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벨론은 굴욕을 당합니다(사 47:1-4).1)
이사야 47장 1절에 “내려오고 먼지에 앉을 것이라 바벨론의 딸 처녀여 그 땅에 거주할 것이라 왕좌가 없어졌음이라 칼데아 사람의 딸이여”라고 하였습니다.
1-3절은 ‘공주가 종이 되었다’는 ‘야유’입니다.2) ‘바벨론의 멸망’을 ‘노예가 된 공주’ 비유로 말합니다.3) 1절은 ‘바벨론의 지배가 끝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4절은 바벨론이 굴욕 당하는 하나님의 복수를 언급합니다.4) 먼저 바벨론의 굴욕 소식이 나오고 이유가 제시됩니다.5)
1절의 동사들은 여왕이 내려오고 먼지에 앉을 것을 명령합니다.6) “바벨론의 딸의 처녀”인 바벨론은 아무에게 침입 받지 않은 처녀 같고 바벨론은 지금까지 앉았던 왕좌가 없어졌기 때문에 땅에 앉아야 합니다.
바벨론의 또 다른 이름은 “부드럽고 우미한”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름도 이제는 불리지 않습니다. 신분이 달라진 것입니다.7)
바벨론은 여종이나 노예 소녀처럼 노동할 것입니다(사 47:2).8)
하나님께서 시온의 딸들의 꽂는 구멍을 벌거벗기신 것처럼(사 3:17), 바벨론의 벌거벗음(nakedness)이 덮개를 벗김을 받게 됩니다(사 47:3).
여기에는 그녀가 성폭행을 당하는 수도 있다는 뜻도 포함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막을 인류를 결코 만나지 못하실 것인데, 이것은 심판이 반드시 시행됨을 하나님께서 재확인하신 것입니다.9) 이것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완전히 패배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10)
이사야 47장 4절에 “우리를 되사시는 자께서는 야훼가 그의 이름이며 이스라엘의 성별된 분이시라(the Holy One of Israel)”라고 하였습니다.
포로들은 “우리를 되사시는 자”라는 칭호를 부르며 노래를 합니다.11) 그들은 바벨론에 대해 정의를 실행할 자가 누구인지를 설명합니다. 성별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불경한 자와 멀리 떨어져 계신 분이신데, 이러한 진술은 이 예언을 성취할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히브리 청중에게 큰 확신을 주는 진술입니다.12)
4절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의 목소리입니다.13) 4절의 찬양은 앞에 12장 6절에서 발견되는 것과 비슷합니다.14) 앞에 12장 6절에 “크게 소리 내고 외쳐라 이는 이스라엘의 성별된 자가 크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되사시는 분은 그의 이름이 군대들의 야훼십니다(사 47:4).
2. 바벨론의 잘못은 교만입니다(사 47:5-11).15)
이사야 47장 5절에 “칼데아 사람의 딸이여 침묵으로 앉으라, 이는 그들이 너에게 ‘왕국들의 여주인’으로 부르지 아니하겠음이라”고 하셨습니다.
5-7절은 ‘바벨론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분노하시는 이유들’입니다.16) 5절은 ‘암흑이 임하고 영광이 없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예언의 서두인 앞에 1절에 나타난 내용이 다시 반복됩니다.17) 하나님께서는 다시 1절의 명령들을 들어 바벨론에 명령하십니다.18) 바벨론의 죄목이 무엇인지 밝히고 있습니다.19)
5절은 바벨론에게 앉으라고 명령하면서 시작됩니다.20) 이제 바벨론은 침묵 속에 앉아 있어야 합니다.21)
이사야는 바벨론에게 “그 암흑 안에 들어가라”고 명령합니다.22) ‘세계 지배의 영광과 광채’를 잃고 추락한 자의 절망과 굴욕감인데,23) 바벨론은 비탄과 고뇌(苦惱)를 뜻하는 암흑 안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바벨론은 어둡고 검은 암흑 안에서 슬프게 탄식하고 괴로워할 것입니다.
“칼데아 사람”(카스디)은 이삭의 사촌(케세드)일 수 있는데(창 22:22), “바벨론”은 도시 이름이고 그 도시를 정복한 자가 “칼데아 사람”입니다.
“칼데아 사람”이 바벨론을 정복하고 수도로 삼았습니다.24) “바벨론”과 “칼데아 사람”이 동의어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사 47:1), 칼데아 사람의 딸은 ‘왕국들의 여주인’으로 불리지 아니합니다(사 47:5).
