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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나누기

생각으로 마음이 정해지는 원리와 지혜의 역할

작성자씨앗|작성시간22.04.13|조회수31 목록 댓글 1

< 생각으로 마음이 정해지는 원리와 지혜의 역할 >

 

 

사람의 마음에 어떤 마음이 정해지려면 먼저 “해야 한다”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정신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법을 지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하는 과제입니다.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떤 것을 원하는 마음이 먼저 생길 수는 없습니다. 물론 본능이라는 것은 예외입니다. 그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연히 갖고 있는 원함입니다. 그 이외의 것들에 대한 마음의 원함이 있으려면 먼저 원하는 대상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선과 악에 대하여 원하거나 원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선과 악의 기준을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한 것에 대하여 “하고 싶다” 혹은 “하고 싶지 않다”라는 고정된 마음이 있으려면 이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해하는 것은 단지 ‘아는’ 것이고, 깨닫는다는 것은 아는 것에서 지나 ‘원하는’ 마음을 함께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제 선과 악을 구분하고 있는 잠언의 글에 관해 말해 보겠습니다. 잠언의 글은 단지 읽는 것만으로 이해가 불가능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실제로 구체적인 법령이 나타나 있는 10장부터의 내용을 보면 한 문장이 하나의 법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한 문장은 보통 상반된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읽으면 한 문장으로 읽어지지가 않습니다. 앞의 말과 뒤의 말 사이에 그 문장의 핵심이 되는 내용이 빠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잠언10장 1절입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버지를 기쁘게 하지만 미련한 아들은 어미를 근심시킨다.”

 

이 말은 언뜻 읽으면 “지혜로우면 어머니,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미련하면 근심을 안겨 드린다.”는 말로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이 말을 이렇게 이해하고 잘 살펴보면 이 해석은 바른 해석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살리시는 것은 ‘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지혜’란 하나님께 구하여 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그냥 ‘꾀를 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구하여 받은 지혜는 세상에서 높아지고 많은 것을 채워 가지려는 욕심을 오히려 ‘비워 내게 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 가르침을 위의 해석대로 하면 당신이 어떤 행동을 지혜롭게 해서 세상에 속한 욕심을 비워 내고 세상에서 낮아졌을 때 당신의 부모가 기뻐하고, 또 채워 갖거나 높아지면 당신의 부모가 근심을 한다는 말이 됩니다.

 

자, 이 말이 맞는 말일까요?

 

실제는 오히려 이와 반대입니다. 채워 갖고 높아지면 기뻐하고 비우고 낮아지면 근심하는 것이 육신의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러니 이 법을 육신적인 것으로 해석을 하면 모순을 안고 있는 가르침이 됩니다.

 

‘지혜’를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의미가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 육신의 부모님들은 높아지고, 돈을 많이 벌어 갖고 오고,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높아져야만 기뻐합니다. 그러니까 이 가르침을 위의 해석처럼 해석하는 것은 본래 뜻과 반대로 해석을 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위의 해석처럼 해석하는 것은 성경의 말씀을 ‘육을 살리는’ 말씀으로 해석하는 것이고, 반대로 낮아짐과 비움을 행하게 하는 해석을 하게 되면 육은 괴롭고 영을 살리는 말씀으로 해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도 육신의 부모 입장에서는 “지가 진짜로 하나님의 아들이면 반대하는 것들을 다 죽여 버리고 왕이 되어 키워 준 부모에게 효도를 하지 뭐라 십자가를 지고 가서 저도 고통을 당하고 부모를 이렇게 개망신을 시키나?”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육신이 원하는 반대의 방향으로 가신 것이고, 그 길로 가서 완성을 하신 법도 역시 그 반대의 길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잠언의 이 한 문장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혜는 어떤 것이므로”라는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내용이 이 문장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의 모든 가르침은 이처럼 문장 안에 들어 있는, 그러나 글로 표현되지 않은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선과 악을 나누어 표현한 법으로써의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구함’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랬을때, 마치 시 한 구절을 자꾸 곱씹으면 그 안에서 다른 의미를 찾게 되는 것과 같이 어느 날 문득 그 문장의 뜻을 하나님이 깨닫게 하십니다. 그것을 일컬어서 “성령을 받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은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모름과 같다.”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영을 살리는 말씀으로 풀이한 내용을 보고 “아하,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는 것은 그저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깨달음은 아닙니다. 이것이 깨달음이 되려면 성령이 당신의 마음에 이 말씀을 새기셔야 하는데 그것이 새겨졌는지 안 새겨졌는지는 당신의 마음만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나는 비우고 낮아져서 세상에서는 힘들더라도 영이 살아서 영원히 살기를 원해.”라는 마음이 있으면 그것이 곧 새겨진 것이고, 또 깨달은 것입니다.

 

이 해석을 읽고 나서 “그런 뜻이었구나.” 하고 그냥 지나가 버리면 그것은 깨달은 것이 아니라 그냥 ‘아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영생할 수 있다.”라고 성경에 적혀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읽고 들어서 알고 있는 말입니다.

 

그것은 단지 ‘아는’ 것입니다. 만일 ‘믿는다.’ 하면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는 지시도 따라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하고, 또 자기 십자가는 무엇이고, 어떻게 져야 하는 것인지도 알려고 해야 하고, 알았으면 그 지시대로 따라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해하고 아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 주변의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에게 한 번 물어 보십시오.

 

“아저씨는 자기를 부인했나요?”

 

“아주머니가 지고 있는 십자가는 무엇이고, 예수님이 지신 것과 같은 십자가라는 것을 증명해 보세요. 그러면 저도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겠어요.”

 

단 한 명에게서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성경과 예수를 ‘아는’ 사람들이지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렇게 ‘아는’ 것은 석가모니를 추앙하는 사람들도 압니다. 그들과 이런 질문에 답을 못하는 "예수를 믿는다." 하는 사람과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의 선과 악을 구분하려면 지혜를 먼저 구하고, 그 다음 내가 노력하여 깨닫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하고 깨달음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깨달아진 말씀의 뜻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 지혜를 받아 가지고 마음에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원함을 가지고 있게 되면, 그때 비로소 당신은 본래 당신을 만든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만일 당신이 지혜를 구하지 않게 되면 당신의 영을 기르시는 성령이 당신의 지혜를 깨달으려고 하지 않는 마음 때문에 근심을 하게 된다는 것이 잠언 10장 1절의 뜻입니다.

 

잠언은 이렇게 지혜를 구하고 깨달아야만 선과 악을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써져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아는 것만이 아니라 깨달음에까지 다다르게 되었을 때 선을 향하고자 하는 원함이 마음에 고정되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의 마음에 선을 향하기를 원하는 마음을 심어 주는 것은 나의 노력도 있어야 하고, 또 하나님의 응답도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원하고 하나님이 답을 주시는 것으로 내 마음이 ‘선’에 속하게 되는 것이어서 성경은 이것을 “합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충분한 설명은 아니지만 선과 악을 구분하는 말씀을 읽는 방법과 그 방법을 따라서 내 마음이 선에 속하게 되는 과정에서의 지혜의 역할을 대략 이해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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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이 현채 @ | 작성시간 22.09.24 사랑하는 님이시여 안녕하세요? 오늘은 토요일입니다. 성일을 준비하는 복된 하루 되시고 좋은 주말 되소서 ... ...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잠언24장6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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