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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복음”과 “믿음의 순종” (로마서 1장 1-5절)

작성자백대영|작성시간22.01.09|조회수504 목록 댓글 0

로마서는 파울이 네로 황제 통치의 초기인 주후 57년쯤에 기록하였고 코린트에서 예루살렘 여행을 준비하며 기록합니다(롬 15:25, 행 20:3). 파울이 3차 전도여행을 끝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고 할 무렵에 코린트에 3달을 머무를 때 기록하였을 것입니다(행 20:3-6, 고후 13:1).

로마서 1장 1-17절은 ‘편지의 서문(opening, 열기)’입니다.1) 로마서의 주된 본문(main body)은 파울의 복음에 관한 논문입니다.2) 로마서 1장 1-7절은 발신인과 수신인을 밝히는 부분입니다.3) 이방인을 위한 사도직에 관한 파울의 자기소개입니다.4)

 

 

1. 로마서의 발신인은 파울입니다(롬 1:1).

 

로마서 1장 1절에 “파울 크리스트 예수의 종은, 부르심을 받은 사도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for) 따로 떼어 둠을 받은.”이라고 하였습니다.

 

1) 파울은 “크리스트 예수의 종”입니다.

로마서 1장 1절에 “파울 크리스트 예수의 종은,”이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파울은 자신을 “크리스트 예수의 종”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파울은 자신이 “크리스트 예수의 종”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였습니다.

“예수의 종”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파울의 주(主)시라는 것입니다.5) 높은 주인을 섬기는 종에게 큰 명예가 따르는 것도 사실입니다.6) “종”이라는 사상은 본래 주인에게 속한 전적인 소유라는 뜻입니다.7) 따라서 “종”에는 겸손(humility), 헌신, 복종이라는 뜻이 있습니다.8) 왜냐하면 종의 운명이 주인의 처분에 달렸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9)

종은 그의 주인에게 소속된 자며 그의 주인에게 충성을 바쳐야 하는데 크리스트 예수의 종은 크리스트 예수께 충성을 바쳐야 하는 사람입니다.

 

2) 파울은 “부름 받은 사도”입니다.

로마서 1장 1절을 계속 보면, “부름 받은 사도는”이라고 하였습니다.

파울의 자기소개의 두 번째 내용은 “부름 받은 사도”라는 소개입니다. 그는 사도로 부름 받은(called as an apostle) 자입니다.

파울은 예수 크리스트께서 친히 임명하신 사도 집단의 일원입니다.10)

“사도(使徒)”라는 말은 헬라어로는 “아포스톨로스”입니다. 기본적 의미는 어떤 사명(使命)을 위해 “보냄을 받은 사신(使臣)”입니다. 명령을 시켜서 보냄을 받은 신하로서, 보낸 자의 권위를 가진 자입니다.

부활하신 주 예수 크리스트를 본 자만이 그의 사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 크리스트를 보았다고 다 사도가 되는 것은 아니고 사도로 부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사도가 될 수 있는 두 번째 조건입니다. 파울은 부름 받은 사도였습니다.

 

3) 파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떼어 두어진 자”입니다.

로마서 1장 1절을 계속 보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for) 따로 떼어 둠을 받은.”이라고 하였습니다.

파울의 자기소개의 셋째 내용은 “따로 떼어 두어진 자”라는 것입니다. 파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따로 떼어 둠을(set apart)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복음을 위한 일꾼으로 파울을 따로 떼어 두셨습니다.

파울은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따로 떼어둠을 받았습니다.11)

 

 

2. 파울은 복음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1) 복음은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로마서 1장 1절 끝에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의 주제는 “복음”, 즉 “좋은 소식”입니다. “복음”은 편지의 틀인 로마서의 서문과 결문에서 특히 현저합니다. “복음”은 1장 16-17절에서 높은 자리(pride of place)를 가집니다. 다른 소주제들은 모두 복음의 정교한 설명(elaboration)들입니다. 로마서는 파울이 그가 전도하는 복음을 요약한 것입니다.12)

“하나님의”라는 소유격 표현은 로마서 1장에 9번 나오는 표현입니다. 파울은 지금 “하나님께 관한”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한 목적으로 파울을 떼어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하였으니,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것입니다. 좋은 소식은 하나님께 속하여 있습니다. 복음의 원천은 하나님이십니다.

