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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야고보서 2장 14-17절)

작성자김민호목사|작성시간22.05.17|조회수734 목록 댓글 0

 

주일설교.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야고보서 2장 14-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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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지난 주에 이어 부활 이후의 믿음으로 사는 삶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함께 나눌 야고보서는 행함에 대해 무척이나 강조하는 책입니다. 말씀을 함께 나누실 때 성령 충만의 은혜를 받으시고, 믿음의 전신 갑주를 단단히 입으시고, 삶의 현장에서 행함의 열매들을 풍성하게 맺어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4절을 읽어 드립니다.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 아멘.

공동번역으로 다시 읽어 드립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그런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아멘.

 

공동번역이 더 느낌있게 다가 옵니다. 믿음은 있는데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행함이 없는 믿음이 자기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 라는 말씀들이 매우 공격적입니다. 야고보서를 기준으로 한다면 믿음보다 행함이 훨씬 더 중요한 것처럼 여겨 집니다. 이 본문을 이용하여 행함을 계속 강조하다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 기독교의 구원론이 크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오직 믿음을 강조하며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마르틴 루터는 야고보서를 가리켜서 지푸라기 같은 서신(the letter of straw)이라고 불렀습니다. 루터가 성도들의 삶의 행함를 통한 열매들을 부정해서 이렇게 부른 것이 아닙니다. 루터는 행함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거대한 카톨릭 세력과 죽기 살기로 맞서 싸우고 있는 상황 이었기 때문에,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절대절명의 사명을 완수하여야만 했습니다. 루터에게는 행함이라는 다른 주제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루터 이후에 활동한 칼빈은 종교개혁 당시 나이가 8살에 불과 했습니다. 칼빈(1509-1564)은 루터(1483-1546)보다 26살이나 나이가 적었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유가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칼빈을 성령의 신학자라고 부릅니다. 저도 매우 동의 합니다. 칼빈은 누구보다도 성령과 삶, 성화와 열매 등에 대해서 깊이 연구하고 특별한 강조를 많이 남긴 신학자였습니다.

 

칼빈이 말하기를 “우리가 마음 속에 지니고 있다고 하는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실제인지 허상인지인정 받을 만한지 나만의 착각인지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그 믿음을 아는 방법은 성령의 열매 밖에 없습니다성령은 우리의 믿음을 확증하고보증할 뿐만 아니라성령의 사람으로 변화되어가는 이끌림에 순종할 것인지를 계속 우리에게 요구 하십니다우리는 그 정당한 요구에 순종으로 응답할 때 성화의 삶으로 진군 할 수 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너무나도 합당한 성경적인 관점입니다. 칼빈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누구라도 성경을 읽다 보면,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삶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또한 그 삶의 행위로 맺은 열매들에 대해 심판자의 판단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마주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결국 믿음의 실체는 열매로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반드시 열매로 나타난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삶의 징표입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이 있다고 해서 흔들리면 안 됩니다. 제가 다시 한 번 명확하게 말씀드립니다. 믿음의 주인은 예수님 이십니다. 믿음은 십자가의 고귀한 희생과 부활에 의해 생성되었고,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는 은혜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믿음은 절대로 소멸되거나, 잠식 당하거나, 취소 되거나, 변경되거나, 타협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 만이 죄와 사망에서 구원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은혜(값없이, 공짜로)로 내어주신, 그 위대한 믿음이이라는 선물은 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그 고귀한 믿음을 지켜 주시고, 성장시켜 주시고, 그 믿음의 능력으로 죄와 맞서 싸우며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원동력은 모두다 믿음(믿음의 주인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행함을 항상 믿음을 앞세우는 건강하고 굳센 믿음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4절을 보시면 “믿음이 있다고 해도 행함이 없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행함이 없는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 할 수 있겠습니까?”, 읽으면 읽을 수록 행함으로 인해서 구원이 결정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러분들이 14절을 읽으실 때 행함에 초점을 두고 읽느냐, 믿음에 초점을 두고 읽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확연하게 구분이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실 겁니다. 제가 믿음을 기준으로 읽어 보겠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여러분들에게 만약 믿음이 은혜의 선물로 주어졌다면, 그 믿음대로 행하셔서 이웃에게 유익을 드러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여러분들에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으로 능히(넉넉히, 충분하게) 구원 받는다는 사실이 스스로에게 확신이 되고, 사람들에게 보여져야(증명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여러분에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진짜로 고백 되었다면, 그 믿음이 살아 있는 믿음이라는 것을 언제 어디에서라도 확실하게 증언(선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떴습니까? 완전히 다른 어감으로 들리시죠. 야고보서가 행함에 대해 무척이나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행함을 실천해 갈 수 있는 근본 뿌리가 믿음이라는 것을 부각시키고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성령에 의지하여 차분하게 읽으시고 묵상하시면 이러한 느낌과 감동을 일깨워 주실 겁니다.

