필요한 까지 포함해 48백 단어를 말하고요, 750개의 근육을 빠르게 혹은 천천히 움직입니다.

성인의 머리카락0.0435CM가 자랍니다.

뇌세포7백만 개가 움직입니다.

 

여러분, 이 모든 것을 사람의 힘과 노력으로 움직이게 한다고 해보세요.

못합니다. 할 수 없어요. 힘이 들어서 바로 죽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동원해도 움직이기에 소요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성인은 피곤함을 모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경이로운 섭리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가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없으면, 한 순간도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눈, , , , 발 등 인체의 어느 한 부분이 잘못되거나 없으면 살아가는 것이 말할 수 없이 불편하거나 아주 힘이 들게 됩니다. 그리고 심적으로도 열등감을 느끼며 얼마나 아프게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사회적으로도 왕따를 당하거나 고립이 됩니다.

 

제가 얼마 전에 예화로 말씀드리기도 했습니다만,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던 헬렌 켈러를 세상의 빛으로 이끌어 훌륭한 인물이 되게 한 설리번의 이야기를 다시 합니다.

설리번은 소녀일 때 미국 보스턴의 지하 병동에 격리 수용돼 있었습니다.

그녀는 마음의 어둠 때문에 심한 자폐증적 정신병을 앓아서, 사람들이 다가오면 괴성을 지르고 사납게 독설을 퍼붓곤 했습니다.

의사들도 온갖 노력을 기울여 치료해보았지만, 결국 회복 불가능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부모도 자식인 설리번을 포기해 버리고, 면회조차 가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설리번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의사에 의해, 부모에 의해, 사람들에 의해, 세상적 가치관과 상식에 의해 회복 불가능이라고 낙인찍힌 이 설리번이 어떻게 자신을 바꾸고,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꾸는 놀라운 삶을 살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변할 수 있었습니다.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도 예수님을 만나면 바뀔 수 있습니다.

설리번이 그랬고, 헬렌 켈러가 그랬고, 제가 그랬습니다.

 

은퇴한 늙은 간호사가 설리번에게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모조차 포기한 깊은 정신적 자폐증 아이였지만, 늙은 간호사6개월 동안 끊임없이 주님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설리번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마음속에 짙게 내려져 있던 어둠이 걷히고 서서히 세상을 향해 문을 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회복 불가능이라던 정신 질환마저 완전히 치료되었습니다.

마음의 빛을 찾은 설리번은 자신과 같은 자폐증 정신 질환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했고, 삼중고의 장애로 자기보다 더 중한 상태에 있던 헬렌 켈러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참으로 확실하게 개인적으로 만나면 여러분의 인생은 바뀔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이처럼 참으로 예수님을 만나 고침 받고, 변화된 삶을 살게 된 한 소경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8:22~26의 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이 시간 본문말씀을 통해 무엇이 보이느냐?는 설교제목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오늘 소경예수님께서 그의 눈에 침을 뱉으시고,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하셨을 때,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24) 말했습니다.

소경의 이 말은 사람을 보았다는 것도, 나무를 보았다는 것도 아닙니다.

소경은 희미하게 어떤 형체가 움직이는 것을 윤곽으로만 본 것이지, 밝히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다시 그 소경의 눈에 안수하여 주셨는데, 소경은 비로소 그 희미하게 움직이는 물체를 주목하여 보았는데, 그 순간 눈이 완전하게 나아서 밝히 보게 되었습니다.(25)

사람도 보고, 나무도 보고, 예수님도 본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말씀의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계실 때에 가장 힘쓴 일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가르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파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병든 자, 약한 자를 고치시는 일이었습니다.

 

9:35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 이렇게 요약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가장 힘쓰셨던 세 가지 사역 가운데 세 번째 하셨던 병자를 고치신 일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 병자 가운데서도 약한 자인 소경을 기적으로 고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소경을 고치신 본문의 기적은 단 한 번에 딱 이루어진 기적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치유의 기적입니다.

