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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예수님의 이름을 마음껏 자랑하세요. (고린도후서 4장 16-18절)

작성자김민호목사|작성시간18.04.13|조회수394 목록 댓글 2



주일설교. 예수님의 이름을 마음껏 자랑하세요. (고린도후서 4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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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세절의 짧은 말씀 속에는 각 절마다 확연하게 대조되는 단어들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겉사람과 속사람, 환난의 경한 것과 영광의 중한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짧고 명료하게 나누어 말합니다. 그런데 이 세 구절은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고라고 시작합니다. 앞서 무슨 말을 받아서 그러므로라고 시작하였을까요?

 

10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졌다는 뜻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항상 죽음의 위험에 직면한다는 말입니다. 8-9절에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 죽음을 위협받는 일들이 여러 가지 나옵니다. 우겨 쌈(환난, hard pressed), 답답한 일, 박해(핍박), 거꾸러뜨림(때려 눕히다 struck down) 같은 고난을 필연적으로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고난들은, 우리 몸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이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 할 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부지기수의 일들입니다.

 

, 그러면 16절은 이렇게 연결됩니다. 우리에게 부활 소망이 있기에, 우리 몸속에 생명이 숨 쉬고 있기에, 우리와 예수님이 함께 하시기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라고 시작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를 보잘 것 없는 질그릇에 비유 합니다. 목숨 걸고 복음 전하는데 하찮은 질그릇 이라 불려 진다면 굉장히 서운할 법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질그릇이기 때문에 자랑하거나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보잘 것 없이 초라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값진 보석이나 진주 그릇 이라면 사람들은 그릇 안에 담긴 내용물은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투박한 질그릇 일지라도, 그 질그릇에 담긴 것은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우리 주님 이십니다. 보배이신 주님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우리가 빛이 나고, 값어치 있는 그릇으로 평가 받고 살아가는 겁니다. 이를 항상 고마워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때문에 보잘 것 없었던 나의 가치가 최고치로 높아졌고, 신분이 고귀해졌다면, 당연히 자랑하며 다녀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부활의 기쁨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는 종이요 제자라는 신분임을 한 시라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부활의 주님을 마음껏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세 가지 유익이 있다고 말합니다. 말씀을 듣는 우리 모두에게 삶의 힘이 되는 부활의 능력과 소망을 다시 한 번 가득 채우시고, 복음을 전하려는 믿음의 결단이 일어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이름을 마음껏 자랑하는 사람은, 겉사람은 낡아지고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16)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은 정열적이어야 합니다.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지치지 않아야 합니다. 확고해야 합니다. 전도자의 대명사인 사도 바울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상 한 것과는 다르게, 정작 사도 바울은 전도자의 모습이 약해야 한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서 약한 것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고린도 후서 1130절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왜 상식과 반대되는 이런 말을 했을까요? 그에 대한 답이 고린도후서 129-10절에 있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아멘

 

약한 때에 강함이라는 역설의 미학이 담겨져 있는 말씀입니다. 만약 바울이 자신이 습득한 지식과 능력과 의지를 가지고 강하게 일을 해 나갔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별로 필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완벽하게 낮아지고 약해짐으로 인해, 반대 급부적으로 하나님의 강한 능력이 역사 할 수 있었던 겁니다. 바울뿐이 아니라 예수님조차도 하나님 앞에 약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고후 13:4)고 합니다. 주님이 죽음을 거부하거나, 거절 하셨다면, 부활의 영광은 없었을 겁니다. 복음 전파를 하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약해져야 능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약해져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만이 가진 역설의 능력입니다.


16절에 복음 전파자는 겉사람은 낡아지고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합니다. 이것이 약했을 때 나타나는 아주 중요한 현상입니다. 겉사람이 낡아진다는 것이 세상의 기준과 맞습니까?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자신의 겉모습을 행복의 척도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한국 사람들은 과시하는 욕구(체면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머리에서 발끝까지 치장하여 멋있고 품위 있게 뽐내기를 매우 좋아합니다. 남과 비교하기를 좋아하여, 집과 차의 크기도 비슷해야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성격은 불같아서 지고는 못삽니다. 남이 하는 것은 나도 꼭 하고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무슨 열풍, 무슨 유행이 금새 일어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풍조에 휩쓸려 따라 하기를 즐겨합니다. 자시 겉사람을 스스로 약해지게 만든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인격은 말살되고 사회에서 매장된다고 생각할 겁니다. “왜 그렇게 바보같이 지고 살아야 합니까?”라고 반문 할 겁니다.

