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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역대상 25장 1-7절)

작성자김민호목사|작성시간15.09.08|조회수238 목록 댓글 2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역대상 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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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허상이 아니라 실제로 계시는 분이며,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이사야 43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피조물로서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구원받은 자녀로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우리의 위로자요 동행자 되시는 성령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인간은 태생 자체가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찬송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의식에서는 항상 찬송을 드렸습니다. 특히 다윗은 무수한 시편을 지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찬송을 드렸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받고, 마음의 평안을 얻고, 놀라운 능력들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얼마나 신앙을 세워나가는데 중요한지 너무나도 깊은 체험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누구보다도 찬양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에, 조직적이고, 전문적인 찬양대를 구성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구상을 하여 왔습니다.

 

다윗은 오벧에돔의 집에 있던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옮긴 후부터 레위지파 사람들에게 찬양을 맡겼습니다. 이들은 회막 앞에서 찬양을 불렀고, 솔로몬 성전이 완공된 후에도 성전앞에서 계속 찬양을 했습니다. 역대상 933절에, “또 찬송하는 자가 있으니 곧 레위 우두머리라 그들은 골방에 거주하면서 주야로 자기 직분에 전념하므로 다른 일은 하지 아니하였더라고 하면서 이들이 전문적인 찬양만을 담당하는 조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이 조직한 찬양대에 관한 말씀입니다. 다윗이 조직한 찬양대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이 평소에, 그리고 예배 시간에 드리는 찬양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말씀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1절입니다. 다윗이 군대 지휘관들과 더불어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섬기게 하되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하였으니 그 직무대로 일하는 자의 수효는 이러하니라

 

아삽, 헤만, 여두둔 세 명의 찬양대 지휘자의 명단이 나옵니다. 이들은 레위지파의 고핫 자손의 후손들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무엘 사사가 있습니다. 그의 가족은 에브라임 산지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가족이 에브라임 지파는 아닙니다. 사무엘은 레위지파 고라 자손의 후손으로, 그의 선조가 바로 오늘 찬양대장중 한 명인 헤만 입니다. 이들 세 명의 지휘자의 아들이 총 24명인데, 이 아들들을 중심으로 도합 288명이나 되는 웅장한 찬양대가 조직이 되었습니다.

 

세 명중에 헤만은 처음으로 조직된(대상 6) 찬양대의 지휘자 였습니다. 그는 찬양대의 중심에 섰으며, 오른쪽에는 아삽이, 왼쪽에는 에단이 섰습니다. 아삽은 많은 찬양 곡들을 만들었으며, 그의 노래는 시편에 12편이 있습니다. 여두둔은 시편 39편에 여두둔 형식으로 부르는 노래라는 표제가 붙을 만큼 중요한 인물 중의 하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잘 알았습니다. 그들을 잘 조직화 하고, 많은 노래들을 짓게 하고, 각종 악기들을 동원해서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올려드리는 찬양대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아삽, 헤만, 여두둔이 찬양대의 중심인물이었는데, 1절에서 이들을 구별하여 섬기게 했다라고 합니다. 구별하였다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구별은 거룩함으로 분리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찬양을 드리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거룩하여야 합니다. 조직을 나누어서 물리적으로 거룩하게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참여하는 자의 마음가짐이 거룩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항상 찬양에 앞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거룩하지 않으면, 찬양대 전체에 흠이 생기는 것이고, 이는 곧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찬양이 될 수 있습니다. 구별되었다는 생각, 그리고 구별된 자로서의 행동이 찬양대의 일원으로서 지녀야 되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부르셔서 일을 맡기는 사람들은 다 구별된 사람들 이었습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들, 그리고 지도자, 사사, 선지자, 예언자, 왕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세워질 때, “구별하여 세웠다” “기름부어 구별하였다라고 합니다. 구별된 사람은 보통 사람들과는 확연하게 다르게 하나님이 직접 택하시고, 따로 떼어 놓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구별된 것이 맡겨진 일만 전문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격리시켜 놓은 것은 아닙니다. 하루 24시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합당하게 생활하고, 거룩과 성결한 생활을 늘 유지하여,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들을 순전하게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구별된 사람들은 늘 준비된 마음과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구별의 본래 의미입니다.

