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직접 증언을 들어라! (요한복음 5장 31-4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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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소장 중이었던 그림을 포스터로 제작해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포스터에 나와 있는 미술품의 실제 작가는 자신의 그림이 그 미술관에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이 그림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사후에 그의 집에서 압수 된 물품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그림이 세상에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미술관에 간 작가는, 전시된 그림을 보고 자신의 그린 그림이 아니라 위작(가짜로 모방한 그림)이라고 단정합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내가 그린 그림은 내 자식이나 마찬 가지인데, 내 자식을 몰라보는 부모도 있습니까? 이 그림은 확실하게 위작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 부터 이 그림의 진위 논쟁이 시작 되었는데, 이른 바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 논쟁이 시작 되었습니다.
미술관 측은 입수경위와 전문가들의 감정평가 등을 내세워서 작품이 틀림없는 진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을 자신이 그렸다는 모방 작가가 나타나서 위작으로 결정 나는 듯했지만, 검찰 조사에서 다시 진품으로 판명 되었습니다. 미술관 측은 천경자 화백이 고령으로 인해 자기 작품도 몰라볼 정도로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는 주장까지 폈습니다. 천경자 화백은 이 사건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인격적인 살인을 당했다면서 더 이상 그림 그리기를 중단 선언하고 미국으로 갔다가 2015년에 91세로 타계 했습니다.
천 화백의 사망이후에 다시 위작논쟁이 재발 되었습니다. 유족들이 프랑스의 전문 미술품 감정기관에 의뢰하여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판명을 받아 검찰에 재조사를 요청 했지만, 검찰의 재조사에서는 역시 천 화백의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결론이 났습니다. 그림을 그린 작가가 자신의 그림이 아니라는 친필 유서와 공증서 까지 있고, 국제적인 감정 평가기관의 평가도 위작이라고 하는데도, 수사 기관에서는 그림이 진품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유족들은 위작판정에 결코 동의 할 수가 없고, 천 화백의 심각한 명예 훼손을 위해 계속 진실 규명을 해 나가겠다는 입장입니다. 진품과, 위작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고, 평생 평행선을 이어 갈 것 같아 보입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러한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면, 낙심과 상처는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겁니다. 오늘 성경 말씀도 미인도의 위작 논쟁과 같이 실체적인 진실이 무엇인지 논쟁하고 반론을 펼치는 상황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3대 절기인 초막절(7월 15-22일) 기간에 예루살렘 성에 올라가셨다가, ‘베데스다’(자비의 집, house of mercy)라는 연못가에서 38년이나 누워서 구걸하던 장애인을 고쳐주셔서, 일어나 걷게 하신 큰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 기적에 놀라워하였지만, 예수님을 시기하고, 무언가 책잡을 궁리를 하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 예수님을 심하게 공격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도 일하시니 나도 일한 것이다”(5:17)라고 유대인들에게 면박을 줍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예수라는 자가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스스로를 하나님과 동등 되게 말하는 신성모독까지 저질렀다고 극도로 분노하면서, 급기야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5:18) 이로부터, “예수님이 누구신가?” 라는 실체적인 논쟁에 불이 붙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스스로가 누구인가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직접 반론을 펼치는 대목입니다.
예수님은 반론에 앞서, “나는 나에 대해 스스로 증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에 대해서 증언해 주실 분이 있는데 그 분의 증언만이 참으로 참된 것이고 진실 되기 때문이다”(5:31)라는 전제를 미리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이라”고 하셨으니,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아들이신 예수님을 증언해야만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부모를 통한 친자확인 보다 더 정확한 혈통의 증명은 없을 것입니다. 아버지만이 아들에 대한 확실한 증언을 해주실 유일한 분이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조목조목 반론을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먼저 세례 요한을 이야기 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사역하시기 전에 앞서서 일한 전령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을 등불이라고 표현했는데, 무지와 어둠 속에 있던 우리들이 등불을 보면서 광명한 빛으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게 하였다는 뜻입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 했지만, 예수님이 누구인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한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다”고 합니다. 세례요한이라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하나님 본체시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리스도 구원자이시다”라는 말을 직접적으로는 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이 말한 진리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32) 하셨습니다. 말씀과 접촉해야, 말씀을 받아들여야 제자도 되고, 진리도 알고, 자유함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핵심은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또 자신을 심문하는 빌라도에게, “나는 진리에 대해 증언하려고 태어났고, 그것 때문에 이 세상에 왔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드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진리를 스스로 증언하려고 예수님이 육신의 모습으로 오셨다고 하는 것을 신학적으로 “특별계시”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라는 것은 ‘실체(reality)’라는 말과 ‘계시(revelation)’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서 ‘진리’라는 우회적인 표현으로 밖에 설명할 수가 없었고, 예수님에 대해 확실하게 증언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말씀 되시는 예수님 자신의 직접적인 증언 뿐 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반론을 시작하십니다.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한다.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한다”(5:34,41)라고 단호하게 주장하십니다.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은 현장에서 아마도 추가적으로 이렇게 말씀 하셨을 겁니다. “내가 이런 놀라운 기적을 행하고, 그 일을 행하시게 만드신 아버지의 이름을 거론 하는 것은, 내가 하고 있는 이 일들이 바로 아버지가 아들인 나를 직접 증언하시기 위해서 능력과 권위로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왜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들은 기적의 이면에서 증언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면서, 안식일에 장애를 가진 사람을 고치는 일을 하였다고 해서 시비를 걸고,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내가 말했다고 해서 신성모독으로 몰아가는구나,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우매한 자들이구나” “직접 보여 주어도, 직접 말해 주어도 모르는 자들아! 내가 너희를 어찌하리요” 이렇게 책망하시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기적과, 현장에서 라이브로 들려주시는 자신의 말씀이 세례 요한이 전한 ‘진리’보다 훨씬 큰 증언이라고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왜 이렇게 왜곡되고 편향된 지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지도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너희 유대인들이 나에 대해 증언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듣지도 못하고, 형상(예수님 자신이 눈앞에 있어도)도 보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들려주어도 붙잡지도 못하고, 결정적으로 아버지지가 나를 보냈는데도 전혀 믿지를 않기 때문이다”라고 증언해 주십니다.
