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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나누기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외.

작성자궁극이|작성시간26.06.07|조회수29 목록 댓글 0

◆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하실 때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상태였었는데 이곳에 빛을 비추시니 혼돈 혼탁 혼잡의 혼성적인 흑암이 드러날 건 드러나고, 내려갈 건 내려가고 해서 만물이 자기 위치가 잡아진다. 그리고 위치를 잡은 여기에서 생산이 되고, 생산이 되니 생산된 것으로 건설이 된다. 이게 다 우리의 이룰구원의 이치를 말해주는 거다.

 

성경에 이 말씀을 기록해 놓은 것은 사람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빛이 들어오면 바로 놓일 것은 바로 놓여지고, 드러날 것은 드러나면서 생산적 건설적이 된다는 거다. 이렇게 되면 이룰구원이 쉬워지고 주님이 쓰시기에 좋은 사람이 된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면 사는 게 쉬워진다. 그러니 네 무식을 내려놓고 말씀을 받아라. 그러면 무식이 유식이 되고, 저질이 고차원적으로 되고, 타락성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올라간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자기가 세상을 사는 게 쉬워지는 건데 왜 예수를 믿으면서도 자기가 뭘 해 보려고 하는 거냐? 그러니 더 어려워진다.

 

이런 말을 듣고서 ‘그러면 나는 가만히 있고 주님께 다 맡기면 누가 밥을 먹여주느냐? 내가 돈 벌어서 먹어야지’ 라고 한다면 말은 맞는 것 같은데 뭔가 생각이 잘못되어 있다. 이 말을 들을 때 ‘척’ 하고 드는 생각이 ‘그러면 누가 밥을 먹여주느냐?’ 라는 그 생각부터가 문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라고 했듯이 이런 말을 들을 때는 육신적인 것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말씀의 빛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먼저 생각을 하면서 말씀을 받아들이면 지혜가 나오고, 지혜가 나오면 활동은 지혜대로 들어가기 때문에 사는 면도 어려운 게 아니다. 즉 자기의 나이와 건강과 환경과 처소에서 자기가 뭘 해야겠다는 게 지혜롭게 나온다. 그러면 먹고 마시는 것은 자동적으로 들어간다. 성경에 금은보다, 돈보다, 재물이나 재산보다 먼저 지혜를 가지라고 했다. 지혜는 돈을 가지고 계산을 못한다. 값을 때질 수가 없다. 세상만물을 하나님께서 지혜로 만드신 거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이 만물을 다스리려면 지혜가 없으면, 미련하면 못 다스린다.

 

◆ 자기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빛을 받아들이면 모든 생각과 소원 목적이 정립 정돈 정리가 잘 된다. 이 정신으로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오지만 세상정신으로 예배를 드리면 이건 가인의 피 없는 예배라서 이런 은혜가 없다. 예배에는 천국을 그리워하는 피 있는 아벨의 예배가 있고, 세상 쪽으로 들어간 피 없는 가인의 예배가 있다. 아벨은 예배를 드릴수록 그 마음중심이 부모가 살았던 에덴동산을 그리워하며 그곳에 다시 돌아가려는 소원성(천국의 소망)이 강해지는데 가인의 경우는 예배를 드릴수록 세상을 향한 소원성이 더 커진다.

 

결국 가인은 예배의 정신에서 나온 그대로 장가를 가는데, 하나님을 모르는 여자를 택했다. 그 결과 가인은 농사를 지어도 가시가 난다. 즉 엄청난 고난의 삶을 살게 되었다. 가시가 난다는 것은 육적인 고난으로 인한 극심한 마음의 고통을 말한다. 그 마음은 가시밭이다. 그러니 진리를 가진 동생을 죽이게 되었고, 그 결과로 사는 게 고통이요, 피를 흘리게 되고, 살인이 나는 거다. 이런 이치로 보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오매 세상소원 목적을 가진 당신의 백성들이 이 예수님을 죽였듯이 오늘날도 세상정신을 가지고 믿는 자들이 진리정신을 가진 성도의 신앙을 죽인다.

 

◆ 성경은 진리정신을 가지고 가정을 이끄니 어떤 가정이 되고, 이런 사람들이 나라를 만드니 어떤 나라가 되어 나오고, 반대로 진리정신을 무시하니 그 가정이나 나라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되어 돌아가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구약 때 비진리적 육적 영웅성으로 들어간 자들이 모여서 ‘우리 이름을 날리세. 날리세’ 라고 하면서 바벨론의 두라평지에 큰 나라를 건설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처참히 무너졌다. 노아시대에는 세상누림으로 살던 자들 모두가 홍수에 휩쓸려 죽었다.

 

이걸 영적으로 보면 오늘날 기독자들이 세상소원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밤이 새는 줄 모르고 힘을 쓰다가 세상이라는 거짓된 신앙의 홍수에 휩쓸려 죽으면서도 이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자기가 세월 속에서 세상이라는 물에 빠져 죽으면서도 자기가 죽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으니 지금도 여전히 그런 일에 동원이 되어서 충성을 하고 있다. 성경은 전부가 남이 아닌 나에게 하는 말씀이다.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세상을 보고, 성경을 가지고 정치도 보고, 이방세계도 보고, 이방세계 부모의 소원 목적도 보고, 자녀들의 소원 목적도 보는 거다. 성경이 기준이다.

 

말세가 되면 교회가 예수이름을 빙자해서 종교사업 종교업적으로 들어간다. 마귀가 예수님께 한 세 가지 시험 안에 이런 게 다 들어 있다. 이 세 가지 시험은 모든 성도가 겪는 종합적인 시험인데, 자기는 마귀의 세 가지 시험 중에 어느 것에 속했는지? 어느 시험에 속했건 그걸 예수님처럼 이겨야 한다. 이긴다는 것은 초절이 아니라 초월로 이기는 거다. 그리고 이 시험을 보면서 개인의 신앙도 점검해 보고, 가정의 신앙도 점검해 보고, 교회 전체의 신앙도 점검해 보면서 다른 집은 어떻게 돌아가던 나와 내 집은 오직 주님만 섬기는 집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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