처음은 사람을 유령 비슷한 것으로 보고, 다음은 사람을 나무 비슷한 것으로 보고, 최종적으로는 사람과 나무와 예수님을 밝히 보았습니다.

여기에는 상징적 진리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벳새다 소경이 눈을 뜨고 밝히 보게 된 이 사건은 매우 의미심장한 교훈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면 새 생명을 보증 받는 것은 확실하지만, 곧바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아직도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욕구에 연연하는 삶을 살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지금 이 소경이나 다름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바로 영적 소경이다라는 사실과, 예수님 자신은 절대로 헛된 인기나 무익한 소문을 원치 아니 하시는 분이신 것을 사람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무엇이 보이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첫째로, 소경은 예수님께 고침을 받아 처음에는 사람이 보이나이다.”(24) 했지만, 사실은 그것이 확실하게 사람인지를 제대로 분별하여 보지 못했습니다.

 

본문 22을 보십시오.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소경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대시기를 구하거늘

예수님께서 벳새다에 막 도착하셨는데, 그 때 사람들이 소경 한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고쳐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23에 보면, 이 사람들의 요청에, 예수님께서는 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을 하시고, 수긍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물으시니

그랬더니, 소경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라고 24에서 대답합니다.

 

지금 이 말씀은 벳새다에서 소경이 예수님을 만나 치료받고 보게 된 기적의 계기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본래 벳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있지도 않았고, 예수님 앞에 나아오기를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소경을 예수님 앞에 데려왔고, 소경은 예수님을 참되게 만났으며, 예수님은 소경을 고쳐 주셨던 것입니다.

 

벳새다는 우리말로 어부의 집인데, 갈릴리 동북쪽 가버나움 근처에 있는 어부마을입니다.

벳새다는 예수님의 첫 제자들인 베드로와 안드레, 빌립이 살던 마을 바로 윗동네로서, 예수님께서 아주 자주 다니시며 이적을 많이 행하셨으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하도 완악하여 예수님을 믿지 아니함으로, 예수님으로부터 화가 있으리라 책망을 받으셨던 곳이기도 합니다.

벳새다는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게 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도시락을 내어놓은 소년이 살고 있는 마을이기도 합니다. 벳새다에 사는 수천 명의 어른들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도시락을 내놓지 않았던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들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귀신들렸다고 미쳤다고 배척했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벳새다에, 예수님에게 있어서 그토록 익숙한 이 벳새다에 예수님께서 이르자마자, 사람들이 소경 한 사람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평소 행위대로 보면 그들을 만나주지 아니 할 수도 있었습니다. 오히려 찾아온 그들에게 책망하며 저주하며 돌려보낼 수도 있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만으로도 그 소경의 눈을 얼마든지 뜨게 해서 보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소경을 데리고 마을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소경의 눈에 침을 뱉어 바르시고, 그에게 안수하셨습니다.

또다시 안수하심으로 그의 눈을 고쳐 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절대 외면하지 아니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고 말씀하신 분이십니다.

이런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너무도 당연하신 듯 사람들이 데려온 소경을 물리치지 아니 하시고, 모른척하지 아니 하시고, 긍휼한 심령으로 맞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소경의 손을 잡고 마을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예수님과 소경, 단 둘만의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만남을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소경에 대한 예수님의 세심하고도 깊은, 긍휼하신 사랑의 배려였습니다.

 

보세요.

예수님은 그들을 모른척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돌려보낼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만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단호하게 네 눈을 떠서 볼지어다.’ 말씀만으로도 소경을 고쳐 보게 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냥 많은 사람들 앞에서 침을 뱉어 소경의 눈에 바르고, 안수하고 소경을 고쳐주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소경을 데리고 온 사람들에게 소경의 손을 붙잡게 하셔서 소경을 마을 밖으로 데려나가게 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소경의 손을 직접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인도해 가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 쓰심과 행동은 소경에 대한 세심하시고 긍휼하신 배려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소경이 예수님 앞에 오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는 소경입니다.