 

2) 복음은 “미리 약속된”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절에 “그것을 그가 미리 약속하셨노라”고 하였습니다.

 

3) 복음은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된 것입니다.

로마서 1장 3절에 “그의 아들에 관하여…”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은 그의 아들에 관한 것이며, 그에 관하여 미리 약속된 것입니다. 파울이 말하는 복음의 중심 내용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 복음의 초점은 한 인격체(a person)인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이십니다.13)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의 왕국”이었고(마 4:23), 사도 파울이 선포한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서입니다. 왜 이런 차이점이 있을까요? 예수님의 복음과 파울의 복음은 다를까요?

예수님께서는 “그 왕국의 좋은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선포하신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복음의 내용인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갈 수 없었는데,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파울은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전함으로 사실 그는 “하나님의 왕국”의 복음을 전한 것과 같은 일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파울의 복음은 예수님의 천국 복음과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크리스트께서 천국 입장을 가능하게 하신 것입니다. 파울 복음의 내용은 바로 이것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해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분이신지 분사를 통하여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어떤 분이십니까?

(1) 하나님의 아들은 육체에 따라 다윗의 씨에서 나셨습니다.

로마서 1장 3절에 “그는 육체에 따라 다윗의 씨에서 태어나셨고.”라고 하였습니다.

이 문구는 인간 존재로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에 초점을 맞춥니다. “다윗의 씨에서”는 아들의 메시아 자격에 대한 분명한 언급입니다.14)

여기에서 “다윗의 씨”를 언급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의 자손(子孫)이며 왕적인 메시아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사 11:1, 렘 23:5-6, 겔 34:23-31).15)

하나님께서 다윗의 씨가 영원한 지배를 가질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삼하 7:12-16)은 구약(사 11:1, 렘 23:5-6, 30:9, 33:14)에서 메시아 기대의 첫째의 초점(focus)이 되었습니다(마 9:27, 요 7:42 등). 이 약속은 예수님 안에 그 성취를 보게 됩니다(마 1:1-16, 룩 1:27).16)

하나님의 아들은 미리 약속된 대로 다윗 왕의 씨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복음은 다윗 왕의 씨에서 태어나신 약속된 왕에 대한 것입니다(롬 1:3). “믿음”은 그 통치 속에 들어오는 통로일 뿐입니다. 아담은 불순종하였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였습니다. 회개는 왕께 불순종한 것을 뉘우치고 왕이신 하나님과 메시아께 순종하는 삶을 살 것이라는 결단인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내용이 “복음”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2) 신성의 영(Spirit)에 따라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셨습니다.

로마서 1장 4절에 “신성의 영(Spirit)에 따라서 죽은 자들의 부활에서 능력을 가진(in)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신,”이라고 하였습니다.

한글개역 성경에서 “인정하다”라고 번역된 그리스어(호리조)는 “결정하다”(determine), “임명하다”(appoint), “지정하다”를 의미하는데 영어로 “선언하다”(declare), “임명하다”(designate)로 번역되었습니다. 예수 크리스트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셨으며 임명되셨습니다.

예수 크리스트께서는 능력 안에(in)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셨습니다. “능력 안에”는 “능력과 함께”, “능력을 가진”(with)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예수 크리스트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능력과 함께(with) 선언되셨는지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셨는지의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한글개역 성경은 “능력으로 선언되셨다”는 해석 입장에 따라서 번역하나 아마도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셨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능력으로”라고 번역된 말은 “선포되셨다”는 동사를 꾸민 것이 아니라 “능력을 가진”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사를 꾸밉니다. 그는 “능력을 가진” 분이시며 그러한 분으로 선언되신 것을 뜻합니다. 죽은 자들의 부활로부터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셨습니다.

신성의 영(Spirit)을 따라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셨는데 “신성의 영(Spirit)”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그는 성령에 따라서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신 분이신데, 그는 죽은 자들의 부활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셨습니다.

(3)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 크리스트 우리의 주(Lord)십니다.

로마서 1장 4절 끝에 “예수 크리스트 우리의 주시라”라고 하였습니다.