유대인들은 변덕이 죽 끓듯이 갈팡질팡하는 성격입니다. 손바닥 뒤집듯이 하나님을 배신하기를 얼마나 쉽게 하는지 모릅니다. 이런 형편없는 믿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직접 인간으로 오셔서, “나 여기 있다. 너희들이 그렇게도 믿지 못하는 하나님이 바로 나다”라고 최후의 히든카드를 다 쓰셨는데도, 유대인들은 눈앞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직접 증언, 예수님의 실체조차도 전혀 믿지를 못합니다. 저 같이 성격 급한 사람이 이 장면을 연상해 보고 있노 보면,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시는 수고를 다 거두시고, 억지춘향격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강제로 우겨넣고 싶어집니다. 속 터지고 답답해서 저라면 백 번 그렇게 했을 겁니다.
유대인들을 향해서 말씀하신 오늘 성경의 말씀이,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불편한 진실이 됩니다. 우리 중에는 모태에서 태어나기도 전에 교회에 출석했고, 유아세례를 받았으며, 교회 학교 전 과정을 잘 마쳤고, 청년, 중년, 장년기를 거쳐 여기까지 신앙생활에 이르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과정 중에서 우리는 과연 믿음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증언 받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 우리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증언해주었습니까? 부모님이요? 교회 학교 선생님이요? 교회 목사님이요? 알고 계시는 어떤 멘토에게서요? 그것이 누구로부터 증언 되었는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증언에 대한 나의 반응이 어떠했는지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들어온 예수님에 대한 수많은 증언 들이 100% 진리 였다고 확신 하십니까? 나는 더 이상 예수님에 대해서 추가적인 증언을 듣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자부하십니까? 아무도 여기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할 겁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예수님의 이름을 들어 왔는데, 그렇게 많은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는데, 그렇게 다양한 양질의 교육과 훈련을 받아 왔는데, 매 주마다 선포되는 말씀이 그렇게나 많이 쏟아지는데도, 왜 나의 삶은 예수님 방향으로 옮겨지지 못하고, 왜 나의 삶은 예수님이 무수히 말씀하신 그리스도인의 생활 지침을 하나도 준수하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도대체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다름 아닌 우리가 예수님의 증언을 의심하고, 무시하고, 거부했던 유대인들과 똑같기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믿기를 거부했던 현장에 있던 많은 무리들, 그리고 앞으로 믿음과 씨름해야 하는 수많은 예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증언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39절의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아멘. 성경 말씀이 예수님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언이라고 못 박아서 말씀하십니다. 성경의 주인공은 오직 한 분, 예수님을 위해서 쓰여진 책이라고 결정지어 주셨습니다.
이 39절 말씀에 우리가 믿음을 찾아가는 해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증언을 듣는 것이고, 그 방법은 오직 성경 말씀을 통하는 외길 뿐 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아무리 많이 들었던 예수님에 대한 증언은 다 필요 없습니다. 단 한번이라도, 나와 예수님이 일대일의 관계 속에서,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난 횟수, 예수님과 대화한 시간, 예수님의 가르침을 순종한 기록들만이 나의 믿음을 확증하고, 보장해 줄 수 있습니다. 말씀 없이 예수님을 만나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현재 내 삶에 말씀이 전혀 적용되지 않고 있다면, 나는 과연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증언을 들었는가? 나는 예수님의 실체를 직접 보고 경험한 적이 있는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된다고 하면, 꼭 이런 분들이 계십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기는 한데, 글자(문자)로 기록된 방대한 분량의 성경책에서 어떻게 예수님을 찾는단 말입니까?, 나는 한 번도 그런 경험이 없습니다. 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차라리 유대인들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 눈앞에 예수님이 나타나 주시면 되지, 왜 어렵게 말씀을 통해서 찾으라고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있습니다. 편하자고 하면 한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않고,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지식으로만 성경을 읽고 이해하려고 하면, 성경 100독을 한다 하여도 예수님의 실체는커녕, 예수님의 그림자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우려를 불식시켜 주는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우리로서는 도저히 성경 말씀을 이해할 수 없지만, 성령 하나님이 도와주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성경에서 예수님을 찾고, 만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 방법을 만들어 놓았는데도 여전히 우리가 믿음의 확신 없이 살아가는 것은 순전히 내 선택이고, 내 책임입니다. 예수님도, “너희가 성경 말씀이 나를 증언해 주는 것을 알면서도, 영생(생명)을 얻으러 나에게 오려고 하지 않는다” (요 5:40)고 하셨습니다. 죽어도 하기 싫다는데 어쩌겠습니까? 성경 알레르기라도 있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꿈쩍도 않고, 움직여지지 않는 원인은 또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이러한 원인에 대해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요 5:42)이라고 말씀 하셨고, 또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요 14:2)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의 가장 큰 계명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했는데, 가장 중요한 이 한가지의 계명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큰 계명도 못 지키는데, 작은 계명을 지킬 리가 없습니다. “성경이 너무 어렵다, 분량이 너무 많다, 성경에서 예수님을 어떻게 찾아내나” 등등의 이유를 대는 것은 사랑이 식어진 연인이 더 이상 만남을 이어가는 것이 귀찮아 지는 것처럼, 다 핑계일 뿐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은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않는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는 반대로,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려는 것을 즐기며 살아갑니다.