바벨론이 이제는 ‘왕국들의 여주인’이 아니라 천한 여종이 됩니다.25) 바벨론의 봉신들이 이제는 바벨론에게 숭모를 바치지 아니합니다.26) 바벨론은 ‘왕국들의 여주인’이었는데, 그 위상이 없어진 것입니다.27) 바벨론이 정복당함으로써 그 위상이 끝장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벌하시는 이유가 다음 구절들에 기록되었습니다.
6절에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처벌하신 죄목이 나옵니다(사 47:6).28)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바벨론에 종속된 이유를 설명하십니다.29)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이렇게 굴욕을 주시는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바벨론 사람이 모독하게 허용하십니다.30)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 대하여 격노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백성에 동정심(mercy)을 보이지(show) 아니하고, 바벨론은 자기의 멍에를 노인 위에 매우 무겁게 합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진정한 문제는 무자비함이 아니라 교만입니다.31)
바벨론은 이 세계를 “영원히” 지배할 것이라고 말합니다(사 47:7).32) 그녀는 말하기를 ‘내가 영원히 여주인이 될 것이라’고 하였고, 그녀는 이것(these thing)들을 그 마음 위에 놓지(consider) 아니하였고 그들의 마지막을 기억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바벨론의 죄목은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인정하지 않는 교만입니다.33) 바벨론은 자신이 영원히 세상의 여주인이 되리라고 말하였습니다.34) 나라든 사람이든 권세가 영원하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인 것입니다.35) 바벨론은 영원히 강대국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뜻을 표명한 것인데, 이것은 강대국들이나 권력자들이 언제든지 빠지기 쉬운 함정입니다.36)
바벨론은 교만하였으므로 “영원히” 여주인이 될 것이라고 말하였는데 바벨론은 그 나라가 기한 없이 영원히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내가 될 것이라”는 바벨론의 진술은 신성을 자처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출애굽기 3장 14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어구와 같기 때문입니다.37)
7절은 다른 민족을 능가하여 그 권력이 지속될 것을 자랑하는 것으로, 앞에 3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진술에 모순되는 어리석은 생각입니다.38) 바벨론은 자존성과 영속성에 대하여 어리석은 가정을 세웠습니다.39) 바벨론은 자신의 결정의 결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하였습니다.40)
바벨론은 관능적이며(sensual) 분방하며(wanton) 안전하게 거주하는 여자처럼 자기 마음에 ‘나는 과부로 거주할 것이 아니며 사별을 알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사 47:8).
본문 8-11절에서는 바벨론의 교만과 하나님의 계획이 대조됩니다.41)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선언’입니다.42)
8-11절은 ‘악하며 교만한 바벨론이 멸망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8-9절은 ‘부자와 주술사가 보호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0-11절은 ‘지혜와 신성모독이 재난을 불러오리라’는 말씀입니다.43)
과부와 사별은 여주인에게 본질적이었던 것을 잃는 것을 뜻합니다.44) 이사야는 여자에게 생길 수 있는 가장 안 좋은 일들을 예로 듭니다. 과부로 거주하는 것은 전혀 아무 도움 받을 수 없는 것을 뜻합니다.45) 그녀는 장래의 안전과 소망이 사라지는 사별을 모른다고 말합니다.46) 바벨론은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47) 바벨론은 자신이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뽐낸 것입니다.48)
그리고 하나의 날에 순간 이것들의 둘인 사별과 과부 신세가 오겠으며 그 마법들의 많음 안에 그 마력들의 강대하기 안에 그것들의 완전함처럼 그것들이 올 것입니다(사 47:9).
바벨론이 전능한 왕국이라는 신화는 순간에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자녀가 없어지게 되는 것은 늙어서의 실존에 대한 위협이었습니다.49) 바벨론은 호언장담과 반대로 자식과 남편이 죽는 심판을 당합니다.50) 바벨론은 절대로 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일을 겪습니다.51) 바벨론이 안전하다고 생각한 바로 그 일들이 바벨론에게 임할 것입니다.52)
마법들과 마력들은 행운을 보중하고 불행을 막는 일과 관련된 것인데, 이런 마법들과 마력들에 빠진 바벨론에게 굴욕과 상실이 닥칠 것입니다. 마술적인 의식들의 한가운데서 그러한 일들은 어쨌든 닥칠 것입니다. 마술은 하나님의 능력에 직면할 때에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53) 종교인들은 하나님의 계획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바벨론은 철저한 파괴는 회피할 수 없고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54)
그녀는 그녀의 악 안에 말하였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노라’고 하는데, 그녀의 지혜와 그녀의 지식이 그녀를 돌아오게 하였고(mislead), 그녀는 마음 안에 말하였기를 ‘나고 다시 나 외에 없음’이라고 합니다.