한치 앞을 보지도, 분간하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 소경이 되는 것은 죄의 대가라고 여겨져,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소경의 부모, 소경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소경은 사람들로부터 왕따 당하고, 멸시 천대를 받고, 집 안에서만 살고,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여 한 순간도 사람다운 삶을 살아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대접받고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소경을 예수님 앞에 데리고 나온 사람들도 부모형제,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들이었을 겁니다.

이 소경에게 무슨 삶의 의미나 욕구가 있겠으며, 그 부모형제인들 소경과 거의 같은 형편이 아니었겠습니까?

또 이 소경은 병신인 자기 때문에 자기와 같은 고통과 슬픔을 겪고 있는 가족들에게 얼마나 죄책감을 느끼고 살았겠습니까?

그리고 소경은 지금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저주 받은 존재로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비참했겠습니까? 한 마디로 죽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소경의 슬프고도 고통스러운 이 심정을 지금 누가 헤아리고 계십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소경의 이 참담한 아픔을, 누가 치료해 줄 수 있습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소경의 눈을 고쳐주실 능력을 누가 갖고 계십니까? 바로 여호와 라파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소경의 손을 직접 꽉 붙잡으시고, 그 수모와 고통과 슬픔과 절망의 자리에서 그 소경을 주권적으로 이끌어내서, 더 이상 세상과 사람들의 멸시천대가 이 소경을 괴롭힐 수 없는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은 소경과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참된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소경의 눈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그렇게 해서 소경의 믿음을 북돋아 일으키시고, 그 영혼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를 데리고 마을 밖으로 나가신 또 하나의 이유는 아직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성을 드러내실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6에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경을 조용히 고쳐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행한 기적에 대해 동네방네 소문내기를 원치 않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소경을 고쳐주고 세상의 헛된 인기나 영화를 얻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셨습니다.

 

본문 23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소경의 눈에 침을 뱉어 바르셨습니다.

이란 입안에는 꼭 있어야 할 액체입니다.

은 입안에서 음식물을 씹을 때 소화제 역할을 하고, 음식으로 맛이 나게 하고, 음식을 부드럽게 해 줍니다.

그런가 하면, 은 치료제 구실도 합니다.

환부에 침을 바르는 것은 옛날 민간요법중의 하나였습니다. 옛날에 고약도 없고 연고도 없을 때에는 종기나 상처부위에 침을 발라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침 속에는 무수한 세균이 들어 있고요, 그 냄새가 지독합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침을 내 신체 부위에 바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 소경은 예수님이 침을 뱉어 자기 눈에 바르는 데도 그것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만약 소경이 예수님이 자기에게 하는 치료가 기분 나쁘다고 그냥 돌아가 버렸다면, 그는 한평생 소경으로 살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소경에게 안수하신 것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어떤 경우에 안수하였는지가 나와 있습니다.

제사장이나 왕이나 선지자를 기름 부어 세울 때 안수하였습니다.

속죄제를 드릴 때 아사셀 어린 양에게 자신의 죄를 뒤집어 씌워 대신 광야로 보내어 죽음으로 내몰 때 양에게 안수하였습니다.(16:7~10)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실 때 안수하셨습니다.

(13:12~13, 8:23)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축복할 때 안수하셨습니다.(10:16)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안수는 이 가운데 병자를 고치실 때의 안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안수하지 않으셨으며, 아무 때나 안수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도들도 함부로 안수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아무에게나 함부로 안수 받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아무나 안수하겠다.’고 덤벼서도 안 됩니다.