 

찬양을 하는 모든 사람은 아삽, 헤만, 여두둔처럼 구별되었다는 사실을 항상 지녀야 합니다. 찬양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하나님이 받으시는 찬양은 구별되어 거룩하게 행동하고, 진실 되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마음 중심이 서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드릴 준비다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구별은 전문성을 말합니다. 찬양을 드리는 사람은 전문적이어야 합니다. 세 사람의 지휘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구별되었고, 찬양의 전문적인 지도자로서 택함을 받은 인물들 이었습니다. 전문적이라는 것은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라는 말입니다. 찬양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풍부한 음악적 감성과, 조직을 이끌 리더십을 갖추어야 합니다. 특히, 구별된 사람들을 이끌어갈 지휘자들은 영적인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찬양한다는 것을 지휘자부터 명심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전체 찬양대 조직이 하나님께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찬양할 수 있도록 지도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들 중에서 헤만을 지칭하면서, 5절에서 왕의 선견자라고 말합니다. 원어적인 의미는. “환상을 보았다(seer)”는 말로, 꿈과 환산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예언자에 더 가까운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견자로 지칭되는 찬양대의 지휘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탁월한 안목과 지혜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지휘자들은 단순하게 찬양대의 지휘자의 직무만을 감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왕에게 전하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탁월한 영적인 충만함을 지녔습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과 뜻을 왕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선견자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구별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들은 늘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소통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순종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구별된 사람의 최종적인 목표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이들은 기도의 시간을 구별해서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받았습니다. 왕조차도 이들의 말을 들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잘 알 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결국 선견자라는 것은, 이들이 찬양의 전문가인 동시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전문가이기도 했다는 말입니다.

 

구별된 사람만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선두에 설 수 있습니다. 구별된 사람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모든 회중을 대표해서 앞에서는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들입니다. 구별되지 않고서는 이 직무를 감당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지휘자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모든 사람들은, 구별된 사람들로서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린 다는 마음으로 평소의 행실에 각별히 주의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찬양을 드리며 살아갑니다. 당연히 구별된 사람들로서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는 항상, “나는 거룩하다, 나는 구별되었다,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든는 전문가다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구별되어 가룩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항상 하나님 앞에서 찬양 드린다는 두려움과 떨림의 자세로, 준비된 몸과, 마음과, 언행을 늘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하도록 살아시기를 축복합니다.

 

2절 하반절입니다. “아삽의 아들들이 아삽의 지휘 아래 왕의 명령을 따라 신령한 노래를 하며라고 합니다.

 

1절에서 세 명의 지휘자들의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고, 2~6절에서는 찬양대운들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앞서 설명 드렸듯이, 아삽, 헤만, 여두둔의 자손들 288명이 찬양대의 일원입니다. 찬양대원들도 지휘자 못지않게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찬양대원들의 자세와 행동에 대해서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찬양대원들이 하는 행동은 신령한 노래를 하는 것입니다.“신령한 노래를 하며를 직역하면, “영감을 받아 노래했다는 뜻입니다. 영감, 즉 성령이 주시는 감동을 가지고 찬양을 불렀다는 말입니다. 찬양대원들은 기본적으로 찬양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은사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고귀한 사명을 감당합니다.

 