바벨론은 그 행동에 아무도 책임 지울 수 없다고 말합니다(사 47:10). 바벨론은 자신의 행동을 보고 심판할 하나님이 없는 듯이 행동하였는데, 바벨론은 교만하여져서 스스로 하나님이 된 것처럼 행동하였습니다.55) 바벨론은 자신이 악을 행하여도 안전하다고 확신하였습니다.56)
바벨론은 악 가운데에 계속적으로 자신만만해 하면서 지냈습니다.57) 바벨론은 자신을 보고 징벌할 자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58)
바벨론은 “나는 나고 나 외에 아무도 없노라’고 말하였습니다.59) “나다”(I am)는 말은 출애굽기 3장 14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이 말에서도 하나님과 같이 되겠노라는 바벨론의 교만이 잘 드러납니다. 바벨론은 자신을 마치 하나님처럼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벨론은 자기보다도 높은 존재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60)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지혜는 참 지혜가 아닌 세상적인 지혜입니다. 이와 같은 세상적인 지혜와 교만이 바벨론을 멸망하게 하는 요인입니다.
그녀에 악(evil)이 올 것이며 그녀는 그것의 새벽을 알지 못할 것이고, 그녀에 재난이 떨어지겠으며 그녀가 그것을 속죄할 수 있지 못할 것이고 그녀에 갑자기 파멸이 올 것이며 그녀가 알 수 없을 것입니다(사 47:11).
그녀는 그녀의 악 안에 말하였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노라’고 하였고, 그녀 위에 악(재앙)이 올 것입니다.
“재앙”은 10절에 “악”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던 같은 단어입니다. 이것은 3절의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복수의 원칙을 보입니다.61)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악”에 응답하심으로 “악”을 돌려주십니다.62) 바벨론인은 헛된 행동을 취할 것이나, 이것은 결국 무력함을 증명할 뿐입니다.63)
“그녀”는 앞에 언급된 “악”을 가리키며, “악”은 “재앙”이라는 뜻입니다. 재앙의 새벽을 알지 못한다는 것인데, 새벽은 동트는 때입니다. 재앙의 동틈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재앙의 시작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 위에 재앙이 올 것이며 바벨론은 그 재앙의 시작 때를 알지 못합니다. 바벨론이 알지 못하게 그 재앙은 갑자기 시작될 것입니다.
바벨론은 바벨론 위에 떨어지는 재난을 속죄할 수 있지 못하게 되는데 이것은 속전으로 그 재난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을 뜻합니다. 파멸이 그 위에 갑자기 올 것인데 그 파멸은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 파멸은 바벨론이 지금껏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파멸일 것입니다.
3. 우상들과 점성가들에게 구원하여 보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47장 12-15절은 바벨론 종교가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점성술사와 지혜의 책이 미래를 결정할 것을 기대할 수 있으나 사실 이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 자신도 구원하지 못합니다.64) 바벨론은 위기에서 어떻게 행동하여야 할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65)
그 주문(spell)들 안과 그 마법(sorcery)들의 풍부함 안에 서 있으라며 바벨론은 유익하게 하며 두려움으로 떨게 하리라고 말합니다(사 47:12).
이사야는 주술 행위를 신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확신시킵니다.66)
“주문”은 초자연적인 힘들과의 연결과 미래를 묶는 것을 뜻합니다. “마법”은 유익을 얻기 위해 실제로 사용되는 술법들을 가리킵니다.67) 주문과 마법은 바벨론에서 큰 사업이었습니다.68) 이사야는 혹시 그들이 이러한 주문들로 유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혹시 그들이 누구든 두려움으로 떠는 반응을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69) 그런데 그들이 이러한 우상숭배를 계속한다면 두려움에 직면할 것입니다.70)
바벨론은 그 의논(counsel)의 많음으로(with) 지치게 되었고, 하늘을 분할하는 자(astrologer)와 그 별들에 쳐다보는 자(stargazer)와 그 초승달에 올 것을 알리는 자가 구원하게 할 것을 말합니다(사 47:13).
