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한 교회에 계속 다니기가 어려운데, 우리교회 교인들은 과거에 다른 교회에서 듣던 말씀이 여기에 와서 듣는 말씀과 비교가 될 거다. 여기서 들은 말씀이 다른 교회에서 들었던 말씀보다 옳고 하나님의 뜻에 더 정확하다고 생각이 된다면 옳은 것에 더 집중을 하고 더 옳은 것을 자기의 기준으로 세워나가야 한다.
움직이지 않는 절대적인 옳음을 자기의 기준으로 가지고 있으면 이 사람은 생활 가운데서도 일반적으로 옳은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물질성적 수단 방법을 기준으로 삼고 살게 되면 이것은 절대적인 게 아니라서 이 사람의 신앙은 그만 거짓적이고 이단적인 신앙이 되고 많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주님과의 관계가 이렇게 된다. 오늘날 거짓과 이단이 다 이렇다. 절대성이 없다. 그리고 활동이나 방편을 절대로 세워놓으면 다른 사람이 자기처럼 활동을 안 하면 신앙이 아닌 것으로 정죄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지식의 절대적인 기준이요, 지혜의 절대적인 기준이요, 선의 절대적인 기준이요, 사랑의 절대적인 기준이요, 거룩의 절대적인 기준이요, 진실의 절대적인 기준이요, 의의 절대적인 기준이요, 주권의 절대적인 기준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런 저런 수단과 방편을 쓰시는데, 그러나 그 중심은 당신의 절대적인 것을 기준을 두고 하시는 거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방편은 사람에 따라, 시간에 따라, 환경과 장소에 따라 다르지만 절대적은 것은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품을 덧입으라는 거다. 이 뜻은 절대로 변함이 없다. 따라서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입는 것도 하나의 방편만 있는 게 아니라 각 사람의 형편과 환경과 사정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의 절대적인 속성에 기준을 두고 해 나갈 때 하나님의 성품이 입어지는 거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신앙 믿음을 하나님 기준대로 바로 세우기 위해 여러 가지 수단 방편을 쓰신다.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건 환경도 주시고, 가정의 일, 사업의 일, 신체에 닥치는 일 등등을 주시는데, 자기가 현실을 살면서 겪는 사건과 환경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지는 게 없다면 이는 선악과를 먹는 것과 같다. 믿는 사람의 몸은 성령님께서 거하는 전인데, 이 전을 더욱 거룩하게 만들어 나가지 않고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자기 몸을 망가뜨리며 구원과 없이 산다면 하나님의 징계가 있을 뿐이다.
예수 믿는 게 세상에서 부자 되고, 몸 건강하고 이런 목적이라면 주님께서 만능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부자가 되게 해 주고 건강하게 해 주실 수 있다. 더 나아가서 그럴 바에는 차라리 당장 천국으로 데리고 가면 더 좋을 거다. 그러나 그게 아니기 때문에 성도들을 죄 많고 불의와 불법이 많은 이 세상에 살게 하는 거다.
예수 믿으면서 천국에 소원과 목적을 두고 있다고 해도 신앙을 하는 위주와 방편이 잘못되면 목적에 도달을 하지 못한다. 위주와 방편도 진리적이라야 진리의 사람으로 만들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