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적 해석의 곡해(曲解)와 폐해(弊害)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문자적 해석이 비문자적 해석보다 올바르게 해석 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러나 문자적 해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문자적 해석에 지나치게 얽매일 때 종종 심각한 오류에 빠질 수가 있다.
로마서 7장14절~25절 말씀 중 일부는 문자적 해석으로 해석하면 안되는 비문자적인 영적 해석이 필요한 말씀이다. 이 말씀은 감정적 표현의 문장으로 비문자적으로 해석해야만 하는데 대다수가 문자적 해석으로 곡해(曲解)하여 널리 두루 고착화 되었기 때문에 그 폐해(弊害)가 심각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너희들 죽는다 하면 혼내준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지 저 사람이 살인을 하려나보다 라고 해석하지 않는다.
나 죽는다! 죽었다! 라는 표현도 힘들다, 혼났다, 사력(死力)을 다해 힘쓰자 라는 뜻 등이지 자살한다 살해 당한다 라는 뜻으로 해석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로마서 7장 14절~25절의 말씀은 패배자의 고백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패배자의 고백으로 해석하는 두 부류가 있는데 한 부류는 크리소스톰 워치만리 로이드존스 등 율법 안에서 율법 때문에 패배자의 고백을 한다는 것으로 거듭난 자들과 상관없는 구절이 되었고(죄성의 실상을 망각하게 함) 또 다른 한 부류는 어거스틴 루터 칼빈 등 거듭난 패배자의 고백으로 해석하여 거듭난 대사도도 이렇게 패배하고 있다고 곡해함으로 죄를 끊임없이 범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오류를 기독교에 퍼트리고 있다(경건의 능력부인-딤후3:7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게 함) 이것은 비진리의 실체이며 폐해이다.
로마서 5장~8장은 죄라는 단어가 41번 나오는데 1번만 동사이고 40번은 모두 명사라고 한다. 명사로서의 죄는 내가 죄를 범하였다는 범죄가 아닌 인격화된 죄, 죄의 권세를 말하는 것이다.
죄는 아담이 전가한 원죄에서 죄책(단 한번하는 목욕하는 죄)과 죄성(육신)이 있고 자범죄(발닦을 죄)가 있는데 로마서 5장12절 이후부터 6장 7장 8장 모두 죄성(육신)에 대하여 잘 다루고 있다.
6장에서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다고 했는데 7장에서 번복하여 죄의 종이라고 말 할 수 없으며 8장에서 죄성(육신)을 이기는 방법을 잘 말하고 있다.
14절 육신에 속하여 죄아래 팔렸도다
문자적 해석으로 곡해하면 육신의 종 죄의 종이라는 의미이나 영적인 올바른 의미는 내육신, 나의 죄성의 파워를 말하는 것이다.
15절 원하는 이것은 하지 아니하고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문자적 해석으로 곡해하면 미워하는 것을 함으로 범죄 한다는 것이지만 영적인 해석은 죄의 힘을 표현한 것이다.
16절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한다는 것도 내가 악을 행하였다가 아니라 죄성의 파워를 말하는 것이다.
17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속에 거하는 죄니라
득도한 것 진리를 깨달은 것 내가 마구범죄했다 악을 행한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닌 내속에 거하는 죄성의 정체를 알았다는 것이다.
18절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육신의 실체 본 모습을 말한 것 아담의 죄를 전가받은 후손들 모두는 육신(죄성)을 갖게 되었는데 그 육신은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고 선을 행하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절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 문자적 해석으로 곡해하면 악을 행한다이지만 영적인 올바른 해석은 나의 의지는 선을 행하기 원하는 데 죄성(인격화된 죄의 권세)의 파워가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의 의지에 도전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20절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속에 거하는 죄니라
문자적 해석으로 곡해하면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해서 범죄하였다는 의미이지만 영적인 올바른 해석은 내가 범죄하였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속에 거하는 죄의 파워가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7장 21절 새로워진 나는 선을 행하기 원한다. 7장 22절 새로워진 내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 7장 25절 결론적으로 감사하면서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고 하면서 8장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육신의 정체성(육신을 7:14~25에 3번, 8장에 13번 언급)을 밝힌 것으로 내가 아닌 내속에 거하는 죄성의 실체, 죄성의 힘을 고백하는 것으로 내가 악을 행한다. 패배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인격화된 죄의 파워가 강렬하다는 것을 감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께 이 말씀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사도행전 17장의 베뢰아 사람들의 심정으로 상고(詳考)하면 명확하게 풀리는 말씀을 곡해하여 오류가 기독교 안에 널리 퍼져있는 상태이다. 마치 중세까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모르는 것과 똑같다고 할 것이다. 이 구절들에 대한 문자적 해석을 천동설이라 한다면 필자의 주장은 “그래도 지구는 둥글다”라고 한 갈릴레오의 지동설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이 구절의 올바른 해석이 널리 전파된다면 기독교가 변화 될 것이다
에스겔 44:9 마음의 할례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있는 이방인 중에 마음과 몸이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이 구절을 잘못 적용하여 진짜 할례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문자적 해석에 빠지면 갈라디아서의 할례당 처럼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이 구절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사도가 남자의 생식기를 자르라고 했다고 곡해할 수 있으나 실제는 마음의 할례를 하면 되는데 몸의 할레를 행하여야 한다고 주장 하는 자들에게 한 감정적인 표현의 말이다.
예레미야 6:10 귀의 할례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레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기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아니하니
이 구절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귀를 잘라야 하는데 귀를 잘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진리를 듣지 않는 영적 귀머거리들은 회개하라는 뜻이다.
왕상 3:24~25
또 가로되 칼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칼을 왕의 앞으로 가져온지라 왕이 이르되 산 아들을 둘에 나눠 반은 이에게 주고 반은 저에게 주라
이 구절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솔로몬이 잔인하게 사람을 반으로 자르라고 하다니로 곡해할 수 있겠다.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베드로후서 3장16절)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 하므로(사도행전 17장11절) |
2020년 2월 22일 kalits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