찬양대원 자신이 은사를 받았고, 찬양에 재능이 뛰어나지만, 재능을 자랑하거나 뽐내서는 안 됩니다. 찬양대원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찬양해야합니다. 나를 드러내려 하지 않고 조직과의 조화로운 화음으로 아름다운 찬양을 맞추어야 합니다. 반대로 내가 지닌 재능이 좀 부족해도, 조직과의 융화로 인해 아름다운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많은 인원이 구성되어 있지만, 누구 하나 모난 돌이 없이 서로서로 잘 맞추어진 모습이 찬양대의 모습입니다. 조금이라도 자신을 더 돋보이게 하려 한다면 아름다운 화음은 나올 수 없습니다. “신령한 노래를 하기 위해서는 찬양대원 모두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진실함으로 부르는 찬양이 곧 신령한 노래가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신령한 노래를 부르려면 분명한 소명의식이 전제 되어야 합니다. 세 명의 찬양대 지휘자의 아들들이라고 해서 찬양대원이 자동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찬양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우선 선발하지도 않습니다. 찬양대원은 모든 성도와 믿는 무리들을 대표해서 찬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엄격한 선발 기준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본인이 찬양대원으로 소명의식이 뚜렷한가, 그렇지 아니한가에 달려 있습니다. 소명의식이 있는 사람은 찬양을 즐겨합니다. 찬양하며 기쁨을 느낍니다. 찬양할 때 감동이 있습니다. 찬양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소명의식이 결여 되어 있으면, 찬양을 하며 감동을 느끼지 못합니다. 한 마디로 무감각하게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마음이 없이 부르는 찬양은 하나님도 받지 않으십니다. 찬양 대원은 신령한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반드시 흔들리지 않는 소명의식, 그리고 찬양에 임할 때마다 사명의식이 확고해야 합니다. 이런 소명의식과 사명감이 없으면 신령한 노래를 부르기는 불가능합니다.

 

2절의 말씀처럼, 아삽의 지휘에 따라 왕의 명령에 따라 노래를 부르려면, 나를 찬양대원으로 불러주셨다는 철저한 소명의식과, 나의 재능으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받아 부른다는 교감이 일어나야 합니다. 두 가자 중 하나라도 결여되어 있다면, 몸은 찬양대원의 일원일 수 있으나, 마음은 이미 흐트러져 있고, 입으로만 노래하는 결과만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찬양모습에 비추어 보아도 간단하게 답이 나옵니다. 스스로 부르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반주가 옆에서 흘러나온다고 해서 찬양이 불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소명의식, 즉 불려주셨으니 언제든지 기쁜 마음으로 찬양 한다는 준비가 되어야 진정한 찬양을 할 수 있습니다.

 

또 내가 찬양을 좋아한다고 해서 마음껏 부르면 언제나 하나님이 받으시지는 않습니다. 신령한 노래, 영감이 없이 부르는 찬양은 나 자신만 기분이 좋아질 뿐입니다. 찬양대원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때는, 마음을 가다듬고, 성령 하나님께 의존하고 집중하는 마음으로 한절 한절의 가사를 정성껏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찬양을 받으십니다. 영감을 통해 드려지는 찬양을 받으십니다. 평소에 찬양을 많이 드리십시오. 드릴 때마다 마음으로 드리시고,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찬양을 드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3절 하반절입니다. 여두둔의 지휘 아래 수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며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하며라고 합니다.

 

둘째로, 찬양대원들이 하는 행동은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감사한다는 말은 빛이 난다는 말입니다. 특히 신체 부위를 지칭해서 환하게 빛난다라고 할 떼 쓰이는 말입니다. 찬양한다는 말은 손을 들고 높여 드린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하며 찬양한다는 것은, 속마음에서 진정한 감사의 고백을 드릴 때에 나타나는 외형적인 모습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도 환하게 빛나는 모습으로, 정말 감사함이 넘쳐서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찬양을 올려 드리는 모습입니다. 찬양대원 중에서, 정말 저분은 감사하고 감동으로 찬양하는구나! 라고 느낄 수 있을만한 그런 모습과 행동으로 찬양하는 상황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신령한 노래가 나오는데, 2절과는 다르게 수금이라는 악기가 등장합니다. 1절에서 찬양대에서 사용한 세 가지가 악기가 나옵니다. 수금은 지금의 하프이고, 비파는 현악기의 일종이고, 제금은 심벌즈()을 말합니다. 현악기와 타악기를 동원하여 악기를 구성한 것을 보면, 찬양대는 일종의 관현악단 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관악기가 없지만, 시편 1503,4절에서,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찌어다라고 합니다. 나팔, 소고(탬버린), 퉁소(풀루트) 등 다양한 악기들이 시편과 성경 곳곳에서 나옵니다. 찬양대에서는 이 당시에 쓰여 지는 악기들을 모두 활용하여 연주하고 찬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조직한 찬양대는 각종 악기를 총 동원해서 아름답고 웅장한 합주를 통해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올렸습니다.

