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사도행전 11장 19-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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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 하시기를,“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는 사명을 남겨 주셨습니다. 이른바, 지상대명령이라고 불리는 말씀 구절입니다.
이 명령을 잘 순종하기 위해서는 “너희는 가라”라는 말씀과 같이, 복음을 전파하러 앞다투어 세상 곳곳으로 가야 합니다.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 이후, 예루살렘에 있던 신자들이 여러 곳으로 흩어져 나아간 이후에, 가는 곳곳마다 교회가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너희는 가라”는 말씀이 실행이 되자, 비로서 “예루 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전파”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씨를 뿌리지 않으면 거둘 것이 없는 것처럼, 복음들고 가지 않고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교회 부흥의 역사는, 모이고 흩어지라는 성경 말씀이 실행되는 곳에서 나타납니다. 이 말씀은 지금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성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복음을 들고 흩어지기 위해서임을 늘 생각하시면서, 예배를 통해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성도들은 주님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복음을 들고 세상에 나가기를 반복하고, 실천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예배 시간 마다, “너희는 가라”고 반복하여 말씀하시는 우리 주님의 명령의 음성을 잘 들으시고, 들리는 그 말씀 대로 즉시 순종하시고, 즉각 실천하는데 앞장서시는 사명 감당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람들이 흩어지자, 가장 눈에 뛰게 나타난 현상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급속도로 전파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세상으로 흩어진 사람들로 인해 이방인들 중심으로 세워진 ‘안디옥 교회’에 대한 내용입니다. 안디옥은 수리아(현재는 시리아) 라는 나라의 수도 였고, 예루살렘으로부터 북쪽으로 500km나 되는 먼 곳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수리아 동쪽 실피우스 산(Silpius, 오늘날 이름은 Habib-i Neccar로, 440미터 높이)에 있는 동굴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비록 동굴교회였지만, 이 교회는 예루살렘교회, 로마교회, 콘스탄티노플(현재 터키 이스탄불)교회, 알렉산드리아(이집트 북부)교회와 함께 초대교회의 중요한 다섯 개 교회 중 하나였습니다. 그만큼 영향력과 규모면에서 교회역사의 기둥이 되는 중요한 교회 였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복음 전파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19절을 읽어 드립니다.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아멘.
스데반 집사의 순교 사건으로 흩어진 자들이 환란을 피해서, 예루살렘에서 250km 떨어진 베니게(페니키아)에, 480km떨어진 섬인 구브로(키프로스), 500km떨어진 안디옥에게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정도로 멀리 가야할 만큼, 사울(개종하기 전)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얼마나 극심하게 교회 성도들을 박해 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19절 말미에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고 했습니다.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 당시에는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이 전해지고, 유대인들만이 성령 받고 구원에 이를수 있다는 아주 편협된 사고가 굉장히 강했습니다. 복음이 전파 되어갔지만, 콧대 높은 선민의식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초대 교회 상황을 잠깐 설명 드리면, 유대교와 기독교는 처음부터 분리된 종교로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유대교 내의 한 분파가 기독교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중에 기독교로 개종했어도 여전히 정기적으로 유대인 회당에 나가고, 율법을 지키며 살고자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주후 90년에 ‘얌니아’(야브네 Yavne, 욥바와 가사 사이의 지중해 연안 도시, 얍네라고도 함)라는 곳에서 회의를 하면서 구약성경 39권을 자신들만의 경전으로 결정하였고, 이 때에 기독교인들에 대해서 저주를 선포하고, 이들이 유대인 회당을 출입하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공식적으로 이 때부터 유대교와 기독교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자신들의 종교를 철벽으로 만들고, 더 폐쇄적으로 문을 걸어 잠궜지만, 복음이 전파되는 부흥의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거세져 갔습니다. 유대인들은 아주 작은 소수 민족에 불과했고, 이방인들은 비교가 안 될 만큼 다수였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20, 21절을 읽어 드립니다.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아멘.
20절에 ‘헬라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당시에 유대인 이외의 외국 사람들을 헬라인이라고 불렀는데, 헬라인은 그리스인을 뜻하며, 넒은 의미로는 그리스어를 쓰는 사람들, 그리스문화(헬레니즘-그리스와 오리엔트 문화의 융합)에 익숙한 사람들 이라는 포괄적인 용어입니다.
‘헬라’라는 단어의 어원은 ‘그리스인이 사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제우스 신이 대홍수를 일으켜 인간을 멸절 시켰는데, 그 때 살아남은 사람은 ‘데우칼리온과 피라’ 라는 부부 단 두명이었고, 이들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헬렌’이었습니다. 헬렌은 모든 그리스인의 시조로 추앙 받았으며, 헬렌의 이름에서 헬라라는 말이 파생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헬라인=그리스인, 헬라어=그리스어, 헬레니즘=그리스 문명, 이렇게 알아두시면 됩니다.