 

빈 깡통이 소리가 요란하고, 속 빈 배추가 껍질이 두껍다는 말이 있습니다. 복음 전파에 선발된 사람들은,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사용하시는 최 정예 용사들입니다. 성령 충만한 영적 군사들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이 약해빠진 사람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의 허약한 겉을 벗겨내고 강건하게 속을 꽉 채워서,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십니다. 속사람이 점점 더 새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고, 특별한 선물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극진히 사랑하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생명이 떠나지 않도록 지켜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갖가지 현실의 어려움과 고통당함을 위로하고 독려해주시는 애정의 표현입니다. 속사람만 강건해 진다면 그야말로 천하무적, 하나님 나라의 군사가 되는 겁니다.

 

부활의 예수님은 아마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시고 싶어하실 겁니다. “강한 체 하지마라! 강해 보이는 흉내도 내지 마라! 네가 내 앞에서 약함을 인정한다면, 내가 반드시 너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여 주리라! 000() 속 사람이 강한 용사로 만들어서 내가 마음껏 쓸 수 있는 복음의 일꾼으로 사용하고 싶구나!”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면 뭐라고 대답 하실 겁니다. “저 지금도 강해요, 됐으니 다른 사람 알아보세요!” 라고 하시렵니까? “, 주님, 잘 들립니다! 저의 속사람을 강하게 만들어 주세요, 저를 마음껏 사용하세요. 복음이 필요한 곳에 저를 어디든지 보내 주세요. 제가 가겠습니다!” 전자입니까? 후자 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의 가장 큰 기쁨이 무엇이겠습니까? 잃어버린 어린 양, 곧 죄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중대차한 일을 저와 여러분과 00교회에 맡기셨습니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교회가 복음전파의 사명을 능력 있게 감당할 수 있도록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성령의 역사가 강력하게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00교회가 복음의 전파자들을 무수히 배출하여, 구원받는 역사나 불길같이 일어나는 강력한 복음의 진원지가 되기를 소망하고, 우리 각자가 그 일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속사람이 강건한 믿음의 용사들이 되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예수님의 이름을 마음껏 자랑하는 사람은,  환난은 가볍고, 잠시일 뿐이지만, 그로인해 받게 되는 큰 영광은 영원합니다. (17)

 

바울의 일생에 비추어 보면,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는 춥고, 배고프고, 맞고, 수치당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닐 정도로 육체는 모진 학대를 받고, 온갖 조롱과 멸시 속에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져갑니다. 단적으로, 언제 죽을지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하루하루에 내몰리는 극한직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체적, 정신적 환난을 겪는 것은 극심한 고통일 것인데, 바울은 그 환난을 가볍다, 잠시일 뿐이다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표면적인 이유로는, 모진 고난을 당할 때에 항상 예수님이 함께 해 주셨기 때문에 견디고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면에서는, 사람들의 눈에는 복음 전하는 일이 보잘 것 없게 보였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이 세상 모든 것보다 큰 영원한 영광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임을 절절하게 깨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세상의 평가가 아닌 하나님의 평가만을 생각하며 살았다는 겁니다.

 

바울은, 하늘의 상급이 그냥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아무리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라고 하여도 모든 사람이 영광을 받을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난의 순간에 이렇게 외치며 견뎌 냈습니다. 자신이 당하는 환난이 죽을 만큼 힘들 때면, “가볍네, 가벼워, 십자가의 죽으심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스스로에게 말하면서 고통을 참아냈습니다. 모욕과 수치, 헐벗음이 다반사인데도 침 뱉음을 당하시고, 희롱 당하신 예수님은 더하셨잖아, 이겨내신 예수님만 생각하자계속 복음에 대해 동기부여를 하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4:13) 이 말은, 나를 길에 버리든지, 며칠이고 굶게 하든지, 매로 때리든지, 칼로 죽이든지, 어떤 일을 당한다 해도 그것을 감당할 능력 주시는 예수님 때문에 내가 다 견뎌 낼 수 있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참으로 처절하고 강건한 고백입니다. 누구나 다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갖은 환난 가운을 겪으면서도, 그것이 가볍다, 잠시 뿐이다라고 여기면서, 눈물고개를 묵묵히 걸어가는 자가 하늘의 귀한 상급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개인적인 어려움과 고난은 다 있습니다. 앞으로도 고난이 계속 있을 겁니다. 고난을 애써서 체험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칭찬과 상급, 그리고 영광을 얻는 길을 가기 위해, 고난을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교회도 성장을 이루어 가기를 간절하게 원하고 있습니다.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고난이 잠시 뿐이라는 생각으로 복음을 전하는 복음전도자가 많아져야 합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교회가 성장 한다는 이야기는 허상이고 망상입니다. 남이 해 주기를 기다려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복음전도는 성령의 푸시(push),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전도하라고 강조 하여도, 개개인이 성령의 감동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허사입니다. 전도하지 않는 개인이나, 전도하기를 포기한 교회 분위기는 성령이 소멸된 상태라는 증거입니다. 성령이 없는 개인과 교회는 지금 당장의 환난이 가볍고, 잠시 뿐이라는 역설의 이치를 절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그로인해 나중에 큰 영광을 얻는 소망도 품을 수도 없습니다. 암울한 미래, 어둠의 미래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 자신과 교회의 미래가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주 예수님이 목숨 걸고 하셨던 그일, 바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우리도 따라하고, 우리 교회가 따라하는 일입니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교회가 복음전도에 목숨 걸고 매진하는(올인) 하는 결단이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복음전도는 주님이 가장 원하시는 일이고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지체하거나 멈추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부활의 기쁨, 소망이 우리 안에 있다고 확신 하신다면, 그 능력 그대로, 성령의 감동을 따라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시며, 마지막 날에 큰 영광을 받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예수님의 이름을 마음껏 자랑하는 사람은,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18)

