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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1. 영적 권위의 질서를 존중하라(마10:40-42, 140116/이병천목사)

작성자부흥맨|작성시간14.01.18|조회수320 목록 댓글 0

순종의 11단계

 

영적 권위의 질서를 존중하라.

140116(목)

마 10:40-42

 

MT: 영적 권위의 질서를 존중하고, 사역으로 섬기는 사람들, 특히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사람들을 더욱 존경해야 한다.

 

지금까지 나눈 말씀의 주제들을 되짚어 봅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라. _ http://cafe.daum.net/gvlove0691/EzCx/1

2. 하나님의 권위에 굴복하라. _ http://cafe.daum.net/gvlove0691/EzCx/2

3. 순종이 천국의 문이다. _ http://cafe.daum.net/gvlove0691/EzCx/3

4. 무지와 불순종은 미혹의 온상이다. _ http://cafe.daum.net/gvlove0691/EzCx/4

5. 참된 믿음과 예배의 기초는 순종이다. _ http://cafe.daum.net/gvlove0691/EzCx/5

6. 하나님은 100%의 순종만을 받으신다. _ http://cafe.daum.net/gvlove0691/EzCx/6

7. 순종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전혀 먹히지 않는다. _ http://cafe.daum.net/gvlove0691/EzCx/7

8.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라. _ http://cafe.daum.net/gvlove0691/EzCx/8

9. 왕을 존대하라. _ http://cafe.daum.net/gvlove0691/EzCx/9

10. 주의 종의 영적권위를 공경하라.  http://cafe.daum.net/gvlove0691/EzCx/10

 

오늘은 그 열한 번째 시간으로

11. “영적 권위의 질서를 존중하라.”는 말씀을 선포하도록 합니다.

 

권위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일차적으로 우리를 위한 명령입니다.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롬13:7)고 했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의 모든 권위들을 존경하되, 특별히 모든 권위들 가운데 배나 더 존경할 권위가 있으며, 그 배의 존경보다 더 존경해야 할 권위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주님의 종들에게 주어진 영적인 권위라고 말씀합니다. 어제 다음의 3가지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1. 영적권위자의 모욕까지도 복이 될 수 있습니다(한나와 엘리제사장, 가룟 유다).

2. 노골적인 타락이 드러나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 권위를 떠나십시오(고전 5:9-11). 그러나 신중하십시오(딤전5:19-20).

3. 영적권위자의 축복도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

 

어제의 말씀에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4. 영적 권위의 질서를 존중하십시오.

 

(마 10:40-42) 『[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여기에서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우선, 하나님아버지로부터 시작해 모든 권위에는 순서와 질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아버지는 예수님을 보내신 분이요, 예수님에게 모든 권세를 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으니”(마28:1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예수님이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 두신 후 나라를 하나님아버지께 드릴 날이 올 것입니다(고전15:24-26).

 

그 다음 권위자는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는 성경이 여호와의 대언자로 지칭하는 사람입니다(출4:16,7:1)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교회에 주신 다섯 가지 은사 중 하나가 선지자입니다(엡4:8-13). 사역의 은사는 주님이 주십니다. 권위를 위임받은 선지자라는 직분을 통해 주님이 친히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음으로는 “의인”을 언급하셨고, “제자 된 작은 자”까지도 빼놓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는, 머리이신 예수님 밑에서 (작은 자들도 포함하여) 제자들은 교회의 이 다섯 가지 권위에 복종합니다.

 

영적 권위의 영접에는 보상이 따릅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권위를 인정하고 영접하면 그에 상응하는 상을 얻게 되신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영적 권위를 인정하고 영접하지 않으면 그 권위로 인한 유익들을 놓치게 됩니다.

 

(막 6:1-6)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다윗도 가족들을 축복하러 가정에 들어갔을 때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거리에서는 다윗의 승리를 축하하고 있었지만, 정작 다윗의 지붕 아래엔 멸시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미갈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예비하신 복을 잃었습니다.

 

(삼하 6:16,20,23) 『[16]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20]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21]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22]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23]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

 

다윗은 자기 집을 축복할 권한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에게도 자기 고향사람들과 친척들을 축복할 능력이 당연히 있었습니다. 무한한 축복의 권능이 있었는데도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 권위의 질서를 존중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부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딤전 5:17-18) 『[17] 잘 다스리는 장로(목회자)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18]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이 말은 세상권위에 있는 사람들보다 배나 더 영적권위자들인 목회자들을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존경에는 재정적인 보상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목회자와 지도자들을 잘 섬기면 번창하는 복을 받습니다. 그들은 하늘의 경제를 누립니다. 그러나 교인들이 인색한 곳에는 절도와 궁핍, 현세의 열악한 경제 환경에 대한 불평이 늘 존재하게 됨을 봅니다.

 

비비어 목사님이 친구목사님의 교회에서 부흥회를 할 때에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100명이 약간 웃도는 교회였는데 목사님의 사례가 너무 적어서 사모님이 비행기 승무원으로 일을 해야만 했었습니다. 비비어 목사님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디모데전서를 읽었습니다. 목사님 부부가 재정적으로 제대로 대우를 못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사모님이 매주 사나흘씩 비행기를 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시기가 되었다고 교회 앞에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교인들은 자기들의 담임목사에게 축복할 수 있는 기회에 정말로 감격했고 그것은 곧 반응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날 헌금은 그때까지 그 교회에서 가장 많이 나온 헌금의 세 배가 되는 액수였습니다. 사모님은 눈물을 흘렸고 목사님은 할 말을 잊었습니다.

 

그 후 24시간 동안 일어난 모든 사건을 다 적는다면 누구든 놀랄 것입니다. 한 가정은 이튿 날 1만 달러(1,300만원)짜리 수표를 받았습니다. 어느 교인의 문간에는 1,500달러짜리 수표가 든 봉투가 끼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다음 주일까지 간증이 너무 많고 놀라워 목사가 설교를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주에 하나님이 사업이나 개인에게 재정적으로 주신 복을 교인들이 간증하고 듣다 보니 예배시간이 다 흘러가 버렸습니다.

 

다음 2년 동안 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새 건물을 샀고, 교인도 500명으로 늘었습니다. 몇 년째 100명 선을 맴돌던 교회였습니다. 이 밖에도 다른 수많은 예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를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을 공경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영적 권위는 위임된 사역을 통하여 전달됩니다. 아람 군대장관인 나아만의 경우가 그것을 보여줍니다. 나병환자였던 나아만장관이 엘리사선지자에게 치유기도를 받으러 갔을 때,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왕하5:10)는 말을 하였습니다. 나아만은 그 말을 듣고 노하여 물러가며 말했습니다. 그는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왕하5:11) 하였습니다.

 

나아만은 엉뚱한 기대 때문에 하마터면 하나님이 하시려던 치유를 거절할 뻔했습니다. 엘리사가 직접 나왔다면 나아만은 흔쾌히 영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자나 사환정도로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정부요직에 있던 나아만은 엘리사가 자신을 직접 만나러 오지 않자 굴욕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나아만은 위임된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해야 했습니다. 다행이 종들이 설득하여 나아만이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고 나병으로부터 완치되었습니다. 정확히 엘리사가 말한 대로 된 것입니다. 그 사자는 사실 하나님이 주신 권위가 있는 사람을 대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위임된 권위까지도 인정하고 순복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담임목사, 부사역자, 구역장 등으로 위임되는 권위에까지 순복하는 자라야 주님이 주시는 기름부음을 놓치지 않고 다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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