 

같은 말씀인데도 행함을 중심으로 읽으면 믿음과 충돌하는 공격적인 말씀으로 보이지만, 믿음을 중심으로 읽으면 우리가 얼마나 믿음을 소중히 여기면서 믿음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막중한 의무감과 책임감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의도가 야고보서에 담겨 있습니다. 행함은 결코 믿음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을 근원(뿌리)에다 심어두고, 그 근원으로부터 행함을 시도할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이 능력을 보여 주느냐, 보여주지 못하느냐는 오직 구원 받았다고 하는 성도(그리스도인)들의 몫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해 나가도록 적극 도와 주십니다. 누구라도 말씀에 순종할 마음만 있으면, 유익한 믿음, 살아 있는 믿음으로 행함의 열매 들을 무수히 맺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가 행함의 열매, 성령을 열매를 맺지 못하는지는 두 가지 이유로 간단하고 확실하게 정리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성령 받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말씀이 깨달아지고,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겠다는 결단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의지를 발휘하여 무언가 조금이나마 해 보려고 하면 그 때뿐입니다. 도돌이표처럼 또 다시 옛날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옛사람의 모습으로는 결코 믿음에 기초한 새사람의 행함을 해 나갈 수 없습니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성령 받지 못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자신이 성령 받았다고 착각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간절하게 성령을 구하고, 성령 충만을 바라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고 했습니다. 내 자신이 성령으로 거듭난 적이 없으면서도, 성령으로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제일 안타깝고 불쌍한 인생입니다.

 

둘째 이유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순종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끊임 없이 우리에게 말씀 하시고 길을 안내 해 주십니다. 그래서 회개와, 돌이킴과, 충성과 헌신등에 대해서 말씀이 선포되면 양심이 움찔거리는 자극을 받습니다. 말씀이 들리면 앞으로 더 이상 죄와 거짓과 불순종에서 살지 말아야 되겠다는 마음이 솟아납니다. 하지만 양심에 찔림이 있음에도, 자신의 의지와 자아의 벽을 넘지 못고, 세상의 유혹과 시험에 물들어서 쉽고 편안한 것을 선택하고,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하는 몸을 함부로 사용하며 살아가다 보니 점점 죄에 대한 감각이 무뎌집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불순종 하는 것이 습관화 되다 보면 어느새 양심에 화인 맞은 자가 되어 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성령님은 매우 근심하시고, 탄식하시면서도 자꾸만 죄를 선택하는 사람을 도와 줄수가 없게 됩니다. 불순종이 반복되면 믿음이 약화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당연히 행함의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성령님이 말씀 하시며 올바른 길로 인도 하시는데도 듣기를 싫어 하고, 불순종을 거듭하는 사람은 방법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처럼 다 멸망당하고, 다 빼앗기고, 다 불타 없어지고, 노예로 끌려간다는 경고음이 들릴 때까지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은 진실로 무서운 징계와 심판을 내리실 겁니다. 성령의 인도를 거부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심각하고 중대한 범죄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믿음이 있으면서도 전혀 행함이 없는 이유는, 성령을 받지 못했거나, 성령의 인도를 거부하는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인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지만, 주님에게 인정 받고 칭찬 받고 성장하는 굳건한 믿음을 지켜가고, 행함을 잘 실천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행함을 실천하는 것인지 15절, 16절을 읽어 드립니다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덥게 하라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아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평가 할 때 자주 이런 말을 합니다. “그 사람 말은 참 잘하네” 라는 말과 “그사람 말도 참 잘하네” 이 두 마디로 사람의 평가가가 극명하게 대비 됩니다. 말도 잘하는 사람, 말만 잘하는 사람,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믿음의 그리스도인은 말만 참 잘한다고 비웃음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말도 참 잘하는 칭찬 받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죠.