 

악기를 가지고 연주를 하는 찬양대원이나, 목소리로 찬양하는 찬양대원이나 동일하게 신령한 노래를 부르고,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모습으로 찬양을 합니다. 288명이나 되는 찬양대원들이 전부 이런 모습이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모든 대원들의 얼굴 모습이 환하게 빛나고 동작 하나, 하나에 감동이 넘칩니다. 이렇게 되어지는 이유가 찬양을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다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감사하는 마음을 온전히 드리기 때문에, 마음속에 있는 모든 염려와 근심과 불안이 다 사라지고 평안이 넘칩니다. 기쁨이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얼굴 모습은 자연스럽게 빛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손동작도 은혜가 넘치는 행동을 합니다. 부르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피차 은혜 충만합니다. 이것이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앙하며드리는 찬양의 모습입니다. 이런 찬양의 모습이 우리교회, 우리 자신이, 예배드리는 시간마다, 아니 삶에서 순간순간 마다 드려지기를 바랍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드리면서 모든 짐을 다 내려놓고, 찬양하며 기쁨과 평안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6절 상반절입니다. 이들이 다 그들의 아버지의 지휘 아래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아 여호와의 전에서 노래하여 하나님의 전을 섬겼으며

 

셋째로, 찬양대원들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의 성전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6절은 찬양대원들이 하는 일의 종합적인 내용입니다. 이들은 성전에서 노래를 하는 일, 즉 목소리로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악기로 섬겼다고 합니다. ‘섬겼다의 뜻은 노동이나 봉사를 말합니다. 영어성경에는 ministry, 혹은 service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곧 예배를 말합니다. 찬양대원들의 임무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목소리)으로 할 수 있는 것, 그리도 각자의 재능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올인(all in) 하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역대상 6장에서 이들의 모습을 골방에 거주하면서 자신의 직무에 전념 했다고 표현합니다. 24시간 완전히 노래와 연주를 위해 준비하고, 기도하는 일에만 집중한 사람들이 찬양대원들 이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생활이 있으니 지금 이 말씀을 현실에 적용하여 찬양대원들에게 요구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찬양대원의 마음자세는 항상 하나님의 전에 거한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고, 늘 마음으로 찬양하고, 마음으로 기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 주간을 살면서 준비하는 것이 예배를 성공적으로 드릴 수 있는 밑거름이 됩니다. 각자 개인이 준비하는 마음이 없다면, 찬양대의 일원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며 나아가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얼마만큼 준비되었는지 확일 할 길이 없고, 독려할 방법도 없기 때문에, 본인이 스스로 준비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관여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준비과정이 어렵습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찬양대원 전체가 모두 준비되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어려운 문제입니다. 바쁜 와중에 계속 마음을 붙잡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적어도 예배를 드리는 전날에는 한 주간의 삶들을 정리해야 합니다. 찬양을 하는데 방해가 되는 마음의 문제들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신령한 노래를 부르기 위해, 그리고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을 드릴 수 있는 준비 시간을 꼭 가져야 합니다.

 