20절 본문의 내용을 보면, 구브로(키프로스, 섬)와 구레네(현재 리비아 북동부) 사람들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 즉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이로 인해 폭발적인 신도의 증가(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가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 중심의 교회로 급성장을 이룬 대표적인 교회였습니다.
21절의 앞 부분에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라고 했습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곳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수고를 했지만, 사람의 노력으로 성과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는 주의 손, 즉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함께 했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심이 않으면 교회는 세워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 하시기 직전에,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항상 함께 해 주시겠다는 분명한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대로 우리 주님은, 안디옥 교회의 복음 전파 현장에 함께 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일하시면 기적이 일어나고, 능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00 교회도 주님이 크게 역사하시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고, 우리의 미래는 그러한 역사를 경험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굳게 믿고 기도로 준비하시면 됩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들의 마음에 “세상 끝날 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 항상 떠나지 아니하여, 모이고, 흩어지고, 복음 전하는 일을 온 몸으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곧 성도들의 가장 자랑스러운 전통이 되고, 유산이 되도, 교회중의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예상치 못한 안디옥 교회의 급성장을 본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파송하여 현지 상황을 살피도록 하였습니다. 그 내용이 22~24절 까지의 내용입니다. 읽어 드립니다.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는 초대 교회 당시에 사도들과 비견되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바울 보다도 이름이 먼저 언급될 정도로 권위와 존경을 받았습니다.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가서 한 일은, 모든 성도들의 마음이 복음으로 굳게 서게 도와주는 일이었습니다.
신자들이 일시적인 감동에 의해 잠깐 교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지속적으로 머물러 있으며 계속해서 믿음이 성장해 나가도록 지도해 주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라는 말씀처럼, 이전보다 더욱 폭발적인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처음 안디옥 교회의 급성장이 외적인 숫자의 부흥 이었다면, 바나바를 통해 이루어진 교회의 부흥은 내적인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가는 역사였습니다. 교회의 역사가 성령의 역사임은 분명하지만, 성령의 역사로 세워져 가는 교회 안에는,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을 통하여 내실이 다져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안에는 신실한 주님의 제자들, 일꾼들이 많이 필요 합니다.
바나바라는 인물 자체가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의 인품, 바나바의 언행, 바나바의 모범적인 자세를 보고, 모든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그대로 따라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교회를 세워가는데 필요한 지도자, 그리고 직분자들을 세울 때는 정말 모든 사람이 따르고 존경 할 만한, 바나바와 같은 사람을 택하여야 합니다.
우리 00교회가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인해 외적인 부흥을 이루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나바와 같이, 교회의 내적인 부흥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신실한 주님의 제자가 세워 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가 열심히 배우고, 순종하고, 믿음으로 성장하여, 주님이 크게 쓰셔서 섬기고 가르치는 자리로 파송 받을 수 있는 큰 일꾼들로 잘 준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디옥 교회가 급속도로 성장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교회 역사의 정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결말이 맺어졌습니다.
25, 26절을 읽어 드립니다.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아멘.
바나바는 혼자서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을 가르치는 것이 점점 한계에 다다르자, 함께 일할 동역자를 생각하다가 바울을 떠올렸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미 만난적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행적을 살펴보면,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 사건이 있은 후, 사도행전 9장에서는 회심 후 즉시 전도한 일들이 나오는데, 바울 자신의 증언으로는 광야에서 3년(갈 1:17)을 지낸 후 전도하였다고 고백했습니다.
광야에서 돌아온 바울은 다메석에서 전도를 하다가 유대인들에게 쫓겨 광주리를 타고 도망가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후 예루살렘에 가서 15일을 머물면서 사도들을 만났는데, 이 때에 바울이 과거 예루살렘 교인들을 핍박하던 사람이 아니라 진정으로 회심한 사람이라는 것을 변호해 준 인물이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을 떠나서 ‘길리기아와 수리아’ 지역에서 전도를 하였고, 바나바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의 고향인 ‘다소’에 머물러 있던 중이었습니다. 당시는 바울이 회심 한 후 약 13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25, 26절에 의하면, 바나바는 다소에서 바울을 만나 안디옥으로 데려왔고, 둘이 함께 일 년 동안 큰 무리를 가르쳤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에게는 안디옥 교회가 어머니와 같은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을 가르침을 받은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믿음은 물론이고, 말과 행동에서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모범적인 변화를 이루어 갔습니다. 수 많은 제자들이 양성이 되었습니다. 그 제자들의 행실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부르는 별칭이 생겼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는 호칭이었습니다.