 

오늘 말씀에 비춰 보면, 말도 참 잘한다는 것은, 믿음도 있고, 믿음 대로 행함의 열매도 있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말만 참 잘한다는 것은,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행함으로 유익을 전혀 주지 못한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참 된 믿음을 지닌 그리스도인이라면, 참된 믿음을 주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주님이 이미 모범을 보여 주신 것처럼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행함으로 섬겨주는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이웃을 상대할 때에 15절에서와 같이, “늘 평안하세요, 옷이 추워보이네요 좀 따뜻하게 입으셔야 겠어요, 배고프겠다 뭐라도 좀 드셔야 겠네요” 라는 말은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만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헐 벗고, 양식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 내 눈에 보인다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자마자 긍휼히(불쌍히) 여기고, 즉시 최선을 다해 도와준 사람이 강도 만나 버려진 사람을 도와주었던 선한 사마리아인 이었습니다. 누가 강도 만난자의 이웃이냐? 우리 주님은 지금도 우리 각자에게 묻고 계십니다.

 

지난 번 설교에서 영생에 대해 물었던 율법교사 이야기, 그리고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는 로마서 말씀에서와 같이, 우리가 행함을 실천하여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무슨 대단한 일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고, 마주하는 이웃, 동료, 친척이나 지인 들의 형편을 눈여겨 보시고 그들의 필요를 마음으로, 사랑으로 섬겨주면 그것이 곧 행함의 열매입니다.

 

기본적으로 예수님이 나같은 죄인을 직접 찾아오시고, 믿음을 선물로 주시면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내 삶의 고단한 눈물을 다 닦아주시고 위로와 격려를 해 주셨던 그 자비와 은혜를 생각하면 됩니다. 긍휼히 여김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을 잊지 아니하면서 내가 받은 그대로 이웃을 향해 흘려 보내는 것, 그것이 곧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올바른 행함과 순종의 방향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도 말씀 하시기를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 10:42)고 하셨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25장에서 보좌에 앉은 임금(예수님)은 의인들(양들)에게 말씀 하시길,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먹을 것 주고, 물을 주고, 옷을 주고, 병간호를 하고, 옥살이 할 때 돌봐 준 것이 곧 내게(임금-예수님)한 것과 같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참으로 별걸 다 기억 하시는 예수님 이십니다. 예수님이 말씀 하신 일들은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서 직접 하셨던 일들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행동하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을 가진 우리들이 예수님처럼 행함으로 살았는지를 심판날에 물어 보실 겁니다. 예수님처럼 사랑의 마음을 지니고 이웃을 찾아가고, 예수님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이웃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한 다면, 예수님은 작은 것 하나까지 기억하셨다가 큰 상급으로 칭찬해 주실 겁니다.

 

상 받기 위해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이루어진 믿음의 선물이 너무나 감사해서, 믿음의 은혜에 너무나 감격해서, 믿음의 능력에 너무나 감동 받아서, 신나고 즐겁게 행함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믿음대로 행하였더니 행하여 지더라. 행하였더니 열매 맺더라, 열매 맺엇더니 상을 주시더라, 상 받았더니 천국 백성의 영광을 허락 하시더라, 이것이 구원의 길 아니겠습니까? 믿음이 천국가는 구원의 시작이자, 과정이자, 완성이 된다는 것이 다시 한 번 확인 됩니다.

 

행함에 대한 절정의 말씀이 본문 마지막 말씀 17절에 나옵니다. 17절을 읽어 드립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아멘. 비슷한 구절인 26절도 읽어 드립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아멘.