 

18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아멘.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없다면 믿음 자체의 의미가 없습니다. 믿음은 부활이라는 강력한 증거를 대동하고 생활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셨으니 나도 다시 살 것이고, 주님이 승천 하셨으니 나도 천국에 간다는 확신과, 영생, 영원한 나라에서 누릴 안식이라는 확실한 보상이 예비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서의 질병과 가난과 고통을 참고 견디어 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믿음의 희망에 대해서 18절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잠깐이라고 합니다.

 

복음전도자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항상 생각하고 항상 느꼈습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한 사람들의 마음 상태입니다. 사실, 전도를 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전도자들이 하는 말들을 5%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이 확신이 차있거나, 밝고 환한 표정으로 열심을 보일 때면, 무언가 편안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만 자신 있게 전해도, 역사는 성령이 하십니다. 전에 강력하게 복음을 전하시는 선교사님의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영상의 댓글 중에 저 분이 누군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저 분이 하는 말들이 왠지 끌림이 온다. 예수 믿으면 다 저런 건가?”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부활을 몸에 지닌 사람은 누가 봐도 티가 나게 달라 보이는 면모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 하실 때에 그러한 모습이 보여지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면 의욕만 가지고 할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나를 정화 시켜 주는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성령을 사모하고 받아들이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보이는 것을 버리는 과정, 죄를 철저하게 끊어내는 자기 노력이 이었어야 합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확신과 소망이 내 자신 안에서부터 넘쳐니야 합니다. 불확실하고 자신 없어 하는 태도는 죄와 욕심이 여전히 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채우고 죄를 멀리하야 표정과 말투가 확신으로 바뀝니다. 어떻습니까? 성령 충만을 원하시죠. 아멘이십니까? , 좋습니다. 아멘으로 답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을 받는다는 것은 앞으로 환난, 고통, 멸시 다 충분히 이겨낼 준비가 되었다는 선언입니다. 보이는 세상의 일보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우선하겠다는 순종적인 자세입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이든지 맡기면 불평하지 않고 잘 맡아서 하겠다는 준비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묻습니다. 그래도 성령 충만을 원하십니까? , 감사합니다. 항상 믿음의 아멘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분명하게 부활에 대한 확신과, 복음전파에 대한 사명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사모하시고, 더 높은 수준의 믿음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안개 같은 잠깐의 인생의 즐거움을 과감히 포기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을 상급을 목표로 한 걸음씩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후로, (첫째) 날마다 속사람이 강건해 지는 은혜를 충만하게 받으시고, (둘째) 내가 일상에서 겪고 있는 환난을 잠시 잠깐으로 가볍게 여기고 능히 돌파 할 수 있는 능력을 받으시고, (셋째) 성령 충만함으로, 언제 어디서나 확실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나날이 희망이 보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영원토록 00교회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고,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하나님이 이 곳을 떠나지 않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결코 낙심하거나 주저 않지 마십시오. 더욱더 힘내서 분발하시고, 기도하시고, 한 마음이 되어서,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는 믿음의 공동체를 세워 나가는, 강건한 주님의 용사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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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붙잡아 주셔서, 날마다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은혜를 주옵시고, 환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옵시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날로 깊어지도록 성령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영원한 나라의 소망과 부활의 기쁨을 전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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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하나님의미소 | 작성시간 18.04.14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 작성자세계는나의일터 | 작성시간 18.06.02 아멘.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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