이 구절의 “하늘을 분할하는 자”는 “점성가”(astrologer)를 뜻합니다. “그 별들에 쳐다보는 자”도 “점성가”(stargazer)를 뜻합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점성학(astrology)을 통해 별점 운세를 봅니다. 천문(天文)을 통해 미래를 미리 알아봄으로써 대처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별자리로 점을 보는 것은 바벨론의 점성술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박학한 천문학자와 같은 슬기로운 자들도 바벨론을 구원할 수 없는데, 그들은 자기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므로 다른 자들도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마치 왕겨와 같이 되었는데, 불이 그들을 불태우며 그들이 그 영혼을 불꽃의 손에서 구해내지 못하며 뜨겁게 하는 숯이 아니며 앞에 앉을 수 있는 불꽃이 아닙니다(사 47:14).
“초개(草芥)”는 부서진 짚의 부스러기를 뜻하는 “지푸라기”를 뜻하며, “왕겨(chaff)”는 “겨” 앞에 “왕(王)”자를 붙인 것으로 “여물”을 뜻합니다. “겨”는 벼, 보리 따위의 곡식을 벗겨 낸 껍질을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이상의 어떤 것으로 번역하든 간에, 불에 잘 탄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점성가들은 불에 쉽게 타는 왕겨 이상의 그 어떤 존재도 될 수 없습니다.
불이라는 것이 적당한 온도를 내는 정도면 사람들에게 유익을 줍니다. 사람들을 따뜻하게 해 줄 수 있고 또 캠프파이어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되는 불은 모든 것들을 태워 멸망시킬 심판의 불이며 그들은 불에 타서 사라지는 왕겨와 같이, 하루살이와 같이 될 것입니다.
바벨론의 노동한 자들이며 그 청년 시절로부터 그 돌아다닌 자들인데, 사람마다 건너편에 잘못 행하며 바벨론의 구원자가 없습니다(사 47:15). 바벨론은 버림 받습니다.
심판의 날에 점성가들은 바벨론에게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바벨론을 돌아다니며 무역을 하던 무역상들도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인데, 상인들은 바벨론이 멸망하는 때에 무역국이 사라진 이유로 울 뿐입니다. 상인들에게는 구원할 힘이 없고 상인들은 목숨 부지를 위해 도망합니다. 멸망의 날이 닥칠 때 평소 신뢰하던 자들이 유익을 줄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보편적인 인간애와 인권 존중입니다. 사람이라면 지켜야만 되는 불문율이 사람답게 대접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힘이 있는 때에 약육강식 논리로 자신만 챙길 수 있습니다. 부유한 자나 힘을 가진 자가 저지르기 쉬운 잘못이 분명 있습니다. 잠언 30장 8절은 “가난하게 마시고 부하게도 마소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 상황에서도 잔인한 일에 대하여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의 요구는 모든 사람들이 한 공동체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인데, 이러한 요구를 무시하는 경우 심판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할 것입니다.71)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교만한 자들입니다. 강대국이라고 영원토록 강대국으로 군림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권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권력과 재물과 건강을 비롯해 이 세상의 것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영원히 왕좌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72)
하나님의 길을 따르기를 거부한다면 바벨론처럼 멸망할 것입니다.73) 사람들의 지혜와 지식이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고 있습니다.74)
미래의 세계 권력은 이런 바벨론의 잘못을 그대로 따를 것입니다.75) 바벨론은 성공과 사치(luxury)를 숭배하는 것으로써 특징지어집니다. 바벨론은 우상숭배에 의해 조장된 세속적 자기기만의 상징이며, 그 교만과 야망은 죄악의 궁극적 상징으로 알려졌습니다(창 11:1-9).76)
우리는 교만한 마음과 지나친 자기 확신을 가지고서 살아가면 안 되며 우리는 스스로를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고 믿는 자가 되면 안 됩니다.77)
사람이 그 자신의 결정과 행동에 결산보고를 할 때가 올 것입니다.78)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왕좌에서 내려 먼지에 앉으라고 말씀하시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인류의 교만이 존재할 것인가요?79)
바벨론은 그 자기 망상과 그 교만과 그 야망에 있어 인류의 상징인데, 요한계시록도 이러한 의미로 이 상징을 사용합니다(계 16:19, 17:5). 하나님의 승리는 바벨론으로 표상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입니다.80)
이 세상이 바벨론이며 이 세상의 정신은 교만한 바벨론의 정신입니다. 바벨론의 정신으로 세상과 동화되어 살지 아니하는 복된 성도가 됩시다!