무질서한 안수나 은사행위는 사탄의 세력들에게 틈탈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 잘못된 기도원에 갔다가 귀신들려 오고, 아무한테나 안수기도 받았다가 악령의 하수인이 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안수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약한 자나 병자나 장애인을 보시면 안타까워서 견딜 수가 없으셨습니다.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고쳐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안수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오늘도 허물 많고 연약한 우리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 늘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계시고, 우리 가까이에 와 계시며, 보이지 않는 손길로 우리를 어루만져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보이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다음은, 소경, 사람들이 보이는데, 그 모습이 확실치 않고,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다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24에 보면,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이라고 하였습니다.

 

소경의 이 말은 안개가 매우 자욱하게 깔린 날의 거리를 연상해보면 그 의미가 한층 실감 있게 느껴질 것입니다.

소경은 볼 수 없는 흑암의 세계를 벗어나 광명을 찾기는 하였지만, 사물을 확연하게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의 온전한 시력을 회복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소리를 들어보면 분명히 사람인 것 같은데, 그 보이는 모습은 흔들거리는 나무와 같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짜증이 나겠습니까?

 

예수님은 이 소경이 겪고 있는 불편함과 고통을 너무 너무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소경을 영육 간에 온전케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에게 믿음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소경에게 안수하심으로 그의 믿음을 일으키시고, 북돋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소경의 믿음은 너무 연약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소경에게 안수하시고 나서 무엇이 보이느냐?”(23) 물으셨을 때, 소경이 대답하기를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다니는 것이 보입니다.” 그랬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의 믿음상태를 말해주는 겁니다.

 

여러분, 은 홍체. 동공. 수정체. 모양체근. 망막. 각막. 추상세포. 간상세포. 혈관 등 다양한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조직들 가운데 어떤 것들에게 이상이 생기게 되면, 눈이 눈으로서의 제 구실을 다 할 수 없게 됩니다.

반면에 건강한 눈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세상과 사물을 보는 눈은 사람의 눈과 짐승의 눈이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세상과 사물은 사람도 보고, 짐승도 봅니다.

짐승의 눈은 먹이를 보고, 동료를 보고, 짝을 보고, 적을 봅니다.

그러나 사람의 눈은 물질세계를 봅니다.

지식을 탐구하고, 가치를 추구합니다.

음악을 듣고, 연극을 보고, 과학을 연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것들 말고, 사람으로 보게 하신 것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눈을 들어서 신령한 세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119:8내 눈을 열어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라고 하였고,

12:2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눈은 셋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보고 사물을 보는 육안(肉眼)과 지식과 학문의 세계를 보는 지안(知眼)과 하나님을 보고 영원한 세계를 보는 영안(靈眼)입니다.

 

우리 성도에게는 이 세 가지 안목이 모두 필요합니다. 육안도 필요하고, 지안도 필요하고,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있는 영안도 열려있어야 합니다.

 

왕하 6:11~19에 보면, 엘리사 선지자가 활동하던 때에, 아람 왕이 대군을 이끌고 와서 이스라엘 사마리아 성을 겹겹이 에워싸게 됩니다.

그것을 보고, 엘리사 선지자의 사환 게하시가 너무너무 두려워하였습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게하시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 게하시의 눈을 열어 저 아람군대보다 더 강한 하나님의 군대를 보게 하옵소서.”

그러자 하나님께서 게하시의 영안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랬을 때 산에 가득한 불 말과 불 병거가 게하시의 눈에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의 눈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세 가지 안목이 다 열려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영안까지 열려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에게 소경이 본 것처럼 이것저것 어른거리는 것들은 없습니까?

있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명예입니까? 이성입니까? 아니면 또 다른 어떤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소경이 자기 눈을 고쳐주신 예수님이 바로 자기 앞에 계시는데도 그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다니는 것만 본 것처럼, 우리 눈에 예수님은 안 보이고, 세상 것들만 눈앞에 어른거리는 사람은 없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눈에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예수님이 보여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교회에 나와 앉아 있는데도 내 눈에 자꾸만 세상 것들만 어른거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내가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지만, 걱정과 근심이 마음에 가득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내가 말씀을 듣고, 기도는 하지만, 유혹과 쾌락의 그림자가 눈에 어른거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너무 위축되지는 마세요.