 

행함이 없다면 믿음은 죽은 것이다,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만 받아 들이면 믿음 보다 행함이 중요한 것이라는 정도가 아니라, 행함이 믿음을 좌지우지 하는 것 같습니다. 아 정말 야고보서는 읽을수록 마음이 출렁 거립니다. 자 이 말씀도 행함을 기준으로 보면, 과격하고 급진적인 말씀으로 보이지만, 이 말씀 역시 믿음이라는 기준으로 읽어 본다면 다르게 보입니다. 제가 17절을 믿음의 기준으로 읽어 보겠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네가 왜 행함이 없는지 아느냐믿음이 없기 때문이다네가 왜 두려워 하는지 아느냐믿음이 없기 때문이다네가 슬퍼하는지 아느냐믿음이 없기 때문이다네가 왜 연약한지 아느냐믿음이 없기 때문이다네가 무엇을 하지 못하고 자꾸 포기하려는지 아느냐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너에게 어떤 믿음이 있느냐너에게 썩어질 육체가 아니라 죽어도 다시 살아(부활)나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권세의 믿음이 있지 않느냐그 믿음이 살아 있는 믿음이냐 죽어 있는 믿음이냐왜 너는 내가 준 믿음을 죽은 믿음으로 숨겨 두고 부끄럽게 하느냐그 믿음이 살아 있는 믿음행함으로 역사하는 믿음내 나라와 내 의를 선포하는 믿음 임을 네 스스로 증명 하며 살아라그것이 내가 너에게 준 믿음의 능력이니라,

   명령 하노니너는 다시 믿음으로 일어나라너는 죽은 자의 믿음이 아니요 살아있는 자의 믿음을 지닌 나의 사랑하는 자녀이니라너는 믿음으로 어서 일어나라내가 믿음에 믿음을 더하도록 영원토록 항상 너와 함께 하겠노라

 아멘. 참으로 아멘입니다.

 

앞서 14절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여러분들도 믿음의 눈으로 이 본문을 읽고 묵상해 보십시오. 믿음의 주인되시는 우리 주님의 강력한 능력의 말씀이 살아 역사하심을 경험 하시게 될 겁니다.

 

믿음과 행함은 분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충돌하는 것도 아닙니다. 모두 한 그루의 나무의 성장 과정과 같습니다. 믿음은 뿌리이며 행함은 가지이자 열매입니다. 뿌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시며, 열매는 성령님이 인도하심으로 맺어지는 아름다운 결실입니다. 믿음과 행함은 모두 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구원의 과정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저 굳건하게 구원자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올바르게 성령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태도를 취하면 됩니다.

 

우리의 마음 중심에 믿음이 굳건 하다면 예수님이 값없이 주신 구원의 은혜가 떠나지 않을 것이며, 우리 마음에 행함으로 나아가려는 결단과 의지가 굳건 하다면 성령님이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행함의 풍성한 열매가 맺어지도록 강권적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 그리고 성령님께 나의 언행심사 일체를 맡기고 순종하려 한다면 믿음과 행함이 하나가 되어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고 성장할 것은 명명 백백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령과 동행하면서 행함의 열매들을 맺어가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의 문제입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니요,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도 아니요, 나보다 훨씬 의지가 강하시고, 나보다 훨씬 힘이 쎄시고, 나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나신 성령 하나님이 믿음을 지닌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강권적으로 이끌어(인도) 가시기 때문에, 성령으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은 점점 변화되어 가고, 거룩함으로 성화 되어 가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영광의 모습으로 바뀌어져 갑니다.

 

마음이 일체 요동하지 않고 굳건하다면 믿음이 먼저냐, 행함이 먼저냐, 믿음이 중요하냐, 행함이 중요하냐는 쳇바퀴 같은 논쟁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예수님 이외에 구원 받을 만한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이것이 진리이죠. 뭐가 더 필요 합니까? 야고보서는 믿음과 행함의 우열을 주장하는 책이 결코 아닙니다. 남은 인생 가운데 믿음과 행함으로 성장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최고의 권면이 담겨 있습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자신의 믿음이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인지 늘 확인하고, 내 믿음을 날마다 고백하며 살아가십시오. 또 야고보서의 강한 권면의 말씀을 따라, 믿음이 있다고 자부하는 나는 과연 행함의 열매 맺어가기를 순종하고 있는가? 자신에게 계속 물으시면서 믿음과 행함의 풍성한 결실을 향해 한 걸음씩 변화와 성장으로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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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고귀한 믿음을 은혜의 선물로 주셨사오니, 항상 감사의 고백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천국 가는 그날 까지 믿음의 능력을 붙잡고, 행함으로 순종의 열매를 맺어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믿음 주시고 행함으로 천국까지 인도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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