1) Oswalt, 『NICOT 이사야 Ⅱ』, 286.
2) John D. W. Watts, 『이사야 1-33』, WBC 성경주석 24, 강철성 역 (서울: 솔로몬, 2006), 295.
3) 정중호, 『이사야 Ⅱ』,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주석, 157.
4)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72.
5)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74.
6)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74.
7) 정중호, 『이사야 Ⅱ』,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주석, 157-158.
8)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75.
9) 정중호, 『이사야 Ⅱ』,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주석, 158-159.
10)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77.
11) Watts, 『이사야 1-33』, WBC 성경주석, 296.
12)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77-378.
13) 정중호, 『이사야 Ⅱ』,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주석, 159.
14) Oswalt, 『NICOT 이사야 Ⅱ』, 290.
15) Oswalt, 『NICOT 이사야 Ⅱ』, 291.
16)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72.
17) 정중호, 『이사야 Ⅱ』,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주석, 160.
18) Young, 『이사야서 주석 Ⅲ』, 262.
19) 정중호, 『이사야 Ⅱ』,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주석, 160.
20)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78.
21) Oswalt, 『NICOT 이사야 Ⅱ』, 294.
22)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78.
23) Oswalt, 『NICOT 이사야 Ⅱ』, 294.
24) Watts, 『이사야 1-33』, WBC 성경주석, 359.
25) Watts, 『이사야 1-33』, WBC 성경주석, 297.
26)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78.
27) 정중호, 『이사야 Ⅱ』,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주석, 160.
28) 정중호, 『이사야 Ⅱ』,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주석, 160.
29) Watts, 『이사야 1-33』, WBC 성경주석, 297.
30)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78-379.
31) Oswalt, 『NICOT 이사야 Ⅱ』, 296.
32) Alec Motyer, 『이사야 주석』, 박문재 역 (서울: 솔로몬, 2018), 824.
33) 정중호, 『이사야 Ⅱ』,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주석, 161.
34) Oswalt, 『NICOT 이사야 Ⅱ』, 296.
35) Watts, 『이사야 1-33』, WBC 성경주석, 297.
36) 정중호, 『이사야 Ⅱ』,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주석, 161.
37)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79.
38)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80.
39) Oswalt, 『NICOT 이사야 Ⅱ』, 296.
40) Oswalt, 『NICOT 이사야 Ⅱ』, 296.
41)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80.
42) 정중호, 『이사야 Ⅱ』,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주석, 161.
43)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72.
44) Young, 『이사야서 주석 Ⅲ』, 266.
45) Oswalt, 『NICOT 이사야 Ⅱ』, 297-298.
46) Motyer, 『이사야 주석』, 825.
47)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80.
48) 정중호, 『이사야 Ⅱ』,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주석, 161.
49)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82.
50) 정중호, 『이사야 Ⅱ』,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주석, 161.
51) Motyer, 『이사야 주석』, 825.
52) Young, 『이사야서 주석 Ⅲ』, 266.
53) Oswalt, 『NICOT 이사야 Ⅱ』, 298-299.
54)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82.
55)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83.
56) Motyer, 『이사야 주석』, 826.
57) Motyer, 『이사야 주석』, 826.
58) Young, 『이사야서 주석 Ⅲ』, 267.
59) Young, 『이사야서 주석 Ⅲ』, 268.
60) Oswalt, 『NICOT 이사야 Ⅱ』, 300.
61) Motyer, 『이사야 주석』, 826-827.
62)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83.
63)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84.
64)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85.
65) Watts, 『이사야 1-33』, WBC 성경주석, 297.
66) Young, 『이사야서 주석 Ⅲ』, 270.
67) Motyer, 『이사야 주석』, 827.
68) Oswalt, 『이사야』, NIV 적용주석, 624.
69)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85.
70) Oswalt, 『NICOT 이사야 Ⅱ』, 303.
71) 정중호, 『이사야 Ⅱ』,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주석, 163.
72) 정중호, 『이사야 Ⅱ』,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주석, 164.
73)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89.
74) Oswalt, 『이사야』, NIV 적용주석, 626.
75)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89.
76) Watts, 『이사야 1-33』, WBC 성경주석, 298.
77)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389.
78) Watts, 『이사야 1-33』, WBC 성경주석, 298.
79) Oswalt, 『이사야』, NIV 적용주석, 626.
80) Watts, 『이사야 1-33』, WBC 성경주석, 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