우리교회도 아름다운 찬양대가 있습니다.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하나님의 영광을 높여드리는 찬양을 매주 드리고 있습니다. 잘 준비하고 또 누구보다도 열심 으로, 그리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계속 유지되려면, 오늘 말씀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찬양대원이, 하나님 앞에서 구별되었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찬양대원이 되었다는 확실한 소명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찬양대원은 구별되어 특별하게 부르신 예배자의 자리임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찬양대원들을 위해서 늘 기도해 주시고, 마음으로 응원하고 축복해 주십시오. 더 기쁜 마음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하는찬양대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잘못 사용하고 있는 찬양 용어 중에, 준비 찬양 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찬양이 예배를 준비하기 전에 마음을 준비하기 위하여 불린다는 뜻으로 상용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준비찬양은 정말 잘못된 용어입니다. 찬양은 예배를 준비하기 위해 불려지는 사전 순서가 아닙니다. 찬양이 곧 예배의 순서입니다. 찬양이 마음을 준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찬양을 부르기 전에 이미 마음이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또 찬양하기 전에 이런 말을 합니다. “, 찬양 한곡 부르시면서 자리를 정돈 하겠습니다찬양은 장내를 정리하거나, 순서의 보조 역할이 아닙니다. 찬양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전심으로 불려 져야 합니다. 보조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찬양대원이 모두를 대표해서 진정으로 영광을 드리며 찬양을 드릴 때, 하나님은 거룩한 영으로 임재 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예배자들이 영광을 주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찬양대원들의 역할이 너무나도 중요한데, 우리 각자는 어떻습니까? 찬양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분명하게 영광이 되지만, 우리 개인에게도 얼마나 많은 위로와 능력이 되는지 잘 아실 것입니다. 누구라도 애창하는 곡이 있습니다. 그 곳을 부르면 마음이 녹아내리고, 다시 일어설 힘이 생깁니다. 기도가 되지 않고, 도대체 해결할 기미가 없는 위기가 닥쳐 올 때 하는 일이 있습니다. 성전에 나와서 부르짖고 울면서 목 놓아 찬양을 부릅니다. 목이 아프도록 찬양을 부르면 어느새 마음이 뚫리고 답답함이 사라집니다. 찬양은 곧 우리의 마음 그대로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고백입니다. 찬양을 많이 부르면, 긍정의 마음이 생깁니다. 용서의 마음이 생깁니다. 헌신의 마음이 생깁니다. 사랑의 마음이 생깁니다. 얼마나 많은 좋은 일들이 찬양으로 인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찬양을 많이 부르는 사람은 그 만큼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분명하게, 우리가 찬양에 앞서, 주님께만 영광 돌립니다! 라는 마음을 드리는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찬양의 한 마디 한 마디, 한 글자 한 글자를 나의 신앙고백으로, 나의 감사 제목으로, 나의 소원으로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합니다. 찬양을 드릴 때, 나의 어두운 면이 사라지고, 나약한 심령이 회복되고, 완악한 마음이 누그러지고, 바라고 원하는 것들이 이루어지도록, 간절한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찬양하는 자의 마음이 합당하게 구별되어 있다면 그가 드리는 찬양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그 마음 그대로 다 이루어 주십니다. 위로와 평안으로 함께 하십니다.

 

찬양의 능력은 우리에게 한량없는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올려 드린 것보다 수백 배 더 풍성함 것을 우리에게 채워 주십니다. 힘이 들고 지쳐 있을 때 혼자 부르시는 찬양이 있습니까? 한 두 곡은 다 있으실 것입니다. 저도 힘들고 지칠 때 홀로 성전에서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라는 찬양을 목청껏 부르면 큰 위로를 받고는 합니다. 예전에 기도 응답의 기쁨과 평안이 충만했을 때, “나 어느 곳에 있든지찬송을 일 년 내 내 부르고, 듣고 다닌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꼭 부르는 찬양이 있습니다이 땅에 오직 주밖에 없네 그 무엇도 나를 채울 수 없네 주님의 평안 내 안에 있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네~부를 때마다 힘이 나는 찬양입니다.

 

여러분들, 찬양 많이 하십시오. 찬양을 많이 하는 분들이 곧 거룩하게 구별된 분들입니다. 삶을 구별되게 살아가려는 분들은 언제나 찬양이 넘칩니다. 언제나 나를 죄에서 분리시켜, 구별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으로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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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은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언제나 우리의 삶이 찬양의 삶이 되게 하시고, 모든 감사를 담아 진정으로 찬양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입술로 찬양을 드림으로,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새 힘을 받게 하시고, 그로 인해 날마다 승리하며 영광의 주님을 더 찬양할 수 있게 하옵소서.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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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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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이 현채 @ | 작성시간 15.09.09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잠언 2장 7절로 8절 말씀).
  • 답댓글 작성자김민호목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9.09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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