사람에게서 취하는 영광을 쫓아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십자가의 은혜를 내가 언제 받았나? 기억조차 희미한 채로, 믿음이라는 존귀한 가치를 구겨진 종이 장처럼 아무렇게나 취급하면서, 생색내고, 아부하고, 자랑하고, 돈을 쫓아다니고, 음란과 욕망에 빠져 살아가는 삶을 즐깁니다. 힘은 힘대로 들이지만, 그 영광은 사탄이 다 빼앗아 가고, 버려진 몸으로 사망과 심판 앞에 서게 될 사랑 없는 자들은 예수님의 진노아래 놓이는 신세가 됩니다. 사람의 증언을 따라가고, 사랑에게서 영광을 취하려는 사람들의 종말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에 대해 전혀 궁금하지 않은 사람은 애초부터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랑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전혀 상관없는 남남지간이라는 말입니다. 단 한 번이라도, “예수님이 누구인가”에 대한 직접 증언을 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결코 예수님에 대한사랑의 열정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없이 남남으로 살아가면서도 예수님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나는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모세를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 했고 그가 받은 율법만을 맹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교만에 빠트리고 죄의 종노릇 하도록 만든 것이 다름 아닌 그들이 목숨 걸고 그토록 사랑했던 율법이었습니다. 똑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을 만나는 통로가 되고, 불순종하는자들에게는 자신을 묶어 버리는 자승자박의 도구가 됩니다. 우리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경력이 우리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간접 증언에 빠져서 믿음을 다 얻은 것으로 생각하는 유아기적인 신앙, 초보 그리스도를 모습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바울이 표현한 것과 같이 단단한 음식과 고기를 마음껏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장성한 분량의 믿음을 얻으려면, 직접적인 증언이 무한대로 펼쳐져 있는 말씀의 바다로 항해에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아무도 믿지 마십시오. 단언컨대, 사람은 믿을 것이 하나도 없는 존재입니다. 이 세상은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악한 영이 판치는 곳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직접 증언만이 우리를 평화롭고 자유롭게 만듭니다. 직접 증언을 들으려면, 우선 사랑의 불씨를 되살려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성경 말씀 속에 충만하게 임재 하여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려고 끊임없는 시도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성령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아서 말씀이 이해되고 내 것이 되는 기쁨을 누려 보십시오. 그렇게 경험되는 증언 한 마디 한 마디는 불확실 했던 구원의 문제가 확신으로 우리 심장에 새겨질 것이고, 제자로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지침이 될 것이고, 증인으로 사명 감당하는 담대함으로 작용 할 것입니다. 이런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살아 역사하는 있는 위대한 말씀의 능력이고,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의 증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00교회 모든 성도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말고, 사람에게서 증언을 듣다가 평생 유대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단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처럼 선포 하십시오. “나는, 사람에게서 어떤 진리의 증언도 듣지 않습니다” “나는, 사람에게서(세상에서) 어떤 영광도 취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고백하십시오. “나는, 오직 예수님만을 사랑하는 사랑의 불씨를 일평생 꺼트리지 않겠습니다” “나는, 오늘부터 예수님이 직접 증언하시는 성경 말씀 속에서 예수님을 찾고, 만나고, 듣고, 그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이렇게 결단하시고 고백하시면, 우리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내일이면 늦습니다. 오늘이 가기 전에 결단과 고백을 드려서, 예수님을 확실하게 붙잡고, 예수님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고, 예수님의 능력을 날마다 공급 받아서, 믿음의 부요함을 이루어 가시는 00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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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지금껏 사람과 세상 속에서 무엇인가를 얻고, 취하려고 했던 우리의 모습을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증언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던 게으름과 나태함도 인정합니다. 우리 마음에 사랑의 불씨를 내려 주셔서,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듣고,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증언해 주시고, 함께 하여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