“주(Lord)”(퀴리오스)는 하나님을 가리킬 때 사용한 말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주(Lord)”가 “야훼”를 가리킬 때 사용한 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라는 말은 그가 하나님이신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다윗은 그의 씨에서 주 하나님께서 생겨나실 것을 미리 예언하였습니다.

주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만들었다면 주인이 됩니다. 또 하나는 값을 주고 샀다면 주인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 모든 것들을 만드신 창조주(創造主)십니다. 그리고 인류는 죄를 범하였기에 죄와 사탄에게 팔려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피를 값으로 지불하셔서 신자들을 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구원하신 주(主)십니다.

노예 시장에서 노예를 사는 것은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셨으므로, 우리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노예가 그의 주인(主人)을 향해 “주인님,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신의 노예니 무엇이든지 시켜만 주십시오, 당신이 시키시는 일이라면 모두 다 행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 크리스트의 복음의 내용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보고 바울 복음의 내용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보는 것은 성경을 통합적 안목으로 못 보는 것입니다. 파울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파울의 복음은 똑같은 것입니다. 내용은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3. 파울은 사도의 신분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1장 5절에 “그를 통하여 모든 민족들 안에 믿음의 순종 안으로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신분을 받았노라(receive).”라고 하였습니다.

5절의 시작인 “~로 말미암아”는 “~을 통하여”(Through)를 뜻합니다. “그”(whom)는 4절에 나왔던 “예수 크리스트”를 가리키는 대명사입니다. “그로 말미암아”(Through whom)는 “예수 크리스트를 통하여”입니다.

“우리”(we)는 파울 자신을 가리키는 편집상의 복수형일 것입니다.17) 예수 크리스트를 통하여(through whom) 그는 받았습니다(received). 그를 통하여 그는 은혜와 사도의 신분(apostleship)을 받게 되었습니다. 파울은 “은혜”를 받았고 “사도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사도의 신분”은 “은혜”를 설명하는 것일 가능성이 많습니다.18) 그렇다면 “은혜와 사도의 직분”은 ‘사도 신분의 은혜’라는 의미입니다. 파울은 “은혜”를 받았는데 그 은혜가 바로 “사도의 신분”입니다. 즉 그는 사도가 되는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고 불 수 있는 것입니다.19)

파울은 그의 사도의 신분이 가진 3가지 국면에 관심을 유도합니다. 파울은 3가지 국면을 3개의 전치사 구문을 사용하여서 나열합니다.20)

 

1) 파울은 “믿음의 순종 안으로” 사도 신분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1장 5절 가운데에 보면 “믿음의 순종 안으로”라고 하였습니다. 한국어 개역 성경에는 “믿어 순종케 하나니”로 번역되었습니다.

파울의 사도직의 목적은 “믿음의 순종”입니다.21)

“~ 안으로”라는 말은 “to bring about”, “for”, “to”라고 번역되었는데 신학이 어려운 이유는 단어 하나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어 성경들이 같은 전치사를 번역하면서도 다르게 번역하는 것을 보면,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에 대하여 논란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에서 일단은 “~을 위해(for)”라고 번역하는 것이 무난하여 보이는데 “~을 위해”는 목표를 나타내는 전치사입니다.

“믿음의 순종”이 한국어 개역 성경에 “믿어 순종”이라고 번역되었으나 “믿음의 순종(obedience of faith)”이 정확하고 바른 번역입니다. 한국어 개역 성경은 이것을 “믿다”와 “순종하다”는 동사로 번역하지만 원어 및 영어로는 “믿음”(faith)의 “순종”(obedience)이라는 명사입니다.

“순종”(휘파코에)은 “순종”, “복종”(obedience)을 의미합니다. “말을 듣다”, “순종하다”라는 동사(휘파쿠오)에서 나왔습니다. 누군가의 아래에서(휘포) 듣는(아쿠오) 것입니다. 그러므로 70인경은 “듣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번역에 자주 사용합니다(창 22:18).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한 결과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반면,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불명예가 그들을 덮게 되었습니다(창 22:18, 렘 3:25). “순종”은 구약성경부터 반복적으로 강조되었습니다.

아담이 죄를 범하고 타락한 것은 순종하지 아니한 불순종 때문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불순종한 것이 “죄”입니다. 아담은 그의 아내의 말을 듣고 금지된 선악과를 먹었습니다(창 3:17). 아담은 그의 아내의 말을 듣느라고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고 그의 말씀에서 빗나간 것이 “죄”입니다.