왜냐하면, 내가 예수 믿고,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라고 하더라도 결코 단 한번에 영안이 완벽하게 열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는 데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우리도 처음에는 희미하게 볼 수밖에 없습니다. 매우 답답한 일이기는 하지만, 누구나 그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성경 말씀이 믿어지면 믿어지는 그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성경말씀을 읽고 듣고서 내가 아멘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내 영안이 열리고 있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5:3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 말씀하셨고, 5:8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성령 안에서 말씀과 기도로 영안이 날마다 새롭게 열리는 역사가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무엇이 보이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셋째로, 소경은 마침내 모든 것을 밝히 보게 되었습니다.

 

25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보면, 예수께서 그의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게 되었더라.” 하였습니다.

 

여러분, 여기 예수님께서 다시 안수하셨다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다시라고 하는 말은 반복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다시 예배드리고, 다시 기도하고, 다시 계속적으로 은혜 받아야 합니다.

옛날에 은혜 받은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오늘 다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다시 살아나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도 모든 것을 밝히 볼 수 있습니다.

 

영국의 천체 물리학자이며 캠브리지 대학교 교수인 스티븐 호킹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신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하기 때문에 마치 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지만, 실상은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했고,

우주에는 중력과 같은 물리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에, 천지는 스스로 창조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22세에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분자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영국 킹스대학교 교수인 A.맥그래스물리학 법칙 자체가 무에서 유를 만들 수 없도록 되어 있다고 하면서 호킹의 말은 마치 운동장에 축구선수가 없어도 골을 넣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호킹은 육안과 지안은 열려 있었어도, 영안은 깜깜한 사람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A.맥그래스의 눈에는 하나님이 보이고, 하나님의 천지창조가 믿어졌습니까?

그것은 그에게 믿음의 눈 곧 영안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의 눈에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내 눈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눈에 천국이 보이지 않는 것은 천국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에 영적 백내장이 끼어 영안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24:13~35에 보면,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 대한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글로바와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불쑥 나타나 그들의 길동무가 되셔서 같이 동행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이 두 제자는 그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인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랬다가 저녁식사 시간에 예수님께서 축사하시고 빵을 떼어 주실 때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서, 바로 그분이 예수님인줄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24:30~31)

그런데 24:32에 보면, 그들이 주님을 알아보는 그 순간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시고, 거기 계시지 않더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내 곁에 계실 때에 그 때 내가 주님을 바로 알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 성도들과 나를 향해서 지금 네 눈에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시면, . 주님이 보입니다. 예수님이 보입니다.’ 분명하게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보입니다. 예수님의 피 묻은 십자가가 보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능력이 보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말로 다할 수 없는 주님의 영광이 보입니다.’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오늘 말씀의 끝을 맺겠습니다.

내 눈에 돈이 어른거리고, 이성이 어른거리고, 세상이 보이고, 세상에 있는 것들만 어른거리던 것이 변하여, 저와 여러분의 눈에 사랑하는 우리 주님 예수님이 보이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보이는 역사가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나와 여러분들에게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실 때에, 주여! 제 눈에 주님이 똑똑하게 보입니다!’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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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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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회오리 | 작성시간 12.03.16 은혜로운 말씀 감사합니다. 큰 도움입니다.
  • 작성자하나님의 머슴 | 작성시간 12.03.16 깊은 말씀의 해석에 감사합니다.
  • 작성자거문고소리 | 작성시간 12.03.20 은혜의 말씀 참으로 감사합니다. 영안이 열리지기 원합니다.
  • 작성자해맑은 | 작성시간 12.03.20 감사합니다.
  • 작성자므드셀라 | 작성시간 12.04.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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