지금이야 크리스천 이라고 하면 단순하게 고유명사화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이, “유별난 사람들, 웃기는 사람들, 희안한 사람들, 미친 것 같은 사람들” 이런 정도로, 손가락질 하며, 혀를 내두르며 부르던 호칭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교회 밖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였다는 겁니다. 말과 행동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를 보이는 신기한 집단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이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 이라는 호칭은, 교회 안의 사람들이 부르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교회 밖의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이었습니다. 유별나고, 뚜렸하고, 구분되고, 변화된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 이것이 초대 안디옥 교회에서부터 시작된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모습을 보면, 요즘 시대의 교회, 특히 한국교회의 모습에 비추어 시사하는 바가 너무나도 중대합니다.
과연 지금도 세상 사람들이라 일컬어지는 교회 밖의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바라보면서, 2천년 전의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처럼, 유별나고, 뚜렸하고, 구분되고, 변화된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지고 있을까요? 그래서 교회 안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Christian)”인들이야, 맞아, 틀림 없어, 이런 식의 평가를 하고 있을까요?
우리 모두가 느끼고 있는 것처럼, 지금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에 대해 불려지는 교회 밖에서의 호칭은, 듣고 있기에는 너무나도 참담한 지경입니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교회라고 하면 최악의 혐오 집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접촉과 기피 대상 일순위가 되어 버렸습니다. 목사라고 하면, 존경 받는 성직자의 이미지는커녕, 돈과 성과 권력에 찌들은 괴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교회의 입장에서는 이런 평가가 억울 할 수 있습니다. 언론에 의해 일방적으로 매도 된 경우도 많았고, 교회와 기독교인 이라고 하면 덮어 두고 욕하고 비난하는 것이 인터넷 댓글상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인식이, 일부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교회 전체가 욕 먹고 있다, 억울하다, 악질 공격자들 때문이다, 등등의 반감적인 대응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던 그 이유에서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호칭을 정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불러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교회가 푹발적으로 성장하고, 모든 성도가 믿음이 날로 성장해 가고, 훌륭한 지도자의 가르침을 받아 제자화되었더니,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됩니다.
‘제자화“ 되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만 따라가는 것이고, ②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만 따라가는 것이고, ③ 죽기까지 충성하여 칭찬과 영광과 존귀함에 이르신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가는 것이고, ④ 죄에 대해서는 죽기까지 싸워 이기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내 평생의 시간을 드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가는 것이 교회의 모습이고, 성도의 모습이며, 이렇게 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다시 교회 밖의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인(Christian)”인들이야, 맞아, 틀림 없어, 라는 호칭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 모습을 다시 회복할 때까지 이 땅의 모든 교회들, 특히 모든 한국교회는 인고의 시간을, 참회의 시간을, 땀 흘리며 수고하는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 길만이 초대 안디옥 교회의 모습으로 회복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성장 과정을 보면, 우리가 반성 해야 할 모습, 그리고 나아갈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폭발적인 외적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한국교회도 평양대부흥과 같이 성령의 불길이 타올랐던 영광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과거의 엄청난 영광이 현재의 자랑이 되게 하려면, 다시 성령의 능력을 구하며 부르짖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교회의 성장도 없다는 것, 이러한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 되는 교회였습니다. 인종과 신분과 재산과 지식(학벌)에 상관 없이 누구라도 평등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서 오직 믿음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교회로 올바르게 세워지려면, 돈과 직분이 권력이 되는 악질적인 구조부터 없애야 합니다. 사람(목사, 장로)이 권력이 되는 참담한 모습을 반드시 끊어내야 합니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주님 한 분 이시고, 주님 안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을 추구할 때,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 회복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 이라는 걸출한 지도자의 가르침이 있었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만한 제자들이 배출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사람을 세우고, 가르치고,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언행일치를 뛰어넘는 신행일치의 성도를 양성하는 일에 교회는 온 전력을 다해 매진해야 합니다. 누가 보더라도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 임이 확연하게 드러나도록 가르친다면, 다시 세상 밖에서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는 호칭을 부여 받는 초대 안디옥 교회의 역사가 재현이 될 것입니다.
우리 00교회가 바라고 원하는 교회의 모델이 바로 안디옥 교회의 모습입니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비난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내가 알아가야 할 것을 열심히 배우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솔선수범하여 행동으로 옮길 때, 우리 교회는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이라 일컴을 받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임을 굳게 믿습니다.
추석 명절 이후에 우리는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는 세상이 걱정하고 비난하는 교회와 성도가 아니라,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어가야 합니다. 그 중심에 우리 교회가 선두에 서서 모범을 보일 수 있도록 한 마음 한 뜻으로 우리 교회를 믿음위에 굳건하게 세워 가며, 크게 쓰임 받는 제자를 양성해 나가고, 나가서 복음전하는 일에 앞장서는 교회중의 교회로 성장해 나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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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터 위에 이 땅에 세워진 교회들이, 오직 예수님을 증거하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성령 안에서, 믿음 안에서, 사랑안에서, 소망 안에서, 외적인 부흥과 내적인 성장을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