그 바람들과 바다조차 예수님께 말을 듣고 복종하게 됩니다(마 8:27). 더러운 영들(spirits)조차 예수님께 말을 듣고 복종하였습니다(막 1:27). 자연들과 더러운 영들(spirits)조차도 예수님의 말씀에 복종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왕이신 예수님께 거역하고 반역합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그 제사장들의 많은 군중도 그 믿음에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행 6:7). 이전의 삶과 달리 예수님께 말을 듣겠다고 결단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나의 인생의 왕으로 살았음을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 해결과 인류의 불순종을 순종으로 바꾸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땅의 모든 민족(nation)들이 너의 씨(seed) 안에 복을 줌을 받았나니,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obey) 결과입니다(창 22:18, 창 26:5).

일반적으로 “믿음”과 “순종”을 반대 개념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는데 본문에서 확인되듯이 “믿음”과 “순종”은 밀접하게 연결된 용어들입니다. 이것은 믿는다고 말하는 입술의 고백만으로는 참 믿음이 성립될 수 없고 “순종”이 있어야 참 믿음이라는 것을 암시하여 줍니다(요 3:36).

파울이 “순종”이라는 말을 쓰는 것의 반이 로마서에 나오고 있는데,22) 이것은 로마서가 “믿음”만이 아니라 “순종”을 강조하고 있음을 증명하며 오직 “믿음”만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로마서를 오해한 것입니다.

우리는 순종 없는 믿음이 가능한 것인지를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23) “믿음의 순종”이라고 하였는데, “of”는 동격(同格)을 뜻하기도 합니다. 사도 파울은 “믿음의 순종”을 위해(for) 사도 신분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죄는 불순종인 반면 믿음은 순종이며 죄와 믿음은 반대되는 뜻입니다. 죄는 하나님께 말을 듣지 않고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자기가 생각한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24)

복음을 믿어야 하는 이유를 복 받기 위해서라고 하면 뭐라고 합니까? 전에는 이러한 식의 전도가 통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어떻습니까? ‘나는 예수 안 믿고 교회 안 다녀도 너보다 잘 살아’라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복 받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철저히 잘못된 것입니다. 죄를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예수 믿는 것입니다.

“순종”은 항상 “믿음”을 포함하고, “믿음”은 항상 “순종”을 포함합니다. 파울은 “순종”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믿음”에 초대하였습니다.25)

복음을 믿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고 멸망에 이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파울은 “믿음의 순종”이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복음을 믿을 때에, 그것은 사실상 “믿음의 순종”입니다. “순종”이라는 말은, 의탁과 복종의 전체 개념을 드러냅니다. 구원에는 전인(whole man)이 수반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면 믿는 것이 아닙니다.26)

그냥 입으로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으로는 구원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구원에는 “지정의(知情意)”라는 인격의 전체가 함께 수반되어야 합니다. 지적으로 동의할 뿐만 아니라 의지적인 순종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가지 않겠다고 대답하였어도 그 후에 뉘우치고 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가지 않겠다는 것이 잘못임을 알았으니 갈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하고는 가지 않으면 회개가 아닙니다. 그냥 말만 바꾸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처음 믿음을 고백하는 것은 크리스트께 순종할 것을 결단하는 것이며, 계속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크리스트께 계속 순종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순종”이라는 말에 내포되는 있는 의미인 것입니다.

처음 예수 크리스트를 믿겠다고 말할 때에 이런 순종의 결단이 없다면 그는 진정으로 예수 크리스트를 “주”로 받아들인 신자가 아닌 것입니다.

파울은 예수 크리스트를 통하여 모든 이방인 안에 믿음의 순종을 위해 사도 신분의 은혜를 받았습니다(롬 1:5).

 

2) 파울은 “모든 이방인들 안에” 사도 신분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1장 5절 가운데에 “모든 이방인들 안에”라고 하였습니다.

그를 통하여 파울은 믿음의 순종을 위해 사도 신분의 은혜를 받았는데 “모든 이방인들 안에”입니다. 영어 성경들은 번역에서 둘로 나눠집니다. 최근에 한글 번역처럼 “이방인(Gentile)들”로 번역한 번역본들이 있지만 “민족”(nation)으로 번역한 번역본들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무와 제임스 던은 이것이 “이방인”을 뜻한다고 주장합니다.27) 파울의 사도직의 (수행할) 장소는 “모든 이방인들 안에”입니다.28)

 

3) 파울은 “크리스트의 이름을 위해” 사도 신분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1장 5절 가운데에 “그의 이름을 위해”라고 하였습니다.

크리스트의 이름을 위하여 파울은 사도 신분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는 크리스트의 이름을 알리기 위하여 사도 신분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파울의 사도직의 이익은 “크리스트의 이름”을 위해서입니다.

“이름”은 그의 진정한 성격 안에 그 인격을 내포합니다. 파울은 그의 주 예수 크리스트의 이익을 위하여 봉사하였습니다.29)

파울이 로마서를 보낸 것은 사도로서의 그의 사역 수행의 일환입니다. 사도로서의 사역을 수행하는데 필요하였기에 로마서를 기록하였습니다. 파울은 그의 로마 방문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로마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여러분!

 

파울은 그 자신을 “우리의 주 크리스트 예수의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크리스트 예수의 종”인 것을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종이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시라고 고백하고서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는 종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파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떼어 둠을 받고 복음이 목적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살아야 하겠습니다.

복음은 사람의 복음도 아닌 세상의 복음도 아닌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음은 사람의 생각과 사상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복음은 갑자기 나타나지 않고 구약시대부터 미리 약속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부터 미리 약속하여 오셨던 것을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 내용은 그의 아들이신 예수 크리스트에 관한 것입니다. 그는 약속 같이 다윗의 씨에서 나셨고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셨습니다.

파울은 모든 민족들 안에 믿음의 순종 안으로 사도의 신분을 받았는데 믿음과 순종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믿는다고 말하면서 순종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진짜 믿음이 아닙니다. “순종”이 있어야 진짜 믿음입니다. 사람이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에 의해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순종”은 언제나 “믿음”을 포함하고, “믿음”은 언제나 “순종”을 포함하니, 믿음의 순종으로 믿음을 증명하고 구원을 이루는 복된 성도들이 됩시다!

 

 


1) Douglas J.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W. B. Eerdmans, 1996), 33. Moo, 『NICNT 로마서』, 75.

 

2)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39.

 

3)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33.

 

4) 최종상, 『로마서 이방인의 사도가 전한 복음』, 박대영 옮김 (도서출판 이레서원, 2012), 70.

 

5) D. M.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서문강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 53.

 

6)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41.

 

7) 이한수,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82.

 

8)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41.

 

9) Moo, 『NICNT 로마서』, NICNT 성경주석, 77.

 

10) Moo, 『NICNT 로마서』, NICNT 성경주석, 78.

 

11) Moo, 『NICNT 로마서』, NICNT 성경주석, 79.

 

12)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29-30. 『NICNT 로마서』, 65-66.

 

13)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44. 『NICNT 로마서』, 82.

 

14) Moo, 『NICNT 로마서』, NICNT 성경주석, 84-85.

 

15) 이한수,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91.

 

16)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46. n. 35.

 

17) Moo, 『NICNT 로마서』, NICNT 성경주석, 91.

 

18) Moo, 『NICNT 로마서』, NICNT 성경주석, 91.

 

19) Moo, 『NICNT 로마서』, NICNT 성경주석, 91.

 

20) Moo, 『NICNT 로마서』, NICNT 성경주석, 91.

 

21) Moo, 『NICNT 로마서』, NICNT 성경주석, 91, n. 66.

 

22) Moo, 『NICNT 로마서』, NICNT 성경주석, 91, n. 67.

 

23) 백대영, 『로마서의 이신칭의와 믿음의 순종 이해』 (석사학위 논문, 백석대학교대학원, 2016), 12. http://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be54d9b8bc7cdb09&control_no=bbc0488aa7081221ffe0bdc3ef48d419&keyword=%EB%AF%BF%EC%9D%8C%EC%9D%98%20%EC%88%9C%EC%A2%85

 

2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171-172.

 

25)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52. 『NICNT 로마서』, 93.

 

2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174-180.

 

27) Dunn, Romans 1-8, WBC 38A, 18. Moo, Epistle to the Romans, 53.

 

28)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53.

 

29)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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